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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QT

오직 내 할일은[요6:1-15]

주하인 2017. 1. 19. 11:08

누가 아플까 걱정이더냐

누가 힘들까 가슴이 조이더냐

그 아픔이 혹여

네게도 미칠까 힘들더냐

 

그래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말이다

내가 있잖더냐

내가 할 것이고

내가 도울 것이다

넌 그냥

가만히 내게 업혀

내 하는 것 지켜 보려무나

 

그게

내게 안겨진

바로

네가 해야할

오직 그 일이란다

 

사랑한다

아들아

 

감사합니다

내 하나님

내 주님이시여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많이 듣던 .. 아.. .들었다고 생각되는 소리들...

'우리가.. 내가.. 어디서..'

'과연.. 먹일 수 있나? .. 내 자식들.. 내 아내.. 나.. 어떻게 먹여 살릴 수 있는가?'

이뿐이던가?

'과연.. 내가... ' ... 정말 많은 걱정의 대표소리들 아니던가?

이 소리들은

오랜 시간 나를 옭죄었고

나를 안절 부절 못하게 하던 '걱정의 소리'들이 아니던가?

 내 아버지.

자수성가의 표상.

걱정 많고 완전주의 자.

자식에 대한 걱정이 많으시고 욕심도 많으시었지만

그 정도가 심해서

어려서 부터.. ' 너.. 그렇게 하다가는... 어떻게 하려구.. ' 가 단골의 소리였고

그리 맞추어 나름 착하게 살던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난 눌렸을까..^^;;;) 나..

절대로 '시국'이니 '데모'니 쫓아 다닐 생각조차 하지 않던 나에게

그 분 아버지는 방학 때마다 곁에 두길 원하시고

절대로 아니라는 강변에도 불구하고 '데모는.. '...'망하게...' ...하시었었고..

대화의 대부분은 ' 넌.. 그러면.. 어떻게.. ' 가 주된 주제였었다.

어려서 부터.. 참.. 힘들었고...

그러함은 어느새 내 안의 '소리'로 '내사 (introjection)'되어

내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내 자식들에게 나도 모르게 '너.. ' '너.. 그러다가' .. 가 내려지고..

이.. 쓸데없는 걱정의 소리들.


그런데..

이것을

예수께서 하신다.

이 광야에

수만의 무리들이 옴은 분명코 현실적 고민이 맞다.

그것을 '빌립'들에게 말하신다.

들으라고..

너무도 당연한 소리지만

그보다 더 당연한 '오병이어'의 기적의 능력을 얼마든지 가지고 계시고

그와 같은 기적들을 수도 없이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기에

분명코 이것은 '괜한 걱정'과 '불안'의 소지 (자극이 되는 지점)이 분명코 맞다. ^^;


그런데

나.......

이 빌립............

잊어 버렸다.

잊어 버리고 있다.


나는 이런 반응을 보여왔을 것이다.

' 맞아.

 이 들을 어찌하지?

 어찌 나같은 것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무작정인데... ㅠ.ㅠ;;) 이 광야로 이 많은 인파가 몰려든단 말인가?

 이들을 어찌 먹여 살리누?'

빌립이라고 안그럴까?


이런 것...

현실적 생각이고 합리적 생각이지만

온전한 생각은 아니다.

 예수님이 배제되고 그 분의 신적인 능력과 그 분이 하나님이시며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엎고 계시어

그 등뒤에서 그 분의 눈을 통하여 바라보길 원하심을

난 감사하게 인정해야 하는데

난.. 나도 모르게 '혼자'인 것 처럼 바라보고 있다.

그러니.. 괜한 걱정이지...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그것.

예수께서.. 빌립을 '시험'하고자 .. 하셨다 하신다.


 무엇을 시험하는가?

그가 그동안 보아왔던 예수 님의 하나님으로서의 능력...을 보아왔고

그 분과의 동행하는 동안 느껴졌던 그 평강의 기쁨, 그 자유와 진리의 느낌을

영혼 깊숙이 받아 인정했다면

그 자신이 바로 에수 그리스도의 등에 엎혀

같은 곳을 바라보는 (광야에 오는 수많은 무리들..) 시선이 되어 있을 것이지만

아직도 자신의 '자아'가 등등하면

홀로 고민하고 두려워할 것 이란 얘기시다.


' 괜한 걱정'은

내가 예수님의 등 뒤에 엎혀 있는

동행하는 가족의 상태를 잊고

소년 가장, 소녀 가장 같은 '홀로'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사실을 직면시키시려는 것일까?


내 슬 슬 약해지려는 '믿음'을 경계하시는 것이 아니실까?

자꾸만 드러나려는 내 속의 죽지않은 강한 자아의 발호를 아시는 것이지 않을까?
혼돈스럽고 혼란 스러워지려는 내 마음을 짐작하심이 아니실런가?


똑같은 부분을 수도 없이 지났지만

오늘의 묵상은 또 이전과 다르다 .

오늘은 괜한 걱정임을 믿게 하시는 시험이시다.

그 시험의 정답을 주심이시다.

묵상하고

예수님의 시선을 같이 쳐다보는

엄마 등의 아가 같은 편안함... 진정한 안식을 누리게 하심이시다.

그게 성장한자의 옳음이다.



주님.

생각하면 걱정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요..

제 자식들.. 아내.. 장래..

우리 나라..

삼성의 부회장 구속과 불구속 따른 걱정..

환경 걱정..

너무 더웠던 날씨 걱정..

.......

흔들리려는 내 마음의 약해짐에 대한 걱정...

그 냥 다 내려 놓고 사는게 혹여 '도피'는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만큼

편하고 차분히 살다가

다시금  불안하려는 마음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주여.

주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것은 '시험'이라고 하십니다.

난.. 분명코 주님 예수님의 등에 엎혀

주님이 보여주시는 장면...

이 아무것도 없는 황량함에 밀려드는 사람들의 '입'을 보여 주시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전보다 훨씬 덜 흔들리고 두려운게 사실이고

오늘 말씀이 있기 전에 잠시 혼돈 스러우려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등을 느끼게 하시며

괜한 걱정임을 보이시고

그 불안한 환경을 보이심은

너무도 당연한 '시험'과정임을 알려 주십니다.

오히려 감사합니다.

약함을 감사합니다.

궁핍하려 함을 감사하나이다.

예상되는 박과 곤란을 감사합니다.


그러함으로 이토록 말씀을 더 깊이 깨닫게 하시고

그러하심으로 더욱 더 하나님의 푸근함

예수님의 등과

그 분의 계심으로 인한 든든함을 같이 느끼게 하시어

저로 하여금..

이 부족한 제가

오직 주님의 이유로 인해 '성장'해가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게 하시는

그 선한 '시험'을 감사드리나이다.

제가 옳게 알아가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감사하나이다.

나머지 .. 걱정되는 부분들..

제가 먹여 살려야 할 것 같은 중압감들..

다 내려 놓습니다.

주님이 하시옵소서.

아시지요.. 내 주님...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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