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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잘 풀릴 때 해야할 조심(왕상9:10-2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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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잘 풀릴 때 해야할 조심(왕상9:10-28)

주하인 2010. 9. 27. 10:32

제 9 장 ( Chapter 9, 1 Kings )

 

주님.

그래도

주님의 은혜 뿐입니다

 

제 영혼

광야를 뛰어다니는

야생마 같이

그냥 두지 마소서.

 

주님의 고삐로

절 잡으소서

 

말씀으로 그리하시고

좋은 계기로 그리하소서

 

주위를 배려하게 하시고

늘 회개하고

주님을 인식하게 하소서

 

더욱 그러소서

 


10.  솔로몬이 두 집 곧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이십년 만에 건축하기를 마치고 
 제대로 된 공사를 마무리 하고나서..

 

12.  히람이 두로에서 와서 솔로몬이 자기에게 준 성읍들을 보고 눈에 들지 아니하여  
13.  이르기를 나의 형이여 내게 준 이 성읍들이 이러하뇨 하고 이름하여 가불 땅이라 하였더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있으니라  
14.  히람이 금 일백 이십 달란트를 왕에게 보내었더라
  히람에게 제대로 댓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도운 사람을 서운하게 함은 잘못됨이다.
 
15.  솔로몬 왕이 역군을 일으킨 까닭은 여호와의 전과 자기 궁과 밀로와 예루살렘성과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을 건축하려 하였음이라
  또 다시 역군을 일으켰다.

여호와의 전과 왕궁 만 가지고도 부족하였던가?

무엇이 이유던가?

돈이 부족해서인가?

명성이 부족해서 이던가?

혹시...

가만히 있는 것은

'주님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는 실적 위주의 다급함이

그를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니던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주님을 위한 것'이던가 혹시 '자신의 안절부절 탓 아니던가?'

그럼 다른 무엇이 있던가?

 
 
16.  전에 애굽 왕 바로가 올라와서 게셀을 탈취하여 불사르고 그 성에 사는 가나안 사람을 죽이고 그

     성읍을 자기 딸 솔로몬의 아내에게 예물로 주었더니 
  애굽 왕과 왕비이던 바로의 딸을 염두에 둔

어쩔 수 없는 힘의 역학과 사랑에 의한 배려는 아니던가?


 
19.  자기에게 있는 모든 국고성과 병거성들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하고 솔로몬이 또 예루살렘과

     레바논과 그 다스리는 온 땅에 건축하고자 하던 것을 다 건축하였는데
  다 건축하고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는 것이

과연 자신과 하나님과 백성을 위한 것 만은 아니지 않던가?

이 역사는 백성, 즉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고

또한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명령과 연관되지도 아니했다.

그렇다고 죄는 아니지만,...

 


25.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단 위에 해마다 세번씩 번제와 감사제를 드리고 또 여호와 앞에

     있는 단에 분향하니라 이에 전 역사가 마치니라
 솔로몬은 분명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긴 했다. 

 

 과연 '위정자'로서 어디까지 어떻게 행동을 해야 했던가?

그의 왕국의 확장이 추후 이스라엘 역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었던가?

단지 부국강성했던 과거의 한때 이외에는 무슨 이익이 있던가?

그는 분명히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과정에 있었다고 생각하고

일을 진행하였을 것이며

어쩌면 그 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의 '자존감'을 높이는데는 영향을 미치었을 지 모르지만

많은 분들의 고난과

고생했던 분들의 '불만'이 쌓였을 수도 있는 행위였다.

비록 그게 '죄'는 아니었을 지 몰라도

죄의 모습을 가질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죄라기보다 솔로몬의 모습을 보며

인간들이 너무도 잘 지을 수 밖에 없는 패착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성공'을 이룬 자들의 공통적 특징,

믿는 다 하면서 '자신의 의'를 '신앙'으로 착각하는 자들의 패착에 대한 것이다.

 솔로몬은 시작부터 '대박'의 성공을 했다.

더구나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들었다.

그러니 무엇을 해도 걸림이 없을 것 같았다.

무엇을 해도 자기는 옳을 듯 했다.

그러나, 그는 실수 한 것이 있었다.

하나가 '히람',

아버지 다윗 때부터 절친한 분이자 자신의 일처럼 도와준 분을

서운케 한 것이다.

 또한 , 애굽 , 그 강대한 나라의 외세에 대하여 적당한 두려움으로

그들과의 친교를 맺되

거기에 하나님과의 상의한 흔적이 없으며

벌써 아내로 이방여인을 맞아 들인 것 부터 잘못이다.

또한  자신의 백성들의 고생은 생각지도 않은 잘못도 있다.

무엇보다 일을 진행하면서

진행하기 전에 먼저 기도했던 흔적이 없고

진행 과정에서도 자신을 돌아본 흔적이 없다.

 이게 '고생없이 성공의 가도를 달려온 자'들의 위험한 모습처럼 보인다.

 

 난 (오늘) 이런 실수 하는 것은 없던가?

하나님의 뜻,

이웃의 뜻,

나의 뜻

이 세가지 모두를 채우는

소위 '정의란 무엇인가?'에 진정한 '정의'에 가까운

3가지 모든 조건에 합당한 정의를 깨는 일은 없던가?

그러면서 솔로몬님 처럼 자신의 일을 하나님의 뜻이지 착각하는 일은 없던가?

 

 거의 한달 간을 힘들어 하던 문제,.

하나님의 은총으로 잘 풀렸다.

하지만, 과정에서 깨달은 바가 없지 않다.

내가 너무 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가슴앓이 했던 것.

논리적으로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럴 수도 있겠지..하던 것이 진짜로 깊이 그 사람을 가로막아

나에게 연락하나 하지 못하게 했고,

그것은 역으로 더욱 나로 하여 깊은 상처를 가져올 뻔 했었던 것.

난 ,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 해결 받으려

모든 판단의 근거를 내려 놓고 기도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급기야 어떤 계기로 인해 터져 버린것이다.

터져 버리게 한 계기야 반드시 상대의 잘못이긴 하지만

그 해결과정이 날 서운하게 하고 상대를 서운하게 했던 깊은 이유에

내가 늘 '이것이 옳다'고 강하게 생각해왔던 점이라는 사실이다.

더 이상의 상대에게 사과나 회개의 틈을 주지 못하게 막아 왔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나.

오랫동안 말씀 안에서 정결화 되어 간다면서

이것이 나 만의 옳다는 인식하에

나와 다른 면의 신앙은 일체 무시하여 버리는 태도가 있지 않았나 싶다.

그것은 그 상대에게 '될대로 되라'는 어이없는 판단 착오를 가져오고

깊은 반발심을 가져왔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기에 조금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던게

크게 터진 것인 지도 모른다.

 히람이 '가슴앓이 하며 '카불'이란 이름을 지었지만

금을 보내온 것처럼...........

 성장 할 수록 그래야 한다.

많은 부분 주님의 사랑 안에서 잘 커온다고 생각할 때,

일이 잘 풀릴 때

그때가 다시 한번 돌아 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고

칭찬을 들었다.

그리고는 매사에 잘 된다.

하지만 그 사이에 '피 멍'이 드는 자가 있었다.

 

 내가 만일 지금의 깨달음을 가지고

그 당시의 솔로몬 입장에 있었다면 이랬을 것이다.

 일단, 바로의 딸을 멀리했을 것이다.

국제 정세로 함부로 대우 하지 못했을 것이고

어쩌면 사랑스러운 여인 이라서 멀리하기 어려웠을 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러려 노력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을 것이다.

 히람에게 더욱 더 신경을 썼을 것이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배려'였다.

나이가 들수록

신앙의 연륜이 커질 수록

진정 배려는 ' 신앙의 성숙'과 비례한다는 생각이 들어간다.

 그리고 '전'을 건축해도 되는 지

하나님께 매사에 되묻고 되묻고 했을 것만 같다.

그리고 회개할 것을 회개했을 것 같다.

그래야 그게 옳은 '삶속의 영성'이 될 것만 같다.

 

다시 돌아와

내 일상의 삶 속에서 오늘은 어찌 적용할 것인가?

내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다.

식사를 하려 갔다.

조금은 덜 달가운 마음이 드는 분과 대화를 하고 식사를 마쳤다 .

물컵 통 앞에서 내 것만 빼도 되지만

조금 허리 낮추어 몇개 더 꺼냈다.

같이 나누어 먹었다.

 

점심시간 시간에 환우가 왔다.

부탁이 오셨다.

안양시 모 .. 동의 '여성 동장님'이시다.

진료 해달라신다.

 '울컥' ..

가진 자들에 대한 반발심이 올라오려 하지만 낮추었다.

까짓 거...

영성으로 받으면 되지..

아무렇지 않다.

 

 힘들게 하시는 분들.

잘 이겨내고 있던가?

회개할 부분은 없던가?

남아 있는 시간.

내 불편한 레이더에 걸릴 사람들이 몇 있다.

그냥 가면 또 걸리고 그들을 미워할 지 모른다.

레이다 끄고 가리라.

 

 어려움이 나름대로 잘 해결되고

비교적 당당하고 부드럽게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해결되어가고 있기에

난 또 한번 하나님의 뜻 안에서 승리한 승리자가 되어

코가 높아질까 두려워 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인 듯 하다.

 

더 조심하리라.

더 낮추리라.

말씀 앞에 더 서리라.

 

 

예수 그리스도시여.

감사하나이다.

자꾸만 목소리에 힘이들어가고 조금은 더 단정적으로 되어가는 제어투를

제가 느끼고 있습니다.

이때는 제 안에 '성공'한 자로서의 교만함이 섞여 있었던 것을

과거의 경험으로 잘 이해합니다.

주여.

솔로몬의 성공을 통한 몇가지 패착을 보고 있습니다.

주여.

그 보다 너무도 부족함이 사실이지만

저...주님 그리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이웃을 좀더 배려하는 눈을 허락하소서.

하나님과 좀더 친밀한 시간을 가지게 하소서.

주님앞에 회개하는 내려놓음을 가지게 하소서.

더 그리하소서.

말로 만 말고 진정으로 그리하게 하소서.

예수그리스도시여.

주께서 도우시면 그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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