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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처럼 그렇게 하고 싶다(마 14:13-2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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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처럼 그렇게 하고 싶다(마 14:13-21)

주하인 2010. 2. 9. 13:24

제 14 장 ( Chapter 14, Matthew )

 

(이제 부터 나는 죽고)

 

엊 저녁 아버지 학교 .

간증하고 있는 백모 형제.

 

 

내 안에서 주님의 말씀 만이 살아나길 간절히 원한다. )

 

 기쁨으로 간증한다 .

얼굴에 빛이 난다.

  

임파선 조직검사 결과가 우리의 예측과는 너무 다른데도 그랬다. 

그렇다.

현상은 무슨 의미가 있을 수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역동하고 있고

내가 그 분과 말씀으로 , 성령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체험할 수 만 있다면

그 영혼은 빛이 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형제의 간증으로 이 미련한 자는 그제야 겨우 그 흔적을 느꼈을 뿐이다.

 

'늘'  주님과 함께 하는 한적한 시간이 필요하다.

말씀 앞에 서야 한다.

그래서 성령과 예수님의 보혈로우리 영혼이 그득 차야 한다.

 

 부디 바라기는 저 형제의 시간이

말씀으로 끝까지 붙들려 사는 삶이 되어 치유는 물론 간증거리로 가득차고

흔들리지 않는 삶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우리 모두 그리되길 바란다.

 

우리보다는 하나님의 흔적이  온통 드러나고  시간이 지날 수록

하나님과 의 은밀한 동행을 하는 체험을 하는 모든 분들로 넘쳐나길  진정으로 바란다.

 귀한 간증이었다. 

귀한 형제...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간지라
  주님은

늘 한적한 시간을 가지셨다.

분주한 시간 후에는 늘 주님 하나님과 독대하는

그런 '세상의 분주함을 떠난 빈 시간'을

하나님을 위해 지키셨다.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그럼에도 무리가 다가오자 그들을 위해 치유를 시작하셨다.

그 분은 늘 깨어 계시려 몸부림 치셨다.

하지만, 그 분은 행사나 모습보다는

긍휼함을 우선으로 하셨다.

 사랑이 넘치시는 분.


 
18.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그 주님 앞에 나아갈 때

난 무엇을 가지고 가는 가?

내 열심을 가지고 나가는가?

고침을 받을 고민거리만 가지고 나가는가?

주님께 도움이 될 만한 것만  가지고 나가던가?

무엇이던가?

 

 위에 말한 것은 당연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의 모습을 닮으려 하는 마음이다.

주님의 '하나님을 늘 염두에 두는 모습'

그 분의 그 분을 위하여 온전한 시간을 비워두는 모습.

자신의 시간을 줄여가면서 까지 이웃을 배려하는 모습.

이러함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거기에 열심과
결단과 최선을 더해야 한다.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하늘을 우러러

최선을 다하는 삶.

그게 우선이다.

주님 예수님은 그렇게 사셨다.

 

 

 구정 당일 날 당직이다.

당직 마치고 홀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여행이라고 하지만 실은

동해기도원에 가서 '금식 기도' 한번  시도해볼 요량이다.

오래전 부터

한번 그래보고 싶었지만 금식이란

단어에 조차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위장이 큰터라 배 곯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던 차에

몸이 피곤을 느끼는 빈도가 잦아져

휴가를 내 버렸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어디를 갈 것인지 결정하지도 못하고 있었다가

드디어는 어제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고 결정하였다.

 분주한 시간을 벗어 버리고

주님과의 독대의 시간.

 

 얼마 전

주일 아침 버스에 내려 교회를 향해 건널목을 건너가기 직전에

보험회사 건물 앞에 어머니 동상을 스쳐 지나가다가

모정을 너무나도 잘 표현 한 것을 보고

참으로 귀한 게 어머니의 사랑이다..라는 생각과 더불어

저 귀한 어머니의 사랑 조차도

만일 '노아 방주' 처럼

'2012년'의 대 재앙 같은

.......

일시의 겁란에 얼마나 귀한 덕목으로

기억되고 인식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당연히도

인간의 '정'

인간의 뜻

인간의 귀중함...모두 포기할 수 없는 귀한 덕목이지만

너무나도 크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얼마나 기억될 수 있을 가치가 될 것인가.. 였다.

 다시 바꾸어 생각하면

내가 그토록 열심을 보이고 사는

이 삶 속에서의 내가 그토록 주장하는 가치는

또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인가..이다.

 

 점심시간.

자주 모임을 갖는 OB팀들이 바쁘신가

오늘은 취소가 되었다.

 그래서 식욕도 많지 않던차 냉장고에 들어 있는 라면을 하나 꺼내

뜨거운 물을 담아 먹고나서는

잠시 눈을 감고 묵상을 했다.

뜬금없이 '의사 동료'로 잘 있다가

박차고 의료 선교사로 나가셨던 분들이 머리 속에 떠올라

그들을 중보하였다.

중보하던 중 그들의 '곤란'과 '환란'을 막아달라 기도하다가

과연 그게 주님의 뜻이실까 하는 물음이

날 사로 잡았다 .

 모든 선교사님들이 반듯하고 이쁘게만 선교하고

풍성한 수확을 다 거두기만하고

그들이 전부 동화속의 왕자 가족들만 같이 되었더라면

어떤 느낌일까?

 우리 소심한 자들,

그들의 선교현장에서의 보고를 들으면서

은혜 받는 자들에게는

그들의 환난 속에서의 은혜를 간증 받으면서

힘이 나지 않던가?

 우리의 은혜를 위해서 그들이 고난 받을 이유는 전혀 없지만

하나님의 뜻 안에서

고난과 환난은 당연한 이치이고

그 모든 흐름 속에

우리는 던져 졌던바

굳이 몸부림 쳐가며 '동화 속 왕자' 같은 삶을 간구할 이유는

없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성경의 말씀대로

고난을 기뻐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 그것이야 말로

선교사님 뿐 아니라 우리 모든 자들의

살아야 할 이유가 되지 않던가?

 

 모정을 느끼게 한 그 동상.

모정도

주님의 뜻 안에서 살다가 발휘되는 모정이어야

의의가 있는 모정이다.

 주님을 떠난 '모정'은

아무리 신사임당의 그것이고

한석봉이나 맹모의 그것이라 해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바람이 불어

세상이 온통 마지막의 때에 되면

어느 것 하나 가치 있을 것이 없다.

그냥 '그랬던 모자 지간의 정' 정도라도 이해될 까?

기억이나 될까?

 

 

 주님 예수님은

그 하나님을 만나려 하셨다.

그 분의 존재의 이유.

그 분이 살아가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 뿐이었다.

그 관계를 이어가기 위하여

어떤 일이 생기던 그 분은 주님 하나님과의 시간을 찾았다.

그리고도 그 분이 원하시는 것을 더 잘 아셨다.

 내 시간을 희생하더라도

남을 사랑하는 시간을 더 늘여서

긍휼함을 베풀고 나서

다시 하나님과의 한적한 시간을 만드신 것이다.

 

 나.

수일 내로 그런 한적한 시간을 만들려 한다.

분주한 일상으로 부터 벗어나

한번도 이룬 적 없던

주님과의 독실한 독대를 하고 싶다.

 지난 해 혼자 양평의 한얼산 기도원 행을 한 적은 있지만

그것은 계획된 것은 아니었고

금식도 아니었다.

 요번은 흐르듯이 마음이 쏠려 그리하려 하는 것이다.

걱정은 되지만

한번 금식하여 보려 한다.

 

나.

수일 내로는 그렇지만

오늘 하루의 한적함은 어떠했던가?

한적함이 꼭 남들을 만남을 피하는 의미는 아니잖던가?

예수님의 예를 보더라도

그 분은 한적한 시간에 이웃을 치료 하셨다.

오늘 하루 나에게 원하시는

그 한적한 주님과의 만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솔직히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

마음이 분주하다.

괜한 급한 성질이 올라와

consult를 낸 가정의학과 Resident선생에게 짜증을 내었다.

곧 수술을 해야할 환자 임에도 자기 과적인 문제점이 없는 지를

밝혀 달라는 나의 수차례 요구에 그냥 계속 단답형으로 보내는

그의 어이없음에 ..........

이것은 나의 깨어 있지 못함임을 안다.

조금 더 한적한 주님과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침 시간이 너무 짧다.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죄송하다.

이제는 아침일찍 일어나 주님과 독대의 시간이 없어도

큰 부담이 없다.

죄송하다.

회개할 일이다.

 

 주님은 그걸 아시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적용

1.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겠다.

 

2. 오늘 한적한 주님과의 시간이 필요하다.

 

3.  성경 여덟장 읽겠다.

 

4. 산다는 것.

 무엇이 그리 특별하겠는가?

 나에게 주어진 독특한 삶도 역시 의미가 있다.

 그냥 감사하고 받으면 그만 아니겠던가?

 문제는 영성이다.

 흔들림은 한적한 주님과의 잦은 대화로 해결하길 원한다.

 좀 더 기다리면

 그들 선교사님 삶처럼

 내 삶속에서도 선교사 처럼 살며

 올바른 모습으로 나에게 주어진 모든 고난과 힘듦도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올건가?

 

5.  15일 이후의 본격적 한적한 곳을 위하여 기도하자.

 

6 . 주님 이외의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

 주님 예수님 만이 내 일차 가치다.

 그외 다른 것은 그 분을 위한 가치다.

 주님을 위한 것인가?

 이웃을 위한 것인가?

 나를 위한 것인가? 

 늘 생각하자.

 

 

 

 

 

기도

 

 주님.

주님 처럼 살고 싶습니다.

주님 처럼 늘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고 싶습니다.

내 삶의 일정 부분을 그 분과의 독대하는 시간으로 남길 수 있길 원합니다.

아침이 그 시간이 되길 원하지만

아니면 저녁이라도... 언제라도..

 주님 .

주님이외의 어떤 가치도 우선되지 않게 하소서.

 

주여.

바라옵기는

주님 허락하신 그 삶에

너무 편안함과 복 만을 원해

잘되는 남을 바라보지 않기 원합니다.

뜻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주여.

주님과의 만남이 깊어져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삶이 어떤 것이 정확한지

다시한번 확신하기를 원하오며

이제는 나에게 주어진 이 삶이

나에게는 가장 합당한 삶임을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리하소서.

 

 주님

인간적인 생각들을 원치 않습니다.

물론 중요한 가치는 너무나도 중요하지만

주님의 원리를 넘어서는 인간적 가치는 거부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

그게 제 영혼에 뿌리 박히길 원합니다.

아직도 흔들립니다.

아직도 누가 뭐라하면 솔깃합니다.

아직도 가끔 어렵습니다.

잘 나가다가 확하고 주저 앉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주님.

부디 간구하기는

주님과의 독대의 시간을 통하여

제 영혼이 굳건해지길 원합니다.

어찌 내 인생이 나아가게 될지 모르지만

주님이 나에게 주신 것이면

그게 가장 선임을 믿고

그냥 받아들이게 하소서.

주여.

감사합니다.

지혜를 주시옵소서.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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