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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QT

주님 말씀하시니(마13:24-30)

주하인 2010. 2. 5. 10:39

제 13 장 ( Chapter 13, Matthew )

 

주님

아침이 왔습니다

 

아침이 와도

아직

어스름 합니다

 

하지만

찬란한 햇빛이 비출줄

저는 믿습니다

 

주님

서두르지 않겠습니다

 

주님

인도하심 기다립니다

 

주님

주님 앞에 내려 놓습니다

 

주님이

그러시길 말씀하시니

그리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주님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좋은 씨

 좋은 밭

 

이 인생을 살면서

예수님의 구원을 받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살고 있는

좋은 씨 받은 자로서  나.

 나름대로는 옥토로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말씀으로 내 고랑을 갈며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기에

좋은 열매만 무성히 맺는 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바로 '심령천국'의 삶이 아닐까?

이땅을 살되 천국의 삶을 사는 거..
 
 
29.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하지만 '가라지'

벼로 따지면 '피'

 옥토의 밭과 논에 꼭 뿌려지는 것이

좋은 씨 뿐이시던가?

피는 안뿌려지고 안생길까?

옥토에는 자갈이 없을까?

피는 뽑아주되 모두 제거는 불가능하다.

피를 온전히 제거하려다가 벼포기 까지 다칠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기다렸다 추수때 온전히 해결할 수 밖에...

 주님은 그 말씀 하신다.

 

 내가 처음 신앙 시작한 교단은 고신교단 보다 더욱 엄숙하다.

성경 원리 주의자들은 아니어도

성경의 구석구석을 분석을 해 놓아서

'성장론' - 내 블로그에 올려 놓았다.

'속죄론' - 역시 내 블로그에 올려놓았다.

              십자가 구원의 원리를 확실히 드러내놓은 대단한 ...

              너무 뚜렷하여 이 원리에 대하여 듣고 나 같은 자가 예수님 확실히 믿게 된 것 아니던가?

              보석같다.

 ' 성인론' - 관심을 가질 필요 있다.

 ' 죄악론' - 일곱가지 죄악성과 정욕 , 결점 등에 대하여 철저히 분석해 놓았다.

........ 등에 맞추어 신앙생활을 하는 .....

그러다 보니 내적 성장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순수하고 깨끗한 목사님의 설교를 통하여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교단은 당연히도 '회개'와 '죄'에 대하여 민감할 수 밖에 없었고

죄를 짓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였다.

죄 짓지 않기 위해 다른 일상의 부분까지 일정부분 포기할 정도로..

그러기 때문에 '청빈'과 '절제'가 모토가 될 수 밖에 없었고

'회개'가 설교의 대부분이었다.

당연히도 그리 되어야 하는게 맞다.

특별히 이 마지막 세대의 혼탁한 교계에

이 부분은 특별히 각성하고 받아들여야할 모범적인 방향이긴 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신앙생활 하면서

난 너무 눌리는 느낌을 많이 받아왔다.

 죄는 회개하고 없애야하는 게 당연함에도

회개하면 할수록 가볍고 짐이 덜어지는 마음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짐은 자꾸만 무거워지는 것이다.

 예수님의 '무겁고 수고로운 짐진 자들아.... 쉬게하리라'하신 말씀하고는

일치하지 않는게 아니던가?

늘 고민이 되었었다.

정결하고 깨끗함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무거워짐...

더구나 '죄 사함' 받기 위해 '전도'나 '구제' 등의 방향에서 소홀해짐..

너무 일방향 적인 비대칭적이고 가분수적인 모습인 듯하여

당황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죄'

우리의 원죄적 결점을 물고

지금도 세상에 횡행하는 '세상의 권세잡은 사단'들이

자극하면 우리의 내적 죄 -마음으로 짓는 죄-는 그 보다 수백배는 더 많다는 사실.

이것을 일일히 회개하려다 보면

일상은 포기하고 결국 그 교단의 성향 처럼 '수도'를 할 수 밖에 없고

수도를 해도 수도하는 것 보다

더 많은 무게의 죄가 마치

모래 구덩이 파놓으면 밀려내려오는 모래에

갇혀 버리는 '개미지옥'속의 개미 같은 꼴이 되는 것이다.

 교단의 분위기는 늘 무거웠다.

기쁨 보다는 차가운 율법적 성향만 늘어가고

사람들은 따스함대신 정죄만 늘어갔다.

 원죄적 인간의 한계.

 

 오늘 '가라지 ' 비유를 하시었다.

논농사 짓기 위해 피를 완전제거하기는 불가능하다.

제초제를 뿌리면 어느정도 억제는 가능하지만

대신 환경을 포기해야 한다.

건강을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제초를 포기하는가?

아니다.

계속 여름내내 해야 한다.

그래야 그래도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 .

 

 어떤 사람들.

아니....대 다수의 사람들.

죄로 인하여 고민하고 들 있다.

실제 죄도 그렇고

상처에 의한 죄책감도 그렇다.

그 무게가 너무 크다.

죄는 사망을 가져온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그들이 죄인인 줄 인식하든 안하든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친다.

어떤 이들은 불교로 , 무당을 찾아가기도

어떤이들은 '술'로

어떤 이들은 타인의 육신을 탐닉함으로 잊으려 한다.

그러나, 그게 되는가?

 

 기독교 안에서도 그렇다.

많은 분들이 '예수 십자가'의 죄사함을 이유로

머리 속으로는 죄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믿지만 

그들의 영혼 속에 아직도 남아있는

이해할 수 없는 내적 곤고함과 곤란함을 어찌하지 못하고

믿음없는 자로 손가락질 받음이 두렵고

실제로 죄인의식을 잊기 위해

해결받은 자로  가장하며 교회에 나와 경건한 척은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가?

어찌보면 교회다니는 분들,

특별히 목회자 님들 중에서도 숨겨진 죄의식으로

오히려 포기하고 더 죄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기만을 범하거나

깊은 숨겨진 우울증을 앓는 분들이 많다.

 위의 내 예도 마찬가지다.

늘 답답했다.

아니.. 어느 곳보다 더 '십자가의 속죄'에 대하여 뚜렷이 알고

'죄'에 대하여 민감한 데

왜 이처럼 답답한게 심한가?

 교인들은 눌려 있어 활기가 없다.

웃음들이 없고 날카롭다.

마치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터질듯 힘이 들어 견디지 못한다.

그들은 그러면서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틀에

자신을 들어 맞추려 하고 있을 뿐이다.

 

 오늘 '가라지를 힘써 뽑지 말라'는 구절을 이해하지 못하는 탓이다.

우리 교단은 아예 다 뽑으려 해서

평범한 교단은 가라지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서

이해해도 해결할 수 없기에 묻어 두어서

결국 '죄로 부터 구원'해주신 십자가 예수님의 공로가

이 땅에서는 효력을 크게 발산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지금은 어떻던가?

수년 전 말씀 묵상을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회개

죄로 부터 멀어짐...

모두 너무 중요한 하루 하루의 일과다.

하지만 내가 모두 뿌리 뽑을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것은 회개하고 뿌리 뽑되

어떤 것은 그냥 둘 수 밖에 없다.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나

뿌리 뽑을 수 있는 것에 대한 이해나

모두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 주님의 영역'이다.

주님이 하라는 것만 하는 것이다.

주님이 뽑으라시면 뽑는 것이다.

'주님 앞에 내 죄 내려놓음'

' 주님 앞에 가라지 내려놓음'이다.

 물론, 말씀에 맞추어 내려 놓음이다.

 한마디로

'주님이 말씀하시니까' ... 다.

다른 이유가 별로 필요없는 것이다.

자유롭고 간편하다.

 

 십자가 앞에 내려 놓는다는 것.

말은 쉽지만 이것을 이해하고 일상에 적용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원리를 알고나서

난 내 상처로 부터 origin한 진한 죄책감과 죄의식으로 부터

비로소 자유하기 시작했다.

내 진료실을 찾아오시는 환우 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

그 중 불신자들을 가끔은 전도하기 쉽게하기도 하는 원리이다.

 말씀 구절에서

틀림없이 그날그날 하나님께서 필요하신 레마를 주시거나

은혜를 허락하셔서

당신의 의지대로 '회복'시키기도

축복을 주시기도

앞으로의 내 나갈 방향을 설정하시기도 한다.

 

 내 블로그는

그런 매일의 경험들로 그득 차있다.

난 의사로서

학문적으로는 어떠할 지 모르지만

비교적 폭넓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특히나 내 내적 터부의 영향으로 더욱 더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경험을 가지고도

많은 분들이 공감하신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제 오늘 있었던 내 가라지 뽑는 경험을 늘어 놓겠다.

아직 해결 안되었지만

말씀에 맞추어 해결해 가는...

 

 

 어제는 당직이었다.

목요일 마다 1-2주마다 한번씩 , 그리고

세달에 두번정도 주말 당직.

 가끔은 응급한 경우를 겪기도 하지만

버틸 만한 정도다.

늦은 나이의 남자 산부인과 의사가 '바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기만하다.

그래서 자다가 call하면 몇번이고 일어난다.

그럴 때마다 주님의 믿는 자로서

콧소리 부터 없애고 맑은 목소리로 대하려 노력하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도 짜증 안내니 간호사들이 좋아한다.

 하지만 어떤 분들은 특별한 일이 아님에도

한 환자에 대하여 계속 전화하는 일이 있다.

'선생님 어떻게 해요..'

'선생님 어떻게 해요..'

' 선생님... '

대낮에 전화해서 그래도 짜증이 날 것을

분명히 원칙에 대하여 설명하고 내려가서 보고 올라왔음에도

저러면 급하지 않은 산모 한분에 밤새 날 깨우니

피곤이 말도 못한다.

 그래도 화는 안냈다.

내려가서 환우 분 뵙고 올라오며

'이러이러해서 피곤한데....' 하였다.

아침 일찍 또 전화왔다.

듀티 체인지 하고 가면서 인상이 안좋다.

눈치를 살피는 내 탓인가?

나도 그분에 대하여 대함이 버걱거린다.

 내적 분석.

'미안하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하고

 주님 앞에서 잘지켜 왔던 아름다운 모습이 흔들렸다는 데 대한

 스스로에 대한 속상함'......  다양한 생각이 밀려온다.

또 내 옥토에 '가라지'가 심겨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습관적으로 옛부터 행하던

'회개'의 무거움이 '죄책감'과 구분이 되지 않게 몰려 오려 한다.

아니..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사는데

나만 왜 이리 유난히 민감하게..하는 생각도 있다.

아니다.

한편으로 죄에 민감한 것은

내 영적으로 큰 달란트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복잡하다.

머리 속을 흔들어 털고 '오늘 묵상구절'에 드밀었다.

'가라지를 그냥두라'라 하신다.

너무 뽑아내고 떨려다가 '곡식'이 다치는 일이 있다신다.

무슨 말씀이시던가?

죄에 대하여 회개하고 민감한 것은 좋지만

내가 해결하려 몸부림 칠 것은 아니란 이야기다.

그래서 그냥 하나님의 말씀이신 줄 알고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다.

 속상하거나 억울한 일이 있으면 주님이 해결하실 것이고

내 고칠 것이 있으시면 다른 상황이나 방법으로

나에게 회개하라 하실 것이다.

그것을 믿었다.

그리고는 믿었다.

그리고는 차분해진다.

 추후의 상황대처는

 지금껏 그래왔듯이 다시 주님예수님의 향기를 품으려 노력할 것이다.

그 분의 단점을 감쌀 것이며

부족한 점을 이해할 것이고

나를 조금 풍성한 눈으로 보려 노력할 것이다.

 

 나의 이러한 선택은

과거 교단의 눈으로 보면

너무 슬쩍 지나가는 겉핧기 식 어린 신앙인이라 할 지 모르지만

난 아니다.

내 모든 것을 주님이 주장하시도록 내려놓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일상에서 살면서

내 일상에 주님이 동행하시고 간섭하실 여지를 만들어 놓고

난 모든 판단을 그 분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결론으로 난 자유로와진다.

점차 풍요로와 진다.

 

 오늘 또 어떤 뽑을 가라지가 날 맞을 지 모른다.

부디 바라기는 그럴 때마다 말씀 앞에 날 내려 놓아야 한다.

그러는 빈도가 그러지 못하고

내 내부의 다혈질 적인 습관에 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가라지를 힘써 뽑지 마라시는 주님의 뜻에 맞는 일이다.

주님을 한번 더 쳐다보라는 말씀이시다.

 

 

 

적용

1. 가라지를 힘써 뽑지 말자.

 내가 이기려 하지 말자라는 말씀이다.

 죄의식, 나 자신을 이해함, 남을 긍휼이 여김,  죄,... 모두

주님의 해결하실 영역으로 남겨둔다.

 내가 할 일은 '주님 앞에만 가져오는 것'에 준한다.

 

2. 성경 여덟장 읽겠다.

 

3. 앞으로도 모든 자들을 선한 눈으로 대할 것이다.

 선택한다.

 

4. 기도한다.

 성령의 도우심을 기도한다.

 죄의 상황에서 주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함은 힘든 일이다.

 늘 주님 성령이 도우셔야 한다.

 기적도 보이시길 소원한다.

 조금더 영적인 사람이 되길 소원한다.

 

5. 금요 예배.

 목소리 적게 내리라.

 

 

 

기도

  주님

지난 밤을 잘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주 조금이지만

지난 밤에 마음의 흔들림이 있었습니다.

자칫하면 평정을 놓칠 뻔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분들에게 나의 흔들리는 모습으로 부담을 주는 듯했습니다.

그런 내 어이없는 흔들림은

다시한번 내 죄의식을 자극하고

주님 앞에 죄송스러움을 가져오려 하였습니다.

자유롭지 못한 이 묶임이 또 날 묶으려 했습니다.

그냥 잊어 먹고 말면 되지만

어쩌면 이 민감한 나의 오래된 습관이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다행이도 전 주님의 말씀을 선택하였고

말씀 가운데 정확히도 주님은 '가라지를 힘써 뽑지 말라'는 레마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 알아서 하소서..하고 내려 놓았습니다.

주님 다행이도 전 평화롭고 이후에도 잘 처신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주여 .

감사합니다.

이 자연스러운 주님 앞에서의 행동이

아주 몸에 배이고 영혼 깊숙이 각인되도록 하소서.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자연스럼이 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남은 에너지가 외부를 향했으면 합니다.

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제 찬양으로

제 넘치는 은혜로

제 가진 모든 것으로

제 지금까지의 영적 동행함의 경험으로 그리하게 하소서.

하나더 간절히 바랄 것은

주님 아직도 절 붙들고 있는 것..

잘 아시지요?

늘 주님 앞에 아룁니다.

주님의 뜻이시라면 당장 하시오되

아니시면 주님의 날에

추수할 날이 되기 전에 해결하소서.

저도 이제 세상을 향해 나가길 원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널리 전할 도구 되게 하소서.

주님.

조건이 아닌지

잘 아시지요?

deal 이 아닌지도 잘아시지요?

주님 저의 모든 것을

제 모태에서 만드시고

저의 장부를 다 지으셨기에

다 잘아시지요?

주님

귀하신 주님. .

주님 앞에 내 모든 것 내려 놓습니다.

오늘 하루도 인도하소서.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게 하소서.

제 아들들.. 그리하소.

첫아이에게도 믿음 회복시키시고

둘째 , 힘든 과정에서도 잘 이겨내게 해주시고 계시오니

아이에게도 말씀으로 임하시고 성령으로 도우소서.

모든 것 다 내려 놓습니다.

안되는 것 , 가라지 다 내려 놓습니다.

주님 알아서 하소서.

주님 말씀하시니까

주님께 내려 놓습니다.

 

예수님 이루소서.

 

사랑이 넘치시고 위대하시고

무소부지하고 천지의 창조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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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없으면 난 아니예요...(펌)

 

 

 




다른 악보는 https://t1.daumcdn.net/cfile/cafe/183995144AADBAA9FA 입니다
주님 없으면 난 아니예요 
주님 없으면 난 아무것도 
주님 없으면 난 아니예요 
주님 없인 난 아무것도 아니죠
주님 없으면 난 부족하죠 
주님 없으면 난 설수가 없죠
주님 없으면 난 연약하죠 
주님 없인 무엇도 할 수가 없죠
어둔 길로 가다가 험한 길로 가다가 
주를 잃고 헤매일 때에
십자가의 그 사랑 
나를 위한 그 보혈 나 보게 되었네
주의 보혈 날 위한 피 
내 맘 간절히 찬양해요
Lord in my heart 
Lord in my heart 
내 맘 속에 계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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