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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주적 증거 앞에(행11:19-30 )

주하인 2007. 10. 3. 14:06

제 11 장 ( Chapter 11, Acts )

 

 

( 늦은 밤 강변에서 프래쉬 세례를 받은 들꽃 무리.

 안디옥의 불신자들이 주님의 말씀으로 살아나서 영혼이 빛을 발하면 이처럼 아름다웠을 겁니다. )


19.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한참 핍박이 일어나는 그 때에

주 예수님은

더욱 널리 전파된다.

 

 고난이 유익이라... 는 찬양을

여유로운 휴일의 묵상 터 옆에서 들려온다.

아내가 설겆이 하면서 부르는 찬양이다.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그리스도로 인하여 고난이 있는 곳에

그리스도로 인한 위로도 넘친다는

성경의 구절이 예외가 아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손이 나와 함께 하면 어떨까?

어릴 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세상 나들이 나가면

세상이 온통 내 것만 같았다 .

 

 이것 저것 맛있는 것도 사주시더라.

내가 노력도 하지 않았지만

아버지를 존경 -어린 아이 눈에는 다 존경하는 내 아버지로 보였다. -하는 자들의 인사가 내 것 만 같이

으쓱대졌다.

 

 주의 손이 함께 잡으니

수다한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왔다.

 

 가슴이 뜨겁다.

상상 만 해도 몸이 후끈 후끈하는 걸

지금 난 느낀다.

너무 편하고 안온하다.

시원한 개천절의 계곡 - 우리 집은 계곡 같다.- 바람이 춥지를 않다.

기쁘다.

 여기엔 그러나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그들이 행했기에 그러하시다.

 

개인적 위로는 행실에 상관은 없지만

초대교회의 모델적 부흥은

그들의 이 가슴 뜨거운 주님에 대한 열정과 그로 인한 견디지 못하는 전도가

주님의 손이 함께하셔서

그 분 하나님이

부흥시키는 역사를 하게 하시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뜨겁던 것은 식어져 간다.

열정적이던 것도

한번 씩은 시들어 간다.

 

그런데 그런 식음과 차가워 짐은

주님의 손이 함께 하시면 할 틈이 없다.

늘 주님 만 보고

주님 만이 이유가 되면

때에

전도하고

주님의 손이 함께하여

수다한 자들이 주님에게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아파트나

주식이나

노후나

재테크는...........

소명에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주님의 역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증폭이 되며 일어나는 양상을 보인다.

 

  이런 현상은

사람을 통해 역사하신다.

 

 거꾸로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바나바를 파송한다.

 

 예견하고 걱정할 일은

최소한

주님 안에서는 필요없는 일인듯하다.

내 혼자 만의 걱정인가?ㅎㅎ

하여튼

묵상은

늘 개인적인 것이니

주님은 나에게

걱정하지 말라 하시는 듯하다.

다 알아서 하신다고 하시는 의미이신 듯 하다.

 

 

 

23.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기뻐한다.

불모지의 이방 땅에서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하나님의 손길의 역사를 보고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NIV에서는 evidence of grace of God 이라고 적혀있다.)를 보고

기뻐한다.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보았지만

다시 한번

불모지 이 방 땅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짐을 보고

하나님의 역사가 분명코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그 우주의 전역에서 펼쳐지고 있으며

자신은 옳은 선택을 하고 있음을

그곳에서 발견하며 얼마나 기뻐했을까?

 

 자신의 옳은 일.

 

다시 한번 생각한다.

주식이나

아파트나

노후나

땅이나

재테크...의 이 땅의 것이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것.

그것을 향해 치달리는 자신의 목표가

인간의 힘 만으로는 얼마나 쉽게 흔들릴 것인가?

늘 경험하지만

기도하고 묵상하고 헌신하고 구제하면서

가끔가끔 오시는 주님의 은혜로만은

한번 씩 흔들리는 빈틈이 있을 때

소명이란 것은

이 큰 일에서 얼마나 바람 앞의 촛불 같은 가녀린 것일 것인가?

 

그러나, 그 분 바나바는

파견된 불모의 현장에서

거대한 주님의 역사를 다시금 보았으며

확인하고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고

옳았음을

아주 적은 시간이지만

다시금 확인한 게 뛸 듯이 기뻣을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뜻의 중심에서 자신이 쓰임을 받고 있음이 자랑스러웠을 수도 있다.

그러면서

이러한 우주적 역사의 한 중심에 동참하게 된

이 헬라 이방인들이 너무도 귀했을 것이다.

 

 손을 높이 들고

기뻐 소리라도 치고 싶었을 것이다.

'할렐루야 ~~!!'

그 격정을 가지고 그는 이렇게 외친다.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왜 굳은 마음이라 했을까?

자신의 흔들림이

이 들의 경험이 될 것이지만

그것은

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실존 앞에

반드시 거쳐 나가야 할

걸림돌이 될 것임을 알 기 때문이 아닌가?

걸림돌을 딛고

자신과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비밀을 아는

몇 사도들의 이 놀라운 경험과

하늘 나라 백성으로서의 엄청난 자부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건너야 할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기쁘지만

흔들리는

어리석은

주하인에게

개인적으로

흔들리지 말도록 하시는

주님의 오늘의 당부 말씀이기도 하다.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난

바나바를 닮고 싶다.

오늘 묵상에서

굵은 글씨의 말씀이

또 내 눈에 들어온다.

 

어제 집에와서

아내가 새로 꾸며준 서재에 앉아서

불빛 아래 노트북으로 자료를 정리하면서

오래전에 녹음된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들었다.

굵고 막걸리 같은 목소리의 그 분께서는

기적이 나오고

응답이 체험되어

지병이 낫고

암이 회복 될 때는

목사님의 설교나

성경의 말씀 중에

' 이 시간 ~이 나았다'라고 선언할 때

그게 남 얘기 같지 않고

찌릿하며 충격이 오는 듯하고

괜히 입에서 아멘 ..하면서 반응이 나오면

그 게 본인의 일이 되는 것이라 고 하셨다.

 

 들어가면서 끄덕였다 .

난 특별히 묵상하면서

어느 때 굵은 표시하는 부분 들이 살아서 눈에 튀어 들어오는 듯하다.

그때는 굉장히 강렬한 전율을 느낀다.

그러면서 그 말씀대로 어느샌가

내 삶에 대한 눈이 바뀌고

변화가 있음을 경험하곤 한다 .

 

지금 쓰는 이 글이

사진이

....

그러면서 개발된 감성 탓이기도 하다.

 

 바나바가

착한 사람이고

성령 충만한 사람이고

믿음이 넘치는 사람이란다.

 

글대로 표현은

초등학교 도덕책의 묘사랑 다를 바 없지만

묵상은 다르다.

 

이게 내가 나가야 할 방향이고

믿음이 어떤 것이고

어떤 결과가 있을 것이고

그 안에 있을 때의 그 평안함과

그게 내 것이 될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함과

그 믿음으로 인한

응답의 현실성이

그냥 끄덕여지게 된다.

그래서...

바나바의 믿음이 내것이 될 것이고

내가 나가야 할 방향이고

그 성령의 충만함이

내 일생을 이끌어갈 상태가 될 것이란 생각을 하면

가슴이 뛰기도 한다.

 

아..

이전에는

뛰지는 않았다.

지금은 심박이 10% 증가한다.

앞으로는 더 뛸 것이다.

ㅎㅎ

 

난 바나바를 닮고 싶다.

난 바나바를 닮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바나바를 닮길 원하는 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바램이시기도 하다.

 

난 그리 생각된다.

묵상하면서..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임의적으로 갔을까?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임의적으로 사람의 소리만 듣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느낌이 강렬하게 오거나

기도 중 응답으로 갔을 것이다.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

      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 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27.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잘나가는 데

예루살렘에서 다른 선지자 들이 온다.

자칫

자신의 소유로 삼고

안주터로 삼다가는

속상할 수 도 있을 바나바와 바울.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크게 번성한 교회의 목사님 중

존경할 만한 소수의 분들은

물려 주고

새로 개척하여 나가시는 분들도 있다.

 

주님의 것은

아무 것도 소유가 될 수가 없다.

 

나라고 다를까?

 


 
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뛰어난 분들이 있으면

그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주님이 원하신다 생각된다면 과감히..

그리고는

그들의 소리가 혹여

아픈 소리

나의 능력을 넘어서는 소리가 될 것이라 생각되어도

주님의 능력이라 생각되면

물러서야 한다.

 그들은 또 다른 큰 일이 있다.

바울은

세계를 향해

주님의 말씀을 뻗쳤다 .

특별히 

내 성으로 안주하고 픈

중년의 주하인으로서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휴식의 시간에도

말씀으로 인도하셔서 감사합니다.

귀한

주님의 살아계심을

현장에서 목도하듯이

체험시켜 주시고

바나바의 흥분과

그 시대 희망없을 시기의 희망이 넘치는  그리스도인 들의 역동을 같이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

내 삶이

바나바처럼 힘있게

이 땅의 쓸모없는 것들에서

하늘나라의 위엣것으로 관심이 바뀔 전조를 보여주심을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그 때까지

서서히나마

주님의 그 끈 놓치지 않고

나갈 수 있도록 도우소서.

특별히

우리 가정 지켜주소서.

주님 아시고 계시고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키실 줄 믿습니다.

오늘은

좀더

알찬 주님의 시간이 하루 중에 더 늘어나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순종하겠나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격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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