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주님 안에서의 우리[느10:1-38] 본문

구약 QT

주님 안에서의 우리[느10:1-38]

주하인 2019. 3. 13. 09:30

 


 
30.우리의 딸들을 이 땅 백성에게 주지 아니하고 우리의 아들들을 위하여 그들의 딸들을 데려오지 아니하며 

'우리'라는 단어가



31.혹시 이 땅 백성이 안식일에 물품이나 온갖 곡물을 가져다가 팔려고 할지라도 우리가 안식일이나 

   성일에는 그들에게서 사지 않겠고 일곱째 해마다 땅을 쉬게 하고 모든 빚을 탕감하리라 하였고

계속 눈에 들어온다 .


무엇일까?

무엇을 내게 말씀하시려는 것일까?


짐작되어지는 바가 있다 .

개인성향이 강한 나.

개인적으로는 잘 신앙생활하고

누구랑 비교해도

덜 왜곡되고 잘 나가고 있다고 생각되어질 만큼 ^^;

잘 가고는 있지만

'우리'라는 면에 들어가면

좀 .........그런 .......나.

그런 나를

이제

때가 되시니

주께서 '묵상'하고

주님의 뜻대로 받으라시는 것은 아니실까?


더구나

느헤미야님으로 인하여 황폐화되었던 예루살렘이

성벽 성전 구축을 이루고

이제는 하나님 앞에 바로서는 결심을 하고

절제를 하고 정리를 하는 것이

이제는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고 때가 되어가니

'우리'라는

최소한 내게 있어서는

조금 부족한

관계적 차원에서의 믿음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실까?



33.곧 진설병과 항상 드리는 소제와 항상 드리는 번제와 안식일과 초하루와 정한 절기에 쓸 것과 성물과

   이스라엘을 위하는 속죄제와 우리 하나님의 전의 모든 일을 위하여 쓰게 하였고
  하나님의 전.

교회.

하나님 나라의 주님 거하시는 곳.

그러면서도 동시에 (양자적 兩子的..) 우리 각 사람의 영혼 안에 거하시는 지성소...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을 보이신다.

 

 그것도..

우리 하나님의 전이다.


그렇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하나의 가지로 각각 연결되어 있는 존재'다.

그게.. 교회다.

그것이 진정 주님이

내게

이제는

바라시는

조금의 더 한 성장(growth)을 말씀하고 계심이다.



나.

우리.

우리 하나님

우리 하나님의 전...


 어제는

요 며칠 허리가 뜨금하더니 심히 아파서

그래도 수영을 열심히 하면 괜찮아짐을 경험으로 알고 있던 바

움직이기도 힘든 것을 감수 하고 갔다.

물 속에서 있으면 '자유'로와지니.. ㅎ

 잘 마치고 나서 나와

속옷을 입고는 그 위에 '복대'(참.. 질기게도 오래쓰는 복대 .. 아플 때는 효자보다 낫다.ㅎ) 를 차고는

그 위에 겉옷을 입어야 표시 안난다.

그래서 한참을 노력하고 있는데 (허리 구부리기 어려우니 복대 차기도 힘이 든다.ㅎ )

누가 계속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난다.

알몸은 아니라서 다행이긴 하지만 ^^;

자꾸 신경이 쓰인다.

한참을 그러는데도 계속 반듯이 옆에서서 움직이지 않고 바라보는게 아닌가?

어...

순간 짜증이 확~하고 올라와서

곁눈질로 보던 자세를 돌이켜 똑바로 쳐다보며

한마디 했다.

'남 아픈게......%^&*()>..그리 볼만한.......! ? .. ' 

 

그런데 그 분........

연세가 꽤 있어 보이시는 분으로

차분히 웃으시며

내 락커 아랫쪽에 당신의 옷이 있단다.

천천히 서두르지 말고 .....입으란다. ㅠ.ㅠ;;

 이런......이런.........

대개 나이든 사람들은 아래 락커에 넣지 않는데..

 내 착각이었다 .

얼마나 무안한지..

그래서 얼른 그랬다.

"제가 나쁜 생각 했나보네요.

 남의 아픔이 관찰할 대상으로 보는 나쁜 분이신줄 착각하는

 이 무례함을 용서하세요.'

그냥 웃으시면서 괜찮다. 한다.


미안하기도 창피하기도 고맙기도 배울것도 많아서

얼른 도망나오듯 챙겨 나오면서

내 속에는 깨달아지는 부분이 있었다 .

'나는 내 중심적인 생각이 너무 많고

그것.. 어쩌면 타인에 대한

나도 모르는 이유없는 경계심일 것이며

내 오랜 성장과정의 오류인 것이다.

 설령 이해되지 않을 부분이 있어도

인간 자체에 대한 긍휼하게 여김이 있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을............" 이란 생각 말이다.


그것.

깨달았다고

확 바꿔지면 얼마나 좋으랴.

너무 오래 굳어 버린 논리의 왜곡,

그를 통한 내 방치한 습관적 논리 시스템이라

쉽게 고치지는 못하리라.

하지만 점차로 이전보다 명쾌히 바뀌어 가니

주께서 역사하실 것이 믿어져 가서

다행이란 느낌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묵상을 들여다 보니

잘 .. 감이 안온다.

구약이 늘 그렇듯 고생스러운 것은

내 민족도 아닌

사람들의 이름이

뜬금없이 ^^;; 자주, 많이 나와 당혹스럽다는 점이기도 하다.

그들의 역시 뜬금없는 율법도 많이 나오고.ㅎ..

그럼에도 '우리'.. '우리......' 하며 많이 '우리'라는 단어가 나온다.

같이 회복되어지며

결심을 인봉한 자들의 '우리'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성전'이 그들의 영혼에

잘 정리되고 수축되어 새로 출발하는 자로서의

공통점이 있다.


나도 그랬다

이제.. 주님의 성전을 내 안에서 다시 더 깨끗이 정리하고 있는 단계다.

'우리'에 대하여

조금 더 여유롭고 깊이 받아 들이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시다


모든 사람들.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예수께서 피흘려 십자가에 달리실 만큼 사랑하신

그들..

그 우리들을

내가 받아 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의 어려움을 역지사지하고

그들 조차 그들의 그 어리석음을 모르는 태도에 대하여

'우리'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

그게.. 오늘 .. 늘.. 항상.. 앞으로도

주께서 내게 바라실

온전한 '성화'의 방향이 맞으리라.



감사합니다.

내 주여

제게는 부족함이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

모든 것을 내 관점에서 바라보고

내 시점에 맞지 않으면 틀린 것.. 뭐.. 이런 생각 말입니다.

주여.

왜 그리되었는 지 이제는 잘 압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속에 들어가려면

더 온전히 깨지고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더 깊이 이해해야 될 지 믿습니다.

피상적으로

습관적으로

본능이 원해서

잘 어울리는... 우리 속의 한 부분,  대중의 하나가 되어

동물적으로 ^^;; 그냥 살다가 죽어가는

미련한 불신자의 그것과는 달리

주님이 만드신

주님의 교회, 주님의 나라, 주님의 성전 안에서

우리가 되길 원하나이다.

내 주여.


우리 속에서의 성화

제게 그 방향을 더 허락하소서.

주여.

모든 것

다 주께서 인도하실 줄 믿으며

전지하고 전능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  2006.08.31 묵상 글... (제목: 영적 어린이)--------



1    그 인친 자

29  하나님의 율법을 좇아 우리 주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

 

  만화의 재미에 푹 빠진 어린 아이들은 소설이나 시의 좀더 수준 높은 재미를 알수 없고 

초등학생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공부를 이해할 수 없으나

극소수의 천재 들을 제외하고는

반드시 만화와 초등학교, 심지어는 오줌 똥싸는 유아의 시기를 거치지 않고는 성인이 될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믿음에도 수준은 있다.

 느헤미야서를 통하여서 보여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듦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감동과

그들이 눈 앞에 성령의 충만으로 불같은 축복이 없었어도 존재하는 기쁨은

소설이나 수준 높은 문학서를 읽고 느끼는 감동의 수준으로 이해가 어느정도 가능할 것 같다.

 

 믿음은 기독교 신앙의 반드시 거쳐야 할 아주 당연한 기초과정으로서 이게 없는 기독교는 있을 수가 없음은 너무나도 분명하나 커지는 과정에 반드시 따라야 할 것이 ’행동’의 변화 즉, 눈에 결과로서 나타나 보이는 중생(衆生)의 표징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태도, 생각의 변화와 그에 따르는 결단등은 수준 높은 자로서 소설을 읽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비유할 수가 있겠다.

 

 은혜의 달콤함도 좋고

그로 인한 충만함도 좋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성장하기 위한 우리의 일정부분 헌신을 말씀하시려 한다는 생각이 오늘 든다.

 

 인친 자

도장을 찍은 자...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도 대표급 인물들.

이게 의미하는 바는 조금은 더 성장한 분들을 암시하는 것은 아닌가?

최소한 신학적 의미는 차치하고라도 개인적으로 느껴지는 의미는 ’성장’할 나.

성장된 나에 대하여 주님께서 묵언적으로 푸쉬하시는 것 같다.

 

그렇다면 어찌할까?

 

자꾸 아랫배가 나온다.

식사량이 마구 는다.

잠은 많이 쏟아지고

아침은 늦어진다.

점심에 열심히 몇달 나가던 중보기도 모임에 잘 안나가게 된다.

봉사하던 몇 프로그램들이 중단이 되었다.

 

나름대로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자체는 죄는 아니다.

그런곳에서 자유로움을 얻었으니까..

 

문제는 마음의 편치 못함이다.

마음의 편치 못함은 크게 두가지 일수 있다.

오랜 ’해야 한다’는 마귀적 속성의 이유 , 즉 상처로 인한 안절 부절 못함일 수 있고

정말 주님 말씀대로 ’선한 부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름대로 오랜 기간의 큐티기간과 신앙생활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 안의 상처는 많이 희석이 되어 있고 또한, 대처 논리 또한 주님 쪽에서 세워져 있다.

 그리고 죄책감에 의한 쓴 느낌이 아니고

맑지만 웬지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성장을 위한 결단을 촉구하시는 주님의 허락하신 부담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의 수준을 넘어서

정황 상 - 얼마 전의 꿈 이후 어려움이 폭풍처럼 몰아치고 알게 모르게 이제 결단해야할 때인데 ..라는 부담감이 있고 큐티를 보면서 느낌으로 오고 - 주님의 신호로 느껴진다.

 

 살이 찌는 것은 육신의 강함을 의미하고

잠이 많이 옴은 나태해지는 것을

결과로 주님의 선한 기쁨을 받을 수 있는 여러 행사에 빠지게 되고..

 

금식에 대한 묵상이 며칠 전 있어지만

이러한 결단은 영의 맑음을 가져옴을 누구나 고백하고 체험하고 있다.

 

(펌)

( 연세드셔도 당연히 ..가끔은.. 쭈쭈바 드실 수 있지요..   습관적인게 문제지...ㅎㅎ  )

 


이제

만화 읽고 쭈쭈바 물고 있는 늙은 지진아 신앙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침에 좀 일찍 일어나려 한다.

새벽교회에는 자신없다.

5시 반에는 일어나려 한다.

 

식사는 절식하겠다.

양을 반으로 줄인다.

저녁 6시 이후로는 먹지 않겠다.

 

아침 기도 시간을 회복하겠다.

 

 

얼마가 될 지 모르지만

감동이 있는 느헤미야 시절의 인침 받는 자들의 올바른 믿음의 성장의 기쁨을 같이 누리고 싶다.

반드시 우리의 결단으로 인한 행동이 필요가 된다.

 

 

기도

주님이시여

때가 되면 적절히 인도하시는 다정하신 아버지.

오늘은

인친 자로서의 정체를 확인 시켜 주시고

인침 받은 명품 자기로서의 행동을 하시길 권유하고 계십니다.

아직 저에게는 ’넌지시~’라는 느낌이 강한게

이제 중1정도의 믿음으로 느껴지기는 하지만

주님

그래도 당신 뜻대로 살려 결심을 하게되었습니다.

 

꾸준하게 할 수 있도록

인식시키시고 흔들리지 않도록 지켜주소서.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며칠 가지 않는 어리석음이 되풀이 될까봐 두렵나이다.

 

주님의 선하신 기쁨을 만화로 읽는 재미보다는 좀더 고차원적으로 느끼기에 꼭 필요하오니 주여 인도하시고 지켜주소서.

주예수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