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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막는 돌(마13:18-23 ) 본문

신약 QT

가로막는 돌(마13:18-23 )

주하인 2010. 2. 4. 09:47

제 13 장 ( Chapter 13, Matthew )  

주님

나를 밝히소서

 

돌밭 같이

어두운 이 영혼을

밝혀주소서

 

당신의 영광 말씀이

내 영혼에

씨로 뿌려져

30배

100배

열매맺을 그때까지

제 속을 막아서는

이 돌무더기 치워주소서

 

우리 주여

사랑의 주님이시여

제 영혼이

옥토로 바뀌는 그날까지

놓치마소서

꼬옥

붙들어 주소서

 

 

 

 


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23.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씨

주님 말씀

 

우리의 영혼의 상태

 

말씀이

주님이시자 주님의 말씀이신 말씀이

성령의 검이신 말씀이

그 말씀이 담겨진 성경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지면

씨가 발아해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듯이

30 -100배 이상의 수확이 이루어져야 한다.

건강한 씨와

건강한 밭이라면 당연하다.

 그러나 모두 그런가?

하나님의 말씀이신 씨는 당연히도 강건하고 건강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밭의 문제이다.

 밭은 무엇인가?

밭은 우리의 영혼이다.

 그 영혼의 상태를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해 놓으셨다.

그게 윗 구절이다.

 밭.

상태는 '정해져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미리 밭의 상태를 알아보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밭상태를 몰라보실까?

그래서 헛된 말씀을 그들 자갈밭, 돌밭, 길가에 하신다는 말인가?

아니다.

그 상태가 안좋고 좋은 것은

이 땅의 논과 밭도 최상 최하가 있듯이

어느 정도는 달란트로 구분이 되어 있을 것이 뻔한 것이며

문제는 그 밭마져 밭 주인의 노력에 의하여 옥토로 변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님은 '기대'를 가지고 말씀을 던지시는 것이시다.

  그리고 또하나

이 밭이 운명적 상태가 아니라면

매일 매일의 그 밭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 수 도 있다.

 나.

스스로 100배까지의 소득을 낼 수 있을 가능성이 있는 자라는

생각이 서서히 내 속에 자리잡아가는 자면서도

매일같이 여러번 씩

극악한 생각이 나를 스치고 지나가기도 하고

주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확신 부족이 사로잡으려고도 하고

때로는 '유혹에 흔들리기도 하고'

어떤시간에는 ' 세상의 재리'에 대하여 염려하기도하고

다른 시간에는 '자식들의 걱정'으로 ...

내 영혼의 밭은

이렇게나 '길가'에서 '돌밭'으로 가다가 '가시밭'으로 바뀌기도 하고

드물게는 '옥토'로 바뀌기도 한다.

물론, 다행인 것은

거의 100% 길가의 심성이던 

이 엉터리 같던 길가의 심령이

점차로 옥토의 분량이 많아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위의 비유의 말씀이

한 인간에 단정적이고 변하지 않는 '딱지'를 채우는 것 같으면

무슨 희망이 있을 것인가?

 따라서 저 비유는

' 장래' 그 사람의 선택의 결과로 나오는 현상을 의미할 뿐 아니라

'매 순간' 영혼의 선택해야 할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나왔다.

사람들이 제법 탄다.

스~윽 흩어보니 내리는 문 세번째 열에

초등학생 하나 앉아 있다.

바퀴가 튀어나와 불편한 자리.

아이와 타니 널찍하고 좋다.

 조금 가니 애가 내린다.

묵상을 하려고 성경에 눈돌리는 데

사람들이 많이 탄다.

 그러더니 아주머니 - 고개 숙이고 있는 내 눈에 들어오는 다리가 통통하고 바지 모습이 그렇다 ㅜ.ㅜ;; - 가 한분 내 앞에 선다.

다리가 좀 기니 통로 쪽 에 앉을 수 밖에 없는 나로서는

아주머니가 앉을 듯 말듯 하시는 태도에

얼른 엉덩이를 좌석 깊숙이 밀어넣고

다리를 이리 저리 피하며

바퀴가 튀어나와 불편한 안쪽에 들어가시도록 했다.

그러니 아주머니께서 들어갈 듯 말듯 하시더니

드디어는 다리를 번쩍 드시어 들어가는데

내 무릎을 문지르고는 빼시더니 다시 겨우밀고 들어가신다.

알았다.

그 이유를 그제서..

아주머니는 다리가 짧으신데다

또 다른 이유가 있으셔서 어려우셨던 것이다.

깨닫기 까지 아주 잠시 슬쩍 밀고 오려는 짜증은 물러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

아주머니.. 앉으시는데 이게 보통 볼륨이 아니시다.

앉으시자 마자 내가 통로 쪽으로 확~ 하고 밀리는데 ^^;;

내 좌석 바로 옆에 손잡이가 바닥부터 천장까지 봉으로 이루어져

난 봉과 아주머니 사이에 완전히 짭쳐버리는 형국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거.. 완전 폼생폼사.

정말 자존심 하나로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인데

완전히 짓구겨져서

초등학생 아이처럼 한구석에 밀려 서 어깨까지 눌려버리는 것 아닌가?

순간 몰려오려는 '짜증'~

이거 성경읽고 묵상하려다가 아주 짧은 순간에

이리 짓눌려 버리니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하지만 묵상 구절에 마침 눈이가고 있던 게

'말씀이 막힌다'는 부분이다.

 아.

말씀이 막히는 것은 '재리'과 '염려' 탓도 있지만

내 영혼의 밭에는 '자존심'을 가장한 어떤 달갑지 않은

내 속의 흐름을 막는 막힘이 있는 것이다.

늘 흐름을 말한다.

이 흐름은 성령의 흐르심이다.

그 흐름을 막는 것은 '상처'나 

재리에 대한 유혹에 약하거나

염려를 너무 많이 하거나..........................

원죄를 타고 개인의 특성에 따른 강한 부분이 아니던가?

 내 영혼의 밭.

그 밭은 이제 말씀으로 매일같이 개간되어

옥토로 바뀌어 가고 있는데

아직도 돌이 , 그것도 큰 돌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 돌을 매일 매일 말씀의 흐름에 좇아가다가

막히는 부분이 바로 ''이다.

그래서 얼른 뽑았다.

속이 안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폼이 구그러지는 데 대한 신경이 좀쓰인다... 싶었는데..ㅎㅎ

굴다리를 건너 안양대교 들어서기 위해서

급 좌회전 하는 데서 한번 더 문제가 생겼다 ^^;

 아니 이 아주머니

내 몸이 급좌회전 하는 터에 원심력으로 창가로 몸이 쏠리며

당신을 조금 누르자 마자

갑자기 강력한 '엘보우' 타격으로  내 옆구리를 치는게 아니신가?

이 것은 밀리니까 자신도 모르게 방어하는 차원이 아니고

순간적으로 '팍'하고 끊어치는 유형의 타격이다.

다행이도 아주머니의 힘이 부족하신지

아니면 거리 조정을 놓치셨는지 몰라도 아프지는 않았지만

순간 '화'가 몰려오려 한다.

 아주 독특한 분이시다.

그리 밀고 들어오신 것도

밀고 들어오시기 전 망설망설이신 것도

짧은 다리로 나를 몇번이나 문지르신 것도 ㅎ

푹하고 주저 앉아 자리의 2/3를 차지하신것도

그러면서 내 잠바를 깔고 앉은 것도

마치 묵상하는 데 깔짝 거리는 잡 마귀처럼ㅎㅎ

하필이면 그 즈음에 내 여러 심사를 자극하시는 것도 참았는데~~!!!

이제는 평범치 않은 엘보우 타격으로 날 '격투기 '무대로 초대하시려나?

그래서..슬슬 .. 화가 올라오려 한다.

'인상을 쓸까?

' 아주머니.. !' 하고 소리를 지를까?'

하지만 자꾸만 '말씀을 막는다'는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이 막는 내 돌덩어리 캐내지 않으면

결국 내 인생이 주님 앞에 가게 될 즈음에는

돌밭 같은 자로 굳어 버리고 판명나고야 말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럴 때 좋다.

예전 내 살아왔던 삶의 습관상 틀림없이 이때 쯤

사단이 기승을 부리고

난 성질을 부리고 앉아 있을 것이라 예상되는 즈음에

말씀이 생각나고

상황과 전혀 상관없이 차분해지고

결과로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이 든든해지고

평화가 점찰로 길어지면서 날아갈 것 같은 시간들이 많아지는 것.

바로 그것이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생기는 습관들이다.

원래 착했던 사람들은

무엇으로 주님의 말씀의 힘을 느낄까.. 안스럽다.ㅎㅎㅎ

 이제 화는 안나고  그 분이 안스럽다.

나름대로 짧으시고 통통하신데다가

그것을 비관하셔서 저리  예민하게 반응하시나 보다.ㅜ.ㅜ;

물론 내 생각이다.

하지만 그리 생각하니 이해가 된다.

그 분의 입장이 불쌍히 여겨지려 한다.

이제 피하는 것보다는 피해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일어났다.

 하지만 집요한 사단은 날 그냥 안둔다.

'그렇다면 나가다가 한번 힐끗 쳐다보며 인상한 번 써주라.

 언젠가 똑같은 상황에서 내가 안으로 안들어가니

 그 앞에서서 발로 툭툭 밀던 그 분과 똑같은 분 아니더냐?

 미안하게 해주어야 해.. 저런 분들은..'

그래서 내릴 때 머리를 '훽~'하고 돌려서

강렬한 눈빛 한번 쏘아주고 내리면

아마도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를거라는

아주 고소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ㅎㅎ

하지만, 그것도 '돌'이다.

한번 찌르고 가고 싶은 이 포악의 또다른 모습.

포기하기로 했지만 자꾸..생각이 들어온다.

그럼에도 내릴 즈음.

목의 오른 쪽 '사경근'들이 요동을 침을

그냥 참고 내렸다.

'승리'다.

 돌을 하나 뽑았다.

 

 

 

 적용

1. 당직이다. 

 기도하는 시간이 되겠다.

 내 속의 돌을 뽑는..

 

2. 성경 여덟장 읽겠다.

 

3. 주님의 말씀을 막아서는 내 돌 들을 묵상한다.

 . 짜증, 화

 . 걱정  - 많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  두려움 - 의사의 업무는 사람의 목숨을 다루기에 두려울 때가 있다.

                가끔은 괜한 고민이 많아 질 때도 있다.

                주님을 믿음이 부족해서 그럴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 내 터부

 

4. 믿음을 주소서.

   말씀을 믿게 하소서.

 

 

 

 

 

 

 기도

   주님

말씀 묵상을 마칩니다.

주님

그 놀라운 주님.

살아계신 주님

말씀이 하나님이심을 알고

말씀 앞에 서려할 때

눈물 나도록 기쁨을 자주 경험함에도

자꾸만 잊고 사는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주님.

화날 때 그렇습니다.

주님

업무로 걸릴 때 그렇습니다.

주님

오래된 내 속의 터부가 밀고 올라올 때 그렇습니다.

다행이도

말씀 묵상을 하는 일년 일년이 지나가면서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흔들림은

점차로 옅어짐을 느낍니다.

 그게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온전치 않음은 저도 주님도 잘 아십니다.

주여.

모든 돌 무더기 늘 깨닫고 사는 하루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말씀 앞에 설 때

말씀의 흐름을 막아서는 그들의 존재를

말씀 탓으로 생기는 빛 뒤의 그림자처럼

깨달아 벗겨내는

지혜와 순종을 허락하소서.

그리하여 날로 제 영혼 맑아지고 깨끗해져

주님이 원하시는 '옥토'로 거듭나게 하소서.

주님.

제 염려 중의 하나인

자식들의 앞길... 그들의 영적 성장에 대하여 기도합니다.

그것도 주님 앞에 내려 놓으니

주님 인도하소서.

 아이들. .. 주님 앞에 옥토되게 하소서.

세상적 축복도 주시되

영적 옥토 된 후 그리하소서.

제 아내

약합니다.

너무 아프지 않게 하소서.

주님.

모든 분들 다 그리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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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부터 시작되리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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