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주께서 내 삶의 터에서[요3:14-39] 본문

신약 QT

주께서 내 삶의 터에서[요3:14-39]

주하인 2017. 3. 4. 08:36



14.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주께서

모세를 만나셔

말씀을 하시며 하나하나 인도하시는 곳은

특별히 격리되거나 꾸며진 장소가 아니다.

'시내광야'다.


즉,

주님을 만나고 그 분의 임재를 체험하는 곳은

때로는 열렬히 기도하는 기도처기도 하지만

'내 사는 이 공간'

이 인생의 터에서

주님은 나와 말씀나누시길 원하신다.

그것도 중요한..

 왜 안그렇겠는가?

내 사는 것 자체가 '매사'가 다 의미인 것을..

주님 안에서는..




25.게르손 자손이 회막에서 맡을 일은 성막과 장막과 그 덮개와 회막 휘장 문과

31.그들이 맡을 것은 증거궤와 상과 등잔대와 제단들과 성소에서 봉사하는 데 쓰는 기구들과 휘장과 그것에

    쓰는 모든 것이며
 '맡을 일'에 대하여 죽 늘어 놓으신다.

그런데 '겨우~ ' ^^;;  기구 .. 정리하는 것이다.

그것을 그렇게

레위 지파의 누구들만 그러라 하신다.


 


38.성막 앞 동쪽 곧 회막 앞 해 돋는 쪽에는 모세와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이 진을 치고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위하여 성소의 직무를 수행할 것이며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일지니라
 거기에 '다른 사람'들은 만지면 죽을 것이라 하신다.  와우~


 지금 세대 사람들.

나.

보는 것 너무 많고

아는 것 너무 많아

이제는 실시간으로 지구 반대편 것 알고

SNS통해 듣기 싫은 소리들까지 마구마구 듣는다.


그런데..

시내 광야에서..

하는 일이라곤

'기구' 들고.. 옮기고..

그러다가 죽는다.

그게.. 인생이라면 ...

지금의 우리 눈으로 얼마나 힘들고 어이없겠는가?
하루도 살기 어려운 저들의 삶을

그래도 구분해서 다른 자들은 만지지도 못하게 되었다 .



 무엇이 생각되어지던가?


 우선 , 인생이란 것,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이 인생에 대하여

다시한번 돌아보게 된다.

아무리 몸부림치고 아무리 잘난체하고 아무리 싸워도

누구에게나 인생은 '광야'다. 

시내 광야..

아.. 말이 멋드러져 광야지.. 사막이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황토색 모래와 느껴지는 것은 메마른 모래바람 뿐인

황량하고 덥고 지루하고 갈증나는...

 그게 인생이다.

아무것도 의미 없지 않는가?

그냥 왜 사는지 모르고 수십년을 이렇게 끌려 왔다.

질질 발걸음 끌며

또 앞으로도 얼마나 더 걸어가야

드디어는 이 지루하고 힘든 육신 (더더구나 난.. 오래오래전 다친 꼬리뼈 , 척추뼈, 디스크로 가끔 걷기조차 힘들때가 많다. . .아니다. . 솔직히 운동해서 그렇지 조금만 게으르면 골반 아래부터 고추가루 뿌린듯 아픈 통증으로 걷기 힘들어진다... ) 벗어 버리고 '다 잊어버리고' 망각의 죽음의 세계에 들어갈까........?...

 

 아... 이것은

예수님이 내게 은혜를 잠시 보류해 두실 때

하나님이 얼굴을 감추실 때

성령이 내게 무슨 이유이신지 잠시 느껴지지 않을.. 그런 때 이야기다.

 그게.......인생이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

의미 찾을 수 없는 이 버거운 인생의 수레바퀴.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다람쥐 쳇바퀴.

누구도 알수 없는 '살아가는 이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이유'..

그래서 목숨 걸고 이 땅의 것만 연구하여

필요없는 것들만 잔뜩 만들어

지구를 공해덩어리, 기계덩어리.. 로만 만들어 놓은 ...........

이 시내 광야 말이다.


 또 하나 깨닫게 하시는 것.

당연하게 난 고백하지만

' 이 시내광야가 의미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시다.

즉, 하나님을 전제로 하지 않는 삶이란 위의 저런 넋두리.. 무서운 독백... 이지만..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다가오시고

사는 이유가 깨달아 지고 의미가 생기면

'시내광야'의 거친 걸음은 더 이상 질질 끌고 가는 과정이 아니란 것이다.

당연하지만 때론 '생수의강'이 흐르고 푸른 녹지도 나오며

쉴만한 물가도 ..

더더구나 놀라운 일은 어느새 따가운 햇살이 향기로운 봄햇살 같이 느껴지고

부는 모래 바람이 뜨거운 여름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이며

온통 주변이 생기로 채워지게 된다 .

 그 하나님.

그 분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하나님이 아버지로 만나지시면 그렇다 .

그 분이 그 때쯤 말을 걸어오신다.

살아계신 아버지가 내 곁에서

전능하고 전지하신 능력으로

내 가는 길을 매사에 말씀으로 인도하시며

사랑으로 품어 주시는 데

왜 인생이 답답하고 힘들겠는가?

 이제...

이 너무도 당연한 원리를 알면서

머리에 그득... 정리가 잘된 내게 ^^;;

오늘 이리 말씀을 주시는가?


아..

나도 모르게

삶이 뜨거워지기 시작하고

갑자기 모랫바람이 살을 말리듯 다가오는 게 느껴지기 시작하여

내 예민한 감각이 온통 긴장하는 듯하고

복잡한 머리의 시스템이 헝크러져

나도 모르게 옛 시내광야의 고통을 갈무리 하려 하는 위험성이 있어서 그러시는 듯하다 .


나..

영적 제사장이다.

 나.

시내 광야를 가는 자다.

 나.

주님의 말씀을 듣는 자다.

 나.

그러기에 주님의 철저한 인도하심 가운데 성별된 길을 가게 된다.

 나.

또한 그러기에

힘이 솟는 다.

감사하다.



주님.

세상의 일들이 날 ..

오래된 구습이 날.. 잡아 채려 합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그래서 자꾸 시내광야의 어려움이 두려워지려 합니다.

예.

무서운 생각, 답답한 마음, 속상한 느낌이 슬슬 다가오는 것이

마치 시내광야에 홀로 버려진 옛적의 상태가 되려 하는 듯합니다.

주여.

맒씀으로 이렇게 만나주시는 내 주님.

주님의 뜻을 다시금 새깁니다.

다시 힘을 냅니다.

주님으로 의미를 채우고

주님의 살아계심으로 에너지를 채웁니다.

내 주여.

다시금 힘을 내

이 인생 살아나가려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난 그렇다[요16:16-25]  (0) 2017.04.05
미움의 광풍속에서도[요15:1827]  (0) 2017.04.02
샬롬의 하나님[요14:25-31]    (0) 2017.02.28
고아의 마음[요14:15-24]  (0) 2017.02.27
깊이 알게 하소서[요14:15-24]  (0) 2017.02.27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