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헤롯이 이랬더라면 (마14:1-14 ) 본문
제 14 장 ( Chapter 14, Matthew )
내 영혼이
새로 산 이 트럼펫처럼
더 깨끗하고
더 맑은 소리로
주님을 찬양할 수 있을
그때까지
주여
날 불어주소서
날 만져주시고
날 깨끗이 보호하고
붙들어 주소서
1. 그 때에 분봉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헤롯이
소문을 듣고
2.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저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권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도다 하더라
오해했다.
오해할 만한 논리적 근거는 아주 약간 - 예수님과 요한 모두 신기한 능력이 있는 공통점- 있지만
어이가 없는 착각일 뿐이다.
우리는 안다.
하지만 오해 속에 갇힌 자는
그 논리적 오류를 혼자 풀 힘이 없다.
3.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10.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옥에서 목 베어
오해는 '죄'에서 비롯한다.
죄는 근심을 가져온다.
죄는 죄를 부른다.
그 죄는 예수님을 해하도록 만들 마음을 가져오게 된다.
회개 하지 않는 죄는 오해를 가중시키고
가중시켜진 오해는 더 큰 죄를 낫는
'죄가 더 큰 죄를 낫는다.'
읽어가며 이런 생각을 해본다.
헤롯이 그 당시 최고 권력자이던 상황과
그 당시의 눈으로 바라본
경제적 사회적 위치가 낮은 그룹의
예수님이나 요한을 만날 개연성은 떨어지지만
어쨋든 요한을 두려워 하고 예수님의 소식을 들었다면
'대화'를 시도해보았다면 어떨까 싶다.
그의 두려움은
그 자신이 만들어낸 '사회적 벽 '과 '죄'로 생긴 오해로 인하여
예수님과의 대화를 가능케할 통로를 막아 버린
그 자신의 어리석음 탓이다.
정말 그 자신이 두려워 하게 된다면
마음을 낮추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허심탄회하게 '예수님'을 궁으로 초대하여
있는 그대로 그 분의 말씀을 들을 각오를 했더라면
즉,
대화를 시도 했더라면
헤롯의 마음에 '두려움'은 사라졌을 것이고
그로 인한 미움이나 더 큰 죄를 저지르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게 되어
성경에 '헤롯'이 나쁜 인물이란 인상으로 찍히지 않게 되었지 않았을까 싶다.
"대화"
오해없는
모든 조건을 내려 놓고 포기하는
그래서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시도했더라면
역사가 달라지고
자신이 운명도 달라졌을 것이다.
아침에 괜히 '속상한 생각'이 날 사로잡는다.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날 화나게 하는 생각들.
몸이 안좋거나
깨어 있지 못할 때
가끔 아침에 이런 생각이 불현듯 밀려올 때가 있다.
그럴 때 생각의 홍수에 사로 잡혀
불안한 아침이 되거나
짜증으로 아침의 기조가 그리되어 가기도 한다.
이제는 안다.
그것들은 아무리 그럴 듯한 생각으로 다가와도
사단의 것들임을 ..
아직 '용서'하지 못한 옛 상처가 건드려 진 것임을..
겨우 서둘러 닦고 나와
묵상 구절을 습관적으로 들여다 보았다 .
이럴 때는 들여다 보기도 싫다.
그러겠는가?
나쁜 생각 나쁜 마음들이
선한 생각 하나님의 마음을 읽게 하겠는가?
어쨋든 들여다본 구절에는
헤롯의 어리석은 오해와 죄에 대하여 나온다.
답답하다.
헤롯의 그 마음 상태는
겁이 많고 생각이 많은 것으로 보아
그리 악한 사람은 아닌 듯 싶은데
죄를 지은 후
위치나 우유부단함에 더불어 오해가 쌓임은
그로 하여금 '대화' 자체를 힘들게 만들었으며
그것은 그로 하여금 더 큰 '죄'
아니 세상에서 가장 큰 죄 ,
즉 예수님을 핍박하는 죄를 짓게 만든 것이 아니던가?
솔직히 그가 예수님을 핍박할 객관적 이유가 어디 있는가?
무슨 상관이 있기에 갑자기 예수님을 오해하고
그 분의 대적자로 서게 되었던가?
이때 그가 마음을 열고
죄를 회개하고
대화를 신청하였더라면 오해를 풀게 되었을 것이 아니던가?
아침의 나.
괜한 흔들림.
아직도 온전히 해결하지 못한 미움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남아서
잠시 잠깐 이지만 흔들린 것이다.
비단 이 대상이 당장 만나서 뭐 이야기 할 것도 없고
그럴 수도 없는 지역에 있지만
나로 하여금 주님이 아침에 느끼게 하시고자 하는 것은
오늘 하루
괜한 오해를 할 대상을 만들지 말고
혹여 그렇게 미워할 마음이 들더라도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뜻이 아닌 가 싶게 받아진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한다.
그 대상들...
무겁다.
힘이 들 것 만 같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무거움이 가로 막는다.
안다.
내 결심 만 하고
주님께 간구의 기도만 하면 될 것을 ..
오늘 주님이 말씀 하시니
더욱 기회가 아니던가?
혹시 그러한 상황이나 대상이 오더라도
'이해하고 용서할 결단'을 하고
허심탄회한 ' 대화'의 마음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다.
피하기만 하고 혼자 오해하는 것은
'죄를 더 키우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이제
주하인이 마음을 열고 오늘 하루
대화에 충실해야 겠다.
미련한 -^^;- 분들을 이해해야 겠다.
어떤 질문이라도 받아 들이겠다.
나를 더 낮추고 모든 것을 이해해 보아야 겠다.
헤롯이 이랬더라면 하는 것처럼
내가 이랬더라면
그때 이랬더라면.. 하는 후회하지 않고
미리 마음을 열고 들어주고 이해하는
오늘 하루가 되자.
적용
1. 모든 분들을 이해하려 노력하겠다.
. 환우들 말을 들어준다.
- 짜증이 올라오면 잘 안된다.
내 습관적 말투.. 이제는 누른다.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그렇다.
2. 모든 분들에게 마음을 열어놓겠다.
미움의 drive는 크다.
하지만 이제는 조절할 수 있다.
이유가 있다.
' 주님의 말씀이 있으니 그래야 한다'는 이유만 있으면 그 drvie는 가라 앉고 사라진다.
체험의 결과다.
말씀은 능력이 있고 살아 움직인다.
3. 전도한다.
한분 했다.
큐티 진행도중 환우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 .. 짜증이 올라온 상태에서 말씀을 기록하다 보니
성공했다.
벌써 짜증은 멀리 사라져 갔다.
4. 아버지 학교 간다.
주님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주님 안에서의 교제.
귀한 중보의 기회.
5. 말씀 여덟장 읽겠다.
6. 깨어 있자.
TV늦게까지 보지 말자.
아침일찍 일어나자.
7. 회개한다.
아직 용서하지 못하던 사실.
8. 중보한다.
기도
어찌 된 일인지 주님.
오래된 생각과 구습이 쑥~하고 저를 엄습했던 아침입니다.
괜히 미움이 올라오고 답답했습니다.
짜증이 나려 했고..
돌아보면 엊저녁 늦게까지 TV본 탓도 없지 않고
허리가 아픈 탓도 없지 않은 듯합니다.
늦게 일어나 주님 앞에 올바로 서 있지 못한 탓도 없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어쨋든 전 자꾸만 흔들리려 하고 있었고
그러나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절 잡으십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헤롯에게 제 마음을 투영시키고
그의 어리석음을 묵상하게 하시어
객관화된 생각을 허락하시는 지요.
주님.
방금 틈틈히 묵상하는 중에 깨달은 바
짜증나려던 환우에게 오히려 '대화'로 유도하다가
'전도'를 했습니다.
어쩌면 나의 아침의 평정의 흔들림과
묵상과정의 깨달음은
이 분을 위한 것은 아니었을 런지.. 싶습니다.
주님.
주님의 역사는 참으로 기묘하고 신비하기 그지 없습니다.
저의 부덕한 마음을 가지고도
이리 전도받게 하시기도 하시다니요..
늘 그렇지만
주님의 역사는 마치 거미줄이 엵히듯
기하학적이고 아름답게 이루어질 때도 있음을 느낍니다.
그 거미줄에 이슬 걸리고
아침 햇살이 투영이 되면 느끼게 되는
그 아롱거림이
마치 오늘의 '전도'인 듯 싶기도 합니다.
어쨋든 주여.
저..
주님 말씀대로 그리하길 선택합니다.
오해의 소지를 버리길 선택합니다.
죄를 회개하길 선택합니다.
그리하여 더 이상 저를 붙들 죄가 없어지길 소원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열어놓길 소원합니다.
선택합니다.
비평을 버리겠습니다.
도와주세요.
조건으로 사람을 보지 않게 하소서.
어떤 분이든 그냥 '배려'의 마음으로 바라보길 선택합니다.
헤롯의 어리석음을 범치 않길 원합니다.
마치 헤롯같은 제가
예수님 같은 저로 바뀌길 원합니다.
그 사이의 선택을
주여 성령으로 힘주소서.
당신의 권능으로 절 사로 잡으소서.
무조건 사랑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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