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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기회다[출32:1-1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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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기회다[출32:1-14]

주하인 2021. 10. 15. 09:56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더딤을 보고'라는 말에

인간들 본연 깊숙이 자리 잡은 '초조함'을 본다. 

 

 그 놀라운 출애굽의 기적, 홍해의 갈라짐,

수도 없이 많은 광야의 기적

뜨겁게 살아 있는 지도자 '모세'의 카리스마

.......................등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세상에 이처럼 뚜렷이 임하신 적이 없었는데

그들은

잠시의 '광야의 기다림',

길어지는 메마른 삶의 변화없음을 견디지 못하고 (더딤을 보고 !)

초조하고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비록 그들 군중의 성화에 못이겨 ,

어쩌면 내면의 욕심이 조금은 그의 리더로 서고 싶은 충동을 자극했을 지 몰라도

모세님과 같이 

하나님 면전에 마주뵌 경험과

72장로 들과 하나님 앞에서 '식사'를 한 

그 어마어마한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론,그는

하나님을 

겨우

'송아지'로 표현했다. 

 

  그것..................

당연히도 

하나님 앞에서 식사를 하고 직접 뵈었다하더라도 

마치 어찌 태양을 맨눈으로 볼수가 있으며

바이러스가 어찌 사람의 얼굴을 봐도 이해가 될 것이며

장님들이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코끼리의 전체 모습을 그려낼 수 있을까?

(정말 죄송합니다. .. 주여.. 이해를 풀어낼 표현 방식이 더 뚜렷한게 없어서.. ^^;;)

 하나님의 얼굴을 본 자들은 다 죽는다고 하셨는데

당연하지 않겠는가?
 해를 직접 가까이 본 개미는 말라 죽을 것일 텐데...........

하지만, 하나님의 정말 필요에 의하셔서 

유사이래 가장 직접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나타내실 수 밖에 없던 

그 출애굽시기에

하나님의 적극적 의도에 의하여 

그들을 불러 들이셨을 때는

죽지 않고, 

주님을 뵈었어도 그냥 뵌 사실을 알 뿐,

그들이 하나님, 그 크고 감당키 어려운 존재를 

자신의 인식의 테두리 안에 담기는 

가능치 않았을 것이다 .

 

위의 장님 코끼리 표현처럼, 

바이러스가 인간의 형상을 마무리했을 때처럼

그들은 그들의 능력 안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상징'화 되어서 갈무리 되었을 것이다 

 

그러함을 아시기에 

당연히도 하나님은 

'상징물' 

즉 우상을 만들지 말기를 경고 하셨을 것이고.................

 

그러나, 

광야

인생

그 고단한 사막과 같은 메마른 두려운 공허에

 -아.. 얼마나 넓고 공허할까..

  우주를 대할 때 너무도 광대함에 의하여 느끼는 현재 과학의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들의 두려움이

  그 시절의 그들의 가슴에 절절히 ,직접  현실화 되어 다가왔지 않을까?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불안과 초조로 받았을 것이고 ..

 갈데없는 사망의 두려움..........

 허락되어진 두려움 말이다

그들은 얼마나 힘들었을 것인가?

 

 그러함에 그들은

그 뜨겁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너무도 크신 능력을 감당하기 힘들어

자신들의 수준에 맞추어 

실제화 ( 어찌 3차원으로 끌어내리시던가?   11차원 이상의 궁극에 계신 분을.. ㅠ.ㅠ;)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결국,

그들의 불안은

하나님을 그들 수준에 맞추어 끌어내리고

아론의 죄성(불안함, 무지함, 욕심,.. )을 통하여

그가 이해한 하나님은 

송아지의 유용함, 소가 가진 힘, ........등의 수준이던바

그것도 최선을 다하여 '금송아지'로 형상화하게 된 것이 아닐런가?

 그렇다면

내게는

무엇을 말씀하시려는가?

 

 뚜렷하지 않은가?

 난... 

모든 인생은 

광야의 공허함과 그 안의 두려움과 불안,

알지못했다면 가질 수 밖에 없는 인생의 숙명이 '사망에 대한 두려움'....으로 

당연히도 힘들 것임을 

주님께서 읽어주심이 먼저다. 

 

 " 그렇다.

 주하인아

살아가는 동안 

누구에게나 다 불안하고 초조한 두려움이 내재 되어 있다. 

 만일 네가 지금 그 앞에 있다면 

그것은 허락되어진 연단의 과정이다. 

 막연한 불안은 

그를 통하여 네 자아가 움직이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또다른 도구이며

네가 하나님을 옳게 믿는 다면

어떤 형상화를 시키려는

그를 통하여 안정을 도모하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말거라..

  그냥......잠잠히 참아 기다리라.

오늘 네가 네 앞에 있던 적을 

이제는 보지 못하리라..."시는 것 같다. 

 

그렇다 .

난.. 

하나님 앞에 

그냥 

올곳이 서야 한다. 

무엇을 만들어 내려 노력할 이유가 없다. 

그냥 하나님.

그냥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잠잠히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참아 기다리면 된다. 

그게 다.....다.

 

 하나님이 진정 기뻐하시는 뜻을 알듯도 하다. 

그것을 세상에 적용시키는 요령도 알듯하다. 

이제...........

자꾸 잊는게 문제지.. 

 

 

 주님.

잊지 않게 하소서.

지금 겪는 모든 고난, 

하나님께서 하나도 모름이 없으심을 믿게 하소서.

자꾸만 흔들리는 이 마음,

변화없는 인생의 메마름에 지쳐가고

나름 힘있을 적 의욕으로 하나님을 좇는 법을 다 알던 것 같이 하다가 

길어지는 메마름과 변화없는 일상에 

자꾸만 커지는 공허함과 불안이 엄습하려 할 때

나도 모르게 

자꾸만 금송아지를 만들지 않도록 하소서.

주여.

오히려 그 모든 것 , 모르시는 게 없으시는 하나님께서 

인생 연단과정 중 허락하신 

제 성화를 위한 매개체임을 잊지 않아 

매사 감사

오히려 기뻐하고 기다리게 하소서.

 

주여.

그러소서.

메마름 조차

곧 나타나실 모세님과 같은 '성령'님의 온전하신 인도하심을 위한

연단의 시간임을 기뻐하게 하소서.

기대하게 하소서.

기다리게 하소서.

내 주여.

 

거룩하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온 우주와 온 인생의 지배자이시고 인도자 이신 

우리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어 감사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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