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내 이름이 주하인이다( 왕상 9:1-9 ) 본문
제 9 장 ( Chapter 9, 1 Kings )
1.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과 왕궁 건축하기를 마치며 자기의 무릇 이루기를 원하던 일이 마친 때에
' 이루기를 원하던 일이 마친 때.'
솔로몬 님은 성전건축과 왕궁 건축을 이루길 마쳤다.
난, 내 삶에서의 어떤 것을 완성하고 주님을 위해서 어떤 것을 마치었던가?
온전한 완성은 아니다.
기본 틀이다.
못마치고 늘 부족히 살아왔던 나 자신에 대하여 열등감 느끼라는 말씀은 아니신 듯하다.
아침에 예배를 드리고 왔다.
누가복음 15:25-31까지 ' 탕자의 형'에 대한 내용을 설교하시면서
목사님은 '정의'라는 부분에 힘을 주어 설교를 하셨다.
요새 인문학책으로 드물게 베스트 셀러 반열에 오른 '정의란 무엇인가'를
필두로 '정의' 차원에서 접근해 들어가시며
정의에 대한 정확한 '정의定意'를 잡지는 않았지만
정의에 대한 큰 세가지 틀로서
공동체에 해가 안끼치는 가, 미래의 공동체에는 영향을 나쁘게 안미치는가,
또 하나는 기억이 안나지만 그런 틀에서 바라보아야 한다시면서
'형'이 나름대로의 좁은 의미의 정의 차원에서
자기 권리를 주장 함은 정확히도 뜻은 맞으나
아버지의 아들, 동생의 형으로서의 정의는 무시되고 있음이 안타깝다 하시었다.
그러시면서 '관계'를 깨뜨리는 어떤 세상적 합리 주장은
그것이 정의 범주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씀이시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의 관점을 말씀하시는데
요즈음 내가 겪는 일을 정확히 집어가시는데
끄덕이게 되었다.
그런의미에서 솔로몬이 '이루고자 하는 일'은
나에게는 ' 정의' 로운 관점에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 '관계'를 해치지 않는 일을
이루었던가 하는 것이다.
죄.
죄는 나로하여금 그러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러지 않으려 말씀으로 잡아가고 있는 '과정'이다.
이루고자 하는 일을 예전보다는 조금 더 이루어가고는 있다.
'정의'
나에게 있어서의 정의는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맞추어 나를 내려놓고
타인을 위해서 살아가며
그것을 나의 긍휼한 마음의 확장으로 삼아가는게
내가 정의한 '정의' 였다.
그런의미에서 '아직은' 이다.
그러나, '그러나'다.
되고 있다.
2. 여호와께서 전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 같이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읽던 책에서 '헤카시즘'이라 나온다.
러시아 정교회에서 전통을 이어받은 수도자들의 기도 방법 중,
심호흡하며 깊이 숨을 들이쉬는 과정에서
주님을 연상하거나, 어떤 문제를 주님 앞에 가져오는 것을 연상하는 등.. 연상하면서
내쉬는 과정으로 '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하고 소리를 내는
짧은 기도만 되풀이 하는 과정으로 하루에 수천번 까지 되풀이 하면서
성자의 반열까지 성화되신 분들이 있다고 써 있어서
어제 '기도원'에 의지적으로 올라가 - 마음이 뒤죽 박죽이었다. 내 생일이기도 하고 ... - 어려운 그 마음으로 성전 제일 앞에 앉아 집중 되지 않을 것이 예상되는 바,
그냥 '헤카시즘' 적 기도를 해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그냥 숨을 들이쉬며 그 성전 앞에 서있는 큰 십자가를 떠올리며 심호흡하고
'말씀구절'을 입으로 고백하려 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으로 고백하고 방언의 영으로 고백하고..'라는 연상이 되더니
나도 모르게 계속 깊은 방언 고백이 쏟아져 나오며
마음의 입술고백도 나오며 자제 하기 어려운 뜨거운 기도가 몰려 나왔다.
눈물이 쏟아짐을 자제 하기 어려웠고
내 몸은 나도 모르게 움직였다.
희한하지만, 당연함을 깨달았다.
주님이 날 기뻐하심을 난 알았다.
상황은 '죄하인'으로 손가락질 받기 충분했지만
내가 그 후에 선택하는 과정은 '주님 안에서의 해결'이었다.
주님이 내 앞에 나타나시었던 것이시었임을 이제는 깨달았다.
3.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
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내가 '주하인'이 되려는 내 정체를 잊지않고 의지로 몸부림을 친 것을
주님이 기뻐하셔서
마치 오늘의 솔로몬의 앞에 주님이 다시 나타나신 것 처럼,
기브온의 그 하나님 처럼
언젠가 내가 주님과 친밀하던 그 기억 가물거리던 시간처럼
다시한번 뜨겁게 당신의 흔적을 나에게 보이시던 것이었다.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다.' 하시는 것만 같았다.
오늘 묵상 구절에 그리 나오지 않으시던가?
'너의 건축한 전'
나.
정말 엉터리 같은 자다.
나이가 오십이 넘었음에도 어찌 그리 불같은 조급성이 있는가?
어찌 그리도 타인을 배려하는 습관이 없던가?
그럼에도 주님이 나 이렇게 구별하셔서
날 특별하게도 '건축하시려는' 그 사랑이 각별하게 느껴져
나
그냥 지금껏 목숨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마음 한구석에 너무도 감사하며..
이제 그러신다.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
'나의 이름'
"나 KBC는 KBC지만 '주하인'이다."
그러기에
내 이름.
내 정체.
나는 ' 하나님의 전'이자 '주님이 사랑하시는 주님의 아들'이지만
주님의 청지기 , 주님의 종으로 나 자신을 낮추길 원하는 '주하인'이
내 이름이다.
그 분이 나를 기뻐하셔서 주권적으로 내 영혼에 이름을 걸어두시겠다니
내 이름이 그렇다.
영원히 그렇다.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라 하신다.
주님께서 불꽃 같은 눈으로 나를 보신다하신다.
참..조심스럽지만
참 든든하다.
내 마음대로 못할 것 같기에 조심스럽지만
일단 주님의 그 사랑을 맛보고 그 평강을 느끼고 그 은혜를 알아버린
나 주하인으로서는 난 그 눈이 '억압'이 아님을 안다.
'자유'임을 안다.
오히려 말이다.
'만해 '스님이 종교는 다르고 나라에 대한 충성심으로
님의 침묵에서 당신에게 억압당하는게 자유라 표현했던 것이
어쩌면 저리 어이없는 자에게서
저런 정확한 표현이 나왔는가 난 늘 감탄하고 있다.
그 분의 눈 안에 갇혀 그 감시에서 벗어나지 못함이
난 오히려 자유다.
그게 너무 기쁘다.
난 억울하고 힘들고 모두 떠난 듯 외로우려던 그날 저녁,
기가막힌 은혜를 또 맛 보았다.
그게 주님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내 죽도록,
늘 항상 거기에 계신다.
주님의 마음을,
그 놀라운 사랑의 폭팔할 듯한 에너지가
하늘 문이 열려 , 성령의 파이프를 타고
내 이 감당하기 어려운 육신 속의 영혼 안으로 밀려오는
그 환희와 감동의 전율을
모든 사람이 느껴 보길 원한다.
그게 왜 그토록 오랜 시간,
주님 주님 하며 사람들이 주님을 믿을 수 밖에 없는가 하는 이유임을
비록 막연하게나마 이해하게 되기 바란다.
주일이다.
아무 생각없이 갔던 교회에서 깨달음을 얻고
아무 생각없이 묵상 하려 앉은 컴 앞에서
난 또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에
그 분의 영원하신 마음에
그 분의 항상계신 눈총 앞에
또 이처럼 전율되어
주하인으로서 내 이름을
이 세상,
비록 허위의 인터넷, 가상 세계지만
이곳을 뚫고 보는 모든 이들의 영혼 속에
드세게 파여지길 원해지는
강한 욕구로 쉬지 않고 글을 쓰게 된다.
주님
귀하신 하나님.
사랑합니다.
비록 , 나
아직 주님이 원하시는 그 온전하신 이루어 냄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장래의 모습을 보여주심에 감사드리나이다.
주님.
귀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내 영혼에 영원히 두시고
당신의 눈,
당신의 사랑을
내 영혼에 항상 지켜 두고 계신다는 약속의 말씀이 어찌 이리 뜨거운지요.
참으로 감사합니다 .
부족하기만 한 제가
주님의 사랑의
주님의 사모의 대상이 되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감동스럽습니다.
주님
바랄 것은
원하는 대로 저도 이루게 도우소서.
주님이 그리하소서.
늘 그러셨듯 그리하소서.
이제 간절히 바랄 것은
수해로 고생하시는 분들,
경제적으로 어려움 당하시는 분들,
가정적으로 지옥의 어려움을 당하시는 분들
특별히 기억하시어
어서 회복되게 하시고
우리 가정도 온전하게 회복하시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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