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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의 복[창27:15-2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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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의 복[창27:15-29]

주하인 2020. 2. 11. 11:09

불신의 그 어두운 시절.

 40살 넘어서를

단 한번도 그려보지 못한

그 어둠을 뚫고


주님은

제게 다가오셔서

이제

주님 만이 제 모든 것임을

뜨겁게 고백할수 있도록 하시며


이 부족한 자의 눈에

축복의 증거

기도한 대로 보내 주신

손녀의 재롱마져 보이십니다. ^^*

주여

감사합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행복합니다

주신 복의 현상으로 인하여

많이 즐겁습니다


28.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결국

아들 요셉으로 인하여 이리 되게 되었지만

대부분의 야곱 인생의 시간은

이삭의 축복처럼

술수를 부려 얻어내려 했던 것 처럼

그렇게 운영되어 돌아 갔던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

 풍성한 곡식 , 포도주.....'

 오직 야곱에게....아주 많이......? 계속.........?



29.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그리고 또,

'만민에게

 열국에게

 형제들에게 존중 받고

 마음대로 굴복시키던' 삶이 맞던가?

그게 복의 전부라면

야곱의 삶은

'이삭의 축복'과는 전혀 맞지 않음을

우리가 다 잘알고 있지 않던가?


 그렇다면

그게 맞을 거라 생각하고

야곱은 에서에게 장자권을 속여 빼앗고

어머니 리브가는 장자를 왕따시키고

남편 이삭을 속여서

차남 야곱을 '죄'에 동참시켜서

'축복'을 뺏을 만한

동기(Motive)가 되었던가?

그렇지 않다면 그리 무리 했을까?

 비록 '죄'로 인하여 그대로 되지 않았다고 감안하더라도

축복은 축복으로서 확연하고 뚜렷한 이룸이 있어야 했지 않던가?


오늘 묵상을 들어가며

나로 마음을 돌려 보았다 .

과연 난...

어떤 '복'을 기대하던가?
복이 무엇이던가?

이 땅에 잘먹고 잘사는것?

아니면.. 마음의 평강이 다 ~ 던가?
그렇다면 어느 정도 이룬 지금은

더 이상의 추구할 '복'은 없을까?

살 가치는?

무엇을 목표로..

무엇을 기대하고 더 이루어야 할 '복'으로 하여

그 이룸을 위해 인생을 살아나갈 까.. 힘써.. ?

단지 , 영적인 것만?


무엇인가?

무엇인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잠시의 묵상에도

출근하며 걸어오며

또 잠시 잠시 틈이 나는 근무 시간에

'복'에 대하여 집중하려 해도

멍~할 뿐

크게 마음에 다가오는 것이 없다 .

 세상의 물질, 이룸, 눈에 보이는 성과 ..

선교 구제.. 다 .. 마음을 돌려 보고

내 그리도 좋아하는

'찬양' 사역을

아들, 아니.. 가족 팀으로 모아

(울 가족, ...꽤 뛰어난 팀이 될 재질이 많다. . 확대해서 보컬 팀으로 해도.. ^^*)

황홀하고 뜨거운 찬양사역?...................^%&*()_

하나님의 역사를 훨훨 불타오르게 하여

우리가 가는 모든 곳에서 뜨거운 전도와 구원이 일고

우리도 절절히 .............?

그것도 궁극은 아닐 듯..

바램 중의 하나이긴 해도........

저렇듯

열렬히 모든 것을 다하여 '축복'에 집중하는

그 '복'의 실체에 대하여

가슴 깊이 들어오는 것이 없다.


 그러다

불현듯

다시 (그렇다.. 다시다. )

감을 잡은 게 있다

눈을 떳다.

그리고는 말씀을 옮기기 시작했고

블로그 오늘 분량(하나님과의 약속, 나를 붙드는 행위.. )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렇게

내 은연히 깨달아지는 느낌을 붙들면

얼른 글을 쓴다 .

그러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채우신다.

그게.. 하나님과 나의 협업(coordination)이고

그게 코람데오의 일종이니..

말씀이신 로고스 하나님이 주신 레마를 통해 흐르는

하나님의 성령이

내 영혼을 터치하셔서

그냥 이루어가시는...


 그 하나님이 '복'의 실체에 대하여

아주 약간

내게 드러내신다 .


 믿음의 시간들이 지나면서 그렇다 .

한참의 뒤곤죽 박죽 복잡하던 '불신'의 시절의 때들이

강력한 은혜의 끌림으로

설교, 말씀, 기도, 찬양사역 (아버지학교, 전인치유, 하기오스 찬양팀.....) 단기선교 등을 통하여

점차로 말씀의 귀중함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방향에 대하여

나의 가장 합당한 방법으로 '논리적' 구조물을 세우시고

내 너무도 오랫동안의 잘못된 습관과

그 뒤에 숨어 있던 잘못된 세상의 영의 소리들을 깨시는 작업(切磋琢磨)하시더니

간증거리가 될만한

수도 없이 많은 체험과

그때마다 마치 하나하나 '아비멜렉과 아브라함'의 기념비 같은

기념의 계기를 통하여

조금씩 조금씩 영혼 깊숙이

말씀이 살아 들어오며

점차로 내 습관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고

인격의 변화가 오게 되더니

이제

그 똑같은 원리를 가지고

잘 구조물 갖춘 구조물을 갈고 연마 하시듯

조금씩 조금 씩 마무리 하시는 듯 느껴지고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얻어진 확신 들이 있고

더 깊어진 눈들이 있다 .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이전에 , 오래전에도 고백했었다.

'전인치유' ..

이전 미션병원에서 뜨거울 시절

환우들을 위하여 병원치료도 하지만

믿는 의사와 직원들이 그들을 위하여

세족과

기도와

찬양.......을 하던 프로그램.. 에서 찬양리더 하고 있었던 시절에...

중보기도를 하면서

불현듯

내 머리속을 때리던 생각이 있다.

' 아픈 사람들이 기도하는 것이

 단지 안아프기 위함 만이면

 그래서 안 아파지는 게 하나님을 찬송할 간증이라면 

 즉 기도할 유일한 목적이

 아프지 않는 것이라면

 아프지 않고 건강한 사람(불신자 포함하여..) 은 모두

 하나님이 필요치 않고 축복 받은 사람이리라...

 그러니..  아픔을 허락받은 이유.....

 세상의 그 어떤 어려움이나 깨닫지 못한 힘듦이나 갈등의 이유는

 그것을 해결 받기 위한 도구로서 기도할 일은 아니라. 는 것'임을

당연하지만  확연히

깨달음으로

가슴 깊이 내려 온적.. .말이다.


 그러고 나서

수년 간을 지나 오늘에까지 오면서

또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을

곤란과 어려움을 거쳐거쳐 여기까지 왔다 .

이제는...

동일한 일에 별 흔들림이 덜하다.

 그때마다..

기도를 어쩔 수 없이 매달리게 하시면서

(아.. 난.. 머리 복잡해서 기도가 지금도 힘들다.. 은혜 아니면..

 이끌림 아니면 집중하고 시작하기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

확실히 깨달아지는 것......

기도하면 마음이 '확~'하고 풀리면서

정말

뻥~뚫리는 체험들을 수도 없이 하고

그러면서 '기도'만 하면

그리도 고요해지고

모든 게 다 좋고 기쁘게 보이기만 한다.

자주...

점점 더......


 아... 솔직히 고백할 게 있다.

과정 중에서

내 어려운 예상 ( 내 습관적이고 불안한 성격.... )과는 전혀 달리

현실적으로도 오히려 더 나아지고 있다. ^^*

이거..........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내 나이에 발전된 사회적 현상..이라니..ㅎ

이러함.......

내 깨달음과 더불어

어느새(어느새.. 가 맞다.  노력하고 기도 , 기대해 본 바 없는 방향이니.. )

이 자리에 이렇게 서 있다.

 '먼저 그 나라와.........채우리라' 도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라 생각한다.


 각설하고..

이제 '복'에 대한 개념이

조금 더 뚜렷해져 간다.

묵상 말씀을 쓰는 동안

주께서 인도하시면서 더욱 뚜렷해져 간다


 복의 본질,

기도를 하시게 하심이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점점 더 뚜렷이 만나게 되는 것.


그것 자체가 아닌가 싶다 .

어제그제 주일 예배에

'아들'과 아내와 '나' 모두

목사님 설교에 깊은 감동을 받았음을

어머니 뵙고 올라오는 '차'안에서

모두 동일하게 고백했다.


요지가

'기도하여야 한다' 다.

점점 세상이 뒤섞여 엉터리로 되어가고

우주 만물의 원리까지 부정해가는 세상,

그래서 인수 감염으로 우한 폐렴까지 도는 세상에

'기도'로 말미암아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고

참으로 유하고 부드러우신 목사님이

조밀조밀 말씀하신게

그리도 가슴 깊이 왔던 모양이다.


 그렇다.

'기도'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

기도를 시키시기 위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베풀어 허락하고 인내하심이시다 .

기도를 통하여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만나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유일한 '복'임을

우리가 알아 깨달아야하고

그를 외쳐 올려 드려야 한다 .

 

주님을 만남이 복임은

그 분의 임재,

그 분과의 교통에서 느껴지는

그 크고 놀라운 '열림'

흐르는 생기

감사와 행복의 고백

눈물이 흐를 듯한 감동............

그 감동이 주어지는 외적 조건 없이도 이루어지는 것임을

깨달으며 알아지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그러하심을

일상에서 매일 느껴 아는 것.

 나머지 그 어떤 것.

현실의 풀림, 물질, 자식............은

당연히도 부차적인 것이다.

마치.. 야곱이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살아서 돌아오고

가뭄으로 죽을 것 같던 고통이 그로 인하여 물러가고

애굽 왕의 접견을 받고

자식들이 모두 완전체를 이루고..........

그것.......

'복'의 현상 아닌가?

이삭이 예언하던 것이

결국 하나님의 '연단'과정을 지나

마침내 이루어지던.........................

그 온전한 복.. 말이다.

진정한 복....


 아직도

영적으로만 치달리기는 어렵고 힘들다.

주님과의 교통 만으로

모든 것 다 만족하고

주님 한분 만으로 완전하다고 고백하기에는

자주 자주 눈돌리게 하는 유혹이 있고

내 안에서 치고올라오는 잘못된 생각들이 있어

소스라치게 놀라고 마음에 부담도 있다.


더 가야 할 길.

'진정한 복'은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고

하나님 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고

소리 높여 고백할 수 있는 시간이다.


나머지..

내가 '선교사'로 서 있던

늙어 죽을 때까지

산부인과 의사로 벌어 먹고

자손들, 손녀에게 적당한 정도의 용돈과 학비를 대주고

잘 잘 달래며 가족 간의 다툼이나

내 어릴 적 그토록 두려웟던

가족내 갈등들이 있지 않도록 조율 잘하는

부모, 할배로서 살아가게 되든

...............

어찌 되든

주님이 인도하실 것임을 믿으며

단 하루도

말씀 붙들고 기도하고 기다리고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으며

죽을 때까지 '개선'되고 발전되는 삶을 살다가 가는 것.

어쩌면

내가 바래고

더 기도해야할 '진정한 복'의 모습일 지 모른다.


아직.. 더 뚜렷이 하지 않으면

자꾸 자꾸 흔들리지만...


주여

감사합니다.

오늘은 진정한 복에 대하여

그를 추구함에

저처럼 왜곡되어짐을

그리고 그리 되는 지도 모르고

마치 꿀속으로 뛰어드는 파리같은

대부분 인생의 미련함을 봅니다 .

저도

아니라고 말 못합니다.

주여.

부디

온전하신 주님 만을

주님 만이 내 목적이 되는

그런 단순한 믿음의 복을 주소서.


나머지

다 주님께 맡기고

하루만 삽니다.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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