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진영 밖의 그 시간( 레14:1-20 ) 본문
제 14 장 ( Chapter 14, Leviticus )
적어 보여도
우주를 떠 받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시다
하늘 지축을 흔들
고민도
우리 주께서 정하신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런가 하듯
사라지고야 말리라
세상의 모든 것이 어우러져
하나의 아름다움을 이루고야 마는 것은
주님
그 전능하신 분이 계시기에 그렇다
내 삶은
곧
온전한 정결함으로
거듭 나게 될 것이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주여.
이 죄인에게도
그리 일러 가르쳐 주실런지요?
3. 제사장은 진에서 나가서 진찰할지니 그 환자에게 있던 문둥병 환처가 나았으면
문둥병이 나을까?
문둥병으로 오인받던 자들이 아님을 받고 정결하다 선포 받은 것을 이야기 하실 까?
문둥병이 낫지 않는 다는 것은
현대의 육신의 눈만 밝아진 어줍잖은 의사의 소견으로는
완치는 불가능하다고 빨간 불만 켜져 있는 나병,
그러나 주님 예수님께서도 낫게 하셨고
여기서도 나았다고 나온다.
나을 것이다.
영적인 나병 비슷한 증상,
불신의 영적 나병도
주님 예수님의 능력으로 나을 것이다.
이게 '레마'인가?
지병..
나을까?
믿는가?
문제는 나았다고 다 끝은 아니다.
완전한 나음은 시간이 더 걸린다.
8. 정결함을 받는 자는 그 옷을 빨고 모든 털을 밀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니 그 후에
진에 들어 올 것이나 자기 장막 밖에 칠일을 거할 것이요
나았다고 판정 받은 자를 물로 몸을 씻긴다.
그러면 '정하다'고 한다.
그리고는 진 밖에 일주일 거하게 하고
8일째 속죄제 및 번제를 드린다.
20. 제사장은 그 번제와 소제를 단에 드려 그를 위하여 속죄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정결하리라
.속죄제와 번제 및 소제를 드리고 나서야
그는 완전히 정결해진다고 나온다.
문둥병이나 문둥병 유사 피부질환이
일주일의 격리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두려움 속에 있다가
드디어는 '정하다'는 판정을 받고서
완벽히 정결해지기 위한
또 얼마간의 시간 동안 행해지는 여러 기다림과 행사를 묘사하고 계시다.
이 시간 ,
만일 당연히도 건강한 자들이라면 지루할 수 있는 시간이
이들에게는 얼마나 희망의 시간일까?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시간이 아닐까?
grace님이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오시는 아침의 바람이 싱그럽다 하신 답글을 보며
'은혜'를 체험한 자들 만이 공유할 수 있는 감정에 대하여
나까지 마음이 들뜨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
그 청명하고 맑고 신선한 기다림의 시간이
이들의 시간이 아닐까?
이 기다림의 시간이 아닐까?
묵상은 '이 회복된 나병환자'에 집중된다.
나병환자 같은 영적 질환은 우리 모두에게 있지 않을까?
개개인의 경중도는 다르지만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자가 없을 수는 없다.
문제는 그 영적 나병이 될 가능성이 많은 죄를
느끼지도 못하고 방치하고 떠도는 세상의 수많은 불신 나병환자들이 불쌍하다.
또한 '유사 나병'이 있으면서도 자신은 죄없다 느끼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영적 둔감 증'에 걸린 기독교인들은 또 없나?
'상처'를 이유로 더 큰 아픔을 느끼는 '영적 유사나병' 환자도 있다.
문제는 고통을 느끼면서 '정한' 치유의 시간을 가지는게 나은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며 치유내지 정한 판단의 기간 자체를 부인하고 사는 게 나은가이다.
심해서 더 고통을 느끼는 것 보다는
덜 심해서 덜 고통을 느끼지만
그래도 정한 판단을 위한 치유의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게
모든 이에게 낫지는 않을까?
나.
고통도 심하고 정함에 대한 욕구도 크다.
때로는 정결해지고 있는 내 과정이 너무 사랑스러워
G님의 그 산들거리는 바람에도 감탄, 감탄을 금하지 못하다가도
내재해 있어 아직도 흔적을 남기고 있는
그 지독한 죄악의 욕구,
버리지 못하는 그 죄의 욕구에 치를 떨면서 흔들리는
자신이 안타까워 고통이 심하기도 하다.
오늘 묵상은
정하다는 판단하나로 끝나지 않음이 희망적이다.
그런 아픔,
그런 고통은
"왜 아직까지 내가 정결하지 못하지?'라는 초조함이 더 증폭시킬수 있다.
그러나 더욱 정결해지기 까지는
팔일 까지의 진영 밖에서 홀로 거처함도 필요하다.
그리고 '속죄제'와 다른 제사를 지낸 후에야 정결하다 하니
그 과정이 김을 이해한다면
자신의 죄와 고통의 지리함이 한편 위로가 된다.
아직은 '더 ' 나가야 한다.
아직은 더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면 그 기다림의 시간은 '희망'이다.
하나님이 날 더 어루 만지는
더 기다려야 하는 시간,
힘들지만 상쾌할 수도 있는 시간.
그 후는 완전 정결.
참 힘이 들다.
산다는 것이 그렇다.
매일 은혜에 거할 수 도 없다.
지지는 않지만 풀리지 않는 어떤 끈이 있다.
어쩜 그 죄악의 끈은
내가 풀길 그처럼 원하여도
상황이 허락지 않을 때도 있다.
오래된 습관의 정서적 흐름은
틀을 깨기가 쉽지가 않다.
비록 이전에 비하여 너무나 많은 영적 맑음으로
스스로 생각해도 '정하다'는 느낌이 들을 지언정
실패한 것은 실패한 것이다.
자칫 깊은 좌절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이럴 때 내가하는 행동양식은 뒤로 물러섬, 가만히 있음, 시간이 지나감,
주님의 말씀에 둔해짐, 도피..........였다.
하지만, 오늘 묵상에
칠일 간의 '영 밖 독처'가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가만히 내 홀로 있을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온갖 되뇌이던 그 수많은 생각을 이제는 끊어 버리고
주님이 인도하시면 그 어떤 것도 감내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지금껏 정해져 온 과정을 보아
더욱 정해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홀로 가만히 주님의 뜻에만 집중하는
조용한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외롭다.
어쩌면 남들은 전혀 그런 과정을 겪지 않아도
세상에 열심히 적응해가며 사는 데
나는 이게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다.
그들은 오히려 깨닫지 못하는 영적 나병 환자일 수 있다.
고난 고통은 돌아보면
오히려 기쁨이었고 평강이 더 깊어지는 도구였었다.
그를 통하여 많은 분들이
내 경험을 통하여 은혜 받고 , 교회에 나가기도 하고
회복이 되기도 하고
영적 최전선에 있던 몇 선교사님이나 목회자 분들도
강한 영감으로 깨닫고 가신 경험도 고백한다.
나.
나 혼자로 만 생각하면 이 고난이 아무 의미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고난...
끝나지 않을 듯한 이 조금은 가벼워진 고난이
'진영 밖의 외로운 ,
그러면서 정결한 판정을 위한 약간의 더 기다림'일 수 있다.
그렇다.
그러한 것이 맞다면 그것은 기쁨이다.
과연,
이러한 이들의 시간이 나에게도 올수 있을까?
죄송하고 안타까운 하루지만
의미있는 영적 일주일이 될 수도 있다.
주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다.
나..
가만히 내 속을 들여다만 보고 기다리리라.
적용
1. 기다린다.
초조해 할 이유가 없다.
2. 그래도 주님만 본다.
3. 외로움은 진영 밖의 시간이다.
외로움이 외로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축복이 있다.
4. 성경 세장 읽겠다.
5. 이런 나에게도 이들의 시간이 있을까?
여쭙자
기도
주님.
놀라우신 주님.
말도 못하게 죄 덩어리 이 죄하인.
주님.
그러심에도 이 어려운 레위기를 통하여 말씀을 허락하십니다.
희망의 시간.
기다림의 시간이 오히려 희망인 그 시간을 묵상케 하심니다.
감사합니다.
끝날 줄 알았던 죄의 속죄가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지만 그 시간조차 흔들릴 일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절망에 빠질 뻔 했습니다.
저요.
하지만 희망이 소롯이 돋음을 느낍니다.
주님.
저 아무 것도 못합니다.
주님.
주님은 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 전능하신 하나님.
그 세심하신 하나님.
매일 같이 살아계셔서 정확히 짚어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절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그냥 .. .기다립니다.
주여.
아픔.. 다 내려 놉니다.
예수 앞에 그리합니다.
성령으로 인도하소서.
이 죄많은 죄인 정하다 하소서.
정결하다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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