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주님 앞에 성결 연습[출28:15-43] 본문
36.너는 또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이라 하고
40.너는 아론의 아들들을 위하여 속옷을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띠를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관을 만들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되
모세는 '아론.. ' 에 대한 대우에 대한
하나하나 직접적 지도를 하나님께 받는 위치에 있는
가장 멋드러지게 드러나는 분이시고,
아론.. 들로 대변되는 '목회자'님은
어제부터 지속되는 아주 대단한 꾸밈과 받들어질 대상자로
말씀 지속의 중심이 되고 있다.
한걸음 더 나가
그런 꾸밈들을 위하여 선택받은 소위 '장인'들은
비록 이름없고 빛도 없이 구석에서
만들어 내기만 하는 자.. 로 소외된 듯하지만
깊이 묵상해보면
그들은 '아론'들을 위하여 존재하는 듯 하지만
그 최고의 작품들을 만들기 위하여
특별히 선택되어진 자들로서의
나름의 프라이드가 있을 수 있다. ^^;;
하지만.
이러한 말씀이 주~욱 진행되는 동안
그러한 능력도 없고
자격도 없는 듯한 (이거야 말로.. 진정 그러한지 묵상거리고 오늘 말씀 진행의 주제다 ! )
우리 평범한 신앙의 민초들이야 말로
매일매일 주시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고되고 지루하고
거기에 소외감 마져 드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찌된일인가?
이게 맞는가?
어쩌면 이러한 느낌 때문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매일 말씀을 가까이 하고자 하지만
소위 신앙의 리더들 만이 휘황찬란하게 드러나고
그들 만의 선교에
착한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아멘 아멘' 하며 따라가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믿음이 식어가는 기본 이유가 아닐까 싶다.
보라.
신약에서는 '예수님'은 당연히 존경 받아야 마땅한 분이시고
믿음의 기초와 원리가 되시는 분이시지만
그 분의 주 관심사는
열두제자가 아니던가?
그리고 '사도 바울' , 순교하신 몇몇 분들, 계시록의 지도자들... 만이
성경 말씀에 휘황하게 비치고
나머지는 '멀~리 ' 떨어진 느낌이 아닌가?
그러다 보면 '21세기의 정말 영적으로 어지러운 삶' 을 살면서
극도의 문명이기가 발달하고
이전 세기를 거치는 수백년이 몇십년 안에 바뀌어 버려
이제는 ' 로보트'의 인간을 대신한 바 일자리의 감소와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신할 위험,
'바이오 산업'이 유전자를 완전히 컨트롤 하는 가능성을 보이며
하나님의 모든 생명을 만드셨다는 데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지게 만들고
'나노산업'이 이제는 요술을 부리는 정도같이
암이나 특수 질병마져 나노 수준에서 완전치료가 십수년 후에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며
더 이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은 시기가 가까와 진다는
헛된 망상까지 하는 시기가
눈앞에 다가와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아지는 때이다.
미래 학자 들의 예견에 의하면 2050년이면
사람들의 수명이 인공장기를 갈아끼면서 400-500살 까지 가능할 수도 있다니..
정말 하나님이 이때쯤이면 이름마져 존재할 것인가... 두렵기만한
그런 '요란한 과학의 대 진전'의 시기인 것이다 .
이럴 때
성경의 말씀에서 조차 소외된 듯한 대부분의 '영적 민초'들의 마음엔
더 이상 무슨 힘과 '의지'가 남아
하나님을 죽도록 붙들겠을 수 있는가?
아니.. 솔직히 이런 생각 마져
나름 말씀을 붙들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하나씩 예견치 못하게 깨닫게 되는
'주하인'이나 특별한 하나님의 은총으로 가능할 거지..
어찌 가능할 건가?
그렇다면 현대의 기독교인 들 수가 점차로 줄고
앞으로도 암담한 시대가 될 것은
눈으로 보듯 뻔하지 않은가?
그런데 당혹스러운 가운데
어제와 오늘 말씀을 붙들면서
들어오는 생각은 이렇다.
' 하나님은 대표적 인물을 통하여 상황을 추론하며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알아챌 수 있는
즉, 세미한 음성을 들을 귀를 들을 자에게
깨닫게 하시는.. ' 깊은 뜻 때문이라는 것 말이다.
그게 하나님의 성경에 써놓으신 원칙아니시던가?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
'네 많은 지식이 너를 .. '
' 미련한 자들을 들어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그렇다.
나..
정말 무협지나 만화 이외에는 고전명작들은 손에 대본적도 없는 자다.
성격은 무지 급하고 이리저리 조삼모사 하여
훨씬 머리 좋고 훨씬 많은 책을 읽은 교양있는 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나를 들어,
주님은 이토록 '세상'에 하나님의 소리를 외치게 하는
나름의 소명을 주셔서
이 블로그를 운영하게 하시고
과정에서 많은 당신의 뜻 가운데서 풍성히 주신 은사들을 개발하셔 주셔서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하셨다.
그 하나님께서
아론들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을 시키시며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강조하시면서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패를 만들게 시키심으로
그 하나님께 '성결'하게 하시기 위한 이유로
보이지 않고 말씀은 하지않지만
깨어있는 자들에게
의무와 더불은 깊은 은혜와 축복을 암시하신다.
이거..
내 무리한 추측이라고?
아니다.
난.. 지금까지의 내 기독교인으로 정체성 변화가 이루어진 후의
삶의 과정을 돌아보며
자신있게
추론하고 확신할 수 있는 논리다.
지금까지 아주 바쁘게 환자를 보고
점심시간이 다되어 서 붙든
이 '버거운' 말씀을 정리하면서 진행되는 내내
한번도 말을 꾸미려 주저한 적이 없이
주루룩....여기까지 진행되면서
나도 모르게 내 놓은 글들이다.
어제 그제까지 십여년간 계속 말이다.
하나님은 분명코
우리의 삶에 괴리된
설화나 계몽적 소설을 쓰시는 게 아니다.
'말씀은 성령의 살아계신 뜨거운 증거'다.
말씀이 하나님이시다.
로고스 하나님이 그리 그리 하시는 것이시다.
그렇다면
내가 오늘 붙들어야 할 말씀은
어쩌면 버거운 오늘의 삶 조차
'하나님께 성결할 '결심 만 하면
그 하나님을 인식할 조금의 결심과
'성결'에 대한 노력,
(성결, 난... 내 강한 중독적 성향을 조금이라도 누르면서 성공하는 곳 까지의 .. 레벨이라 생각한다.. ^^*)을
주님이 보시고 기뻐하시면
어제보다 조금은 더 나은 오늘의 내가 되고
실제로 성결한 성공을 하게 되면
그보다 훨씬 큰 '상급'으로
내가 예상 못해고
기대하지 못했던 성공으로 까지
내 인생을 이끌어 주실것을 기대하고 믿는다 .
그 성결의 대상이
'목회자님'에 대한 나름의 반감 ㅜ.ㅜ;; 을 줄이고
더 깊이 마음 써서 위해 드려야 하는 레벨까지 일 수 있고
그리되면 더 큰 행복이 내 삶속에서 이어지고
내 자식들까지 그리될 것이라 믿어진다.
그리곤, 결국 '성결'의 노력에 의하여
영혼의 '성화'가 이루어지면
내 영생의 상급이 훨~나아지리라 믿어진다.
그게 통합적 원리이고
하나님의 숨겨놓으신 '세미한 우리 각 개인'에 대한 소리라 생각한다.
레마.
귀하신 하나님.
오늘도 이리 반나절이 다 갔습니다 .
정말 버거운 말씀이라
어제는 죄송하게도 느끼는 바는 있었지만
말씀을 정리하여 올리지 못했어요.
용서하세요.
그리고 '성결'
여호와께 성결.. 이라는 오늘의 말씀을 붙들고 지내려 합니다. .
나머지.. 성공.. 미 성공.. 중간 점수... 등
모든 것은 늘 그렇지만
주님께서 판단하셔서
제 백보좌 심판의 일지에 올리실 줄 믿습니다.
바라기는
제게 성령으로 강하게 붙드시어
내 가슴이 나도 모르는 시원함과 강함으로 인도받아
마음이 담대하고
기분이 상쾌해지면
늘 그러시듯 기쁜 행복으로 채우소서.
그래서 , 가져야만 기뻐하는 현대인들의
못가질 때 상대적으로 오는 깊은 갈증과 두려운 허망함들이
제게서 멀~리 떠나게 해주소서.
주여.
제 자손들..
그 앞길..
그들의 신앙심.. .
여호와께 성결함...
다 똑같이 임하게 하시고
제 둘째 올 11월 KBS시험에 합격.. 기원합니다.
아시지만,.. 괜찮은 신앙인입니다.
주여.
큰 아이.. 더 믿음이 깊어지게 하소서.
그 아이의 어렸을 적 그 신실함을 회복시키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성결한 하루를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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