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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QT

주하인아 내가 있다 (살후3:6~ 18)

주하인 2007. 3. 20. 08:39

 2007-03-20 데살로니가후서 (2 Thessalonians) 3:6~3:18
 

 

( 생각이 많으면 삶이 복잡해집니다. ^^;;;)

 

나는 생각이 많은 편이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좋게 보면 실수를 덜 하기도 하고

조금은 비상하다는 소리를 듣고 살 가능성이 높기는 했지만

그것은 스스로 되고 안되고 제한점이 많다는 얘기고  

쉽게 모든 일에 결정을 내리는데 쉽지 않았었다는 뜻이기도 하며

삶에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서 쉬이 피곤해 질 여지가 많다는 것이기도 하고

삶을 보는 눈이 두려움과 부정적인 것이 많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실제가 그랬다.  

삶에 별로 힘이 없었다.

 

 그러다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 분의 말씀이 내 속으로 하나하나 들어오기 시작하며

쓰잘 데 없는 나름대로의 규칙이 제거되고 삶이 단순해지기 시작해졌다.

필요없는 생각 들이 하나하나 가지쳐지며 조금 세상을 보는 눈이 맑아지기 시작하자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 않아도 될 걱정들은 하지 않기 시작했다.

특별한 이유 - 예전에는 의미가 없으면 의욕이 나지 않았었다.- 없이도 평안하고 기쁜 날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아직도 걸리는 부분이 많은 것은

주님의 말씀을 더 깊이 내 속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6.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이것 저것 재며 결론을 내리고

그러다가 가끔은 놓치고..

어떨 때는 멋진 결론을 내리지만

반면 상처 받을 경우도 생길 수 있고...

 스스로도 피곤하다.

 

 성경은 말한다.

규모없고 주님의 뜻이 아닌 것을 행하는 것은 하지말라.

그게 비록 같은 기독교인의 이야기 일지라도 규모없는 것은 피하라.

 

 어찌 보면 규모없는 것의 정의 조차 또 헷갈리는 말일지 모르지만

오늘 또 한번 흩어진 물방울 들에 손가락으로 이어서 물길을 만들어주는 말씀을 들었다.

 

이것이 예전이면 '율법적'으로 인식되었을 것이

이제는 '~ 게 어떻겠는가?','~ 게 좋을 듯 싶다. '.. 로 느껴진다.

오늘의 말씀은 이렇듯 내 영혼에 각인될 듯 싶다.

 

" 그럴 듯하여도 위엣 것의 원리에 맞지 않고 땅엣 것이 중심이 되는 이유는 버려라. " 

 

물론 , 자칫하면 청교도 적이고 율법적인 것으로 변할 우려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나는 느낀다.

날마다 주님은 큐티할 때마다 말씀으로 잡아 주신다.

딱딱함 보다는 부드러운 마음이 살아나오도록 하시어

오랜 가뭄으로 마른 땅에 젖어들어오는 가랑 비 같은 느낌을 들도록 하시는 것으로 보아

아직은 그런 위험은 없지 않을까 한다.

 

 참으로 묵상을 아침 마다 하면서 감사하온 것은

내 영혼의 깨질 수 없을 듯 강패한 - 표현이 맞나? ㅎㅎ - 철옹성의 필요없는 논리의 벽이 하나하나 깨져나가고 서서히 그 잔해가 갈아지면서 적어지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 도구가 오늘 아침처럼 늘 주시는 말씀이다.

 

 

 

8.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일련의 지표.

 열심히 일하라.

노력하라.

지치지 마라.

남에게 폐 끼치지 마라.

혹시 열심히 노력하다가 멈칫하게 만드는 송사가 있을 수 있다.

' 네 열심이 무슨 의미가 있어 ?

  누가 알아줘?

  그런다고 돼?

  네가 대단한 사람인줄 알아?..........'

 

9.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거기에도 주님은 대처 원리를 또하나 주신다.

 

' 본을 주어서 본 받게 하도록 하라.'

 

아니 주여,

어찌 저같은 부족한 자가..

 

' 지금까지 이끌어 오지 않았는가?

이끌어 와서 본이 되도록 하는 게 너의 몫이다.

본이 되어라.

넌 본이 되는 자다.

남을 위하여.. '

 

 

 

 

13.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 주님은  힘이 지칠 때는 야수와 같은 나일지라도 안식하게 해주셔왔다...)

 

 그러다가도 힘이 부쳐 지칠 수 있다.

오랫동안 난 리듬이 있었다.

세상에 살 때도 그러했다.

열심히 하다가도 지치면 얼마동안 TV나 만화, 아니면 당구나.... 탐닉하기도 했었다.

 

예수님 영접하고도

은혜 받을 때는 열심히 새벽교회도 나가고 성경도 읽고 사람들에게 열렬히 전도하다가도 어느 순간에 한참 동안 내가 왜 이리 열심이었지...하며 멍하니 생활하기도.

 

 그런 리듬은 시간이 가면서 굉장히 줄었지만 - 이것만 봐도 주님의 내 안에서의 살아계심을 알 수 있다.-아직도 그렇다.

 

 아버지학교, 전인치유, 아침큐티, 열심으로 하는 기도..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참여한다고 생각하며 나름대로는 열심을 부리는 일에 사람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음을 보며 가끔은 혼자 보이는 열심이 창피한 느낌이 스치고 지나가기도, 식은 땀이 나기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낙심이 되는 경우가 없지 않아 있으며

한동안 바닥의 리듬에서 헤매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주님이 좋아하실 만한 단 한가지의 장점은 있다. ㅎㅎ

그것은 오뚝이 처럼 다시 서는 것이다.

실은 그 분이 아니면 다시 쓰러져 그 험한 낙심의 골짜기에서 헤멜 것이 너무도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주님이 아니시면 난 죽을 목숨이었을 런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럼에도 일어서는 그 과정까지는 난 처절한 나름대로의 싸움을 한다.

 

주님의 오늘 말씀은 그런 의미에서 굉장한 힘이 된다.

주님은 절대로 혼자 두시는 법이 없으시다.

명령하는 것 같지만 명령이 아니다.

그 증거로 정확히 정확한 시점에 말씀을 주시는 것이다.

위로다.

위안이다.

부족하고 버거운 에너지 탱크를 가진 자에게 떨어질 즈음 채워 주시는 에너지 보충이시다.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그냥 말라는 것이 아니시다.

그것은 낙심치 않아도 될 이유가 있으시기에 낙심치 말라는 것이다.

 

이런 것이다.

낙심치 말라는 말씀을 들고

십자가 앞에 내가 낙심할 일과 함께 가져가는 것이다.

장소 불문.

아무 때나...

그리고는 머리 놓고 가만히 생각하는 것이다.

해결하려고 몸부림 치는 것 자체가 굉장한 에너지의 소모이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의 말씀이 살아서 움직이면서 낙심되었던 마음에 알지모를 기쁨이 솟아나는 것이다.

그것은 평화와 평강의 회복이다.

기쁠 수 없을 곳에 생기는 기쁨이다.

슬플 곳에 있을 기쁨이고

낙심 천만한 곳에 있는 희망이다.

이것은 머리에서 유희하는 말의 장란이 절대로 아니다.

수도 없는 많은 체험이 쌓이면서

그 체험이 세미한 음성으로 들리는 시간의 과정이 지나가다가

세미한 음성이 확신으로 변하고

한줄기 흐름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아,

 이것이 주님의 원리시구나.

 이래서 주님이 성경에 수천년간 동일한 경험을 가지신 분들의 입을 들어 쓰시게 하신 것이고

 이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흔적이시구나.'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원리의 인식의 시작은 성질 급한 내가 억지로 억지로 참고 교회에 가기 싫은 것 물리치며 눈 감고 기도할 자격없음을 알면서 기대하지 않고 겨우 시작한 기도에서 예상치 못한 엄청난 기쁨과 소름치는 듯 , 작렬하는 번개에 맞은 듯 은혜를 퍼부을 때의 경험 부터 시작하여 하나하나 쌓여진 경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최소한 나에게는.....

 

 오늘 말씀하신다.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
선을 행하라.

 아.

 넌 선을 행했었다.

 조금이지만..

 지금하는 방향을 그대로 유지하라.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듯이 낙심케 하는 일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낙심하지 말거라.

 알지 않느냐?

 내가 있다.

 알고있지?

 주하인~

 내가 있다.  "라고 하신다.

 

친구가 그래도 기쁠 것을..

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14.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15.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 같이 권하라

  위로가 되었다.

그러자 주님께서 다시한번 삶의 행동강령을 지도하신다.

참으로도 자상하시고 세심하신 분이시다.

가르치시고

위로하시고

기다려서 회복되자 또 가르치신다.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인간적으로 동정이 가고 불쌍해도 자르라.

깨우쳐라.

 

 우리 아내가 난 참으로 고맙다.

날 구원하기 위해 3년을 지혜로 참은 여인이다.

그리고는 끝까지 옳은 feedback을 통하여 여기까지 오도록 했다.

그럼에도 가끔은 지나친 면이 없지 않는가 하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 일부가

교회나 가정에서도 주님 앞에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면 과감히 지적한다.

당찬 여인이다.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때가 없지 않아 있어보이고 너무 시끄러운 일이 생길 듯하여 속이 상하기도 할 때가 있다.

 오늘 말씀에서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자르라는 말씀에는 부합하기에 어쩔 수 없기도 하다.

그러나, 그 아래 구절에 나오는 형제같이 권하라는 말씀에 하나의 행동 양식 수정을 더 할 기회를 얻었다.

형제같이 권하라.

 

난 좋고 싫음이 너무도 분명하다.

지금껏 그게 자랑으로 생각하고 마음 속에 난 강직하다는 잘못된 개념으로 살았었다.

하지만 그것은 남에게 많은 상처를 입히기 쉽상이다.

주님의 원리는 어디까지나 화합이다.

우리 아내의 그 열정과 강직함에 사랑을 더함이 원리다.

 

앞으로 그리할 것이다.

노력하겠다.

주여 도우소서.

 

 

 

 

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간구가 나오기가 무섭게 이리 또 말씀하시지 않는가?

묵상을 글로 쓰면서 난 그냥 손가락이 나가는 대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쓴다.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로 이어지는 경우를 너무나도 많이 경험했기에...

 

지금이 그렇다. ㅎㅎ

주여 도우소서...하니 평강을 주라는 축복을 사도 바울 선생께서 직접 나에게 내리시지 않는가?

 

 

그 높은 산들도 주님의 손길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갈아 닦여 나가게 된다.) 

 

 

주님.

오늘 하루 매사를, 일거수 일투족을 간섭하소서.

그리하여 말씀으로 주신 모든 것이 내 영혼에 각인되어 더  이상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하소서.

오랫동안 나처럼 내 삶을 좌지우지 했던 세상의 원리와 상처의 흔적과 그를 통한 사단의 역사의 원리가 갈아 없어지게 하소서.

부서지게 하소서.

부서진 것이 잘게 갈려

부는 성령의 바람에 날려가게 하소서.

흔적도 없게 하소서 .

그리하여 내 속에 남는 것은 오직 주님의 평강만이 되게 하소서.

그 평강이 희열일 줄 압니다.

그 끝없이 넘치는 희열로

이웃을 향하여 선한 영향을 미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도우실 줄 믿습니다.

그 하루가 또 내 속에 쌓여 한걸음 주 앞으로 더 나가는 기회가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적용

 

1. 일상에서  위엣 것을 향한 것을 구분하여 본다..

 

2. 이익이 되어도 주님의 뜻이 아니면 자른다.

 

3. 내 일이라면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을 가지겠다.

   화요 모임에 참여 하겠다.

 

4. 겸손하겠다.

   환자들에게 온유하게 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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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판정

 성공

실패
중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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