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엘리야는 그래도 말씀 앞에 서 있었다[왕상19:1-21] 본문
이게
그토록 위대하게 보았던
엘리야의 실체다
그의 가끔 유약함은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빨리도 바닥치기 하는 줄
정말 알면서도 당혹스럽다
그러한 그도 그렇지만
그러한 그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특별하심이 놀랍다.
그런데
그게 정말 은혜다.
저 분의 저 손쉬운 넘어짐을 보며
동병상련의 안타까움과 동시에
그러함에도 끝까지 붙들어
우리네 인생,
내 삶의 방향성을 이어오신
그 너무도 유사하심에 그렇다.
틈만 나면 흔들림
조금의 자극에도 쉬이 당황함
잠시만 여유로우면 잊어버리는
내 삶의 이유와 방향에 대한 혼돈...
방금 전까지 은혜로 뜨거웠던 그 시간이
어느새 한톨 기억나지 않는 듯
메마름으로 몸부림침............
아......
그러함에도 불구하시고
'매일 말씀'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시며
세미한 말씀이
대단한 위세의 기적보다 크고 중함을
다시 말씀하시니
더 그렇다.
할렐루야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 특이하고도 별난 인생들에
특별한 관심을 놓치 않아 주신다고
이 아침 말씀하시니
더욱 감사합니다.
영광과 찬미 홀로 받으소서.
내 주여.
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엘리야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
모든 광야 사르밧의 연단을 거치고도
불체험을 하고 또 세상에 시켰으면서도
또 '도망'치는 여전한 '소심한 환자 ' 수준이다. ㅠ.ㅠ
'이세벨 공포증'
그리고 그 마음 속에 얼마나 많은 격랑이 있을 줄...
익히 알겠다.
'자신'에게 실망하고
'하나님께 죄송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하여 쪽 팔린^^;...
그래서 이대로 어찌 하나님이 명령하실 일을 감당할 수 있을 까하는 자괴감...*&^%$.......
그러면서 모든 것을 알것만 같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자신이
겨우 '여인'..에게 동일한 두려움으로
그것도 '불내려 태워버려도 족할' 여인 이세벨에 공포를 느끼는
이성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그 공포가
더 공포스러운 자신에
견딜 수 없는 혼돈으로
그냥 무작정 '공포'로 부터의 탈출을 감행한 거다.
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광야로.........
왜인줄 모르지만 '로뎀나무' 아래로...
로뎀나무는
하나님 앞에 있는대로 다 털어놓는 장소이며
하나님 앞에 위로 받는 장소다.
그의 죄..
그의 혼돈
그의 실망
그의 아픔
그의 논리적 뒤엉킴
그의 정체성의 흔들림
그의 병............
그 어떤 것도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 '피할 장소'.. '위로받을 유일한 장소'이다.
하나님 믿게 되고
가장 좋은 것............
아무리 끝없는, 좌절의 경우도
피할 곳이 있다는 것이다.
도피성,
'로뎀나무'
'예수님 십자가'
마지막이되
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을
유일한 희망의 장소.
로뎀나무...
이 대단한 '엘리야'가
가장 싫은 모습..
가장 강한 그가
가장 약한 모습을 보이는 ............그것이
이런 혼돈 전문가인 내게
한편으로 동병상련의 위로로 다가온다 .
어제 ........내 외적으로 모든 깨달음, 사통팔달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불'을
세상에 펼쳐내고 온 그인데
갑자기 급전직하다.
그게.......놀랍고
그 어이없음이 당혹스러우며
어찌 이해할까 싶지만
'영적 전쟁'의 어떠함..
그 마지막까지 '세상의 합리'의 틀로서 설명할 수 없는
집요하고 두려운 사단의 공격에 대하여
마음을 다잡고 바라보게 한다.
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그리고 그의 모습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보게 하신다.
익숙하다.
하나님 말씀 한마디,
임재 안에 머물러 있다고
금새 힘이 나고 아무 일없었던 것 처럼
사역에 새힘 받아 나오는 거 아니다.
여전히 '회복'이 필요하다.
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하노라 하는지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루만지신다.
'가라' 하지 않으신다.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신다.
그러하다.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
인생 모두에게 그렇고
영적 첨단을 앞서가시는 '엘리야'님에게도 그랬다.
삶은 '실존'이다.
영적 전쟁은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다.
어떤 모습으로 서 있어도 '광야 연단'.. 인생광야... 연단의 시간이
이 인생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고 피할 수 없다.
주님 부르실 그날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형태 '안에서
걸어가야만 한다.
잠시의 아픔,
잠시의 힘듦,.. 있을 수 있지만
멈추면 안된다.
'영적으로 죽는 거'다.
''네가 어찌하여 ......'' 라심은 그 말씀이시다.
자.. 가자.. 힘내라.. 가 아니다.
조용히 권면하시는 거다.
그게.. 힘이 된다.
엘리야도
그 대단한 영적 능력자도
하나님을 저처럼 가까이 독대하시는 분도...
겨우 '여인'하나에게 두번이나
그것도 '7년 간의 치열한 내적 연단'을 거쳐
이제는 되었다.. 할 바로 그때.........
이지적, 논리적,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두려움'..............
사단의 장난의 기초,.. 에 넘어져 버렸다는 자괴감으로
이렇듯 적나라한 좌절에 빠져 있음이
나도.............라는 개념으로
위로가 된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사역해야하는 그에게
서두르거나 초조해하며 미시는 ........그런 모습이 아니시고
위안, 위로 하시며
'깨닫길 바라시며' 기다리시는 모습을 보이신다.
그리고 그러함 중에도
반드시 '회복'은 필수 불가결한 지상명령이며
그 회복을 통하여
'광야 연단과정',
'인생 시험테스트'를 마쳐야 한다는 것은
지상 명령이니
아프고 힘들더라도
회복해야하기에
'네가........' 라 하심이시다.
그렇다.
힘이 들어도
힘을 주시는 하나님.
위로하시는 하나님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이에 일어나'라 했다.
그렇다.
또 다시 일어났다.
또 넘어졌지만
또 일어났다.
그리고는 '말씀'을 근거로
'음식물의 힘'을 의지해서라도
걸어갔다.
그 가는 끝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간건지...
그냥 일어나서 가야 하기에
가는 일에 힘을 낸건지 알수가 없다.
하지만 갔다.
그리고 그끝이 '호렙'이 된거다.
그거...
목표를 향하여 초조하고 안절 부절하는 모습이라기 보다...
일어난 다는 사실..
말씀을 근거로
은헤로 넘치는 에너지 받아 움직이는 그런 움직임이 아니다
소명을 근거로 '동기'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그낭 말씀이 있으시니
'힘'을 내었고
움직였다는 사실에 촛점을 둔거다.
그리고 예정되어 목표하였던 시간에 도달한 거도 아니다.
그 과정...
40주야.
그 때는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이세벨 도피' 당시와는 조금은 다른 '정결'한 마음..
빈 마음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힘든 것은 사실이고
기약없는 발걸음은 사실이지만
'초연'한 걸음....
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리고 여전히 도달한 '호렙'에서
'굴'을 찾아 들었고
거기에서 머무는 동안
또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렇다.
인생연단.
누구나 갈 수 밖에 없고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인생광야가 '대단한 엘리야'님도 벗어날 수 없을 뿐더러
영적 성장이 커질 수록
감당하기 힘든 '내면적 혼돈'을 동반한
더 큰 무게로 다가올 것이며
그 안에는 '의지'와 더불어
어쩌면 '말씀'은 있으시지만
이전과는 달리 '은혜'의 에너지..
불이 활활 붙어 탈것만 같은 자신도 모르는 뜨거운 열정이 동반되지 않은
'의지'를 요구될 것이며
그러함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끝모를 것 같은 끝에
'호렙'에 도달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은 끝까지 함께 하시게 되 거라는 사실이
힘이 된다.
어느 분의 말씀이
'감성의 밤'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때는 그냥 인내 하는 것 만이
가장 큰 은혜의 시간이었음을
돌아보면 알게 될 거........라는.........비슷한 취지의 말씀.. 말이다.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 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그리고 그러한 '마지막 연단'의 이유..
왜 하나님이
이렇듯
인생의 모든 당연한 예측을 넘어서셔
심지어...
심지어 '엘리야'님..
그것도 7년의 모진 연단을 마친 그러한 대단한 영성가 ^^*에게 까지
이러한 모짊을 허락하시는 지
그 이유를 알게 하신다.
'그가 대답하되
'내가'.......' 라 하고 나오는 구절이다.
아직 .......남은 것..
'나'라는 개념..
내가 하려 했다는 거.........
아무리 하나님의 이름을 들어내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엄청난 기적을 세상에 보이고
수없이 많은 '회심'을 그들 이스라엘 군중에게 불어 넣었을 것이 분명함에도
거기에 '내가'라는
'엘리야 자신의 만족'이 있었다는 것이 아니던가?
온전히 ........하나님이 드러나야 함'........
그를 인생에서 당연한 원리로 드러내야 하는 게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땅의 '연단과정'이 아니시던가?
그런.. 엘리야...
그런 과정을 너무도 잘알 그에게도
아직 깨닫지 못하고 교묘히 숨어있던 '사단'의 작전이
다시금 이 모진 혼돈을 겪은 '엘리야'의 입에서 튀어 나온다.
그 실체다.
내가 죽지 않아
이토록 혼란스러운 거다.
하나님 만이 온전히 내 '구주'가 되어야 하고
나는 온전히 '주하인'... 이 되어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하심만을
내 일생의 기쁨이 되어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내 온전한 목표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묘히.. 진득히.. 말이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보라.
이제.. 때가 되셨든지
주님께서 보이시고 말씀하시고 깨닫게 하신다.
''주하인아(아.... 엘리야야..하심을 제게 하시는 말씀으로 듣고 싶어서..^^*)
자... 보라..
바위가 바람에 날려가고
산이 부서지고 바위가 부서지며
지진이 나 세상이 부서질 듯하는데
그게 하나님이 하심을 분명코 앎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하나님이 보이시느냐?"
...........
기적.....은혜.........은총......이적.............
그 모든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임에도
그게 과연 하나님의 원하시는 본질이실까?.......라는 물음아니던가?
"세미한 소리"
그렇다 .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 .
그 모든.. 인생..
우리네 삶속에 행하시는 그 어떤 것...
우리가 이루어낸 그 모든 것...
그 안에 이글 이글 간증거리로 보여지는 것..........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이 하신 것은 맞고
우리네의 지금까지 오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하나님의 도우심이 맞지만
그 자체보다는
'세미한 소리'로 표현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설령.. 바위..지진... 도 있거나 없거나
은혜,은총.. 기적.. 이 있거나 없거나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이 세상에 세워진 나..
그 본질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중요하다는 이아기며
그 모든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대화..
하나님의 말씀을 가로막는 '내 자아'의 죽음..
십자가에 완전히 못박은 '내 자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그대로 내 삶에 전해지는 것을 듣는 다는 그 사실만이 중요함..을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화로
내 삶의 어떠함에 맞추어
적절하고 동일하게 깨닫게 하심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17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19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그러시면서
그의 '일생의 동기' 을 깨우신다.
충~분한 위로와 깨달음과 회복의 시간...
그처럼 충분한 7년의 시간을 허락하였음에도
아직.. '약한부분', 약점, 결점이 남은 '엘리야'...
그의 'weak point'인 '이세벨'로 대표되는
영적 자극점,
그 내면의 유약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생'길은 결코 포기할 수 없음이며
그에게 '조심스레이 '.....길을 제시하신다.
다시...
''하사엘... 예후 (그러고 보니 이스라엘 왕으로 . 아합은 이제 끝난다는 의미 아니던가? 이세벨도... 자연스러운 예언 , 자연스러운 주님의 피할길. ..사랑하는 자의 약점을 보호하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실제.. ).. ." 를 세우되
도저히 감당할 수 없으니 (아.. 내 느낌.. 내 눈치 ^^* 상.. ㅎ) 엘리사를 대신 세워서 그리해라" 라 하신다.
그러시면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을
'엘리야' .. 이 도저히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숙명적 문제를 가졌으나
너무도 사랑하시는 자를 위하여
'내가..' 라시며
하나님의 뜻이 이러시니
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목표.. 연단의 완성을 이루되
피할 길을 마련하여
대신할 '엘리사'와
그 막연하고 두려운 공포 속의 하나인 '외로움'과
그에 따라 치밀어 오르는 '공포'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근거가 없음을
'칠천 선지자'라는 동료에 대하여 밝히 말씀하여 주신다 .
하나님께서 대개 '상징'으로 말씀하시지
이렇듯 뚜렷이
당신의 의견을 개진하시고
배려의 장치를 설명하시며
하나하나 다 깨닫게 하시는 게
그리 많던가?
엘리야에 대한 '배려'
그의 특질에 맞추신.........깊은 배려 아니신가?
오늘
엘리야.
이 대단하기만할 거 같은 선지자의
병적 유약함.. .
정말 'weak point'를 보고 있다 .
그 부족한 자를
그 결점이 있는 자를
그 놀랍도록 약한 자..(정말 심리적으로 유약한 자 아닌가? 아기처럼 보호하시고 기회를 주고 또 기회를 주시고 강력한 영적 에너지를 쏟아 부어주셨음에도.. ㅠ.ㅠ)
그러나 세상이 보기엔 '불을 뿜는 기적의 선지자' 인 그에게
주님은 정말 세심한 배려와 인내와 보듬어 안으심을 주셨다 .
더구나.. 주님의 원하심을 뚜렷이 말씀하심으로
이 불편한 인생을 그래도 끝까지 이루어 나가야 함을 말씀하시고
그 안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기적'과 '이적'과 '대단한 하나님의 위용'보다는
'진정하신 하나님'과의 '이땅에서의 교류'의 중요함은
'말씀' 이시란 거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통하고 인격적 대화를 하며
손잡고 주님 부르실 그날까지
하나하나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
때로 다가오는 주변과
하나님이 필요하신 타인을 위하여
내게 허락되어진 '달란트'를 최선을 다하여 발휘해냄으로
그들에게
세상에게 '옳은 길'을 인도하는 '매개체'로 살다가
부르실 그날에
'성화'된 인격의 영혼으로 소천하는것.. .
그럼으로
영원속에서 주님의 기뻐하시는 순결한 영혼,
성화된 자로서
영생을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
완전체로 부활된 영생의 삶.. 말이다
그러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매일 말씀을 듣는 것..
인생의 그 버거운 어떠함,
내면의 도저히 어떠할 수 없는 것으로 어쩔수 없을 때 조차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유지가 됨을 인식함 만으로
다시 힘내어 나갈 수 있음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머지........
위로와 위안..
삶의 나머지 나아가야할 목표에 이루고 못이룸...
삶속에 우리의 기도가 주님의 응답이 있고 없고.....
그것을 '주님의 함께 하심'..
우리가 잘 나가고 못나가는 판단의 기준이 되지 않아도 됨을
오늘 보여주심이시다.
오늘..
특별히 엘리야 선지자.. .
더 대단한 분의 '우울'기질..
공포..
순간 쉬이 넘어짐........이
아주 '심해'..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약하고 깨지기 쉬워
거의 ............뭐 ..........그러함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흔들림..
그러한 특별함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리 큰 '제약'이 아님을 보게 됩니다 .
그게 힘이 됩니다.
정말 힘이 됩니다 .
참으로 길게도 묵상을 이어가지만
그 모든 것이
제게 너무 익숙한 내용들이라서 그렇습니다 .
이 불안 전문가..
이 부족함 덩어리
이 습관성 망각환자....
왜 살아야 하는 지 모르겠다고 나를 주저 앉히는
아주 아주 오래된 어두움들... 우울.. 기질.. ㅠ.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거부할 수 없이 강한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제 인생을 이끌어오신 뚜렷한 하나님의 증거..
찬양을 할 때.. 사진을 찍을 때..
가끔 은혜 넘쳐 나도 모르게 물흐르듯 이어져 타이핑을 쓰게 하시는
그 놀랍고 뜨거운 증거들..
삶속에 간증거리로 점철시켜주신...
내 먹고사는 방편................
가족간의 회복..........
그 어느것 하나
바위가 날아다니고 지진이 일어나고 ...........
말그대로 상전벽해의 간증거리들이 아닌 것이 없지만...
그 안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그러함에도 '세미한 말씀을 듣는 다는 사실'........
그것을 제게 위안해주심을 느낍니다 .
주하인아..
네 모든 결점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너를 사랑하고 인도하고 이끌어 오는것..
하나님의 말씀 자체..
어떤 상황.. 비바람 .. 기적..........
그어떤 날 흔들고 시선을 흐리게 할 조건들에도
주님의 말씀 만으로
내 삶의 방향을 잡아
하루하루만 살아가는
이 기적적인 태도를
정말 옳게 보신다고
도장을 찍는 거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여.
오늘도 힘을 내 살아갈 조건..
또 하나
확신으로 주셨습니다.
거대한 비전,
쓰임..
쓰심..
순종. .
자질...
다 .....모르겠습니다.
오늘 하루만 말씀하신거 붙잡고 살겠습니다
내 주여
거룩하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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