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주께서 보시면[창27:41-28:9] 본문
28장
6.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에서가 본즉'이라 나온다.
그... 하나님과 좀 .. 멀리 서 있는 자.
거친 광야를 헤매며 몸으로 때우는 것을 좋아하는 자.
지금 현재,
영적이지 않은...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관심이 많은 자..
불신자의 눈,
예수님을 믿는 다면서도 '세상의 것'에 적당히 관심을 두고 사는
아주 많은 사람들의 '시선'..
어쩌면 잘 나가다가도 '그런 시선'으로
잠시 모드(mode)를 바꾸는
덜 성숙한 '주모'의 그 시점의 시선.ㅠ.ㅠ;
........
항상 '주님의 뜻'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되는 것이
즉, 성화되어
단 일순간이라도 주님의 뜻에서 멀어지지 않는 자 되는 것..
그런 mode로 매일을 살아내는 것이
내,
우리 선택받은 소수를 향한
아니.. 모두 가 그리 되기를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실 텐데
그렇지 못함을
'에서가 본즉' 에 농축 시켜 말씀하시는 듯하다.
그가 어떻게 보았는가?
자신의 위험한 계획 (아버지 죽은 후 동생 야곱을 죽일.. ) 탓에
이삭을 설득시킨 어머니 리브가와 위협을 느낀 야곱의 탈출 과정임을
짐작하지도 못하고
7.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역시.. 야곱만 편애하여 특별하게 대접는 것으로
오해를 한다.
8.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또
'에서가
또
본즉' 이라고 나온다 .
세상의 시선일 지라도
옳은 것은 옳다 .
도덕적으로..
아버지 마음에 흡족하지 못한 것을 깨달아
9.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
나름 잘한다고 결정한 것이
'이스마엘' .. 댁과 결혼한 것이다.
그래..
'효심'은 있다.
그것은 옳다.
하나님이 그러라 하셨으니...
그런데.....
부족한 게 있다.
'하나님께 여쭈어 본 후'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대로..........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전 '가나안' 여자 섭렵^^;; 했던 죄들이 있지만
하나님은 그래도 이뻐하시지 않으셨을까?
그의 그러한 행동을 ???
그게 없는 것..
비록 인간의 눈으로는 남자 답고 효자고.. 좋은 점 많지만
내면 적으로는 아주 무서운 (인간의 본성이지만.. . 누구나 다 원죄로 인한.. )
에서가 축복의 계열에 들어오지 못한
그 이유의 본질일 것이다.
그렇기에
'에서가 본즉'은
그리,
하루에도 아주 많이
자주
쉽게 가지게 되는
'죄된' 본성의 판단을 억제할 방법에 대하여
다시금 묵상케 하시는 것이신듯하다.
'하나님께서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보실 것이 아니실까?" 라는
판단의 근거를 가지고 세상을 본다면
그때는
비록 판단이
잠시 오류가 있어서
혼돈이 있을 지언정
결국 옳은 길을 가게 될 것이 아니던가?
문제는...
내 오래된 습관
우리의 오래된 성품의 기저 에 있는
너무나 가까운, 삶이라 부르는 현상 , 물질계의 즉각적인 이유로
그게 너무나 힘들고
그 부분을 '사단'이 놓치 않는다는게 문제다. ㅠ.ㅠ;;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
살빼기만 하면 ..
담배만 끊으면 .. 이
반드시 해야지만 하기 어려운 것 처럼..
하지만..
말씀이 있으시고
우리의 결심과
하루 하루의 주 앞에 그 방향을 기도하기만 하면
어느새
'성령'의 은혜로
이루어져 버리고야 말기에
오늘도
'에서가 본즉'
아.. 주하인이 본즉 (KBC이 본즉... ) 대신에
'하나님께서 보시면'이라는
전제로 대치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 되길 기대하고 기도한다.
그리하고 나서
점차로
내 안의 어두움들이 옅어지고
점차로 더
밝고 깨끗한 생각
흐르는 마음
발전하는 생기로
내 안이 채워지면
삶이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것임을
지나온 내 삶이 증거하듯
그리되고 말것이다.
기적적인 내 변화.
그 강골 불신자에서 기독교인으로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삶의 방편'.. 의술의 변화
이곳에 서 있음.
지금 이 나이까지..
예수님 믿고 나서 부터
이렇게 변화되어 온 것 처럼.. 말이다.
감사하다.
주여
에서가 본즉.. 이라는 부분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레마로 말입니다 .
주여.
제 안에는
부정할 수 없이
너무도 오래 '내가 본즉'이란 명제가
절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
그 안에 '내가 옳다'라는
나 이외에 믿을 게 어디에도 없다는
저도 모르는 깊은 '망상' , 왜곡의 생각이
절 이끌어 오고 있었습니다.
마치.. 어느 지역을 향해 가야하는
'운전 기사'처럼
제 삶의 방향을
저도 모르게 그리그리 이끌어 왔던 개념인듯 했습니다.
그게 .. 에서가 본즉.. 에 들어난
더 뚜렷한 개념인듯합니다
문제는
아직도 순간순간
그 거짓 , 오류의 운전자가
제 삶을 자꾸만 잘못 방향 틀게 함이었습니다.
제가 인식하지도 못하고
주님의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그를 기쁘게 받아들여
인도하시는 대로 제가 운전해야함에도 말입니다 .
주여.
힘을 주소서
습관처럼 제 자아가 저를 잘못움직이려는
그 강한 힘을 끊으소서.
주님의 뜻으로만
앞을 보게 하시고
세상을 바라보게 하소서.
내주여.
주님의 인도하심대로
나를 낮추고
인도받는 삶을 살게 하소서.
제 안을 부딛혀 오는
강한 저항들을 낮추시고
그 뒤에 숨은 여러 오류들을 태우시고 제하소서.
내주여.
간절히 빕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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