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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소서 제가 듣겠나이다[민3:40-5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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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소서 제가 듣겠나이다[민3:40-51]

주하인 2023. 1. 5. 07:13

(펌)

여호와 하나님의 스케일이

여기에 머물러

겨우 지구 표면

우리, 이 보잘것 없는 존재들을 두고

사단과 다툼한다 생각하면

그거야 말로 큰 오산이다

 

그냥 

온 우주,

그보다 더 확장된 다중우주를

모두 창조하신 그분께서 

그분의 전적인 뜻에 의거

우리 수준까지 내려오셔서

이렇게라도 이해하게끔 해주신 것은

오직 철저하신 사랑이 이유일 뿐이시다

 

그 광대하시고 사랑의 정화이신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늘 내게 그러신다

 

나는 여호와니라

나는 홀로 있는 자니라

내가 네게 말하니 들으라..

 

할렐루야 하나님.

제가 듣겠나이다

말씀하소서

 

 

41 나는 여호와라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에

      레위인을 내게 돌리고 또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 중 모든 처음

      태어난 것 대신에 레위인의 가축을 내게 돌리라
4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5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에 레위인을 취하고 

      또 그들의 가축 대신에 레위인의 가축을 취하라 레위인은 내 것이라

      나는 여호와니라
 '나는 여호와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주도 나타나시고 ^^;

많은 말씀을 하시며

자주 ,조금 세게 강조하신다.

마치.. 안해도 될 것을 '잔소리' 하시듯 ^^; 그리 하시는 것 같은...

그런데..

그게 잔소리나 귀찮음 보다는

'저리 자주 나타나 말씀하시니 다행이다'...가

저 말씀을 보면서 느껴지는 내 솔직한 심정이다.

만일,

저 암담한 '광야'..

이 삭막하고 외롭고 괴로운 사막, 인생광야 한가운데서

홀로 감당해야할 상황이라면

어찌 해야 할까?

그게 더 무서운 일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한가하고 조금만 깨달아지면

간섭처럼 느껴지는게

우리네 '자식'들,

이 인간들의 본성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 '역기능'의 아버지 조차 ㅜ.ㅜ;;

단지 아버지로서 역할과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자신의 그러하심이 드러날까 노심초사하며 

표현을 그리하셔서 그렇지 

그 분의 그러하신 본질에는 '사랑' 이 있었음을 난 아는데

어찌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체험하고 아는 자로서

하나님의 저러하심을 '귀찮음'으로 느끼겠는가? ^^;

 

 하지만.. 

오늘 말씀은 딱 보자마자 

너무 자주 나타나셔서

너무 자주 '여호와 이심'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때마다 의무를 지워주시니

귀찮음 보다는 솔직히 깜짝 깜짝 놀라는 일이 많지 않을까......하는게

처음에 딱드는 심사였다. 

 홀로 쉬고 있는 내 방을 두르륵 열고 잔소리 해대시던 

내 역기능의 아버지가 연상되어서 겠지..ㅠ.ㅠ

 

 그런데.......

그 생각들은 잠시.......

실은 부럽다는 생각이 자연스레이 들었다. 

 

 저리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시는 때가 어디 있던가?

하나님께서 저 암담한 광야, 

400년 넘게 익숙했던 애굽 노예생활과는 완전히 다른,

단 한번도 도착해보지 못했고

생각하지도 못해봤던

광야, 오직 주님의 인도하심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바야흐로 완전 새로운

'뉴노말'의 행태에

하나하나 지도 해주시고 인도해주시니

그거야 말로 감사하지 않던가?
머리 놓고 살아도 될... 

 

그러시면서 '나는 여호와'라 강조를 하신다. 

그것.. 무엇이시던가?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

온 우주에 오직 홀로 존재하실 수 있었던 분.

모든 게 '창조'하신 '창조주'의 존재로 말미암아 생겼지만(아...심지어 지금에도 어마어마한 별들이 주님의 말씀으로 창조되고 있지 않던가?  이 우주엔...^^*)

그 분께서 그러하신데 무엇이 필요하여

모세들에게 달라고 하셨을까?
 그것 아니신가?

오직 '우리'을 위하여 

옳은 습관을 훈련시키고

나머지 그 순종을 보시고 허락되어진 축복들을 위한 

옳은 행동양식을 가르치시기 위함... 

그거를 이해하지 못할 영적 수준에 있을 

이 무지한 인생들을 위하여

'보라 .. 난 홀로 있는 자고 다 내가 창조한 것이다. 

 왜 굳이 너희의 그러한 것이 필요할 것이던가?

 난.. .여호와니라' .. 이 뜻.

 

 그러함을 위하여

이해시키고 또 이해시키고

오해할 일을 만들지 않게 하시려

최대한 알아듣기 쉽게 하기 위한 '함축적 언어'의 사용으로 

주님께서 '모세'들.. 

그래도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깨닫고 아는 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이유...다

그 여호와께서

'나는 여호와니라'

그러니 주하인아 .. 이리 이리 살아야 겠지 않는가? .. " 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 하다. 

 

 그렇다면 

오늘 내게 무슨 말씀으로 다가오는가?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나는 여호와니라'.. 하신다. 

홀로 존재하시는 분이 '여호와'시다. 

그 분은 내 관계적 상상으로 인한 추론의 한계를 넘어 서신다. 

어떠한 인간적 논리로 인한 상상을 넘어 서신다. 

그냥 .. 말씀으로 

'나는 여호와'다.

주하인.. 너의 여호와...라시면

그게 맞으시다. 

그런데 이 '광야' 속 .. 모래 폭풍이 가지고 오는

이 인생의 광막함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그냥..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나는 내 일을 할 뿐이다. 

그 안에 오늘 내가 살아가야할 행위에 대한 어떠한 근거나 

내 마음 편하기 위한 어떤 지침 같은 것을 안주셔도 된다. 

주님이 '여호와'시니

그냥 내게 나타나셔서

'주하인아 나는 여호와니

내 말대로 하라... ' 심이 있으심 만 중요하다. 

 

나머지는..

우리도 다 알다싶이

광야를 넘어

언젠가는 반드시 '가나안'으로 귀착된다는 사실이고

그 과정에 '먹고 입히시는 것' 걱정 안해도 된다는 사실이며

어쩌면 곧 있을 

대 환난의 시기를 넘어서도 

'천년왕국'이나 '천국'이

우릴 기다린다시는 것.. 

그리고 '성령'께서 그날을 감해주신다는 사실.. 

그를 위하여 예수 께서 

몸소 십자가에 달리시며까지 

날 구원해 주신 게 증거 아니겠는가?

 

 오늘 .. 

난 

'나는 여호와니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루를 살아보리라. 

 

 

주님.

감사하나이다. 

어디에도 살아가야할 '동기'나 '재미'나 가슴두근거리게 하는 흥미가 없습니다. 

그게 매일을 이어지고 

점차 더 그리되어갈게 '노년'을 향하는 

이 시대의 저희 들 아니겠습니까?

 

광막한 광야..의 암담함.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러한 저희를 찾아오셔서

이리 말씀을 걸어오신다니 감사합니다. 

'나는 여호와'다.

내가 아무것도 필요없는 여호와 하나님이란 것 알겠는가?
그런데 난.. 네게 이리이리 해라 이렇게 말한다. 

왜 그리할까?

그게 진리고 

그것을 준행하려 결심하는 네 순종을 보고

네 앞의 허상, 이 3차원 물질.. 

그 허상을 넘어서는 진실.. 진리를 위한

어쩌면 네 마음에 '어'.. 할 만한 그러한 

뜬금없는 명령인 듯한 마음이 들줄 알고 

내 그리하지 않는가?... 라시는 듯.. 

그리 느껴져 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내 모든 것 아시는 주님.

그게 진실이고

그게 오늘 붙들고 살아야 할 본질 인것 같습니다. 

 

주여.

이 허무한 세상.. 

광막한 광야의 사막의 공허로 그득찬 세상.. 

물질, 입자로만바라보면

그 안에 95%는 빈 공간이라는 과학자들의 미시 세계에 대한 밝힘에 근거해서라도

다 허무한 거짓들인데

그 마져 하나님께서 그리 허락하셔서 이루어진 것임을

다시 깨닫습니다. 

그래서.. 이 공허의 거짓들... 

허상의 3차원 입자 세계에

진실이고 진리인 그 공간의 진실에 

하나님의 말씀,

오직 여호와를 순종하는 '믿음'으로 가득채웁니다. 

그러시면 

주께서 '양자 얽힘'같은 

우리의 지혜를 넘어서는 실제의 현상을 통해

저희에게도 이루어 보여주실 줄 믿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주님은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의 '여호와 하나님' 말이십니다. 

오늘 하루

어찌 '여호와 하나님'을 

제 좁은 삶 속에서 마주할 수 있을까요?

어찌.. 

인간적 관심.. 

겨우 이땅의 비교와 거짓 목표와 헛된 표상들을 넘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듣고 느끼고 깨닫고 순종할 수 있을까요?

 

진리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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