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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사랑한다면(요 21:15-25 ) 본문

신약 QT

진짜로 사랑한다면(요 21:15-25 )

주하인 2009. 4. 16. 09:08

제 21 장 ( Chapter 21, John )

 

 

조금 있으면 날아가 버릴

벗꽃 나무 속의

이 새처럼

잠시가 아니고요.

 

주님 말씀 안에서

주님 뜻대로

살수 있도록 하여 주소서.

 

죽도록

주님 뜻안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잡아주소서.

 

주님  !

 

 

 

 


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주님이 물으신다.

' 이 사람들 보다 더...'

비교의 물음이시다.

 나도 한번 생각해 본다.

주님을 남들보다 조금 더 사랑하는 것 같다.

아주 잘 믿으시는 분들 보다는 어떤 지 모르지만

최소한 세상에 보이는 평균 기독교인의 믿음을 조금은 넘어서는 것 같다.

스스로 생각하기...

그래서 '그러하옵니다' 라고 조심스럽게 대답할 수 있다.

'주께서 아실 것입니다.'라고도 가슴 떨어가며 말할 수 있다 .

 

  베드로에게 주님은

'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신다.

어린 양이라..

주님의 양은 예비된 자들이다.

그들 어린 양이라 신다.

아직 믿음이 낮을 수 밖에 없는 예비된 기독교인들.

그들을 먹이라 하신다.

'사랑한다면 전도하고

 전도하려면 어린 양 먹이듯이 낮추라.

 그리고는 그들을 사랑해 주어라.

 그리해야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라 하시는 뉘앙스다.

 

 

 

16.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또 물어 보신다.

이제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직접 물어보신다.

비교급이 아니다.

그래도 '난 주님을 사랑한다'라고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내가 주님 사랑하는 줄 주님은 아실 겁니다.'라고 ...

좀 꺄우둥 한 이야기가 아닌가?

똑같은

아니다.

정확히는 비슷한 말씀이다.

그 말씀을 두번 째나 물어 보신다.

사랑하느냐?

 

난 진짜 주님을 사랑하는 것 맞는 가?

맞다면 왜 이리 실수 -베드로는 배반, 난 .......... -를 많이 하는가?

그러고도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러나, 마음을 들여다 보아도

주님을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뿌듯해지려 한다.

세상어디에 가도 날 이해할 자 없을 것 같으나

주님 만 찾으면 언제나 날 위로해 주실 것 만 같다 .

그런 주님을 난 사랑한다.

 그러나, 주님은 다시 물으시는 이유가

혹 나의 잘못을 들여다 보라고 하시는가?

아니다.

주님은 뜬 금없이 다시 '내 양을 치라 Take care of '라 하신다.

복잡해 지려 한다.

 왜 주님을 사랑하는게 양들, 전도해야될 이웃,

내 배려를 받아야 만 하는 내 주위 사람들과 관계가 있는가?

 주님은 '어린양'이 아니고 '양'이라 하신다.

양은 주님의 백성 모두를 말씀하시는 듯하다.

그들을 '치라 ' 즉, 관심을 가지고 도우라고 하신다.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가?

베드로는 머리가 복잡해지려 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주님과 나 만의 고요한 관계를 유지하고

죽어 주님 뵐 때까지 세상의 때와 멀리 떨어져서

세속의 것과는 상관없이 살아가고 싶고만,

그렇다면 언제든지

'주님 나 이전에 지었던 배반의 죄,

주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지었던 죄를 용서해주세요'라고

회개하고 깨끗해져서 고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나 하나도 스스로 감당키 어려운 나에게

주님은 왜 자꾸만 '양'을 끼워 넣으시는가?

 

 내 사랑에.............

 

 

17.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

      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주님은 또 부르신다.

그리고는 또 말씀하신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맞는가?

돌아보련다.

 가끔

난 내 아들들에게 속상할 때가 있다.

그들이 내 말을 순종하지 않았을 때다.

그들이 날 사랑한다면 내 말을 온전히 다 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주님이 쉽게 화를 내시지는 않으시지만

내가 온전히 주님을사랑한다면 주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맞다.

 주님이 '날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면

주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애인같은 정서상의 마음은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 분의 뜻에 준행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 주하인은 '과연 사랑하는 가''...... 의문이 드는 것은 맞다.

 

 세번 사랑하는가? 사랑하는가? 사랑하는가? 하시는 질문이

뜨끔뜨끔하다.

그러면서 가슴이 뜨거워 진다.

'주님...

 저 주님 사랑하려 합니다.

 주님 사랑하려 합니다.

 주님 사랑하려 합니다. ..라고 ..'

 

 주님은 또 내 양을 먹이라.. 하신다.

' 가까운 가족을 포함한 내 모든 이웃을 먹이고 치는 게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하신다.

 

 속을 짚어 본다.

솔직히 마음이 가는 자들에게는

아끼지 않고 푼돈이나마 도움을 줄 마음의 여력은 있어왔다.

어려서 부터 지금까지...

그러나, 마음이 가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까지는 베풀지 못한다.

비단 돈 뿐이 아니다.    차갑게 막아 놓는 선긋기가 나에겐 있다.

 이게 문제다.  

난 터부가 많다.   

제한선이 많다.  

이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주님이 '어린 양'과 '양'을 말씀하실 때는 조건 없는 내려 놓고

그들의 어려움을 받아들이고 배려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특별히 주님의 사랑 받을 자 모두 - 먹이고 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왜 나는 제한이 많은가?

일단은 자기 연민이 많아서 인듯하다.

 늘 손해만 보는 것 같은 심사.

'왜 나만 가지고 그래.....' 라는 속상함이 온전히 해결되지 않아서다.

남을 이해하고 받아 들이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주님은 '주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지 깊이 생각해 보기를 바라신다.'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모든 결박의 마음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을 위해서 이웃을 받아들이고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족하고 안되지만 주님 때문에 받아 들이고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도 그래야 한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베풀어 진 나인데 어찌 난 나를 ......

 

 

 

주님 사랑합니다.

늦게야 묵상을 해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

되풀이 생각해 보도록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

주님을 사랑함은 이웃도 사랑함이요.

주님을 사랑함은 주님의 계명대로 사는 것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원하신니까.. 그러하겠습니다.

주님을 내 생명으로 받아들이려면 그리하겠습니다.

주님 뜻이니 그러하겠습니다.

주여 . 내 생각을 지배하는 근 본원리가 그리되게 하소서.

내 논리의 모든 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니 .. 가 되게 하소서.

주님을 사랑하는 자로 반드시 주님의 기뻐하시는 선하신 뜻에 맞추어 행동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님이 원하시면 모든 것 다 받아 들이 겠나이다.

내 속에서 올라오려는 어리석은 부정감을 태우소서.

예수님의 보혈로 태우시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태우소서.

주님.  기뻐하시는 대로 살길 원하나이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진실로 사랑하길 원하나이다.

주여 도우소서ㅓ.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경 일곱장 읽겠다.

당직 최선을 다해 잘 서겠다.

기도하겠다.

TV 안보겠다.

내가 진실로 주님 사랑하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는지 기도한다.

주님께 걸리는 부분 해결해 주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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