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온전한 구원을 보기를 원합니다[막10:46-52] 본문
아마 이런 분위기 어디쯤에
앉아 있지 않았을까
아..
맹인 바디매오이거나
엘리 대제사장이었거나 말이다
길가에 앉아 있을 때
예수님 지나가실 때
그곳 소경이 앉았던 자리는
아마도 '소망'과 밝음이
폭죽터지듯 터지는 자리가 되었으나
성전 앞 길가에 앉았던
엘리의 그 순간은
곧 귀에 들려올 자식들의 소식에 이은
자신의 목꺾여 죽을
절망의 어두움이 기다리는
뙤약볕의 따가움이 내리쬐는
절망의 장소가 아니던가
난 과연
오늘
어느 자리에 앉아있는가?
다행이도 내 자리는
온전한 보임
온전한 구원을 향한
기회의 자리임이 분명하다
감사하다
정말...
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난.. 이 구절에 올 때마다
'소경'의 입장에서 바라본 세상,
온통 암흑이 떠오르고 '허무' , '허탈'...지루... 소망없는 매일매일이 떠오른다.
그리고 '엘리' 대 제사장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늙어가며 아무 소망없이
말그대로의 늙어가는 노인의 모습으로 앉아있다
자식들의 소식을 듣고 뒤로넘어지던 그 상황과 대비되어 떠오른다.
이 '소경'.
똑같은 '지루하고 비전 없는 (볼수 없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그의 마음 속 한 구석에 지속되고 있는
'소망'.. 이 그도 모르게 있었을 것이
'엘리'와 다름이었음이 느껴진다. ^^*
어둠과 허무
절망과 소망의 대비
그런 그림을 찾으려 애썼지만 힘들어 위의 그림으로 대치했다 ^^;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그 어둠, 절망, 허무, 끝없는 지루의 한 틈을 비집고
'나사렛 예수'의 소리가
그의 '귀'를 뚫고(말그대로 뚫고 들어와 그의 심령에 번개 맞은 듯 짜르르한 충격을 주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
그러자 마자 그는 '듣고' 소리질렀다 했다 .
즉시..
이게 위 구절에 '소망'을 놓치 않은 자..
밝음에 있지만 소망이라곤 한푼 없어
말그대로 심령이 그대로 쪼그라져 늙어가는
밝음에서 어두움으로 향하는 '엘리'의 심령과 정반대로
'예수'시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어두움'에서 '밝음'의 챤스를 발견한듯 전율하는
'소경'의 심령이 그대로 느껴진다 .
그 유일하고 절대절명의 찬스를
소경은 붙들었다.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어쩌면 ,지금 우리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이 절절한 소망..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는 소경의 외침이 아닐까?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그의 절절한 간구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아니. ..그의 소망의 크기,
오랜 절망의 순간, 어두움 속에서도
그의 간절함을 놓치지 않아 왔음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많은 사람의 꾸짖음'을 뚫고는 '더욱 크게 소리질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외쳐댔다.
아.. 저게 민폐인가?
방해인가?
자신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인가?
아니다
절절한 소망이다 .
그 오랜 절망에도 굽히지 않고 끝까지
천재 일우의 기회를 기다려온 절대의 소망이다.
그리고 마침내
어두움에 한줌 빛이 내리듯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리'가
그의 영혼에 빛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어찌 그 기회를 놓칠런가?
날아갈 일등복권을 잡는 일순간의 절박한 느낌?...
어쩌면 그리 표현하는 것이 죄송하기도 하지만 비슷할까? ^^;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마침내 예수께서 '부르라'하셨다.
외치는 소리를 듣고 서야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예수께서
복권추첨자의 손길 같이 내미는 것 같이 느껴질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 행운이 우연의 행운이었을까?
예수께서 그곳에
그 시간에
그 맹인의 앞을 지나가며
우연인듯 손을 내미시는 사건이
어쩌면 그렇게 하시기를 바라고
그의 심령에 그러한 소망을 키워지길 기대하시고
그러함이 마침내 이루어져
그 시간에 소리소리 지르기를 바라시고 , 다 아시는
예정이자,
그 소경의 그러한 간절함을 기다리며 지나시던
그 완성의 순간 아니셨을까?
수없이 많은 시나리오 ,
그리고 그를 이루시는 예수.
그 안에 '믿음'으로 소망을 내리지 않았던 '소경'이란 인물을 통하여
완성된 , 합력의 작품....
그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기쁨'을 채우는 현상...
그를 위하여
소경이 대표된 것처럼
우리네 모두에게
이 인생에서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모습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일상의 우리의 최선의 삶의 태도'
그것을 말씀하시려는 거 같다 .
오늘
내게....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은
이 모습 아니었을까?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더 정확히 뛰쳐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는(아마도 소경이었지만 더듬거리거나 지체하기 보다는 용수철 처럼 튕겨나갓을 거다... 그 용수철의 행동은 예수님의 부르심과 어두움속에서도 소망을 버리지 않던 소경의 마침내 이루어진 응답이 어우러진 총체적 예술 같은 느낌이다. . ^^**) 소경의 모습을 그림 그려 내고 싶다.
할 능력 만 있다면 ..ㅎ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그리고 주께서 물어 보신다 .
"무엇을 '원하느냐' "
그러자 소경이 대답한다.
"보기를 '원합니다' ".
그러시자.. 가라.. 라 하신다.
벌써 눈이 떠질 것이니 가도 된다는 말씀이시다.
그리고 이어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셨다.
보기를 원하였지만
보게 하셨고
구원을 주셨다는 말씀이시다 .
그러하다 .
인생의 불편,
고난
고통
풍파
풍랑
광야.........그 어떤 일상의 문제들도 다
'구원'을 위하여 허락되어진 '장치'..
무대의 장치 같은
본질을 이루기 위한 도구, 매개체 일 뿐이란 것이다 .
매개체가 없고 도구가 없이 어찌 인생이란 드라마가 이루어질 것이며
이 무지한 인간들이 어찌
이 3차원의 삶에서 윗 차원의 영생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 땅에서의 '고난'.. 연단을 통하여
성화를 이루어내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
천국, 영생, 완전 구원, 부활의 삶을 이루어 내는것..
그게 '소경'이 소경된 이유,
이 땅의 우리의 현재를 허락하신 이유가 아니겠는가?
그러하다면 이제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뚜렷하지 않은가?
어두움,
지루함,
소망 없는 듯한 삶에 대하여
몸부림치기 보다
'반드시 오실 예수님'..
소망이신 그 분을 놓치 않고
내 자리, 내 인생의 길가에 앉아
보이지 않는 눈대신
온통의 감각, '귀'를 열어서라도
주님의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쓰는 삶이 되어야 한다.
그분 만이 내 '눈'을 떠
온전함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란 거다 .
그리고 항상 깨어 잇어야 한다.
지나시는 예수,
예수시라는 소리를 듣기 위하여 온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
미련하여 영적으로 둔하더라도
들을 수 있는 내 나머지 기능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귀를 쫑긋 세워야 한다 .
온통 부족한 것들에 대하여 안타까워 하며 살아왔었다.
솔직히 내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절망이
소망을 넘어서며 뭉게며 살아 왔던 삶의 흔적들이
내게 주신 그 누구보다 뛰어난
듣는 귀..
말씀 묵상하는 축복... 을
자주 , 가끔.. 넘어서게 하는 습관이 아직도 남아 있어
필요없는 절망으로
'엘리'의 무기력에 빠지게 하려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또 나를 깨우셔서..
예수 이땅에 오신 유일한 이유..
십자가 통해 구원을 허락받게 하기 위하심...
그를 못하는 자를 위하여 '선교'도.. '순교'도.. 하는 것이 귀한 것이지
그것이 목표라기 보다
'성화' ..
완전한 구원이 목표이심을
어제도 불현듯 생각나게 하셔
나.. 엘리의 마음에서
소경의 마음으로 돌이키는 기회를 주셨다 .
다시.. 어둠이지만 소망을 놓치지 않고
곧 오실 예수님을 기대하는...
뭐.. 그런.. ㅎ..
이제 뚜렷이 말씀하신다.
볼 것이다.
보게 되지만
그보다 더한 축복이 '네'게 주어지리라.
구원이다.
온전한 구원.
성화.
2번째 중생..
여러 표현을 넘어서는 '구원'이 네게 임했다.. 하시는
오늘 아침의 소리를 듣게 하신다.
감사하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 일상에서 하루하루 이끌어가심이.. ..
주여.
오늘은 어두움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치 않은
길가에 앉아서 온통 귀를 쫑긋거리는 소경을 묵상하게 하십니다.
그 어두움의 끝없음..
그러나 그는 그 속에서도 '소망'을 놓치지 않고
주님의 소리를 듣는 기회를 얻었고
마침내 지나시는 '예수님'이시라는 소리를 캐취했습니다.
그리고는 불맞은 무엇처럼 소리소리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눈을 뜨게 되고
그 무엇보다 그 뜬 눈으로 예수님을 보게 되기 시작햇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
온전한 구원에 대하여 주님의 선언을 들었습니다.
그러합니다.
이 땅의 모든것..
제 가지지 못한 그 어떤 것도
예수님의 '온전한 구원'..
하나님 나라
영생을 위하여 ..
아니 그보다 '하나님의 영광'.. '합력을 위한 주님 기뻐하시는 작품'을 이루기 위한
빈틈없는 주님의 계획중에 있음..
그리하여 눈을 뜨게 되고 천국백성이 되게 됨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주여.
힘을 주소서.
어두움 속에서도 소망을 놓치지 않을 힘을 주소서.
영적으로 늙음
진정으로 어두움은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리고
하루하루 의미없이 까먹는 나날의 엘리 같은 모습이지
'어두움 속 소경' 자체가 아님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
소망입니다 .
그렇습니다.
주님 예수님을 놓치지 않으면
그 어떤 거도 소망입니다.
반드시 이루어질 구원과 소경의 눈뜸에 대한 기대입니다.
주여.
그게 가장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내 주여
거룩하고 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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