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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삐지지도 않으신다.( 삼상 9:15-27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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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삐지지도 않으신다.( 삼상 9:15-27 )

주하인 2008. 5. 23. 10:43

제 9 장 ( Chapter 9, 1 Samuel )

 

멀리

십자가가 보인다.

마음이 편하다.

집에 다 와간다.

 

 

 

 


15.  사울의 오기 전 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가라사대
 

 사무엘도

장래에 대하여

계획을 세우고

걱정을 했을까?

 

 선지자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겠다고

나름대로 안절부절 못했을 것인가?

 

 여호와 하나님.

그 분께서

왕에 대한 뜻을 밝히신 후

가만히 계시다가

'사울'이 오기 전날에야

사무엘에게 알게 하셨다.

 

 주하인

가끔은 헷갈린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괜찮은 것인가?

무엇인가 주님을 위하여

열심을 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평안 가운데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것인가?

 

 주님은

사무엘에게

사무엘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게 하셨으되

모든 걸

다 알려 주시고

미리 알아서 다 하시길 원하지 않으신다.

 그냥

아무런 귀뜸없이 계시다가

사울이 오기 전 날에야

알게 하셨다.

 

 사무엘도 

그냥

마냥

기다렸다.

조급해 하지 않고..

 


 
16.  내일 이맘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아보았노라 하시더니
17.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통할하리라 하시니라  

 주님은

왕 제도에 대하여

싫어하시면서도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하여

이리도

자애롭게 말씀하신다.

 

 내 백성

 내 백성

 내 백성

 내 백성

 .. 이라 하신다.

 

 

주님은

삐지지도 않으시나 부다.

 그 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도

끝까지 사랑하신다.

 아니

적극적으로 도우신다.

 

 그렇다.

배울 면이다.

조건적 베풂에 익숙한

그래서 가변적 사랑이 사랑인 양 착각하고

누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주지 못하는

이 땅위의

사랑 결핍 환자들,

경쟁에 시달리느라

가족 간의 온전한 사랑을 기대하지도 못하고 커온

불쌍한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가슴에

이리도 가득차야할

온전한 사랑의 탱크가 비워짐으로

삶이 버겁고

불안으로 점철되어 살고 있지 않은가?

 

 온전한 주님은

교훈을 위하여 징계를 허락하시기는 하시되

그 사랑은 변함이 없으시다.

어리석은 아들이 원하는 대로

그것이

그의 영혼을 타락시켜

본향에 올 자격을 상실 시킬 위험이 없는 한도 내에서

끝까지

'내 백성'의 편을 들고 계신다.

 

 나도

내 자식이 원하는 대로 해 줄 수 있는

사랑을 소유한 아버지가

될 수 있기를 원한다.

 

 

 
19.  사무엘이 사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선견자니라 너는 내 앞서 산당으로 올라가라 너희가

     오늘날 나와 함께 먹을 것이요 아침에는 내가 너를 보내되 네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네게

    말하리라 
 

 그 하나님은

사울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마음까지를 

읽어 주신다.

 놀라운 능력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 더 놀라우신 것은

그 공감 능력이다.

그 세심하심이시다.

 

하나님은

놀랍고도

온전하신 분이시다.

인간의 모든 것을

아시고

이해하시고

세밀하고

개별적으로

인격적으로 다루어 주시는 분이시다.

 

 세상에

하나님을 모르는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성령의 계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른다.

이런

안타까움이

자주

'전도'의 말로 나온다.

 

 난

내 주님이 좋아서

그 주님이 기뻐서

전도한다.


 

 

 

25.  그들이 산당에서 내려 성에 들어가서는 사무엘이 사울과 함께 지붕에서 담화하고 

 

 부러운 부분.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 시간 만큼은

서로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지붕에서 담화하는'

동안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을까?

사울의 눈은 얼마나 놀라움으로 커졌을 것이며

몇차례나 입을 딱 벌렸을까?

그의 가슴은

감동으로 몇번 두근 거렸을까?

그의 눈 앞에

장밋빛 환희로 얼마나 짙게 그려졌을까?

 그 시대

그 청춘의 불타오름이 막힘으로 오는 갈등을

풀어주시는 사무엘이 얼마나 고마왔을까?

왕이라는

직책에 대한 이해와 

그에 대한 의무감과

시골소년으로 열등감의 혼란 사이에서

당황하고 있을 때

사무엘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그로 얼마나 담담하게 하는 체험을 하게 되었을까?

 

 

 주님..

왕은 아니지만

저에게도

이런 멘토를 허락하소서.

제 자식들에게도요..

아니

이곳에 오시는 모든 분들에게

이 시간 들어

밤을 새우면

지붕에 앉아 별밤의 분위기를 함께할

멘토들을 주시어

나와 내 자식들과 내 식구들과

여기오시는 분들, 그들의 인생이

주님 앞에 가까이 가는데

흔들림 없는

올바른 믿음과

늘 주님의 사랑에 감격해 사는 자들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특별히 주님..

주하인의 그것... 아시지요?

 

 

 

 

27.  성읍 끝에 이르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사환으로 우리를 앞서게 하라 사환이 앞서매

      또 가로되 너는 이제 잠간 서 있으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네게 들리리라

 

 마무리.

'하나님의 말씀'

 

 인간적 교류도 좋다.

주님 안에서 위로도 좋다.

공감도 좋다.

밤을 새워 별밤을 지워 대화하는 분위기도 좋다.

왕이 되는 장밋빛 전망도 좋다.

....

 

이러한 위로와

주님의 세심한 위안 후에

주님은 교훈을 주신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의무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이게 원리다.

주님은 위안도 주시지만

해야할 일도 주신다.

 

너는 이제 잠간 서 있으라 

서둘지 않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기다림에 대한

확신적 기다림이 필요하다.

'너는 이제'라 하지 않는가?

'잠간'이다.

서둘지 말자.

서 있으라 하신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네게 들리리라

주님은

필요한 말씀을 주시리라.

기도하고

순종하고

기다릴 마음이 필요하다.

오늘 짊어지고 갈 말씀이다.

" 너는 이제 잠간 서 있으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네게 들리리라"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

감사

감사 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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