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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즐거움에 참여함[마25:14-3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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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즐거움에 참여함[마25:14-30]

주하인 2019. 4. 10. 07:13

 
  

 

21.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내 주인.

내 하나님

내 주님.

'네 주인의 즐거움.'

내 하나님의 즐거움을 깊이 묵상해보라.. 시는 의미로

네 하나님의 즐거움... 이리 표현한 듯하다.


그 분의 즐거움.

단지 인간끼리의 관계 조차도 짐작하기 어려운 우리가

이 지구.. 이 태양계.. 이 은하수.....넘고 넘어 수천억 수조개의 은하를 만드시며

그 우주가 다중우주 , 여러개로 짐작되어질 만큼

상상을 불허할(진짜... 상상하기도 어렵다...수치로 표현해도.. )

주님의 '창조' 와 그 과정에서 (지구 같은 별은 또 얼마나 많을까?  영계는..? .. )

그 분의 즐거움을

그 분이 창조 하시는 목적과

그 안의 즐거움을

우리가

과연

진정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겠냐마는..

오늘 말씀에는

'네 주인의'라 찝어 말한다.

주님의 즐거움 중

'나의 주인으로서의 즐거움'을 말하시는 것 말이다.  


 그렇다면

주님이

나에게서

우리 ,선택받은 인간에게서

무엇을

즐거워 하시는가?


 (이사야 43:21)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당연히도 지으신 피조물 들인 '이 백성' , 우리, 내가 불러 올리는 '찬송'을

듣기 위하여 지으셨다.

그것.. 우리가 일상에서 매일 불러올리는 '찬송'을 기뻐하심이다.

아...

비단 노래 뿐, 아니다.

노래로서의 찬송 만이 아니고( 만일, 노래만이 찬송이라면 음치는 주님의 기뻐하심이 안된다는 얘긴가? ^^;;)

일상에서 주님을 생각하며 올려드리는

우리의 모든 행동과 생각과 마음...이 아닐런가?

 보라.

5달란트로 돈 벌어 오는 자도 주님을 기쁘게 하시지 않던가?

기쁘게 해드리는 돈 벎도 주님을 위한 찬송이고

그것.. 주님을 위한 즐거움의 참여다.

  아..

노래, 찬송은 잘 부르고 아름다운 하모니만 내면

그것으로 끝이다.

관객으로서의 즐거움은

자리털고 일어나 집에가면 그것으로 끝이다.

조금 오래가도 하루 .. ? .. ㅎ

 그것..

관객...보시고 계시는 하나님을 관객의 수준에 머물게 하지만

그 분을 '즐거웁게 ' 해드리는  '나의 찬송'이 되려면

그분과 특별한 연결고리가 있어야 한다 .

 아버지로서 관객이 되어

딸 혹은 아들이 부르는 노래 ,찬송을 들으면

그냥 잘하는 자들을 바라보는 '관객'의 잠시 기쁨을 넘어서는

같이 기쁜

'즐거운 찬송'

그래서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위한

'즐거운 찬송' 이 되지 않을 것이지 않은가?

  그래야 '음악단원'의 잠시 잘하고 점차로 매너리즘에 빠져

음악하는 행위, 찬송부르는 단원에 지나지 않고

관객의 즐거움과 동화되어 같이 누리는

진정한 기쁨의 찬송자가 되지 않을 것인가?


 오늘...

2 달란트,.  5달란트..  차별을 두어 나누어 주었지만

그들 둘을 모두 똑같이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거둔 액수를 보고 기뻐 하시지만

그 액수 자체를 더  기뻐하고 덜 기뻐하시지 않는다.

진정 즐거워 하심은

그가

하나님과

같은 즐거움을 누리기 위한 '노력'..

즉 아름다운 찬송을 부르기 위한 열심,

아.. 더 깊이 들어가서

그분께 아름다운 찬송을 드리기 위한 전제조건인

그분의 즐거움을 이해하고 있는가 아닌가가 문제다.

즉..

하나님과 합일 되어

그 분의 기뻐하심이 우리의 기뻐함이 되고

그 분의 안타까워하시는 긍휼을 같이 느끼며

그 분의 원하심을 같이 이해하여

그 분의 모든 것에 우리의 시선이 같이 향하는 가 아닌가

그럼으로 이 일상에서 '찬송'을 부르려는

일상의 삶 어떤 것을 해내든

우리의 있는 현재의 자리에서

그 분을 공감하고 의식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의 인생 소출이 어떻든

현재의 위치가 어떻든

내 하루의 잘잘못이 어떻게 상계되든....

주님께는 큰 의미가 없으시단 말씀이시다 .

그냥... 주님을 통하여 웃고 울고

주님을 생각함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 한다면

그것..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시며

진정 주께서 기뻐하실 것 이란 말이다.

 솔직히 '강아지'가 자신의 음식을 내게 밀어 바친다해도

그게 무슨의미가 있을까?

천재견 가진 잠시의 기쁨?

바친 음식은 버리게 되거나 돌려주리라..ㅎ

전능하신 하나님께 우리가 드리는 십일조.. 돈.. ...그 액수가 무엇이 중요하시랴..

그 액수에 담겨진 마음.......그 마음의 흐름 아니겠는가? ^^*


 난.. 아들이 둘이다.

둘 모두 주님을 잘 믿고 착하게 컸다.

아들 둘 기르는 것...

특히 제대로 된 아버지의 모델링을 하지 못하며 키워가며 ㅠ.ㅠ;;

많은 착오와 힘듦이 있었기에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 주어진

달란트 (누구나 자기 자식이 고슴도치가 아니랴만... 두아이 모두 괜찮은 지능가진..재주있는..^^;)에 비해

조금은 세상적으로 덜 만족스러운 현실적 위치이지만

그래도 내 오랜 두려움보다는 훨씬 건강하고 신실한 아이들로 컸다.

그런데 둘이... 어쩌면 그리도 다른가?



울 손녀

생후 2일 째 , 이리 눈을 떴네요...^^*

착해라

이뻐라

사랑스러워라...^^*


큰 아들은

자기 나름의 이유로 ㅜ.ㅜ;

적당한 정도의 노력을 하고

적당한 정도의 며느리를 만나

아주 아주 아주 이쁜 ^^* 손녀를 '덜~컥' 낳아주니

내게서 든든한 의미의 효도를 하며

(아.. 거기까지 얼마나 많은 갈등과 조율과 그를 위한 기도와 ... 있었던가? ^^;) 

한편의 즐거움을 주고 있다.

 둘째.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다.

찬양을 너무 너무 잘하고

감동적인 아들.

하지만... 내적인 갈등이 많은지.. 여러 성장과정의 어려움이 있었다.

이 아들 때문에 많이 아팠다.

지금은 직장 잘다니고 있지만

여전히 그 아이에게 주어진 능력 (아이큐, 체격, 재능... ) 에 비하여

많이 부족하다 느껴지는 데이지만

이 아들은 아주 깊은 영성을 가지고

요즘 아이들과 다른 맑음과 깊음이 있다.

 두 아들.. 모두 다르다.

큰 아들은 세상적으로 지혜롭고 잘 알아서 든든하게 나간다.

하지만... 나와 조금 서먹하다.

지금은 주님안에서 다 이해하는 듯하지만...

둘 째...

키우기 어려웠지만

어렵고 두려운 아버지에게 꼭 붙어

많은 대화를 하며 여기까지 온 아이...

그 둘만 가지고도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즐거움'을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큰 아들은 '든든'하다.

깨끗하고 명석하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조금은...

그래서 속상하다.

 작은 아들은 '안타깝고 가슴아프다'

세상에 저리 던져져서 어찌 살까.. 늘 조마조마하였었다.

그래도 아이의 맑고 순수함에 눈물이 날 것 만 같은 긍휼함이 내게 있다.


 아버지로서 모든 것 다알고 다시 돌아가 30 몇년전 부터 다시 살라시면

절래절래할 만큼 힘든 과정이었지만

솔직히

그 아들들의 그러함이 없었고

저러한 '위안'과 '긍휼'함이 내게 없었을 것이어

아마 훨씬 더 메마르고 재미없는 인생을 살다가

많이 외형적으로도 늙어 있었을지 모른다.

아무런 .. 흥미와 재미가 없는 이 세상.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 (난.. 이전 버전의 '참예'가 더 좋다.)한다는 것.

아마.. 아들들이 내마음을 알아

내 즐거워 하는 것에 대하여

조금 만 더 신경써주면 ^^;; 내 즐거움은 훨~씬 더 증폭이 될 것인데..ㅎ

하지만.. 그들도 그들의 세계에서 살면서 겪는 어려움으로

어찌 내게만 그럴 것인가?


 각설하고

주님이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내가

더 요령있고 스마트하게 살아 내지만 조금은 덜 살가운 큰 아들과

더 투박하고 약간은 큰 아들보다 더 의존적(지금은 영육간 독립과정 중이다.. 그래서 약간아프리라.. ^^;;)인

둘째 아들 사이에서

누가 더라하긴 그렇지만

아픈 손가락은 둘째다.

그것.. 더 귀하다는 이야기 하려는 게 아니다.

즐거움에 참예하다는

그 의미에 대하여 더 생각해 보려 함이다.


 그것,

내가 일상에서 하는 일이

주님께 즐거움이 되기 위하여서는

같이 찬송하는게  

같이 즐거워함이 되어야 하는 것이란 것이고

그러기 위하여서는

찬송을 부르는 자(나)의 그러함을 같이 기뻐하여줄 가족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그것..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내 기뻐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그 분이 기뻐하실 것으로 내가 기뻐져야할 것이되어야 하며

그 분이 슬퍼하시고 힘들어하실 것은 피해야 하는 등....

같이 '감정'이 흐르게 되어야 함이다.

그게 가족이고

그게 같이 즐거움에 참여 함이다.


5달란트 벌어서 더 크게 기뻐하고

1달란트 못벌어서 화내시는 것이

소출, 돈의 크기에 따른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서로 '장사'하는 자들의 관계이며

그것은 가족이 아니다.

부모 자식 간에 그리 감정이 왜곡되었다면 그것은 '역기능' 가족이다.

잘못된 조건적 사랑의 결과물.


세상이 자꾸만 단절되어간다.

메스미디어에서 , SNS에서 모든 것 배우다보니

어른과 아이들의 관계에서 더 이상 배울 게 없다.

그들은 다 안다.

그러다 보니 같이 즐거워하고 흐뭇해할 것을 배울 필요가 없다 .

메마른다.

그러다 보니 날카로워지고

곳곳에서 사회문제가 생긴다.

결국 .......지옥도...다.

그들은 '하나님의 즐거워 하실'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정말 문제다.


나..

우리...

믿는 자들은 안그럴까?

혹시.. ?
돈 더내는 자들이 .. 성공한 자들이 축복받는다... 고 생각하는 기복주의.. ?

사단이 아닐까?:

그들은 '지옥'을 사는 것이다.


이 땅에서 물질만 부하지

진정한 기쁨.

진정한 천국이 무엇인지 모른다.


나..

잘난 자식들 가지지 못했지만

(성공한 친구들의 성공한 자식들과의 관계에서 힘들어 하는 것...

 나이들어 보니 점점 더 .. 그게 축복이 아님을

 최근에 아주 많이 보고 있다.  내 주변에서.. ㅠ.ㅠ.;;

 부족하고 없는 것 같지만 다 가진 것..

 그러면서 점차로 발전함을 느끼는 것..

 생기..  살아있음..

 그게 주님의 원리다.

 주님의 즐거움에 참여할 노력을 하는 자들의 결과)

그래도 '그들로 인하여 즐겁다 ' .. 즐거웠고...


나..

굳이 내 못된.. 잘못했던 것들에 대하여

몸보림치지 않으리라.

주님 앞에서 회개하였고, 하고 있으며

내가 주님의 즐거움을

매일

지금도 신경쓰고 있으니

그게 왜곡은 아니고

주님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을 놓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앞으로 남은 것은 이것이다.

주님의 즐거움에 '참예' 함의 분량을 더욱 크게 하는 것.

주님이 진정 나로 인하여 무엇을 기뻐하실 것인가 더 신경쓰고

그 분이 진정 관심있어하심이 어느 것인가? , 아프신 게 어떤 것인가?

조금 더 다가가

여쭈어 보고 물어보고

설령 내가 그분의 그 광대하시고 크시고 엄청난 ........능력에

어찌 도움이 될련가 싶어도

그분이 나를 지으시고

그 분이 나에게 바라심이 그것이시니

더욱 내 마음과 정성을

그 분께 바치기 위한 하루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래서..

사순절.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나를 그런 자격으로 만들어 주신 것 아니시던가?


참으로

많은 것 감사하고

참으로

많은 부분에서 자유로와진다.

그리고 참으로

더 기뻐지고.....................매일이.........



 우울하려 했었는데..

내 어쨰도 어찌할 수 없는 그 속절없는 부분에 좌절하려 했었는데

주여... 주님의 말씀으로

또다시 회복되나이다.

주님의 즐거움이 어떠함이신지

그 뚜렷함 형태는 완전히 짐작하기는 불가하지만

제가 .. 제 현재의 상태에서 해드릴 수 있는

그 어떤것을 막연히 나마 조금은 더 밝혀지는 듯 싶습니다.

마음이 기뻐지려 합니다.

그럴 개연성이 없었지만

오직 주님의 말씀과 어루만지심으로 그렇습니다.

주님의 즐거움에

조금 조금 참여케 해주시는 덕인줄 압니다.

내 주여.


깨닫게 하소서.

만지소서

힘주소서.


특히 우리 아들들..

둘째.. 더 그리하소서.

어려움 중에 완전한 독립

온전한 성장을 위하여

진정한 건강함을 위하여 용틀임 하고 있사오니

부디 그 마음에

온전한 주의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는

버퍼를 더 크게 하소서.

 내 주 예수 그리스도

그 거룩하고 감사하신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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