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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좁은 길( 마7:13-29 ) 본문

신약 QT

좁은 문 좁은 길( 마7:13-29 )

주하인 2010. 1. 15. 09:23

 제 7 장 ( Chapter 7, Matthew )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좁은 문' 

' 좁은 길'

 

 누가 요새의 세상에서 좁은 것을 좋아하랴?

어떻게든 자신을 드러내고

칭찬을 받고

시끌벅쩍하고 요란한 것을 좋아하는 세대에..

교회는 안그런가?

대형화.

네트워크.

.......

소망교회.

대형교회가 새로 건축한데서

중앙일간지까지 촌평을 남길 정도로

대단한 확장으로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확장에 현실적으로 필요한 이유가 많다고 해도

좁은 문과 좁은 길의 선택은 아닌 듯하다.

 

좁은 문.

좁은 길은 무엇인가?

외로운 길이다.

보기에 그리 편안치 않은 길이다.  

손해볼 수 있는 길이다.

선택을 요구한다.

남들과 다른 행보를 취할 수 밖에 없는

어쩌면 위험하여 보이는 길이기도 하다.

고리타분해 보이기도 한다.

불편하다.

가끔은 찔리고 넘어지고 쓰러질 위험도 있다.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길이기에

모든 것을 자신이 해야 하는 듯

힘이 드는 길이기도 하다.

 다수의 많은 자들의 비웃음과 손가락질을 견뎌야 하는

힘든 길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그 문을 들어가는 것 자체가

지혜를 요구 한다.

결단을 요구한다.

 

 하지만

주님 예수님이 가신길은

화려하고 편한 길이 아니다.

아니, 일부러 어려운 길을 택하셨다.

세상에 누가 이분보다 더 고난을 겪으시고

이 분보다 더 어려운 길을 가셨을까?

그러시면서 그 분의 '제자'될 신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다.

오늘, 좁은 문을 열고 좁은 길을 가라 하셨다.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길과 그 문은

감히

불신자들이 열수 있고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예수님 십자가를 믿고 구원을 받은 자에게 만

자격이 있는 길이다.  문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은 누구나

좁은 문을 열고 좁은 길을 갈 당위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고난이 있어야 올바른 믿음이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 자..만이 진실하게 구원 받은 자라는 이야기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

구원을 얻었다는 것.

그것은 자격을 의미하는 것이다.

맘대로 행동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단은 절대로 그냥 두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에게 자격을 주시었지만

그 자격을 유지함은 우리의 문제라는 이야기다.

 

 인생에 누구하나 어렵지 않은 자 있던가?

그 어려움을 주님의 뜻으로 적극 받아 들이고

주님 십자가를 붙들려는 노력이야 말로

주님이 원하시는 좁은 문이고 좁은 길이다.

다 버리고 수도의 삶으로 들어가

사도 요한 같이 사는 자 만이

좁은 문이 고 좁은 길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선교를 가도 마찬가지다.

안 가는 자보다는 훨씬

주님의 성령체험할 기회는 많고

상급의 기회는 비교할 수 없이 많겠지만

그 안에서 자신의 영욕과 명예라는

넓은 길의 목적이 숨어 있다면

주님의 고난을 달게 받는 다는 선택이 없다면

그것은 '넓은 길 넓은 문'이다.

 전도를 해도

사람들의 머릿수에 더 의미를 두고

교회에서 주는 상에만 신경을 쓰고

상품- 심지어는 자동차를 준다는 데도 있다 ㅜ.ㅜ;;- 에만 신경을 쓴다면

그것이야 말로 '전도의 넓은 문'이다.

소리가 나지 않는 것.

그러고 싶지만 사람들의 칭송과 관심으로 부터 도망치고

주님의 칭찬만 바라는 것..

그것이 좁은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다.

똑같은 일을 해도

위엣것을 바라는 것

아래것을 버리는 것이야 말로

좁은 문을 열고 좁은 길을 가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에 대한 선택이야 말로

주여 주여 하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25.  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비가 내린다.

축축하다.

춥다.

외롭다.

 

창수가 난다.

물이 흐르는 것을 stream , 즉 창수라 한다.   

 속리산 황룡 계곡에

레지던트 시절 친구 부부들과 동행하여

야영하며 놀다가 창수에 휩쓸려 보았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지 몇분 안되어

친구 들 가족과 우리 가족 모두 물에 쓸려갈 뻔했다.

세상의 환난은 순간적이다.

계곡의 물살이다.

아이티 공화국에 대 지진이 일어났다 한다.

그 들 속에서 '예수님 말안들었다'는 소리를 외치며

길거리 헤메는 사람들이 많다고 일간지에 크게 나왔다.

 포브스 지에 11개 지진 위험 지역이 발표되었다.

모두 예수님 믿지 않는 나라들이다.

그들은 창수를 맞을 것이다.

우리는 일상의 창수는 없을 것인가?

암이 걸리면 그 가족은 일 순간에 창수에 맞아 버린다.

 

바람이 분다.

집에 부딪혀 무너질 정도의 바람.

허리케인.

정신이 없는 상황.

 

 좁은 문을 열고 좁은 길을 가길 선택하는 자들

역시

비가 맞을 수 있고

창수의 위험성은 겪을 수 있고

바람으로 할퀴어 질 수는 있겠으나

그들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세상의 넓은 문을 찾는 불신자들이나

넓은 문 기독교인들이

흔하게 바라는 '복'은

비가 안맞고

창수의 고난을 겪지 않고

바람을 쐬지 않길 원하지만

주님은 아니다.

 비는 오고 바람은 불고 창수는 몰려오되

내가 튼튼해지길 원하시는 것이시다.

그것은

좁은 문 좁은 길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게

주님의 원리시다.

 

 

 

 나.

올초부터 심한 비와  바람의 환난이 몰아친다.

정신이 없다.

신년부터 그런 것이 날 혼란케 한다.

환우 문제

아니 환우들 문제.

자식문제.

아니.. 자식들..문제.

 정신을 놓고 싶을 정도다.

잠이 오지 않을 격랑의 고통이 올려고 한다.

  그럼에도 이전의 걱정과는 달리

걱정과는 달리 잠이 잘온다.

사랑하시는 자에게 단 잠을 주신다는 말씀이 이해가 된다.

걱정이 덜 된다.

잠시 흔들렸지만 하나님의 집이신 내 영혼은 잔잔하다.

그 일을 가지고

이리저리 세상을 찾아 다니지 않았다.

훨씬 편하다.

흔들림 없이 일은 하나하나 풀려가는 듯..하다.

아직은 마음을 풀어 버릴 땐 아닌 듯 하지만

모든 일이 순차적으로 풀려가는 듯하다.

 아직 비가 내리고 바람은 분다.

잘못하면 창수가 또 한차례 내려올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집의 반석은 조금은 튼튼해진 듯 싶다.

 

 

 좁은 문을 열고

그 길을 향해 나섰다 .

보이는 사람 하나도 없고

그리 밝아 보이지 만은 않는다.

 길가는 돌도 튀어 나와 있고

가파르게 오르기도

급하게 내리막길이기도 하다.

 간혹 돌부리가 발에도 걸린다.

넘어져 팔이 아프기도

관절이 쑤시기도 한다.

숨은 헉헉 가슴에 닿으려 하고

심장은 두근거린다.

누구에게

이 어려움

이 외로움

이 혼란을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지만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자들이

아직은 보이지 않기에

그것이 더욱 외롭다.

 

 시간이 흐른다.

그때까지

다행히도 나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갑자기

어려움은 잊어버려지고

나른한 한산함이 밀려온다.

머리를 뒤흔들던

잡다한 생각은 잦아들고

들리지 않던

산새 소리가 들려온다.

멀리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산들 바람이

시원히 이마를 스친다.

 마음이 나른하다.

깊은 숨을 들이쉰다.

아..

느끼지 못했던 청명한

산 솔의 향내음이

맡겨져 온다.

 

 불현듯

깨달음이 온다.

 

이 길이 외로움 만은 아니구나

이 길이 고난 만은 아니구나

이 길은

오히려

여유로움이고

평안함이로구나.

 

 갑자기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옆 수풀에서 새가 뛰어 노닌다

비쳐 드는 햇살이 아름답다.

들을 수 있는 귀가 감사하다

느낄 수 있는 피부의 감촉이 새롭다.

 

하늘을 쳐다본다.

감사하다.

높다 .

맑다 .

한 호흡 베물어 마신다.

참으로 감사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는 듯하다.

잠시 팔괴고

뒤로 누워 바위에 다리 꼬아 올렸다.

입술에 버들 강아지 하나 베물었다.

노래가 나올 듯하다.

흥얼거리는 내 콧노래는 찬양이다.

주님이

내 곁에서 미소를 짓는 듯하시다

눈을 감아 그 분을 바라본다.

감아야 보이는 그 분이시다.

 좁은 길은

그 분이 가까이 보이는 길이다.

세상은 멀어지고

그 분은 가까워 진다.

 

 근심아 걱정아 사라져라

비교야 두려움아 네가 무엇이더냐

그처럼 열심이던

그 어느 것도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 없구나

오직 나에게 의미있는 것은

하나님의 평화 뿐.

 

좁은 길을 가는 동안

주님은

나에게

본질을 보게 하신다.

 사랑.

기쁨

감사

여유

긍휼

온유

기쁨

희락

인내.................

 

그 외의 어떤 것도

어떠한 이유도

어떠한 업적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본질을 이루는 도구일 뿐

아무 의미가 없다.

 

좁은 길을 가는 동안

깨달았다.

그 길을 가는 동안

나는 깨어 났다.

잠에서 깨어

진실을 보게 되었다.

 

 

 

 

 적용

 

1. 좁은 문 좁은 길.

 고난과 힘듦은 피할 바가 아니다.

 오히려 기뻐할 바고 구할 바다.

 그러지 못함은 사단의 장난이다.

 일부러 찾아가는 '새디스트'는 아닐 지라도

 오는 고난은 굳이 피할 것은 없다.

 굳이 슬퍼할 이유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칠 일도 없다.

 그냥... 맡기고 기뻐하자.

 주님이 가까이 오시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2. 비와 바람 창수

 겪고 있다.

 하지만 난 흔들리지 않는다.

 

3. 좁은 길의 여유를 잊지 않는다.

 약해짐의 강함을 안다.

 

4. 성경 여덟장읽겠다.

 

5. 회개한다.

 아침부터 죄를 지었다.

 분........

 주여 .. 용서하소서.

 

6. 주님과 동행하는 좁은길을 묵상한다.

 

 

 

기도

 

주님

귀한 주님

주님의 뜻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조금씩 그 뜻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

아직도 좁은 문 선택하기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 어려움을 밝히시고 막아주소서.

어쩔 수 없이 걸어왔던 그길은

감사하며 추억하길 소원합니다.

그 외로웠던 길에

주님을

주님의 말씀을 선택함으로

얼마나 주님이 날 기뻐하시며

내 인생을 여유와 풍성가운데 이끌어 오셨던지

아무리 말씀드리고 소리쳐도

그 감사함을 표할 길이 없습니다 .

전..

원리를 아는 자올시다.

그 원리의 가슴뛰는 흥분을 체험하는 자올시다.

그게 감사합니다.

자질 정말 부족하고

사도바울님이

만삭되어 난 것 같은 자...

괴수 같은 자..

교회에 해를 끼쳤던 자가

나의 나된 것을 고백했던

그 고백의 감동을

이해하게 할 수 있어 감사드리나이다.

이제..아직 환난이 지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말씀 가운데 잘 지나고 있음을 느낍니다.

주여.

바랄 것은

나의 고난으로 애꿎게 더 고생하는 자 없게 하소서.

주여.

그게 그들의 몫이시면

저로 알게 하소서.

저로 마음이 흔들려 실족하지 않도록 하소서.

외롭기는 하지만

너무 외롭게 두지 마소서.

주님.

힘들기는 하지만

넘어지게 하지 마소서.

주여.

미끄럽기는 하지만

중심잡게 하소서.

늘 힘들게 해오던 어려움을 깨닫고 풀어가는

단초를 주는 해가 되시기 원합니다.

 

이제

좁은 문 좁은 길

잘 통과하고 있습니다.

주여.

더욱 지키시고

그 길

주님과 손잡고 동행하게 하소서.

예수님/

제 자식들

제 아내

제 형제 부모님.. .

제 아는 모든 분들.

이곳에 드시는 모든 분들에게

간절히 바랄 것은

그 좁은 길의 원리를 깨우치게 하소서.

저로 하여 그리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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