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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늙어감에 대하여[창24:1-27]

주하인 2020. 2. 3. 11:28



1.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아내 사라가 죽을 때 127세 , 아브라함은 10살 많으니 137세 이후에야

나이가 많아

'늙었고' .. 라고 나온다. ^^*


그가 늙은지가 언제인데.ㅎ

아..사라가 90살 넘어서도 아비멜렉에게 납치(^^;;) 될 정도의 미모를 유지했음을 감안해도

또, 스스로 그 전에 임신불가의 몸을 인정한 것을 생각하여도

현대의 50대 여인 중에 아주 아주 가끔 미모를 유지하는 분들 (특이 체질, 동안 . 격한 운동으로.. ㅎㅎ)임을 감안해도

그때의 아브라함 나이가 110살, 현재의 60대에 준하는

잘 관리한 남자라 생각해보아도

60대가 안늙은 남자라 생각하긴 어렵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사라가 죽은 후 , 한참이후에야

'나이가 많아 늙었고'..........라고 나온다 .


'나이가 들어도 젊은'것

젊어 보이는 것 '복'이 맞다.

그런데

그제야 '복'을 주셨다고 나온다 .

늙었는데 '복'.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심이던가?

내게..

오늘?



늙음.

노인,.. 에 대하여 묵상해보라하심 처럼 느껴졌다.


 늙었다는 것.

결국 오늘 말씀을 슬쩍 추론해보아도

나이가 결정한다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늙음은

자신이 늙었다고 인정하는 순간 '늙게 되는 것' 아닐까?
 현대에 많이 나오는 이야기

나이는 '수치'에 불과하다고........하는 것.

그래서 몸짱 노인..

어제 신문에 중국에 84살 먹은 '우한폐렴'에 적극 도우러 가는

몸짱 '노인' 얘기가 나오더라.

그분.

노인이지만 '그리 늙어 보이진 않음'이 맞다.

그런 분을 '노인'이라 칭하기는 좀 그렇긴 하지만

과연 그렇다고

몸을 가꾸고

좀 근육이 붙으면

안 늙던가?

안죽는가?

행복한가?

싱싱한 젊음,

아.. 청춘의 모든 것을 다 회복함이 가능하던가?
청춘이라면

'생기'.. '임신 가능성'...........뭐.. 그런거.

생각의 발랄함.......도 있을까?

 그렇다면

작금의

늙음과 젊음의 차이...

노인과 젊은이의 차이를 무어라 규정할 수 있는가?

분명코

오늘 말씀에는

140살 다되어,

현대의 대충 (무리해서 잡은 ) 비교 나이가 90살 정도인데

그제야 '늙었다'는 표현이

과연 육신과 정신의 늙음을 기준으로 잡은게 맞던가?


아닐 것임이

아주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늙지 않은 특성이 무엇이던가?

일단,

생기.. 다.

늙어도 '사라'를 임신 시킬 정도의 생기는 있었다 .

이것..

그렇다고 늙지 않기 위해 새장가 , 새시집 가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생기.. 라는 의미에서 말하는 것이다.

생기

흐름 

발전 

더 나아짐.

젊음의 특성은 자꾸만 변해 가는 것이다. 

좋은 쪽으로 발전. . 말이다. 


 노인이 왜 노인일까?
희망이 없고 소망이 없이

하루 하루를 죽여가는 매일이 되어가기에 그런게 아닐까?

더 이상의 소출이 없는?

소출이라면 위에서 '임신'을 이야기 했지만

무엇인가 '생산적'인,

creative.. 의 능력이 소실되어

사망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는 자들이

나이든 자 아닐까?
그런의미에서 젊었지만 '의욕'이 없고 하루 하루를 의미없이 죽인다면

젊되 젊지 않은게 아닐까?


물론, 육신의 능력이나 외적인 부분도

자기 관리를 통해

아니면 드물지만

천부적 유전인자에 의하여 덜늙은 자도 있을 것이다 .ㅎ

위에 예를 든 84살 먹은 젊어보이는  노인의사 분이나

울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만나는 몸짱 70대나,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오는 철근 근육의 .. 그런 분들..

노인, 할아버지..늙은이,.. 라고 부르기에는

죄송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


 마음의 흐름... 이 중요하지 않을까?

진정한 미용은 마음 가짐이 있다는 것은

굳이 미사여구가 아닐 것이다.

긍정적이고 밝게 사는 분들은

아직 아름다와 보이기도 한다 .

정말 죄송하게도 ~

가끔, 아주 드물게도

산부인과 외래에 오시는 70대 중반 여성 분께서

아름답게 , 솔직히 눈이 한번 더 가게 매력적여 보이는 분도 있다. 

그 분을 '할머니'라 부르기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해가 가지 않을 .. 그러한 아름다움이 

아마도 그 분의 품위, 

내적인 아름다움에서 풍겨나오는 어떠한 느낌과 더불어

거기에 외적인 관리가 이루어짐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 '나이든 젊음'.. 젊으신 노인 분들에게

'우울'이나 부정의 요소가 있으리라 상상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그들, 

젊은 연장자, 

나이든 청춘에게 주어지는 

내면은 어떨까?


 아마도 

감사함이 아닐까?

행복함 아닐까?



문제는 

그렇다면

이러한 젊음, 덜늙음, 노년이되 청춘이 되기 위한

조건들이 무엇일까?

어떠한 이유로 그들에게 그리될 까?

자기의 육신적 노력으로만 이루어진 그러함을 

과연 '젊음'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다 .

세상에는 

의지가 강한 분들이 있다. 

아니.. 

늙기 싫어,

늙었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현상으로 늙어 보이면 안되는 절박한 이유로 인하여

강하게 노력함으로 

육신의 그러함을 유지되는 분이 있을 것이지만

그들을 과연 '젊은'이란 단어라 할 수 있을까?

어느 순간.. 더 나이가 들어

세월을 이기지 못하거나

환경의 누름으로 인하여 

손발에 힘이 풀려 버릴 때

갑자기 더 늙어 버리는 경우도 있으리라.


 반드시 내적 감사함, 긍정적이 유지가 되어야 함이 맞을 것이고 

그러함을 넘어 

자연스러운 관조의 흐름.. 

모든 것을 흘려 보내며

자연스레이 'creation'이 유지가 된다면

그게 진정한 '젊음'일 것이고

더 이상 그런 나이든 자들에게는

아브라함에게 그러하셨듯

아직은 '나이든 '자가 아니었을 것이며

주님이 브르실 때가 되어야 

주님이 허락하실 때가 되어서야 

주님의 복 가운데 다 내려 놓고 쉬다가 

하늘나라로 소천되는 것이 될 것임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내적인 통합, 

감사의 흐름은 어찌 이루어지는 가?

 

 당연히도

하나님으로 부터 주어져야 한다.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성장으로 받아 들여 이루어진

영적 성화의 결과 물이어야 한다

 선천적인 것의 한계.. 는 생물학적 한계, 

노력으로 지연된 노화는

환경의 문제로 인하여 반드시 넘어져 급속노화로 가게 되지만

하나님으로 부터 허락되어진 자들의 그러함은

자연스럽고 더디게 이루어진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에게는 

늘 감사함이 동반되어지고 

그러함은 노화를 지체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ㅎ

그리고 현상으로 

날로 발전하게 된다. 

주님이 멈추라 하시는 그 때까지

점점 더 나아진다. 

그 외적인 결과로 

덜 늙게 된다. 


나.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사라를 임신 시키던 

그 나이와 대비되는 나이에 서 있는 자다 .

사회적으로 '노년'에 속해 있음이 맞다. 

그러나,,

난.. 아직 'creative'한게 맞다. 

블로그에 매일 말씀을 통해 깨달아지는 글들을 올리고

사진으로 창작하고 

동일한 곡이지만 이전보다 훨 깊고 감사한 찬양을 부를 줄 알고

아........사회적으로도 , 현실적으로도 

개선된 인정을 지난 주 받았다 ^^*

 수영을 오래하게 됨 (이것도 간증을 오래전에 올렸다. . 허리 아픔으로 어쩔 수 없이 하게된 수영) 으로

아프지만 잘 조율되어 나이보다 건강해 보이는 ......

...........

 내적인 면.

내 하루의 주요 감성은 '감사함'이다. 

소망이 있다. 

매일 살아가야할 이유가 크다. 

말씀으로 맞추어 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큰 '은혜'의 깨달음과 더불어

그로 인한 

실제적 내 삶의 변화를 기대하게 되고

돌아보면 

기도와 몸부림의 노력 후에 하나님 앞에 아뢰어진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실히 체험하고 있으니

그 매일의 말씀으로 인한

삶의 기조의 유지됨.......이

난.. 아직도 기대된다. 


 아.........

이전......불신의 시절, 

오랜 동안 그 후의 주님 앞의 몸부림의 시간에 비하면

참 많이 달라 져 있음을 스스로 안다 

그러니 내 앞으로의 그러함이 기대가 

또 된다. 

 그것.

'나이 많아 늙으니'의 소리 듣기에는

아직 

아브라함님의 그 때가 되기 전까지 처럼

시간이 좀 남아 있는 듯느껴진다. 

아직 청춘.........의 나이든 자.


 왜 

이리 

내 덜 늙음에 대하여 

기뻐하고 자족해야 하는가?

오늘?


 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루, 하루 

매일 매시

늘.. 항상

똑~같이 유지됨은 아니라함을 말하는 것이며

그러한 덜 늙어가는 자로서의 

나이든 청춘의 감성이 

점차로 더 크고 오래 

이후의 나를 지배하게 되길 기대하게 하심인 듯하다. 

감사하다 .



주님.

솔직히 

자주 눈치를 살핍니다. 

주여.

이 눈치의 문제... 

제 오래된 터부입니다. 

믿건 안 믿건 

주관적인 것이고 

그 주관적 오류의 문제로 

대부분 인생들이 다 누구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제게는 큰 문제중 하나 였던 흔적이 남아 

나이든 저로 하여금

자꾸만 위축되게 하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


주여.

은혜로 인하여

말씀으로 인하여

그 부분보다는 

감사함과 소망의 시간이 늘어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세상에서 남아 있는 시간이 점차로 줄어든 자로서의 

그러함을 가끔은 힘들어 한 것도 사실입니다. 

주여.


그러함을 아시는 내 주께서

진짜 나이든다는 것.. 

진정 늙음의 의미가 어떠한 것을 확인 시켜 주십니다. 

감사합니다. 

내주여.

주신 은혜,

베풀어주신 환경,

모든 것 감사드립니다. 


주여.

주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한, 

젊음이 유지되어

힘있게 살아가고 

소망있는 삶이 유지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내 주여. 

홀로 하나니이신 여호와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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