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영적 전투자[고후10:1-18] 본문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우리의 싸우는 무기'
왜 싸우는가?
우리의 삶은 '영적 전쟁터'임을 인식하는 순간
삶은 달라진다.
무기력하고 썩어나갈 세상의 것에 탐닉하고
그것을 더 축재하는 데 온 에너지, 심지어는 하나님까지 이용되는
허술한 믿음에서
영생을 위하여 '싸우는 ' 영적 전투자', 영적 군병으로
자기의 정체가 바뀌게 된다.
'육신에 속한 것'
영적 싸움을 하는데 가진 것, 가지지 못한 것으로 어찌 싸울까?
'진'
영적전투의 목적은 '진'을 탈환함이다.
진.. 진지.. stronghold(NIV)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동안 '나'처럼, 내 것인 것 처럼 숨어 행동하던
영적 불량세력들, 사단이 이 원죄적 존재인
영혼안에 깊이 깊이 묶어 놓고 방어선을 치고 있던 '강력한 진지'.
그것이 무엇일까?
깨어 부숴야 할 진.
하나님께서 이처럼 강력히 부수어서 승리하도록 바라시는 '진'
그것을 위하여 보내주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
'어떠한 진도 무너 뜨리는 하나님의 강력'
(개역 한글에서는 강력이라 표현되고 NIV에서는 devine power 신성한 힘이라 표현된.. )이 있어야만
깨어지는 강력한 stronghold(성채.. 진.. NIV)은 과연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 천국에 가는 것을 막으려는 강력한 장애물이 아니던가?
그것
강한 욕심(음식..돈.. 성공..),게으름, 급한 성격,...본성에 가지고 있는 나쁜 타성 (정욕 ) 일 수도
상처에 의하여 잘못 형성된 '죄성' 일 수도
잘못된 습관에 의한 인지의 오류일 수도
...............
무슨 원인이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는 자들에게 생기는 저항'...
그것도 깨기 힘든 강력한 저항이다.
거기에는
'이론 異論 , arguments ' 다른 논리,
즉 말씀에 교묘하게 반대되는 논란이나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
하게 하니
'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 ( NIV: every pretension that sets itself up against the
knowledge of God -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항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가정들..)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
사단은 우리의 오래된 '죄된 특성'이나 '죄성'이나
상처로 인하여 오랫동안 잘못 형성된 아픔의 부분을 뚫고 들어와
그자리에 또아리를 틀고 강력히 '영적 진지'를 구축하여
우리의 영혼에 지성소에 들어와 주인이 되려 하시는
하나님의 영과 다투는 것이
그들의 존재 목적이다.
그래서 결국 '구원'을 받는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그러기에 우리는 늘 영적 전투자가 되어야 한다.
살면서 어찌 이땅에서 온전히 승리한자 될 수 있을까?
매사 매사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한다'
그렇다.
난.. 이 구절이 정말 힘이 된다.
나.. 혼자 영적 싸움을 이겨낼 수 있다.
나의 급작스러운 분노,
이해할 수 없는 속상함..알지못할 무기력이 나를 사로잡아오려 할때
이것을 홀로 싸워 이겨보려 무진 노력을 했으나
결국 늘 원상태고
아니 예수님 믿는 자로서 이것 밖에 안되는 가 하는
자괴감은 예수님 영접하기 전보다 훨씬 큰 '무게'로 다가왔었다.
그러나, 예수님 영접후 주시는 강력한 '은혜'의 기쁨으로
난.. 그렇지 않음을 눈치 채게 되었고
그후 십수년이 지나면서 '말씀'의 살아계심,
말씀으로 매일 '영적 전투 지령'을 받아 사는 '홀가분함',
전투자로서 모두 주님 사령관께 맡기는 싸움이야 말로
정말 힘있고 가볍고 단순하고 편하고 기쁜일이 되었다 .
어느때 부터인가 생각을 많이 하지 않게 되었다.
복잡한 생각.
교묘한 생각
괜한 오해
안될 것 같은 좌절.,
망할 것만 같은 절박감
홀로 떨어져 낙오된듯한 '외로움'
...................
상당히 많은 부분 떨구어 버렸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상황'에 따라 쳐들어오는 해결되지 않은 어려움들을
감내하게 시키신 것은
위의 고린도 후서 10:4-5절이다.
그랬다.
내 살아가는 과정 중의 겪는 모든 내적 어려움은
'사단의 영적 전투 과정'이고
이제 엄청나게 많은 부분 하나님의 영역으로 회복시켰으며
아직도 흔들리지 않고 남아 있는 듯한 부분중
'나는 ... 나는... 나는.. '하며
깊이 뿌리 박고 흔들릴 것 같지 않는 것들은
결국 사단의 stronghold,
사단의 얼마남지 않은 '성채'이며 '진지 ', '진'일 뿐인 것이다.
그것들 그냥 두면
또 슬그머니 내 게으름과 영적 나태의 시간에
또다시 다가와 '하나님 앞으로 옳게 가려는 모든 옳고 선한 생각',
'하나님 말씀' 대로 움직이려는 내 영혼의 결심
내 영혼의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옳은 생각들에
계속 오염을 시키고 혼란을 시키는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육신의 나태와
육신이 끄는 힘에 의하여 모든 생각을 빼앗기게 되면
그들 사단의 영들은 온통 우리 영을 붉게 물들이려 하는 것이다.
참.. .힘든 전투가 남았다.
'사단의 진'을 깨야 한다.
그것...이제와 같이 하나님께 맡긴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으시다.'
우리는 생각의 혼란을 그냥 들고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기만 하면된다.
우리의 주체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부분은 그것이다.
우리 K목사님의 말씀대로
'아픔과 바래는 것들을 묵상하지 말고
예수 십자가만 묵상하라 ~!!!'라고 소리 소리 외치시던 대로
모든 혼란스러운 생각을 가지고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대입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어지러운 사단적 생각들은 잠잠해져가고
점점 영혼은 깨끗해져 갈것이다.
그렇다.
싸움의 대상은 사단이다.
싸움 하는 것은 나 혼자 만의 영역이 아니다.
주님이 함께 싸워주시는 것이시다.
특별히 우리 생각의 영역에서 그러신다.
생각이 정리되면 우리 감정도 자유스럽게 힘차게 사통팔달 흐르게 된다.
결국은 ' 하나님의 영' 의 내 영 안에서
폭주하는 폭포수 같은 흐름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게 온전 '성화'의 모습이다.
늘 .. 행복이다.
늘.. 천국이다.
그게 심령 천국이다.
기도
주님.
제가 참으로 깊이 명심하는 구절입니다.
그래서 묵상이 그냥 슬쩍 묻어가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고 선택을 하였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듣고자 하지만
이 게으름은 늘 저로 하여금 주님묵상에 열심을 보이지 못하게 만드는
그래서 잘난체하는 매너리즘에 의존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되돌아 봅니다.
그럼에도 묵상 진행하면서 역시 지체하지 않고 내려 쓰게 하심을 보면서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 따듯한 감동이 있음을 통하여
주님의 주신 말씀임을 눈치채고 있습니다.
주님.
귀하신 제 주님.
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생각들이 정리되고
맑은 생각으로 저를 움직이는 동력들이 되고 있음을 깨달아 알고 있지만
아직도 내가 말씀으로 알고, 이렇게 하면 안될 듯한 부분에
생각이 돌아가고
그럴 때 성령의 열매랑은 전혀 상관없는 감정이 솟구침을 느끼고
당황할때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것..
오늘 '진'이란 단어를 통해 다시한번 그 정체를 알게 하십니다.
깨달아 확신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진 안에 단단하게 뿌리 박고 있는
몇가지 생각들을 깨달아 알게 됩니다.
주여..
나는... 나만... 이라는 생각들입니다.
그 밖에도 많이 있을 듯하지만
주님... 일단 말씀의 거울에 비치어 드러나는 그들을
주님의 말씀으로 다시 정결화 하길 원합니다.
주님 앞에 높아진 이론을 파하고
주님 을 아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pretension을 파하길 원합니다.
주님 앞에 그런 생각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가져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님이 보이신 모든 모본에 어긋하는 행위들의 교묘한 논리를 파하소서.
모두 주님께 복종시키길 원합니다.
제가 싸우지 못할 것을 주님께 맡기오니
주여 승리케 하소서.
저에게 그리하여 놀라운 기쁨으로 채우소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소서.
제 삶의 모든 거 다 주께 맡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감사 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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