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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사63:15-64:12]

주하인 2021. 8. 13. 08:40

 



63장
16.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 어때도 괜찮다.. 라는 선언.

그 안에는 

지금의 상황이 아주 아주 버겁고 어렵더라도 

믿는 구석,

'주님이 내 아버지시니

견딜만하다.. 라는 느낌의 뉘앙스가 느껴진다. 

아.. 

어쩌면 내 마음을 투사 해서 , 투영해서 그런가?

어쨋든 '주는 내 아버지시라' 시는 말씀의 되풀이에 

가슴이 울렁한다. 

 

 거기에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 지라도' 라는 구절에

속상하려 한다. 

 세상이 다 날 모른체하고 

가까웠던 자들 마져 휑하니 등을 보일

그 절박한 가슴아픔이 있더라도

'주님이 내 아버지시니' 견딜만 하다. 

아니.. 오히려 더 당당할 만하다.. 라는 이야기다 .

 

그것.. 

돌아보면 세상에 왜 그리 왕따를 당했을까?

왕따하는 것..

세상의 인심을 보면 악한 에너지들이 약한 곳으로 몰려가는

'악한' 이유도 있지만

그 약한 자의 이유를 보면

그들에게 그리 당할 어떠한 세상적 이유가 있음,

단점이 있음을 보게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그 단점.. 

그게 실제이든 내면의 문제이든

분명코 힘든 문제가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때로는 그로 인하여 세상을 살고 싶지 않을 정도의 절박한 외로움과 두려움.. 

 

 그러나 

오늘 시편 기자의 고백은 다르다. 

' 주는 내 아버지이시고' 

옛날 부터 내 구속자 셨다. 

'그러니..........' 다 .

 그러니 

세상이 다 모른체하고 인정하지 않으려 해도

괜찮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

 

이게.. 

정말 괜찮아서 괜찮을것인가?

의도적 노력이라면 나중에 더 큰 '심리적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다행인게

하나님 안에서는

그 뻔뻔함 (오늘 묵상 설교하시는 목사님, 주석에도 뻔뻔하다고 나온다... 맞는가? .. 자책하는 스스로나 그들에게는 그런지 모르지만 하나님 안에서 성령으로 인한 승화가 아닌가? 승리... 이김...)이 

해결의 결과 이지 않을까?

 

 무슨 죄든 

설령 위의 고백과 우리의 내면의 '너.. 뻔뻔하지 않는가?' 하고 아무리 자책을 하게 해도

주님 앞에가면

우리는 

무조건 

'해결되는' 길이 있으니

믿는 자들의 가장 큰 장점, 행운, 행복, 기회(?.. 겨우 이렇게 표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생각나는 표현이 없다.^^;)는

'부활'

그러함에도 길이 있음이다 .

예수님 십자가로 죄씻음 받은 구원과 

보혜사로 주어주실 성령의 은혜가 있음으로

반드시

그리될 수 밖에 없는 것이

믿는 자들의 가장 큰 행복이고 기회이다. 

 

 그것을 

'주는 내 아버지시라'라고 

되풀이 고백하는 데 있어

고스란히 응축되어진 

절절한 안도로 느껴진다. 

 

 

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그리고 그러한 고백은 

'이제'.. .라는 운을 띤 후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로 다시 한번 마감하며 고백함으로 

확신을 가슴에 담으며

일상을 살아갈 감사함의 다짐으로 

영혼의 든든함

심리적 확신으로 갈무리 하는 느낌이다. 

 

 오늘.

약간은 뻔뻔한 듯한 느낌으로 

'주는 우리 아버지'라 고백하심에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려시는가?

 

 일단,

어떠한 내적인 흔들림, 자책 , .. 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날 용서하시고 

날 붙드시고 

그 분을 진정한 아버지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그 분과의 관계를 절대로 놓치 않는 한

내 모든 가지고 있던 버거움들을 용서하시기에

죄짓고 더이상 나갈 바없어 

절망의 나락, 파멸로 들어갈 수 밖에 없는 

불신자들의 그것과는 너무도 다른 

행운이 

우리에게는 있음에 감사하게된다. 

 

그리고 

그러함을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 라는 구절에 담아

내면 깊숙이 까지 터치해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끼게 하시어서 감사하다. 

 

또 하나

뻔뻔함............

하나님 안에서의 뻔뻔함은

창피나 버거움이 아닌

오히려 감사함의 외적 표현임을 알아

더 당당한 내가 될 개연성을 가지게 되었음이다. 

 

감사하다. 

 

주님.

오늘

주는 내 아버지시라

주는 내 아버지시니다.. 라

되풀이 되풀이 보여주시는 말씀을 듣고

마음이 울렁이고 

내 안의 깊은 부분이 터치 됨을 느겼습니다. 

주여.

아시고 

하나하나 더 깊은 부분을 들여다 보게 하시며

말씀이 힘을 가지고 

내 살아가는 일상 일상을 인도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여.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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