발칙한 QT
타협과 고집 사이에서[왕하17:24-41] 본문
이런 모습으로 출근하기도 하고
가끔은 벙거지 쓰고 퇴근하기도 합니다
걸어 출퇴근하는 제게
너무도 뜨거웠던 날씨는
게재에 시원함과 편리함으로
여행다니는 기분으로 그래 보자 하면서
그래 보았습니다
주여
자유로왔습니다
출근길이 꼭 엄숙할 필요도 없고
퇴근 길에 꼭 점잖을 이유도 없으니
어떠함도 거칠 것 잆었지요.
아.. 그러고 보니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하나님을 인식하는 매일의 삶이면
자연스러운 원리가 쉽게 깨달아지고
행복함이 가깝게 느껴짐입니다
주여.
미련한 고집과
불순한 타협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도록 하소서
내가 주인되어 그리하기 보다
매사 매사
주님이 내 주인이 되시어
내 죽어 주님 앞 갈때까지
주께서 절 인도하시는
가볍고 행복한 날들이 되게 하소서
내 주여
간절히도 기대하고 빕니다
24.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그들이 사마리아를 차지하고 그 여러 성읍에 거주하니라
사단도 이런다 .
본격적으로 영혼의 부분부분을 잠식해 들어가
전 영혼을 다 차지 하려한다.
아.. 그래서 특히 '믿는 자'들에겐
인생은 '영적 전쟁터'이다.
당연히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
...........
27.앗수르 왕이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그 곳에서 사로잡아 온 제사장 한 사람을 그 곳으로 데려가되 그가
그 곳에 가서 거주하며 그 땅 신의 법을 무리에게 가르치게 하라 하니
그러나, 우리 믿는 자들,
예수님 십자가 보혈로 구원의 자격을 받고
성령의 보우하심으로 인치심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전적인 원리 가운데 보호 받고 있다 .
그러기에 함부로 그들.. .. 은 함부로 못한다.
하지만 그들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우는 사자처럼 , 잠도 자지 않고
오늘 말씀 처럼 '광명의 천사'처럼 가장하기 까지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양 ... 거룩을 가장하는 술법까지 쓴다.
29.그러나 각 민족이 각기 자기의 신상들을 만들어 사마리아 사람이 지은 여러 산당들에 두되 각 민족이
자기들이 거주한 성읍에서 그렇게 하여
그러나, 그 거룩한 가장이 진짜 거룩이랴?
'산당'
이 산당이 문제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행동을 하지만
'산당'으로 낭패를 본 수많은 예가... 이 열왕기하에 계속 .. 구약에..나온다 .
산당... 그럴 듯하여... 덜 죄인듯한것.
한가롭고 바람부는 산에 덜 눈에 뜨이게 자리잡는..
그러나 나중엔 전 인생을 갉아 먹는
그럴듯한
합리적인 듯한
형태의 그것.
34.그들이 오늘까지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주신 야곱의 자손에게 명령하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는도다
그런데..
이 산당.
이 산당이 일상에서 어떤 일로 벌어지는가?
난..
수도 없이 많이 보아왔다 .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영광'을 내세우는... .
거룩하고 합리라는 이름으로 , 갖은 명분으로 합리화 시켜
하나님 이름으로 포장해서 내세우는..
진정한 불의들.
심지어는 '정결'하려는 결단을 '미련하고 무지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옹고집'으로 보이게 하는
하나님의 좋아하시는 일과 구분을 가지 않게 하는 것.
그게... '산당'이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삶과 '정결'한 삶을 어떻게 구분할까?
타협으로 인한 불신앙과 옹고집 청교도나 율법적 신앙과
합리적으로 세상에 맞추어 흔들리지 않는 지혜로움과
정결하고 깨끗한 신앙, 고집스럽고 위험한 도도한 배척의 왜곡된 신앙과
또 어찌 구분할까?
역사를 보면
구약시대 부터 신약시대까지
지속적으로 타락과 왜곡, 합리와 미련한 고집 사이에서
새로운 원리 ( 구약과 신약시대, 카톨릭과 개신교, 개신교 내 파벌들.. 그리고 똑같은 고민들.. .) 가
충돌하고 분리되고 또.. 그러면서도
꾸준히 변하지 않는 원리는
하나님께 지금도 죄송스러운 똑같은 모습으로
우리 인류는
그대로 있다는 이야기다 .
아... 솔직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144,000명은 제외하고 말이다.
아.. 또.. 예수님 이후 ... 진정으로 감사하게 이전시대보다 훨씬 더 쉽게 넓게 주님앞에 나갈 자격을 얻었다는
그 귀중한 사실을 제외하고 말이다.
내게..
이 현재.. 오늘에서
그렇다면
주님은 무엇을 말씀하시려는가?
내과에 입원한 환우 분 중에 협진으로
어제 '난소혹 파열'로 인한 '내 출혈' 이 있던 환우.
(자칫 심해지면 사망까지 가능하지만.. 가만히 잘 쉬면 좋아질 확률이 많은 상황.)
오늘 퇴원한다하여 보호자와 면담내려 왓다.
충분히 설명하고 안정을 얘기하며 퇴원하라 했더니
며칠 더 입원 얘기한다.
단칼에 잘랐다.
'그냥 안정만 하시면 되고 병원에서 해줄게 없다. .. "
머쓱해 하며 간다.
나..
내 속에 뒤죽 박죽 거리려는 생각들이
아주 오래된 습관처럼 일어난다.
' 그거... .환우 분께 칼같이 설명함으로 쉽게 이해되게 하는 방법이기도해.. '
'아냐.. 단칼로 자르는 것은 불쾌할 수 있어...'
'.........'
마음이 잠깐 혼돈 스럽다 .
이전보다 조금씩 더 커지는 마음의 부담이 이런거다 .
'예수님 믿는 .. 시간이 늘어나고 나이든 자로서
조금더 부드럽고 여유로운 거... 왜 넌 못하나?'
...질책이다.
내 마음의 혼돈을 오랫동안 가져오던 습관.
아...
그 자책으로 인하여
내 행동의 변화가 오랫동안에 걸쳐나마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후 부터
변화를 겪어온...
나름 일견 선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그전 부터 내 안의 이러한 자책의 유형은
심정적으로 많이 흔들리게 하는 원인이기도 햇다 .
그렇다면
오늘 말씀처럼
내 저런 '자책성' 생각들이 사단의 공격일까?
욥에게 허락하신 사단의 도구로 인한 하나님의 뜻하신 바.. 일까?
그렇다면 난.. .저걸 정결화되지 못한 채찍의 댓가로 받을까?
아니면 편하게 잊어 버려 그냥 합리화하고 살아갈까?
자책 자체를 하지 못하게 할까?
자책이 아닌 (욱여쌈이 쌓여도 쌓이지 않게 하실 ) 원리로 받을까?
내 안의 산당이
어쩌면 '양심'을 가장한 '자책'의 산당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어떻게
그 산당을 허용할까?
시대가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청교도는 사멸되는 원리인것처럼
본질에 맞추어 비 본질은 허용해도 될까?
혀용하는게 '산당'이면 어찌할까?
생각이 된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심은
하나님 말씀 안에서
하나씩 맞추어 고민하는 것자체가
옳은 신앙의 행동이고
그것. .. 본질적으로 산당을 깰 내 행동의 원리이기에
괜찮다 시는 것 같다.
감사하다.
주여.
제게 지혜를 주소서.
자책과 양심.
하나님의 깨닫게 하시어 개선케 할 도구인지
그냥 사단의 회초리인지 알게 하소서.
주여.
주님의 원리가 아니시면
못 느끼게 하시고
주님의 뜻에 옳으시면 고치게 하시되
자책은 멀어지게 하소서.
내 속의 생각으로 감정이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뜻 가운데 타인의 배려로 인해 변하게 됨으로
은혜의 결과로서 감사하는 자 되게 하소서.
산당.. 버리게 하시되
시대에 맞추어 하나님의 뜻가운데 옳은 판단 내리는
지혜를 .. 저 뿐 아니고
특히 이 마지막 시대에
옳게 살고자하는 모든 당신의 자녀게 허락하소서.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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