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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충만함에 대하여[출30:17-3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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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충만함에 대하여[출30:17-38]

주하인 2015. 8. 3. 08:52

 



25.그것으로 거룩한 관유를 만들되 향을 제조하는 법대로 향기름을 만들지니 그것이 거룩한 관유가 될지라 
    '거룩한 관유'

' 기름 부음'

'성령'

 

그런데...

그 성령을 '만들되'라는 말이 어울리는 가?

하지만 '법대로 만들면 거룩한 관유'  즉, 성령을 만들게 된다고

분명히 나와 있지 않은가?

그게 무슨 말인가?

성령을 내가 만들다니..

 

그것은 성령의 기름부어짐을 내가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 노력이 영향을 미칠 것임을 말씀하신다.

 자유는 '방임'과는 다르다.

진정한 자유는 '약속' 안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원리는 '자유의지' 이다.

자유지만, 의지를 필요로 하는 자유다 .

진정한 자유가 되기 위하여는

'성령'이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 성령이 내게 임하여 유지되고 크게 느껴짐은

내 안의 문제라는 것이다.

내 속에서 '미워하고' , '원망하고'.. .모두 내가 결정하고 선택함으로 이루어지는 부분들,

그러한 내 문제를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내려 놓으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내 안에 더 크게 운행하게 하시고

그 운행하시는 성령의 충만하신 느낌이

더 자유롭고 더 크게 내 안에서 느껴져

일상이 변하고

심성이 착하고 가볍게 변하여

영혼이 점차 성화되고

행복은 가까이 되게 되는 것이다.

그게 하나님의 원리이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

 

 물론, 성령의 임하심과 주체의 절대적 권리는

하나님께 있으심이 당연하지만..

 
 
32.사람의 몸에 붓지 말며 이 방법대로 이와 같은 것을 만들지 말라 이는 거룩하니 너희는 거룩히 여기라

 이것 보라.

사람의 몸에 붓지 말라신다.

만들지 말라신다.

 

이 의미는 무엇인가?

성령을 인간이 만들고 의지대로 부을 수 있던가?

 

 가끔 보면

성령을 준다고 사람을 밀어 넘어 뜨리는 목회자나

진짜 은사 충만한 사람들이나

신사도 주의의 어떤 분들의 예나

이단 교주 들이

성령을 준다면서 유사한 성령 받을 때의 증상들을 나타나게 하는 것을 본다.

 

이것.

어느 정도 하나님께서

목회자의 손, 모세 같은 분들의 손을 통해

허락되어진 부분이지만

중간에 임의적으로 왜곡되어

그 분들이 그리 변하는 것이다.

 

말씀 구절은 그.. 임의적 변화,

하나님의 뜻대로, 법대로가 아닌

자신을 위한 왜곡에 대하여 경고하시는 것이시다.

즉, 주실 성령을 함부로 왜곡시키는 것...

하나님은 사람에게 '성령의 능력을 어느정도 활용(? )하도록 허락하신다는 것'이지만

그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허락하신 법도를 어긋나면

'큰일 난다' 는 것이 말씀의 포인트다.

 

 

33.이와 같은 것을 만드는 모든 자와 이것을 타인에게 붓는 모든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하라
 보라.

타인에게 붓는 모든 자...

은사 넘치는 자,

성령의 존재를 귀하게 여김은 당연하지만 은사 주의 치중하는 자


 

38.냄새를 맡으려고 이같은 것을 만드는 모든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자신의 성취'를 나타내는 증거로 보이려고

'성령은사 주의' ... 에 매몰되는 자들,..

 

즉,

그것이 옳은 신앙인 줄 알고

성령이라는 이름하에 온갖 비성경적인 '은사' 들에 ..

아니면 옳고 바른 듯한 신앙인의 행태를 취하여

누구도 보기에 경건한 듯 하지만

그 깊은 내면에 '자신의 의'가 하나님을 가로 막아

자신의 그럴듯한 '예수 그리스도 같은 smell'에 흠뻑 취해 버리는 자들..

 

그들은 누가 보아도

올바르지 않음을 알아

그들이 가는 곳에

열광하는 자들도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반대파들이 들고 일어나도

하나님의 일이라는 명분하에

다른 모든 귀를 가로 막아

'자신의 의'로 영혼이 그득히 차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정말 위험하다.

그들 자신도 위험하지만

그들을 따르는 수많은 양들이 더 위험하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훌륭한 리더로 안다.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그렇다면

모든 은사가 틀리고

모든 은사추구는 잘못되는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법도 대로는 옳다.

문제는 그 법도 대로 따른 다는 것은 의지와 고통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고

성령으로 충만함은 기쁨 , 행복, 밝음, 자유.. 와 상통하기에

어쩌면 양립하기 힘들지만

하나님은 삼위일체시고 통합적이신 분이시다.

 

세상의 장로교, 감리교, 순복음... 등

추구하는 바가 다른 이유로 교파가 나누어짐은 허락되어짐은

위의 그러한 다른 양립적인 특징의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와 ' 성령의 두 다른 특질이 있기에 그렇지만

그것은

너무도 크고 우주적인 하나님의 뜻이시다.

 

 성경은 너무도 비합리적인 것 투성이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가 '화합'이라시면서도

' 가족끼리의 불화'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도 했다.

십자가 , 그 극단의 고통 뒤에 '부활'이시다. .

그리고는 성령의 보혜사의 온전한 장치이시면서도

사단의 횡행을 허락하셨다.

고난은 유익이고

약함은 강함이다.

 

..........

 

모두 허락되어진 하나님의 뜻이시다.

그 양립되어지는 원리 안에

숨어있는 높고 깊은 뜻은

인간의 머리로만은 이해가 되지 않도록 하셨고

오직 하나님의 허락하신 성령의 충만함으로만

깨달아지도록 하신

'통합적'이신 원인이시다.

 

그러함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이고

영원의 삶을 보장 받는 것이기에 그렇고

이 인생의 '허무한 유한함,', 이 파멸할 사망의 질곡에서

유일하게 의미있는 길이기에 그렇다.

 

나.

성령의 사람이다.

그것... 자신이 있다.

왜냐고?

매일 말씀을 묵상하려 애쓴다.

실패하더라도 주님의 아시고 계실 것을 알고

다시 일어나 ,

다시 부활되어

내 일상의 살아감이 매일 매사 발걸음이

점점 더 가벼워지기에 그렇다 .

그런 나는

하나님의 생명의 원리와

비교적 맞는 행보를 걷고 있는 것을 느끼기에 그렇다.

흐르고 있고

막히지 않는 변화가

지금 , 나이 들어 꼬부러져 가는 시기에도 그러하기에 그렇다.

 

 자유가 ...

책임지어진 안에서 허락된 자유가

진정한 자유임을 알기에 그렇다.

 

오늘 내게 주시려는 하나님의 말씀은

더 '성령을 사모하라' 시다.

그 사모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준거하여

세상의 흐름에 막힘이 없음이다.

 

감사하신 하나님.

참 뜨거운 며칠이었습니다.

휴가로 갔지만

장인 어르신의 추모 예배가 주목적이었습니다.

둘러 앉은 형제들의 영적 상태는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강골 불신자들 몇,

차분한 신천지 교인 식구 몇

신심 깊으신 장모님과 우리 가족을 포함한

올바른 신앙인들 몇....

그 안에서 지독히도 뜨겁고 불쾌한 날은

예상되는 어려움을 가중시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주여.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인내만 강요하고

서로의 옳고 그름만 따지기 보다는

성령에 마음을 내려 놓고

흐르듯 흘러갔씁니다.

 

 불신자 가정의 혼란을 꿰둟게 하시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들의 갱년기 이후의 당연한 영적 혼란을 지적하게 하고

제가 가진 의학적 지식을

성령의 차분함과 공감하게 하시는 태도의 이끄심으로

자유롭게 풀어 주었습니다.

 

신천지 처남댁에게는

제가 누리는 자유의 증거를 보여주는 시간도 가지게 했습니다.

사진을 보여주고

블로그를 소개하고

대화를 통해 자연스러운 믿음을 그들에게 보였습니다.

 

늦은 저녁

땀으로 온통 젖었지만

장모님 댁에서 가지게 된

마치 캠프 파이어 같은 분위기의 모임은

그들 모두에게 감동을 주었던 모양입니다.

그들, 신천지 처남의 요구로

'찬양'을 인도했습니다.

마침 가져가게 하신 뜻대로 트렁크에 넣고 다니던 기타를 꺼내들어

그 안에 악보로

' 트롯트' 같은  찬양도 불러주어

불신 동서를 감동하게 했고

강의할 때 들고 다니던 '비내리는 호남선' 악보로

같이 흥도 돋구었습니다.

그러면서 전.. 틈날 때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야 할

나이들어가는 자들의 어쩔 수 없는 약해짐,

그리고 부수되는 영적 곤란의 이유로 다가오는

가정적 어려움들을 직면시켰습니다.

다행히도

이전에 너무도 강퍅했던 저의 자연스러운 변화가

그들에게 먹혔던 모양입니다.

 

주여.

이 모든 것..

주님이 필요하시면 성령으로 인도하시고

또 필요하시면 인내케 하시는 십자가 하나님의 사랑 탓이신듯했습니다.

아마..

그들 모두에게

많은 영적 영향이 있는 하루 였으리라 믿습니다.

그것..

저랑 같이 갔던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 이야기였습니다.

감사하나이다.

 

매일 말씀을 붙들려는

아주 적은 노력의 결과로

주님은 이렇듯 성령으로 그 발걸음을 인도하고

그 조금의 귀찮음을 수백배 넘는

놀라운 자유함과

평강의 행복과

일상의 개발된 능력을 허락하셔서 말입니다.

 

주여.

놀라우신 부활의 하나님의 성령으로

나머지 제 일생을 이끌어 가실것을

저 자연스레이 믿어지니

삶이 덜 버겁습니다.

행복합니다.

주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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