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청빈함[눅9:1-9] 본문
1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모든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셨다 해도
3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유하다가 거기서 떠나라
예수님은 제자들 개인에게는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하시고
어떤 집에 가더라도 그냥 유하다가 떠나는 댓가 없는 마음을 원하신다.
타인에게는 능력을 행할지라도
자신에게는 청렴과 청빈을 권하심은
기독교의 깊은 바탕이 아니던가?
오늘 날 교인들에게는
기도하고 봉사하고 구제하고 선교하고... 을 통해
자신의 '부'와 '명예'도 따라온다는 식의 기대를 가지게 하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하나님의 뜻이 아님에도
그리 함은 그것이야 말로 '기복'주의가 아닌가?
기복의 바탕은 무엇인가?
'천국'이나 '영원' , '영'의 세계를 깊이 받아 들이지 못한다는
스스로의 증거가 아닌가?
하나님은 세상을 열심히 살라신다.
타인을 위하여 더욱 열심히 살고
자신은 가능하면 더욱 낮추고 무소유를 지향하라시지 않던가?
그렇게 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겠는가?
처음에는 성령의 임재로 인하여 구령의 열정에 불타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가며 자꾸만 소홀해지고 버거워지지 않는가?
그럴 때 이 세상의 축복마져 비례적으로 ,
열심히 한만큼 주어져야 이 미련한 육신 속의 영들이 지치지 않을 것 아니던가?
그래서 그러한 민심의 바탕을 읽은 많은 두려움이 덜한 사도들께서
교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꾸만 '기복'을 주장하시는 것이구...
그 결과 오늘날 기독교가 자꾸만 쇠퇴하고 힘이 없어지는 것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밤기차 2번
밤배 1번
캡슐호텔 1번을 이용하여보았다.
그래도 잘 자고 편안하고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모두 몸을 누이면 딱 그 공간 만 남는..........그런 작은 공간이다.
충주에 살면서
방 두개에 거실이 딸린 의사 숙소가 주어졌다 .
한번도 방에 들어가서 살지 않았고
거실에 공기 불면 침대가 되는 에어침대를 깔고
접이식 식탁과 아주 싼의자 몇개 가져다 놓고
냉장고와 TV와 몇개의 식기 만 갔다 놓았다.
매일 식당에서 먹기는 그래서 저녁은 퇴근하고
생전 처음 홀로 밥도 하고 김치 볶음도 해먹어 보고
된장도 끓이고 ......해 보았다.
빨래도 손으로 하고....이불 자주 널어 말리고
시간 날때 '달리기 ' 하고 '자전거' '수영'. ....
하나도 불편함을 못느꼈다.
아내랑 떨어지면 죽는 줄 알았다.
홀로 남겨지면 아무것도 못하는 줄 알았다.
살기에 필요한 것이 엄~청 많은 줄 알았다.
이사할려고 혼자 짐을 꾸리고는 집으로 올라 왔는데
박스 몇개만 필요하더라.
사람이 사는데 과연 이 많은 짐들이 필요한가?
아내랑 결혼하고 많이도 이사를 다녔지만
다닐 때마다 포장이사를 하는데 짐이 엄청났었다.
비단 우리 뿐일까?
대부분이 다 그러리라.
1년을 청빈하게 살면서
얻어지는 것이 많았다.
마음이 편하고 자연스러워졌다.
별로 흔들리는 일이 줄어들고 평화의 시간이 늘었다.
남는 시간은 거의 매일 한시간 이상 기도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지 고요했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타인을 위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기 위한 능력을 주시면서
스스로에게는 '청빈'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신다.
능력과 그에 따르는 칭찬을 듣게 되면
점차로 기쁨이 사라지게 된다.
평강과 고요가 없어지고 허상인 세상의 그것들에 허덕이게 된다.
먼저 병원에서
교회와 주변의 선교사님, 찬양으로 사역하시는 많은 분들을 뵈며
그들의 앞서나가다가 흐려지는 영성을 보게 되고 경험케 되었다.
솔직히 예수님 믿는 자들의 결과적 성품이 저렇다면....
저리 가벼운 영성이라면...이란 거부감이 많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올바른 신앙인이 되기 위하여서는
하나님에 대한 열정으로 부여된 능력과 리더쉽이
자신을 향한 부요와 명예로 바꾸어 누리는 결과인 듯 싶었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추해지는 모습들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물질과 영의 평안은 반비례하는 듯하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그득히 차서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올바른 신앙인이 되기 위하여서는
세상의 것에 대하여 자꾸만 청빈하게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외부적으로 누려지는 모든 물질적이고 명예를 도망가라는 뜻이라기 보다는
주어진 상황에 그냥 만족하고 욕심 부리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은 청빈함이란
물질을 무조건 버리고 도망하기 보다는
물질 속에 있으면서도 그를 소유하려는 욕심이 낮아지는 게 더욱 청빈함이라 생각되고
언제라도 하나님의 일에대하여서는 바닥까지 내려 놓을 수 있는 마음이 자연스럽다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청빈이라 생각한다.
없으면 청빈할 대상도 없지만
있으면서 청빈한다는 것은 유혹을 이겨냄이다.
그러하기 위하여서는 매일 '성령'을 의탁하지 않고는 가능치 않은 일이다.
물질에 묻히면 하나님 나라가 보이지 않는다.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성경에 나오지 않던가?
오늘 내게 하시는 말씀은 영적 청빈함이다.
내게 주어진 여러 달란트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더욱 전파하길 기도하고 간구하며
내 스스로는 덜 누림이다.
손털고 나감이다.
오늘은 금요일.
찬양예배의 자리에 선다.
내 잘하는 부분.
점차 사람의 반응에 신경을 쓰는 면이 덜하지만
아직도 '칭찬'이 그립다. ^^;;;
아 부분을 자꾸만 더 하나님께 영광드리는 부분으로 돌려야 겠다.
주님.
청빈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주신 능력, 주님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아주 조금이라도 쓰려 하겠지만
과정에서 얻어지는 칭찬과 명예는 어서 털고 나가야 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이 낮은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하여서는
주님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저는 주님의 일을 하려 나가지만
주여.. 제게는 주의 평강과 위로가 간절합니다.
아시지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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