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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살아 있는 자로서 살다[롬6:1-1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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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살아 있는 자로서 살다[롬6:1-14]

주하인 2018. 9. 11. 10:39




6.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다시는..

다시는...

죄에 종노릇 하지 않겠다고

얼마나 노력을 하고 다짐을 했던가?

그런데.. 그게 잘되던가?


분명코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나의 죄악의 몸, 그 육성(肉聲)으로 인한 성품은 죽어

그로 인하여 죄에 끌려 들어가던 이전의 구습은 죽었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성품대로 새로 부활하여 살아가야 함을

앎에도 불구하고

내 일상에서 과연 내가 그리 살던가?


오늘 ..

"다시는"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어쩌면 이러한 우리의 나약함을 읽어주심이 아니실까?

한없는 은혜로 말미암아 얻은 '부활'의 우리가

그러함을 잊고

일상에서 자꾸만 되풀이 되풀이

죄에 경계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때론 그러한 자신을 발견하고 좌절하고 나락에 떨어지려 하고

때론 온통 먹물을 묻히다가 소스라치는..

그러한 어리석은 우리.. 말이다.

 



11.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분명코 예수 께서 우릴 위해 '일시'에 십자가 앞으로

모든 죄를 다 씻어 주시고

부활하셔서 새로운 자격을 부여하셔서

주 하나님 앞에 살게 하신

'죄에 대하여 ' 죽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살아있는 자'로 만드시어 주셨음에도

그런 어리석은 '미련'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말이다 .


 어쩌면 '죄'의 너무도 교묘함과

우리 인생의 너무도 복잡함으로 인하여

자꾸만 잊어버리고 끌려가는 '무지하고 나약한 탓'일게다 .

 보라.

성령을 왜 보내시었는가?

단.. 일시에 '예수께서 죄를 가져가시고'

더 이상 의롭지 못할 수 없다면

왜 '보혜사'를 보내셨을까?

단지 이땅의 하나도 가치 없는 물질적 부유를 도우라는

'기복적'이유로?

정말.. 하나님이 .. 우주를 말씀으로 창조하시는

그 분께서

겨우 '지구' 한톨 안의 '먼지' 보다 못한 물질에

욕심을 내도록 우리를 창조하시고

'궁극의 보좌'에서

이 더러운 육신을 지시고 '육화'되셔서

성육신하신 몸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게 '논리'적으로 맞는 이야기던가?

정말~~~?

 그렇다면 회개는 왜 하라고 하시고

영적 전쟁의 말씀은 왜 하셨을까?


이 '죄'의 죽을 욕심에

우리가 자꾸 자꾸 넘어짐이다.


 하나님의 결단으로

예수 안에서 우리는 '의로운 자'의 자격을 지녔다 .

의로운 자의 자격을 지녔다 .

그러나, 우리는 이후의 삶에서 자꾸 공격해오는

죄에 대하여

매일 '성령'의 보혜로 씻김을 받아야 한다 .

그래서 주님 부르실 그날까지

온전한 '성화'를 이루어야 할

새로운 중생을 유지하는게

인생의 목표다 .

 

그러나, 그러함을 아는 자.. 그리고 준행하는 자

'주님의 부활'에 동참하고

성령의 은혜를 매일 사모하는 자.. 다.

그러하다 .

그렇지 못하고

그러하더라도 미련한 우리의 게으름에

자꾸만 죄에 속기 때문에

오늘날..

주님의 그 놀라우신 십자가 사랑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은 이모양이며

아직도 난.. .죄의 근처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죄에 죽었지만

'의로 온전히 살지 '못한

어정쩡한 자로 있는 것이다 .


어찌 해야 하는가?

내 일상에서 어찌 죽고 사는 자.. 로 살수 있는가?


 나이가 들어가는 것.

이전과는 또다른 영역의 '도전'과 '깨달음'의 부분이 열려 있는것이다

나이 들어가는 것.

그냥 소퇴해서 쭈그러져 죽음만 기다리는 때가 아니다

아..

'예수의 부활에 참여한 '자 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그러한 자들은

비록 매일 다시 또다시 '죄'에 지고 또 지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예수 안에서의 의'로움으로 다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 목표로 사는 것..

그를 이루기 위하여

이제 '젊은 때'와는 달리

'다시는 ' 죄의 죽음에 빠지지 않을 결심과 결단을 노력하는 것이

우리 선택 받은 자들의

마지막까지 붙들 인생의 목표라는 이야기다.


 아들... 장가 보내고

경이로울 정도로 밀려 들어온 온갖 고난들이

그보다 더 경이로운 ^^* 주님의 은혜로

일거에 다 정리 되었다

아들이.. '너무 잘진행되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그 안의 강력한 하나님 임재감...


그리고 나서

새로 출근하고 나서 부터 지금까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다 마무리 했다 생각한 '죄'의 문제들이

하나하나 조근조근 밀려오며

나를 흔드는 느낌이다 .

 말씀의 레마가 지속적으로 '의'와 '죄'에 대한 것이다 .


 그렇다.

하나님은 이제는 큰 ~~ 모난 것들을

'절차탁마' 하시고

그 싸인으로 아들의 결혼식과 아버지 장례식 ㅜ.ㅜ;의 동시에 치룸을 경계로

내 안의 마땅히 다루어야 할

'죄'.. 를

그동안의 연단과정으로 크게 마모되었지만

아직도 더 갈고 닦아야 할

내 이후의 삶에 방향으로

'죄'에 대하여 완전히 죽음

'의'에 대하여 온전히 삶을 목표로

매일 일상에서 방향을 잡고

비록 늙어가지만

매일 더

하나님 앞에서 살아 있는 자로

죄에 대하여 더 죽어

다시는 죄에 사는 자가 아닌

그런 내가 되어가길 바라심이시다 .


그렇다면

오늘..

어찌 세상을 바라 볼 것인가?

 '부정적'이고 어두운 생각은

아무리 합리적인 이유라도

'죄'에 대하여 사는 길이다.

어떠한 일이던..

잠시 내려 놓고 '하나님 앞에 살아있는 자'로서

'말씀'에 맞추어 생각을 하자.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돌아보자 .

' 주변'을 생각하는 것..

이제 내가 할 일이다 .

그게 .. 주님이 내게 원하시는 일이다.

이전과는 다른 개념이다.

 내 감정적 안정이 우선이엇음을

주께서 허락받은게 이전이었다면

이제는

당연하지만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범주에서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삶이

주께서 내가

'살아있는 자'로서 당연히 해야할 삶의 방향임을 깨달아

옮은 선택을 연습하는

또 하루의 '연단의 場'이 되어야 하리라 .


감사하다.

깨닫게 하심이..



주여.

온통.. 뒤죽박죽일때는

정신없이 내 안의 평안을 위하여

많은 부분.. 잘라내고 단속하고 움츠리기 바빳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능하면 주님 십자가와 부활로

살아있는 자로 서 살려는 당위성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 허락하시었을 것을 믿고

'평안'이 우선이 되는 선택을 하기도 했습니다.


주여.

이제.. 인생의 큰 일들이

마치 '선'을 그으셔서

이때와 그 후를 정리하시듯

하나님의 사인으로 이끌어 주신 후

내 인생 나머지의 시간동안을

새로운 '산 자'로서의 정리 시간으로 마주 하게 하시는 듯합니다.

이제..

다시는

죄에 다시 살아나는 미련함을 되풀이 하길 웒치 않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것이 내 살아 있는 나머지 인생의 목표가 될

당연함으로 느껴지니

주여..

산자의 의로운 선택을 매일 매일 하게 하소서.

그래서

내... 주를 뵈올 그 시간 즈음

옳고 의로운

진정 살아 있는 자.. ..로서

주님을 마주할 수 있길 원합니다.

내 주여.

도우소서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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