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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되지 않는 것들 그러나 이해되어 버리는 것[막11:1-1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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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되지 않는 것들 그러나 이해되어 버리는 것[막11:1-11]

주하인 2024. 3. 13. 06:38

부제) 어쨰도 기뻐할 수 있는 당위성

(펌)

부조화 

 

자칫 땅에 발이 닿으실 듯

작은 새끼 나귀에 오르신

커다라신 예수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호산나 환호에 

하등 지장이 없음이 

더 놀라움

 

인생은 그어느 하나

꼭 원리대로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것 없고

심지어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막연한 바램도

인생에 대한 우리의 청사진도

늘 이해하지 못할 변수 투성이이다.

 

그렇다.

굳이 모든 것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되길 기대하지 말자

 

힘을 풀자

고민하지 말자

물흐르듯 흘려보내자

부는 풍랑 그냥 마주하자

그게 주님의 뜻이심을 

내가 인정할 수만 있다면

내가 깨어 있음을 

스스로 확인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비록 정신 흔들리는

풍랑의 혼돈 중이라도 

 주의 모습만 보이시어

그냥 안심할 수 있으면 된다

 

어쩌면

그러함을 위한 

막바지 광야 연단의 과정 아닐까

내게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해되지 않는 것들 #1

 왜 제자들 하나가 아니고(나귀새끼 하나인데...굳이 .. ^^;

또 사랑하는 변화산 때 데리고 가신 특별한 제자 3명도 아니고

왜 굳이 2명이셨을까?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이해되지 않는 것들  #2.

 순결의 의미로 나귀새끼라 하심은 이해가 가긴 하지만

다른 동물도 아니고 왜 굳이 나귀이고

그 나귀가 순결을 넘어서는 새끼로서의 안타까움,

상대적으로 예수께서 ... 죄송하지만.. 잔인하게 보이지 않았을까?

 동물애호가들에게 어쩌면 진저리 칠 ㅠ.ㅠ;

 

 

 이해되지 않지만 이해되기 시작하는 것들 #1.

 어찌 그곳에 나귀가 서 있을 것을 아셨을까?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이해되지 않지만 이해되기 시작하는 것들 #2-3

 누가 거기 서 있어 물을 것인 사실

 주가 쓰시겠다 하시면 '즉시' 그리로 보내게 될 것을 미리 아심

 

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이해되지 않지만 이해되기 시작하는 것들 #4

 말씀이 있으시니 

의문에도 불구하고 가고 , 확인되고...('가서 본즉')

그리고 즉시 이행하는 ('그것을 푸니') ...

이해되지 않지만 순종하고 순종하니 이루어지는 것이

자연스레이 이어지지 않는가?

  

 

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이해되지 않는 것들 #3

 지켜보고 있던 자의 담담한 반응

따로 약속했을 시간적 여유도 없었을 것이 분명하고

그러함에 어떠한 사전 예언의 말씀도 있지 않았을 것임...

이분이 '주께서 쓰시겠다하면 주실 믿음'이 있을 자임도 

어찌미리 아셨을까?

 천사였을까?

모든 것을 다 이리 소소하게 다 아시는 주님의 능력은

풍랑을 멈추고 병자를 고치고 .. 하시는 능력 보다 

드러나지 않지만 더 깊은 능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모든 시간, 조건, 그 사람의 마음, 그  멘트 "주가 쓰시겠다"에 반응할 여부........등

한두가지라도 삐딱하면 들어맞지 않을 현상 아니던가?

 

그런데.. 그 모든 것을 

2명의 제자가 동시에 보게 하신다 ^^*

 모든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해가 되려 한다 .

 

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이해되지 않는 것들 #4   

 나귀 새끼를 , 

볼품없는 나귀 새끼에 '겉옷'으로 꾸미고 

벤 나무 가지를 펼치는 제자와 군중의 무리들이 

어떤 약속을 받았기에 저렇게 동시에 치장을 하는가?

 

 누구하나도

하필이면 이 .. 축제 같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다고 주장하거나

비아냥 거리는 분위기가 아니다 .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이해되지 않지만 이해되기 시작하는 것들 # 4 

어찌 알고 저들이 저렇게 '호산나 호산나 ' 하며

단체로 모여들어 축제 분위기로 띄웠을까?

 어울리지 않는 나귀새끼와

어울리지 않을 헌 겉옷과 나무가지 깔개...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뜨겁게 달구는 '호산나'. .외침의 저날.

저 분위기가 생경하면서도

뜨거움이 전달 되어지는 것 같다 .

 

 굳이 저러하심을

당연히도 '예상'하시고 예견하실 수 있는 주님의 능력이시라면

조금더 깨끗하고 아름답거나

아니면 조금더 숙연하고 경건한 다른 모습들은 없었을까?

 

 나귀새끼 타신 거룩하신 예수님 뒤에 

조용하고 경건한... 음악이라도 찬송하며

한걸음 한걸음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가장 자연스러운 것을 원하심 아니실까?

개입하지 않으신......

자연스러운 흐름.

누구도 알수 없지만

누구도 '하나'가 될 수 있을 만한....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세상,

내 주변에 그리도 많은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우리에게  알아차리길 원하시는 일들이 있지만

우리의 이해할 수 없는 부족함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 말이다 .

 

 그것을 이 당시 이 자리의 이 사람들은

느낀 것이고

그래서 '저러한 최선의 바침'을 

세상의 기준에 어울리지 않지만

자신도 모르게 행동으로 '겉옷'을 벗고 '호산나'를 외치며...

기뻐하게 되는 것.. 

그것 아닌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해가 되는 ... ^^;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이해되지 않지만 이해되기 시작하는 것들 #6  

 열두 제자 모두 다 데리고 

군중의 열기를 뒤로하고 

'날이 저물매' 다시

지금까지의 일상으로 돌아가셨다. 

왜 이실까?

 왜 나귀새끼 퍼레이드 후 즉시 더 큰 행사로 이어지지 않으시고 

아무 설명 없이 다시 조용한 이전까지의 일상으로 돌아가셨을까?

 

 

 말씀을 보면서 

굳이 이해하고자 하고 의미를 붙이고자 하면

모든 상황을 다 아는 (성경을 통해 십자가 .. 부활.. 성령.. 까지.. ^^; ) 우리는 

이제

지금 

다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의미를 하나하나 설명하려 하고 (아... 그래도 이해안되는 내용들이 있다..

설교하고 주석을 붙힐 수는 있겠지만

과연 저 당시 저 일을 가지고 

모두 다 이해가 가는가?

 그 설교와 주석이 과연 이 이해하지 못할 여러 상황들을 

다 이해하게 할 수 있는가?

 

무엇인가?

무엇을 오늘 내게 말씀하시고자 하는가?

 

 굳이 다 이해하려 하지말라... 심아니실까?

 내 인생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뜻을 알고 맞추고 

은혜라는 이름의 감정적 단서에 맞추어

내 영혼에 갈무리 하려 노력하는 것.. .

그것.. 

어느 정도 , 당연히 주께서 하고 성장하길 바라시는 것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 없기 까지 바라는 것은

'자아'강화의 또다른 위험성일 수 있음,

그래서 이제는 

모든 것...다 주님의 뜻이십니다..

그러니 어쨰도 다 주님이 살아계신 증거이옵니다. .. 고백할 수 있는

아...풍랑 보다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위용 보다

풍랑 안의 예수님의 등을 보는 

그런 시선의 변화를 말씀하시는 것 아닌가

조심스레이 느껴진다. 

 

감사하다.

 

 

 주여

애써서 이해하려면

이제 어느정도는 받아들이고 정리할수도 있을 거는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완벽하지 못한 일들이

부지기수로 '예수님의 이름'

하나님의 뜻

성령의 은혜 가운데 인도하심.........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

 

그럴때 아직도 혼란스럽고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 통해 

주께서 그러시는 듯  들립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가? 주하인아?

그래도 내가 명령한다. 

그래도 넌 내 말을 듣고 있다

그래도 네 안에 은혜라는 이름으로

깨달아지는 풍성함이 있지 않는가?

완벽히는 아니고 

완전한 백색은 아닐지라도

그게 '하나님이 원하심이며'

이제 '그리해도 될 듯한'.. 그러한 다양함이 

네 안에 느껴지지 않는가?" 하시는 듯합니다. 

 

그러합니다. 

주님. 

나귀 새끼를 타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제 지금까지의 정서로는 그리 아름답게 다가오지는 않는 듯합니다 .

 하지만 말씀이 있고나서

그마져도 하나님이 진정 원하신 것이면

그것도 옳을 수 있겠구나.. 마음 접을 수 있는

신앙이 조금은 생긴듯합니다 .

 

그러한 마음이 생기며

터질듯 다가오게 하시는 '은혜'의 강물,

폭포수 같은 평강을 경험한 후로 입니다. 

 

주여.

얼마전 밤배 풍랑 속의 예수님을 묵상하며

풍랑을 멈추는 것도

풍랑을 허락한 것도 주님이시기에 

주님의 등만,

주님이 내 영혼의 배에 계신 것만 확인된다면

아무 문제가 아닐 것임이 확신되어진 이후로 

조금더 깨달음이 깊어진 듯합니다. 

 

그러합니다 .

이 땅의 모양새

논리에 맞는 흐름... 

어느 것이나 규격에 맞지 않으면 안절부절 못함이

심지어는 믿음까지 그리 생각해온것은 아닌지

다시 돌아보게 하십니다 

 

오늘 말씀.. 

이해하지 못할 것 투성이지만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일도 꽤 있음이 다행으로 다가왔으며

이제..........주님이 원하시면

그 어떤 일도 이해가 될 듯 싶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은혜의 쏟아부어주심은 멈추지 않으실것.. 

그모든 것 내 안에 주님을 모심이 잊혀지지 않음에 의거한 다는 것

영혼 깊숙이 갈무리 되게 하소서.

 

부족한 믿음마져 주소서.

고백했던 얼마전의 묵상처럼.. 

제게 그리하여 주소서.

 

거룩하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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