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온전한 화려함을 위하여[겔16:1-14] 본문
아무리 노력해보았자
이 땅위의 아름다울 노력들은
호박에 줄 긋기요
가면에 칼질 하기다
유한한
이 지구 위에서
주인없이 하는
그들 만의 리그
그들 만의 착각과
그들 끼리 격려함의 결국이
과연
저 벌레들의 그것과
무에 다르랴
진정한 아름다움
완전한 화려함은
그를 그리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그러하심이 있어야
이루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눈들어
하늘을 바라보자
그리하여
계신 주님을 느끼자
그제야
내 아름다움은
온전히 아름다워지고
그때가 되어서야
피 투성이 같은
우리네 영혼의 원죄적 고통은
사라지고야 말리라
1.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오늘도
내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6.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
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신다.
무서운 표현.
'피투성이'
오래 전, 내적 투쟁이 열렬하고
한참 하나님 사랑에 내 영혼이 불붙듯 하던 시절.
수도자적 추구를 하는 교회에 다니면서
대부분 그러한 추구하시는 분들의 내면이
나와 별로 다름 없을 갈등들을 소유한 ^^;; 목회자님의 설교 중에
가슴을 치던 구절이 있었다.
" 성경에
'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있으라' 시었으니
혹여 마음 속에 자살.. 의 유혹이 있으신 모든 사람들은 명심해야 한다"시며
뜨겁게 설교하시던 게 기억이 난다.
그 분.
참 맑고 귀하신 분.
철저히 수도자적 길을 걸으시던... .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며
그 웃으시며 피를 토하시듯 설교하시는 그 속에
그 분의 내면에
하나님께서 부으시는 은혜의 말씀이
그대로 내게 옮겨지며
공감되는 듯 하던...
처음 듣던 구절이었다. ^^*
그때... 아직도 번연히 남아서 내안에 충돌을 일으키던
오랜 불신 시절의 상처들로
난 .. 자주..........고통스러웠고
언제든 '자살 '까지는 아녀도 목숨을 내려 놓고 싶은ㅠ.ㅠ;
생각으로 마음이 너덜 거리던 시절이었었다.
주님이 주신 생명 , 내 마음대로 하는 게 죄송할 뿐이지... .ㅠ.ㅠ;;
그 피투성이 같은 내 내면
그 피투성이 같은 그 분의 마음....(웃고 있지만 상처는 , 사단은 .....) .....은
하나님의 은혜로 붙들려 나아졌을 뿐..
그 분의 기억 , 나의 속을 스치는 가끔의 그러함은
피투성이 같은 아픔이 줄레 줄레 있던 시절이다 .
근 자에 j의원의 자살, 유명 연예인의 자살........들이 이어졌다.
그들.
그들은 웃고 있어왔지만 (성공한 사람들로 보이는... )
그들 마음은 피투성이 였을 것이다.
그거.. 지옥의 마음이고......
누구도 , 사람에 따라, 환경에 따라, 나이 들고 안듦에 따라
정도와 그 유지되는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피투성이'의 인생을 경험치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 어려움이 가장 극단의 시간과 정도에 달하더라도
주님은 명령하신다.
명령하셨다.
'피투성이라도 살아라'
'피투성이라도 살아라'
그렇다.
이 삶은 사는 것 자체가 '지옥'이었다 .
최소한 내게는 그랬다.
인생은 고해의 바다.. 라고 옛날 중국 선인 ..누군가가 얘기했다.
...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땅이 모두인 그들에게는
정말 피투성이에서 참아 보았자 더 이상의 나갈길이 없고
혹여 '내세'의 헛된 소망으로 인내에 인내를 해보았자
그 현재의 삶은 더 이상의 비전이 없지만
우리에게는 다르다.
믿는 우리.
주님의 은혜를 경험한 우리.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코람데오의 삶을 바라는 우리는 다르다.
14.네 화려함으로 말미암아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고난 후에 소망이 있다.
쓴 아픔 뒤엔 더욱 큰 달콤함이 있다.
피투성이던 우리의 영혼은 '화려함'으로 바뀔 개연성이 있다.
나..
확신한다 .
왜냐면 체험하고 있음이다.
나..
아무 것도 외부적으로 화려할 이유는 없지만
행복하다.
감사하고 기쁘다 .
인생에 있어서 지금처럼 자신감이 넘치는 때가 없다.
그 자신이 날 믿어서가 아니고
주님으로 인한 그러함임을
내가 깨달아 알게 되고 확신하게 되니
진정으로 그렇다 .
그것.
유한함이 아니고 무한함이며
제한됨이 아니고 내 생각을 훨씬 넘어서는 끝을 모를 기대감이기에 그렇다 .
그 모든 것.
내 머리 속을 쥐어짜는 논리의 전개가 아니어도
이해됨이어서 그렇다 .
자연스럽고
흐르는 것이라서 그렇다 .
생기.. 말이다.
생명력..
그 것의 시작이 '말씀', 로고스로 부터 시작됨이기에
난 더 확신하게 된다.
피투성이 마음으로 부터 벗어나서 그렇다 .
그래서
감사하다.
더욱... 더...
주님.
오늘
갑자기 가슴을 찌르듯
피투성이로라도 살라시던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때의 그 심사가 그대로 떠오르면서
그 말씀으로 피투성이 같은 내 마음을 딛고
일어서던게 생각나서 가슴이 아파오려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화려함에 대하여 말씀하심을 들으면서
이땅에서도 허락되어지는 화려함을 누림에 대한
자유가 불현듯 깨달아져왔습니다.
아. . 그랬습니다.
주님 안에서 어떤 것도 자제할 이유가 없음을요.
청빈.
절제.
그 마져도 주님의 허락함에 있고
외부적 화려함과 상관없이 될 수 있는
청빈과 절제의 자유를 알아 채렸습니다.
주여.
그래서 나를 다시한번 돌아보았습니다.
화려할 수 없는 나이, 화려할 수 없는 경제력.. 모두 지만
난.. 내 스스로 공작같은 화려함의 나를 느끼고 있습니다.
주여.
나이가 들어갈 수록
나를 감싸는 화려한 생기를 느낍니다.
주여.
그것이야 말로
나를 완전한 화려함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 아니신가 싶어졌습니다.
갑자기
피투성이를 극복하고 여기까지 온
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고난.. 허락되어진 그 피투성이의 시간을 지나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온 그 시간들..
그 시간은
내 영원의 시간 뿐 아니라
이 인생 중에서도 화려함을 허락되어진 기본이며
자유의 근간임을요.
주여.
주님의 계심으로 인하여
제가 누리게 되는 이 화려함의 운명에 대하여
다시한번 기뻐 생각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내 주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모든 화려함의 근본이시며
화려함이 주님으로 부터 나올 수 밖에 없는
온전함을 찬양합니다.
내 주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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