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천재와 나의 차이(약 4:13-5:7) 본문
(약 4:13-5:7)
진정 아름다운 것은
많은 부를 소유하고
넘치는 여유에서
보여지는 것이 아니다
그냥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
어떠한 상황이든
최선을 다해
결실을 이루어 내는 모습
거기에
주님의 뜻이 있음을
보일 수 있는 삶이라면
그것이
우리가 보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삶의 태도이다
4장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5장
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오늘 조선 일보에 나온 천재소년 '송유근 '(12)에 대한 대담형식의 기사다.
유치원, 초등학교, 대학교까지 단기간의 많은 학습 환경의 변화가 있었죠. 그것이 유근 군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나요?
“우주는 넓고 인생은 짧아요. 제게 남은 인생이 길어봐야 60년인데, 우주의 나이 100억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
-요즘 고민이 뭐예요?
“어렸을 때는 과학자가 꿈이었는데 요즘에는 그게 다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논문을 쓰고 상을 받는다고 해서 인류가 뭐가 달라질 것인지, 그게 고민이에요.”
.....................
-관심이 있든 없든 유근 군을 천재소년이라 부른 많은 대중들이 있어요. 어떻게 생각해요?
“의사선생님이라고 부를 때는 자신의 병을 고쳐주기 위함이고, 장군님이라고 부를 때는 나라를 구해달라는 의미를 내포한다고 생각해요. 천재소년이라고 부르는 것 또한 부르는 이들이 미처 다하지 못한 공부를 대신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듣고 있어요.”
괜히 보려고 본 것은 아니지만
아침에 신문을 들추다 보니
10여년을 겨우 산 이 어린아이의 말이
어찌 50년 가까이를 산 나와 비슷한 소리를 하는가?
아이는 벌써 자신이 살 나이라는 것이 우주에 비하면
티끌 보다 작은 수이고
자신이 무엇이 된다는 것이
그 우주에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인생이 헛된 것임을 알아
포기하고 버려버리지를 않고
사람들의 자신에게 붙혀준 이름 '천재소년'에 맞는
사명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아 가겠다는 것이다.
물흐르듯한 소견.
아이가 얘기한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내용들.
저 나이에 난, ...ㅎㅎ
이제의 나이에도 난 이해는 하고 있지만
저렇게 뚜렷한 소명으로 차분히 설명하기 힘들 원리를
저 아이는 저렇게 말하고 있다.
아이의 이야기와 그동안 이곳 , 이 블로그에서 늘어놓아 왔던
나의 인생에 대한 소견에 의하면 ^^*
이 인생에서 성공한다고 몸부림 치는 것은
하등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
성경 구절에 오늘 나오지 않는가?
' 인생은 안개'다 .
바람 만 불어오면 스러지고 마는 안개.
그 안개가 안개 속에서 얻어질수도 있을 세상의 재물, 명예..에 온 정신을 쏟아 삶은
'녹'이란 것이다
옷으로 따지면 '좀' 먹는 것이다.
오늘 묵상 구절에서는 '불같이 우리 살을 먹을 것'이라고 한다.
트럼펫의 마우스 피스가 빠지질 않는다.
한번 손에 잡고 불다가 떨어뜨리고 난 후
아무리 용을 써도 분리가 안된다.
그래서 싸구려 트럼펫 ! ... 그냥 장식물 겸 책상 위에 세워 두었다.
은빛 실버 트럼펫
2-3 년 전에 정말 트럼펫이 불고 싶어 중고로 산 야마하 T100
지금은 절품이 되어서 나오질 않지만
그 실버 칼라는 어릴 적 부터 가지고 싶었던 내 꿈이었다.
하지만 중고답게 , 싸구려 답게 불기가 힘이 들어
두었다 불었다.. 하다가 한 일년여 전 부터 조금씩 소리가 나면서
재미를 붙혀 가던 중 난 사고였다.
트럼펫은 하드 케이스에 넣고 잘 보관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마우스 피스가 빠지지 않으니 케이스에 들어가질 않는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대기 중에 세워놓으니
며칠 만에 색깔이 까맣게 변색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녹이다.
연습하려고 손으로 잡고 문대는 데만 반질거리는 은색으로 비치고
나머지는 흉하다.
한번씩 박박 닥으면 다시 돌아 왔다가는
금새 거멓게 녹이 슨다.
알고보니 트럼펫은 대기중에 세워 놓으면 그렇단다.
이 녹.
녹은 시간의 작용이며 철 제품에는 독이다 .
녹은 흉하다.
오늘 '녹'에 대하여 나온다.
세상을 열심히 살려고 하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녹'을 추구하는 것이란다.
흉물스럽게 살을 파먹는 것이다.
닦아야 한다.
자꾸 만져주고 쓰이고 닦임을 받아야 한다.
트럼펫이 눌려지고 닦여질 때는 얼마나 불편할 것인가?
하지만 그런 때는 번쩍 번쩍 빛이 난다.
녹은 더럽기도 하지만 썩어 들어가는 것이다.
세상을 추구하는 것은
대기 중에 놓인 것처럼 안개 속,
그것도 독무毒霧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것이다.
그 안에서 스스로의 살을 파먹고 영혼을 거멓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다시 '송유근'에게로 돌아간다.
그 아이는 너무도 영특하여
쉽게도 우주의 원리를 깨달아 버렸다.
그리하여 자신이 추구해야 할 것은 세상의 것이 아님을 알았다.
고백한다.
논문을 쓴다고 달라질 것이 무어냐 하지 않는가?
그렇다고 그는 '염세주의'로 변하지도 않았다
염세 주의자도 그렇고
세상의 것을 추구하는 성공주의자 들도 그렇고
모두 다 관심은 눈 앞의 것 뿐이다.
'물질'
그들은 현명한 듯 하지만 참으로 미련한 자들이다.
그 아이 송유근의 선택은 좀 달랐다.
'사명'이다.
그 사명을 아이는 자신의 인생의 살아갈 존재의 의미로 삼아 버렸다.
사진을 보니 아이의 얼굴은
맑고 초탈한 듯 도인의 그것과 비슷이 보였다.
그래 .
맞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이가 모르는 것이 있다.
아이는 아직도 세상의 어려움을 모른다.
그러다 보면 세상의 환란과 고통이 달려들면
자신이 설정한 사명이라는 틀 안에서 얼마나 고고히 유지될 수 있을까?
세상이 달려들어도 아직은 부모와
매스컴의 아직은 -'아직은'이 맞다 ^^;;- 호의적인 논조 안에서
온실 속의 꽃처럼 자신 만의 사상과 철학을 피워낼
천재의 머리가 있지만
그 막이 거두워질 수십년 후에도 똑같은 소리가 나오고
그 소리가 허무주의로 바뀌지 않을 것이란 장담을 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좋은 머리로 인간의 욕심을 마주하다 보면
훨씬 더 허무주의에 빠질 개연성이 없지 않다 어찌 이야기 하겠는가?
이제, 사명이 '주님에 의한 인도하심'에 대한
감사와 은혜와 응답에 의한 사명의 깨달음으로 대치되어야 한다.
4장 15절 '주의 뜻이면'..이라 나오지 않는가?
주의 뜻에 의한 감동과 감격에 의한 깨달음의 소명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그가 천재든 아니든 나이가 있든 아니든
철저히 주님의 영역이다.
주님의 주권적 인도하심에 더불어
인간 개개인의 깨달을 능력과 선택이 조합이 되어야 한다.
그것 만이 인생을 제대로 살아갈
그래서 후회없는 삶을 살 수 있는
'존재의 의미'를 확실히 확신할 수 있는
그러한 삶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나는 이 허탄한 세상의 것에 어찌 대하며 살것이고
어찌 대하며 살고
어떻게 대하여 살아야 맞단 말인가?
이전에 예수님을 깊이 알기 전에는
내 성질은 '허무주의'였다.
아무 의미없는 것이 '삶'이었고
빨리 죽고 싶었다.
죽는 다는 것은 고통의 끝이란 생각.
의미없는 삶에 의욕을 부리라고 자꾸만 밀어젖히는 부모와
필요없는 경쟁에 날 몰아넣으려는 세상과
필요없음을 알면서도 '젊은 육신'의 '정욕'은 살아서
온갖 갈등과 갈증을 유발하였을 뿐이다.
속이 상한 것 투성이 였었다.
어이없는 세상 사람들의 어이없는 판단과 생각과 웃음과 행복해 함은
나에게는 비웃음 거리자
한편으로는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어찌 저들은 저렇게 생각없이 살수가 있다는 말인가?
저돌적으로 썩을 것에 몰려가서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나도 저렇게 해보았으면... '
이게 내 솔직한 기본 감정이었었다.
그렇다고 어찌 탈출할 방법도 없는 '새장' 같은 틀.
나이 40 다 되어 만난 예수님.
그 예수님은 나에게 '새장'의 문을 열어 주신 분이다.
첫 사랑.
자주 이야기 하였지만
그 첫사랑의 기억은 형언할 수 없는 해방의 기쁨이
내 영혼으로 몰려 들어
이전에 가졌던 고민과 갈등은 생각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린
그 후련함이었다.
시간이 가며 다시 나에게 허락된 연단의 분량으로
다시 비슷한 갈증은 되풀이 되어 왔지만
그러나 이전과는 엄연히 달랐다.
삶의 이유를 아는 것이다.
물론 , 아는 것과 영혼에 각인되는 것은 다른다.
단지,
안다는 것은
송유근 같은 천재가 세상을 경험하지 못하고
아직 사춘기의 그 폭렬하는 육신의 드라이브의 변화를 못하고서는
저리 선비같은 말을 할 수가 있지만
곧 마치 시계 추같은 , 파동같은 심정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며
알았다 몰랐다 알았다 몰랐다 하는 것 같은 갈등이 올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반면
영혼에 각인된다는 것은
이제 그 앎이 몸으로 , 영혼으로 체득화가 되어
어떠한 흔들림에도 변화가 없는 것을 말한다.
나.
50에 들어선 나.
참으로 늦었지만
이제 영혼에 상당부분
저 '인생의 의미'
즉, 살아간다는 것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고
그외의 물질적인, 세상적인 부요와 가난은 모두
그 의미안에서 살아가다가 부수적으로
주님이 허락하신 결과물임을 깨달아 가게 되어 있다.
하지만, 아직도 흔들린다.
자식들이 내 바램만큼 못 쫓아올때
기도하고 내려놓고 기다릴 여유가 생기고
그 결과조차 주님이 인도하실 것임을 믿어가려하려 하지만
가끔은 불~뚝하고 걱정이 올라올 때가 있다.
아침이 그랬다.
어제 저녁에 아예 철물점에서 쫄대를 사가지고 들어갔다.
아이가 랜 선을 연결하지 않았을 것 같은 생각에...
안했다.
그래서 그냥 내가 작업을 했다.
덜 속이 상한다.
까짓 것.......주님의 뜻 안에서 아무 의미없는 일이 아니던가?
잘했다.
아무렇지 않다.
주님의 뜻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 늘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돌아올 즈음이 약했었다. 옛날 부터.ㅎㅎ - 여러 생각이 날 사로 잡는다.
말하자면 '어떻게 하면 내가 아이를 통제하고 어떻게 하여 내 주권을.....' 이런 내용이다.
이거야 말로 세상의 생각 아니던가?
눈 앞에 보이는 것.
그래.
그렇게 해서 다큰 아이가 내 손에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사로잡혀
내 말 한마디면 절절매는 '주하인 공화국'이 내 집에서 이루어진다면
또 어쩌겠는가?
한편 그 마음이 들어 들여다 본 묵상에
아주 잘아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
'난, 아직도 안개 속에서 헤매려 하는 구나 !'
'그 속에서 녹으로 날 거멓게 슬게 만들고 있으려 하는구나'
주님은 참.. 절묘히도 날 막으신다 .
맘이 편하다.
내려 놓는다.
알아서 하시라..
'내려 놓는다는 것.'
방치와 다르다.
방치는 주님 모를 때 '포기하고 체념해버리고 될대로 되라'하는 것이지만
내려 놓는다는 것은 '주님께 맡기고 주님을 의지하는'
어쩌면 믿기위해 가장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과정이다.
물에 빠져서 부력이 날 받치도록 맡기기 위해서는
수영에 경력이 쌓여야 한다.
(과거에 죽을 뻔하다 부력으로 산 경험이 있다. ㅎㅎ)
하지만 두손에 힘을 풀고 온몸에 힘을 빼면 몸이 뜬다.
주님은 그 부력이시다.
아주 가까이 아주 크신
아주 어마어마한 기쁨의..........
내려 놓기 위해서는 쥔 것을 버려야 한다.
세상의 욕심
내가 할 수 있는 통제력의 욕심
쉽게 이룰 것을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인내력이 필요한,
오히려 에너지가 소모되는 과정이다 .
이 내려놓음.
아직도 날 많이 많이 힘들게 하고
자꾸 발걸려 넘어지게 하는 연습이지만
그 것을 통하여 주님은 점차로 뚜렷이 보임을 체험하게 되고
내 안에서 든든한 힘이 뜨겁게 용솟음을 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렇다.
나는
온전히
주님의 은총하에서
안개 속을 탈출해 가고 있다
그렇다.
송유근 소년은 날 비웃을 지 모르지만
난
그 아이의 사명보다
조금은 더 높은 차원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그
행운은
주님의 영역임을 알게 되어
더 기쁘다.
비교할 일 조차 없지 않는가?
행복하다.
주여.
감사합니다.
느즈막히 되어서야
주님의 묵상을 완수하게 되었습니다.
주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지만
아직도 안개 속에서 흔들릴 때는 많지만
이제는
조금은 더 덜 헤매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두손 들며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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