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오늘을 위한 예비의 말씀[신3:1-11] 본문
1.우리가 돌이켜 바산으로 올라가매 바산 왕 옥이 그의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우리를 대적하여
에드레이에서 싸우고자 하는지라
' 싸우고자 한다'
말씀에서 느껴지는 뉘앙스가
마치 큰 어른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
자기 만의 세상에 갇혀 '도전'을 준비하는 치기어린 모습을 보며
하는 듯이 느껴진다.
'어이없지만 그가 덤벼들려 할지 모른다'라는...
그것.
오늘에 있을 문제라 하심이시다. ^^;
2.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와 그의 모든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으니
네가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과 같이 그에게도 행할 것이니라 하시고
그런데...
'두려워하지 말라' 신다.
그것.
위의 뉘앙스와 다른 반응 아닌가?
우스워야지 어찌 두려울까?
그거..
우리의 인식 왜곡에 대한 지적이 아니실까?
두려워 할 것을 두려워하여야 하지
두려워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병'이다.
'공포'이고 '불안'이며 더 나아가 '공황장애'다.
이런 인식의 왜곡.
왜 생길까?
눈 앞만 바라보아서다 .
'과거'의 잔재를 통해 미래를 투영해서 바라보는 것,
상처 가진 사람들이 자꾸 되풀이 동일한 기억을 끌어들여
유사한 상황을 대하여 무서워하는 것.. .
'투사'라 한다.
projection .
그거.. 미성숙한 사람들이 쓰는 방어기제다 .
그런데..
그게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해당할까?
세상이 복잡해지고
물질이 고도화되면서
AI 가 , 로봇이 사람의 능력을 넘어서고
전자 장비들이 사람의 할일들을 빼앗아 가며
세상은 'Big brother'에 의하여 휘둘리는 과정 가운데
사람들은 눈 앞의 일 만 바라보게 된다.
위는 바라보지 못하고 현실에도 허덕인다.
그러다 보면 의지할 곳이 없는 버린 아이들처럼
온통 '세상'에서 '방황'한다.
'세상에서 방황할~때 나 주님을 몰랐네..~♬'
그러다 보면
두려움이 어느새 자리를 잡게 된다.
두려워 하지 않을 어이없는 도전에도 겁이 덜컥 나게 된다.
그게..
두려움이다.
주인없는 자의 두려움.
다행이다.
그래도 나..
하나님을 매일 모신다.
매사 모신다.
그 매일을 '말씀' 묵상으로 이리 받아 들이려 하는 자다 .
그래서 성령께서 이리 매일 매사 말씀으로 인도하신다.
오늘은
'두려워 할것 두려워 하자.
설령 그들이 그래도
그것.. 두려운 게 아니고
우스운 게다.. '
알지?
하신다.
웃음이 번진다.
감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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