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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만의 특권( 왕하 6:15-23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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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만의 특권( 왕하 6:15-23 )

주하인 2011. 7. 13. 09:11

제 6 장 ( Chapter 6, 2 Kings )

주님

제 마음 받으소서

 

비록 적고 가냘프지만

 약하고 그리 소담치 못하지만

제 영혼에 흐르는

불꽃을 담아 드립니다

 

제 감사 받으소서

저에게 이런 특권허락하신

날 사랑하시는

주여

 

  

15.  하나님의 사람의 수종드는 자가 일찌기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는지라

      그 사환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사환이 그랬다.

'아~~ 아~~

 내 주여.... 어찌 하리이까?'

 

그 심정의 절박함이 그대로 읽혀진다.

하나님을 향한 절박한 간구.
  
  
17.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

      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그 절절함은 주님께 들려진다.

그리고는 그 눈으로 ' 불말과 불병거'가 가득함을 보게된다.

'할렐루야 ~~!! '

 
 

21.  이스라엘 왕이 저희를 보고 엘리사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이스라엘 진영으로 눈이 멀어 들어온

'아람'군을 본 '이스라엘 왕이 놀랍고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

'아버지여~~~ !' 한다.

저 본능적 탄성을 보라.

'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그런다.

 

그렇다.

당연히 쳐야지..

인간의 눈으로 보아선 그게 너무나 합당한 이야기지.

그 본성대로라면...

 

  
22.  대답하되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 주인에게로 돌려 보내소서
 그러나, 엘리사님은 그런다.

'설령 당신의 칼과 활로 잡은 자라도....'

하나님이 다 하신 것을... 어찌.. 라는 의미다.

 그리고 오히려 적군을 먹이고 마시게 해서 돌려 보내라 한다.

 

잠시 생각이 멈춘다.

마치 삼국지나 열국지에 나온 지혜로운 장수 같다.

엘리사.

그런 훈련을 받아 본 자든가?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23.  왕이 위하여 식물을 많이 베풀고 저희가 먹고 마시매 놓아보내니 저희가 그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그렇게 하니 다시는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 땅을 침범 못했다 하니..

이야말로 손에 피 안묻히고 영원하고 완전한 수비를 하게 된 것이니

그의 배우지 않은 지혜가 얼마나 대단한가?

 사람의 지혜.

 하나님의 주신 지혜.

비교되는 바가 크지 않는가?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자의 지혜로움.

그것이야 말로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이고

물흐르듯 가장 선한 방법을 얻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 두 사람의 전적인 인간적 모습을 보고 있다.

그들의 외침과 탄성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할 '두려움'과 '예기치 못한 행운'을 볼 때

나오는 반응을 적나라 하게 보고 있다.

그러함에도 그들과는 달리 전적으로 차분한 엘리사님의 모습이 대비가 된다.

그리고 그의 판단력의 뛰어남에 감탄한다.

 

그렇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들은

두려워 할 일에서도 진실을 본다.

약함이 약함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강한 인간적 능력을 지닌 자들은 그의 사환이 본

그 불병거와 불말을 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지 않는가?

 '해바라기'님의 블로그에서

이쁜 시를 보고왔다.

그 시에서 약한 자로 살아가야 하는 자의 고뇌가 읽혔다.

그래서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그 약함을 하나님 앞으로 돌리는 순간,

불말과 불병거를 볼 기회가 생긴다는 사실은

세상의 원리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을 일이지만

우리 믿는 자,

주님을 사모하는 자에게는

그 약함이 오히려 더욱 더 강함,

아니 승리의 기회임을 알게하시니 얼마나 기쁜가?

 

이제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인생을 살아야 할 당위성에 대하여 다시한번 뚜렷이 바라본다.

저들, 세상의 근심과 걱정과

그 유한한 이전투구의 장이 모든 끝인줄 알고 사는 자들과는 달리

주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

약하지만 기뻐할 수 있고

곤고하지만 인내할 수 있고

힘들지만 기다릴 수 있는 이유와 힘이 생기는...

그래서 외적인 조건과 상관없는

늘 흔들림없는 평강을 누리는 자유.

 

그게 우리 , 주님을 깊게 만난 자의 특권이다.

더 한번 깊이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게 사실로서 인생에 나타나 나를 바라보고

믿음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올 사람들이 늘도록,

그래서 주님 만이 영생의 소망임을 드러낼 수 있도록

오늘 하루 더 조심하며 살아야 겠다.

 

 

적용

1.  고난.. 환란... 어려움... 어떤 이름의 힘듦이 와도

    그것은 주님을 찾을 기회다.

    기도하자. 

    묵상하자.

 

2.  불말, 불병거를 보듯, 성령의 이글거리는 체험을 기대하자.

  주여.

  부인할 수 없는 주님의 역사를 제 일상에서 체험하게 하소소.

  오늘요.

 

3.  약함은 강함이다.

    기뻐하자.

    힘듦은 불말과 불병거를 볼 기회다.

    인식하자.

    원망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자.

 

4. 모든 상황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자.

   모든 일을 다 해결시킬 주님이심을 믿자.

   가장 선한 방법으로 타인을 대하자.

   엘리사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엘리사님이 그러셨음은 '원수'같은 자들도 사랑으로 대하라는 보여주심이다.

   오늘 하루 그러지 않아야 겠지만 어리석은 이들이라 생각되는 분들도

   그 분의 행동만을 보고 용서하자.

   아니, 오히려 선대하자.

 

5. 성경 세장 읽겠다.

 

 

기도

주님.

세상에 아직 발을 반쯤 디디고 있는 자와

온전히 주님 만을 보는 자의 차이를 봅니다.

불말과 불병거를 보고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자와

하나님이 주셨지만 인간의 판단으로 서두르는 자의 차이를 보고 있습니다.

두 그룹의 차이를 보면서

'평강'과 '흔들림'의 차이를 느낍니다.

흐르는 자와 가끔은 막히는 자의 차이도 봅니다.

 주님.

약하고 흔들리고 자주 아픈 것이

그리 큰 손해 만은 아닐 듯도 싶음을 묵상이 진행되는 동안 느껴집니다.

주님의 약함이 강함이라는 그 말씀이 다시한번 깊이 가슴에 옵니다.

약함이 강함이라는 그 놀라운 역설의 진리를

세상에서 눈을 고정하는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음도 봅니다.

오직 눈을 들어 하나님,

그 약해짐으로 세상을 구해놓으신 '예수님',

그런 사실을 인식하도록 지혜와 사랑과 평강을 퍼부어주시는

불같으신 성령의 깨우심이 없으시고는

그 누구도 알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이 놀라운 깨달음이 자연스러움.

이 자연스러움으로 저에대한 하나님, 내 구주의 사랑을 체험케 하시는

이 기쁨으로 오늘 하루 시작해갑니다.

아침 부터 자잔한 인간사의 부딪침이 오려했습니다.

데리고 있는 부하직원이 타과와 연계되어 고생을 할 때

힘없는 상사로서 안타까움을

지혜롭게 해결하게 만드십니다.

부하의 감사의 말에서 느껴지는

하나님의 역사하신 자의 부드러운 흐름을 보고 있습니다 .

주여.

귀하신 주여.

부디 그 직원, 예수님 영접하게 하소서.

아울러, 저와 제 가족,...

특히 젊은 아들들... 깊이 깊이 어루만지소서.

아직 약하나 강할 것임을 기대합니다.

주님의 불말과 불병거를 체험하는 자녀 되게 하소서.

세상의 모든 당신의 백성들, 자녀 그리하소서.

오늘 하루도 말씀 가운데 기쁨으로 열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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