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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바 행하는 바 온전한 바[마26:1-16] 본문

신약 QT

아는 바 행하는 바 온전한 바[마26:1-16]

주하인 2019. 4. 12. 00:07



 
2.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너희가 아는 바'


 난

무엇을

어디까지

어떻게 알던가?

그리고 그 아는 바를

어디까지

어떻게

이 삶, 이 매일에서

적용하며 살던가?


 제자들에게

'아는가?" 하고 물으심은

분명코 '유월절'에 대한 것이시다.


그런데

그 유월절에

모두는 알고

그 유월절이 어떤 의미인지도 나름대로 알겠지만

그 유월절이 진정 하나님의 뜻이란 점에서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그 '본질'에 대하여 아는 자도 많지 않을 것이며

더더구나 그 본질을 알더라도

'예수'께서

온 우주를 넘어서는 (요새는 다중, multiple , .. 다수..의 우주에 대하여 과학에서 말하기도 한다. ^^;)

진정한 '구원'의 원리에 의거하여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하여 '

잡혀가시는

그 것까지 짐작할 자

그 어디에 있겠는가?

 

난...

그 사실을 이제는 잘 아는 난..

과연 그렇다면 내 일상에서

어떤 모습인가?

어찌 적용하고 살 고 있는가?

벌써.. 지금.. 오후 네시인데.....

어제와 다름없는 바로 그 시간............

 


4.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보라.

그 유월절을 아는 군상(群像)중에

첫째 부류가 있다 .


' 흉흉한'.. 악의 도구로 사용되는

겉으로는 '하나님'께 열심을 나타내는 자들.

아......

유월절을 모르는 , 관심도 없는 '불신자'들은

오늘 대상에 속하지도 못한다. .. 이구..

그들을 포함하여 더 무서운 부류.. .

자신들만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흉악의 부류'.

 


7.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하나님께서

진정 이뻐하실

영육혼 간... 마음과 정성과 영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려는 자.

그래서

그 사랑을 못이겨

이 세상의 삶의 방편까지

모두 다 털어버리고 불살라 버려도 부족할 만한

우리의 나아갈 방향.


 이 분..마리아.

지적으로 아주 뛰어나게 다 알고 있지는 않을 지 몰라도

유월절의 진정한 의미에 대하여

벌써 , 마음이 다 열려 있는 자..........


나.

이 분.......부류에 속함을

이제는 안다.

스스로 안다.

단지... 옥합을 깨뜨릴 자신은 없다 .

그래서 머뭇거리는 자.


그러기에 주님은

오늘 ..

아는 자로서

더 깊은 부분.. 행실에 대하여 묵상하고 기도하여 발전하길 권고하시는

그런 레마로 다가온다.



8.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또 다른 부류

예수님을 좇고 , 알것 알지만

깊은 만남이 없는..

아직 성령의 충만한 은혜에 접하지 못한.........자.

설익고 풋익은 부류들.


나.

어디까지인지 오늘 다시 마주해야한다.


아는 바를

이제는

더 깊이 행하고

그 행함이 오직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와

기도와 깨어 있음 중 하나님께서 원하심을 깨달아 알아

나도 모르게 그리되는 자가 되어야 함을...


아..

영육혼이

주님의 영으로

사통팔달.. 되는

내주 합일의 사람.

성화의 완성자.. .....

고대하고 기대한다.



주님.

저는.. 깊은 저항이 있습니다.

아직 넘어야할 산..

너무도 뚜렷한 ........

주님께

모두 맡깁니다.

제 그러함 말입니다.


오늘..

아는 자를 넘어서

행하는 자...

그 행함이 주님의 기뻐하심을 알기에

하등 망설임이 안생기는..

무조건 사랑으로 인하여

더 이상의 갈등이 없는

그런 ..

성령이 막힘없이 흐르는 자 되길 바랍니다.

내 주여.

오직 주님의 은혜. .성령의 도우심 만으로 그렇게 될 수 있음을

전 확~실히 압니다.

기도합니다.

내 주여 .

그리 되게 하소서.

쉽게 '옥합'을 깨드릴 수 있는 자.. .

그런 환경 .. 내 주변을 허락하소서.


모든 것 다 아시는

내 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 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 이전의 묵상 들 (참조하셔도 좋으실 듯합니다. ^^*)



1.  2010.03.23

 

 보되 보지 못하고 알되 알지 못하고

이 장면이

두렵게 보이시나요

안정감이 있게

보이지는 않으시나요

 

어떤 분에게는

끔찍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지요 

하지만

주님의 회복시키실 것임을 믿는

저에게는

오히려

안온하게 느껴진답니다

 

수술이 잘 되어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

부드러운 사진의 톤이

안정감을 주고

링겔에서 떨어지는

한방울 한방울의 수액이

아픔보다는

생명의 회복을

두려움 보다는

의술진의 땀을

느끼게 한답니다

 

보고 알고 느낀다는 것

이것처럼

같은 것이라도 

완전히 다르게

느낄수가 있지요

 

주님 말씀  만이

주님 성령의 평강만이

진리의 기준이 될 뿐입니다

 

샬롬




 
2.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우리는 많은 것을 안다.

제자들도 그랬다.

 유월절  .

그때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것을 말씀 하셨기에

그들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의식에는 '유월절'의 행사만 기억되고 있지

예수님의 십자가라든지

그 분의 고난 등은 기억되지 않았었음을

성경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다.

 

 안다는 것.

그것을 어디까지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가?

우리는 안그런가?

많이 배웠다고 인격까지 따르던가?

예수님 믿은 시간이 길다고

반드시 '영성'과 상관이 있던가?

왜 그런가?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던가?

 

 

3.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아문에 모여 
  그때에(then),

바로 그 시간에

제자들은 알되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바로 그 시각에

다른 곳에서는 그것을 넘어서는

악한 일이 도모되고 있었다.

 알지도 못하고 악한 일을 하는 것.

인간들의 모습들..

 

   
8.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우리라고 무엇이 다를까?

만일 성경을 모르고 그 당시에 상황에 던져졌더라면

이들 제자들과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는

그리 장담하기 힘들다.

 제자들은 '웬 남루한 여인이 비싼 향유를 들고와서

갑작스레이 식사를 하고 계신 예수님의 머리 위에

격에 맞지 않는

아주 값비싼 향유를 필요없는 행위인 주님 머리 위에 붓는 일을 하니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로 느껴졌을까?

 그래서 그들은 '보고' 분함을 느꼈다.

보고 느끼는

그 사이에 어떤 메카니즘이 작용해서

분노로 표출 되었을까?

 아마도 여인의 남루한 옷차림을 보면서

'자격없는 여인'이라는 무시가 있지는 않았을까?

아마도 한걸음 더 나가 그녀의 격에 맞지 않는

과도한 향유의 소지를 보며 '도둑질..? ' 하면서

의심을 하지는 않지 않았을까?

 아니면 제자들의 마음에 숨은 '아까움'이

분노메카니즘을 자극하지는 않았을까?

그보다는 자신들의 허락을 맞지 않은 데 대한

기득권 침해의 논리는 아닐까?

..

무엇이 맞든 간에

그들은 '본 것을 보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살짝 비틀어 보았다.

그것이 그들에게 본것을 본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왜곡'을 불러 일으켰다.

 

 위의 '유월절'에 대한 것은 어떨까?

십자가 사건에 대하여 알지만

그들의 욕심이나 유월절 행사에 대한 흥분으로

주님의 고난에 대한 것은 잊어 버리고

유월절 행사 자체만 기억하게 되는 것은 아니던가?

  
  
14.  그 때에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그때에(Then)

바로 그 시각에.....

어처구니 없이도... 라는 뜻이다.

가롯 유다라는 제자는 예수님을 팔아먹고 있었다.

 이게 인간이다.

 

 

  참으로 인간은 어리석다.

그리고 그들은 또

그들이 보고 아는 것에 대하여

그것이 모두 인것으로 착각하는

어리석은 존재라는 것을

하나 더 첨가하면

사람 만큼 추악하고 바보같은 존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주님이 기뻐하시고 이뻐하시지 않는다면

인간에게는 희망이 없다.

무엇을 기대해야 한다는 말인가?

 주님의 그 사랑 많으심은 참으로 놀랍다.

무엇 때문에 이들을 위해

나같은 죄인을 위해

이 판단과 감각의 오류덩어리 속물에게

십자가라는

그 엄청난 사랑을 쏟아 부으시면서

날 사랑하셨던가?

 

 이 인식의 오류 덩어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인식의 오류덩어리들인

'인간'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비록 내 안에서

'이 어리석은

 이 엉터리 같은... ' 비판의 소리들이

날 휘어 잡아 남들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려 하고

나 스스로도 감싸지 못하게 하려 하지만

그럼에도 주님이 말라기서 이후

400년의 고뇌 가운데 결단하시고

그 아들을 보내시어

이 땅에서 피뿌리시며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 엄청난 사랑의 이유가 있으시단

그 때문에 그냥 인내하고 참아 볼 뿐이다.

 그러나 주님이 성령을 보내시면

그 마음을 펼치시고 넓히시어

이전의 혐인적 생각에서

이제는 긍휼한 마음이 생기고

사랑이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오늘 알파님 아침의 리플에

'사람을 사랑하는 온전한 믿음'에 대하여

기도 중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 달아 놓으셨다.

 

내 방에

정말 귀한 분들이 오신다.

인터넷 .

 이 지옥도 같은 사이버 공간에도

마치 칠천 선지자 같은 분들이

싸이버 특유의 헷갈리게 하는

묘한 재미를 착각하고

그것이 영성인양 '바글 바글' 시끄럽게 하는 류의

그런 분들이 아닌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려는 - 진심으로 사랑하는 지는 주님이 판단하실 것이다. ^^* - 자들이

한분 한분 모이시고

좋은 영적 영향을 베푸신다는 사실이 기쁘다.

 

 나.

보고 듣고 생각해서 판단내리고...

아주 빠르다.

그러기에 내 눈이 보고 내 귀로 듣고

머리 속에서 경험의 바탕을 한

여러가지 정보를 규합하여

판단 내리는 데 아주 '이골'이 난 자이다.

그런 나는 일 부분 장점이 있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에 '오류'를 일으킬 위험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사는 시간이 늘어나고

귀밑에 서서히 흰머리가 늘어나면

내 판단이 옳다는 생각으로 굳어져 가고 있을 위험이 다분하다.

 특별히 말씀 묵상의 시간이 늘어가며

블로그에서 글 올리는 분량이 오래되어가면서

난 나 나름대로 내가 받은

주님의 말씀 만이 옳다는 생각으로 굳어져 있을 위험성이 많다.

 

  인정한다.

특별히 오늘 주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은

이 감각적으로 보고 듣고 안다고 생각하는 것의

'오류'에 대하여 특별히 말씀하시고 자 하시는 것 같다.

 너무 제한된 생각.

너무 고식적 판단.

이러다가 주님 마져 내 재단 속에 들어오지 않으시면

잘못되었다 할 무서운 일 범하지는 않을까 두렵다.

 

 말씀 앞에 온전히 서 있음.

내 생각과 판단을 내려 놓고

주님이 채워주시는 생각과 판단 만을

주님의 성령이 주시는 평강을 검증으로 하고

십자가의 원리

주님 예수님의 그 사랑의 원리에 의하여

걸러내고 검증하고

예수님의 그 때에 행하신 행동을 바탕으로

닮아가려 노력하려는

자기 검증의 시간들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특별히

어렸을 적은 나름 대로 인정받고 옳았던 행동들이

성장하면서 점차로 '유아적'이고 유치한 것으로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일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한

성장의 몸부림일 수 있다 .

 

 적용

 

1.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판단은 죄악이다.

 알면서도 버리기 힘들다.

 주여 도우소서.

 오늘 특별히 말씀으로 인도하시니 그러소서.

 

2. 감각적인 반응을 피하자.

 눈이 보고 머리가 알아듣는 것을 다 믿지 말자.

 늘 주님께 여쭙는 삶이 되길 원한다.

 화살 기도를 잊지 말자.

 '주여 저것이 맞는 지요.'

 

3.  주님의 뜻을 알자

  주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일을 하는 위험을 벗어나자.

  주님이 원하시는 그때,

  주님을 반대하는 일을 하지 않도록 ..

  성경 여덟장 읽겠다.

  읽다 보면 마음을 걸러주는 구절이 늘 새로이 눈에 띈다.

  말씀 앞에 나를 늘 비추자 .

 

4.  지인의 모친이 아침에 소천하셨다.

  바쁘더라도 가보자 .

 이전엔 부탁을 너무 싫어 했었다.

  나도 , 남도 나에게 하는 일련의 부탁은 극도로 싫어 했었다.

 하지만 손해 봄이 주님이 원하심을 알게 되고

 둘째 아들의 문제로 도움의 손길을 통해

 사는 것은 서로 도우면서 사는 것이고

 그것이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임을 깨달아 가고 있다.

  이제라도 이러니 다행이긴 하지만 ..

 

6.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더 진중하고 더 사랑하자 

  모든 사람은 다 그렇다.

  그런 자들을 주님이 사랑하셨다.

  나도 사랑하자.

  이 인식 오류 덩어리인

 나를 위해 주님 돌아가셨다.

 

  

기도

 

  주님

귀하신 분.

주님 뜻대로 살고자 하지만

가끔은

사람들에게서

나 자신에게서

어리석고 추악한 모습을 보고

실망하고 분노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 기본 품성이 좀 급했습니다.

주님.

이제 돌아보면

그런 부족한 것은 화 낼일이 아니고

오히려 감싸 안고 칭찬할 일일 수도 있었습니다.

마치 향유옥합을 보고 분내는 모습이

제 모습은 아니었던가

그냥 거울에 비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깨달음이 실생활에서 얼마나 반영될지

자신이 없습니다.

주님.

솔직히 성공하는 확률이 1%도 안될 것 만 같습니다.

용서 하소서.

이 부족한 죄인의

어리석은 판단을 잡아주시고

내 감각기관을 맹신하는

이 아둔함을 깨닫게 하소서.

지혜를 주소서.

모든 사람이 이유가 있음을 전제로 하게 하소서.

그들이 다 이유가 있음을 믿게 하소서.

그리고 사랑으로 그들을 덧입혀 받아 들이게 하소서.

주님이 하시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달을 때

내 인생의 폭이 한량없이 넓어질 것을요.

주님.

저.

잊지 않게 하소서.

도우소서.

보고 아는 것.

그것을 믿지 않게 하소서.

주님 뜻대로 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 2014.04.14


 앎과 믿음 사이

내 삶이

사뭇 더

힘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

그 놀라운 사랑을

단지 앎을 넘어서

깊은 믿음으로 나아가

그리될 수 있길 소원합니다

 

비록

내 삶의 범위

그리 크지 않지만

온 우주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부르실 그날까지

최선 다해 살수 있도록

저를 붙들어 주소서

 

내 주여

  

 
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라 하셨다 .

 

유월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힐 사실.

 

그 당시 , 그 시점의 제자들 ..그들도 알았고

지금의 우리 기독교인들 거의 대부분 ^^;; 뿐 아니라

나도 알고

 

 

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그때의 한 여자, 막달라 마리아도 알았다.

 

 하지만, 예수께 전 재산을 바쳐서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사서

예수님 머리에 부은 이는

'마리아' 한 사람 뿐이었다.

 

그것.

어찌보면 식사를 방해하는 것 같기도

미친 것 같기도 한

상식을 벗어난 행동같기도 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모든 것을 바쳐서

예수께 온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

 

 

10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그 의중을 아시고 '내게 좋은 일'이라는 표현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실 말씀이시라 하신다.

지금의 우리,

나 주하인에게도 ...

 

 

 무엇인가?

제자들도 알고 나도 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모두 안다 . 

그리고 십자가가 있어야 우리가 천국에 갈 자격이 생김도 ..

그러하심으로 천국 백성이 된 것도..

하지만, 마음 깊이 믿던가?

 

마음 깊이 믿으면

내 일상의 문제들을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헌신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던가?

그런데도 나를 돌아보면

들어서 수도 없이 알고 있고

걱정할 것 없고

영생을 기뻐해야 할 당위성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런가?

주위에서 '노후'를 이야기하면 솔깃하고

고독을 이야기하면 가슴이 찌르르 한다.

아직도 내가 중심이 되어

모든 사람에게 둘러 쌓여 다정다감한 삶을 살다가 천수 만수를 누리길 원한다 .

그래서 그러기 위해서는 '물질'의 소유를 과감히 손 놓을 수 없다 .

아님을 알면서도 그렇다 .

 

 막달라 마리아 .

전 재산을 털어서 향유로 예수께 쏟아 부었다 .

그녀의 예수 이후의 삶은 어찌 되었을까?

알고 있지만 믿지 못하던 제자들은

그래도 사도행전의 말대로

사람들의 사이에 둘러 쌓여 살다가 나름 자신들의 삶을

알차게 꾸려나갔다 .

비록 대부분이 십자가 형을 받았음은 알고 있지만..

그러나, 그녀 마리아는 그 후 이름이 나오질 않는다.

아마 그들 , 신앙 공동체 안에서 일정 부분 자신의 역할 을 다해가며

나름 노후를 외롭지 않게는 살았으리라는 추정은 가능하지만

기름 부을 당시의 그녀는 그런 것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을 것이며

무조건 적인 마음으로

예수님을 안타까워하고

타오르는 감동으로 그러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그런 행동,

정말 '믿는 자'의 행동을 보며

나와 다른 점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자.

 

 비록, 나의 이 적은 믿음과

성경에 이름을 올라갈 정도의 훌륭한 믿음이 없음을 너무 잘 아실 것이기에

그럴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

그래도 나에게 지금 예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라 하시면

과연 난 그럴 수 있을까?

 없다다.

왜 그런 차이가 있을까?

난 분명히 예수님의 날 위해 돌아가심을 알고 믿는데..

 

 우선 이후의 현실에 대한 걱정이다.

위에도 썼지만... 노후 대비.

솔직히 난 자가용이 없어도 살고 

하던 골프도 포기한 지 오래고

술과 그에 따르는 향락, 포커 ,하이로, 당구, .. 와

무엇보다 그리도 좋아하던 담배가 뿐 아니라

자의반 타의 반으로 세상의 대부분의 것들( 자식욕심..)에 대한 포기된지 오래라서  

그리 많은 소유가 필요하지 않으리라 생각되면서도

알게 모르게 '꼭 붙들고 있는 욕심'이 있음을 난 안다 .

 

 그 욕심의 근원은 무엇이던가?

일단은 '두려움'이다.

다 놔버리면 세상에 아무 끈도 없어질 것 같은..

그것의 깊음을 스스로 바라보면

'힘이 있어야 존중을 받고

힘이 없어지면 버려질 것 같은' 그런 막연한 두려움 아닐까?

 즉, 통제력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다.

세상에 대하여

아무 것도 내가 할 수 없음.

그것은 비단 나 뿐 아니라 모든 노년에 가까워지는

사람들의 본질적 두려움 아닐까?

거기에 난 그리 화려한 대인 관계의 능력이 없으니.. ^^;;

 그런데, 마리아는 안그랬을까?

더 그랬을 것이 분명한 사람인데도

그는 왜 저질렀을까? ㅜ.ㅜ;;

 

예수님의 존재에 대한 확신.

너무도 큰 하나님의 에너지를 느낌.

그래서 그녀는 감당할 수 없어서 향유를 부음...

그녀는 예수님을 온전히 믿었다 .

 

그녀는 '천국'을 확신했음이다.

지금 어쩌면 이땅의 고통은 잠시일 것임에도

영생은 그렇지 않을 것임을

머리속의 생각이 아닌 영혼이 믿었을 것이다 .

 

그렇다 .

나에게 부족한 것은 그런 것들이다.

믿음이다.

예수님을 더욱 깊이 믿으면

그런 걱정들, 그런 두려움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마치 제자들이 그랬듯이 알면서도 믿지 못해

혼란을 보이는 그런 미련함은 없을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

무엇을 믿음인가?

어떻게 믿음인가?

 당연히도 살아계신 예수님이다.

그분으로 인하여 내가 갈 곳은 '천국'이고 영생임을 믿어야 한다.

그 믿음을 뚜렷이 해야 한다.

난 앎과 믿음 사이에 서 있다.

세상을 살다보면 자꾸만 흐려진다.

'천국' 에 대한 더욱 뚜렷한 확신이 필요하다.

이 땅 조금 만 더 고생하면 누릴 '영생'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세상과 괴리된 도피성 천국개념이 아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삶에서 '연단'과정,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고 '성화'된 영혼으로 천국에 오길 원하신다.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필요한 믿음이 있다.

'마리아'는 살동안 먹고살일을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 그후의 행적은 나오지 않지만

분명코 그녀는 '행복'했을 것이다.

행복의 기준.

누가 알것인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분이 퍼부어 주시는 물질로 뿌듯하고 감사하게 사는 것도

물질은 풍족하지 않지만 다른 부분에서 풀어지는 역사도

건강이 회복되는 것도 행복하게 될 수도 있지만

늘 성령이 충만하여 가진 것 없어도 '기쁨'이 유지되는

평강의 상태 만으로도 '천국같은' 삶이 되는 것을

아주 아주 조금이지만

난 틀림없이 누리고 잇지 않던가?

그리고 그 기록들이

이 블로그의 근 8-9년을 채워가고 있는 것이고..

 그렇다.

 난.. 막연하게 아직 걱정하고 있다.

내 노후를 걱정하고 있음은

그런 '행복'과 그 후의 '영생의 행운'이 있음을

그러함이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얻어져

틀림없이 내게도 주어질 것임을

난.. 깊이 믿지 못화는 것이다.

 

난.. 안다.

분명코 잘안다.

그리고 믿는다.

분명코 믿는다.

그렇지만 완전히 깊이 믿지는 못하는 것 같다.

온전한 믿음과 앎 사이에 어딘가에서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있다 .

그것...

내 기도 부족함 탓이다.

절제의 부족함 탓이고

감사의 부족함 탓이다.

 

기도를 통하여

세상의 권세들에게 내어 놓았던 부분들,

내 영혼의 영토가

온전히 '성령'으로 사로잡혀야 한다.

내 혼자 힘으로 되지 않는다.

 

어제는

퇴근 하면서 집까지의 자전거 길이 너무 짧은 듯하여

빙 돌아 작은 야산으로 뚫린 도서관길 을 통하여

집 쪽으로 내려 갔다.

가다가 새로 만든 그 도서관 마당의 벤치들이 너무 한가롭고 좋아

그 곳에 앉아 잠깐 기도하고 들어가려 앉았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더욱 그랬다.

앎과 믿음 사이에서 갈등......

십수년을 나를 기다려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서

너무도 부족한 나.

아직도 세상의 재미와 세상의 걱정 사이에서 방황하면서도

하나님의 그 평강을 놓치지 않기 위한 갈등으로 흔들리다가...

 

 가만히 앉아서 묵상을 하고

조그맣게 읖조리듯 (성경에서 그것을 meditation, 묵상한다는 표현이라고 P목사님이 가르치셨다.^^*)

조용히 기도하고 있으면서

마음이 '믿음' 쪽으로 넘어가며 차분해진다.

난.. 기도할 때마다 이런 기분이 너무 좋다.

내 의지나 상황과 상관 없는 '평안'.

평강.

 

그때마침 귀를 스치며 지나가는 선선한 바람.

기분이 참 좋아진다.

불현듯 느껴지는 것이 있다 .

계속 바람이 조금씩 불던 차가운 온도였었는데

어찌 지금 이 순간에 처음 느껴지는가?

 아...

하나님의 위로.

자전거 타며 더워진 몸을 말리고

나를 쓰다듬는 듯한 ..

 

 눈을 감고 내 육신 안에 온전히 담겨진 내 영혼이

그 저녁 그 산위의 하늘에 펼쳐진

온 우주를 운행하시는 성령님을 느끼는 것.

그런 느낌.

비록 내 영혼이 걱정거리와 믿음 부족함으로

우주를 넘실 거리는 그 큰 기운을

온전히 느끼지는 못하지만

'분명코 내게 임하셔서 나를 어루 만지시는

내 아버지 하나님을 난 기쁨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내 안의 그 큰 죄악들 때문에 내가 주님 앞에 더 가까이 가지 못하는

숙명적 죄적 속성을 불쌍히 여기셔서

십자가 달리심으로 날 위해 그리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리 힘있지 못하게 사는

나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이시다.

 

난.. 더 기도하고

더 묵상하고

더 감사하여야 한다.

그리고 주님이 내 죽도록

가장 행복한 방법으로 이끄실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며

내 갈 곳은 '영생의 천국'이고

그 천국은 내 상상을 넘어서는

가장 '선한 곳'임을 잊지 않아야 겠다.

믿어야 겠다.

믿음으로 가슴이 뛰었으면 더욱 좋겠다 .

그러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어떠한 상황이라도 난 예수님을 믿고

천국이 내 운명임이 믿어져야 겠다.

그래서 더욱 기도해야 한다.

 

 

주님.

마리아의 그 후의 행적에 대하여 약간 생각을 넓히다가

그 마리아의 나머지와 영생이 행복으로 이어졌을 것을

느끼게 하시는 듯하였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선이심을 믿는다면

절대로 행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부디 간절히 바라옵기는

제게 주어진 모든 것이

저를 위한 것이고

제 선을 위한 것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비록 삶의 이 이후의 현상들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안에서도 주님의 기쁨을 놓지 않고 있으면

가장 행복한 삶을 누리다가

천국에 갈 수있음을 기대하게 하소서.

주여.

천국의 영생이 더욱 뚜렷이 제게 느껴지도록 하소서.

가슴 떨리며 소천을 기대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주여.

비록 혹시 제 나머지 삶이

힘들지라도 영생의 눈꼽 만치도 못되는 시간,

기쁨으로 십자가 지는 제가 되게 하소서.

말을 하지만 절대로 혼자서는 이루어지지 못하는 속성들이오니

주여...

주님이 인도하셔서

제 뜬금없는 기도와 바램들이

온전히 주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소서

내주여.

힘을 주시옵서서.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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