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영생을 위한 여생의 선택[창35:23-36:8] 본문
나 비록
이곳에 이리 서 있지만
주님의 빛만 있으시면
저 괜찮습니다
조금 더 있으면
당연하게도
겨울 오고
제 삶의 마지막 오겠지만
주 있으시니
저 괜찮습니다
그때가
언제 인지 모르지만
주여
최선 다해
주의 영광 꽃피울 수 있는
제가 되길
간절히도 기도합니다
35:27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더라
아직 '이삭'님이 살아 계시다 .
아들 야곱이 이십여년 전 , 거짓으로 장자 축복을 받을 때
벌써 눈이 안보이고 판단이 느려져 있었던...
그가 살아 있다 .
아.
어찌 살았을까?
생각만 해보아도 육신에 갇혀서
그냥 어둠 속의 삶이 었을텐데...
지금처럼 실버 산업도 발달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에서, 큰아들이 모신다해도
그는 사냥하러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사람이고
아내들은 '이방'여인들...로
아버지 이삭에게는 어떤 효도를 했는지는 잘 모르나
그에게 그 며느리들은 '달갑지 않은 마음 고생'의 며느리 들이었을 것이다.
어쨋든 '이삭'이 살아계셨다는 것은
오래 성경을 읽었지만
미련히도 이제야 발견하였고
읽는 순간..
아.. 그 삶이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런데..
정말 '하나님'을 그리 가까이서 영접하여
임재의 삶을 사는 자, 이삭에게
그 나머지의 삶은
지구에서 살되,
지구에서 동떨어져 홀로 ' 육신'에 갇혀 사는
유배의 삶 같을까?
아니다.
아마도 심령 천국이 되었을 것이다 .
그것을 예측함은
야곱이 장자 축복을 받은 것을 에서를 통해서 알고는
격렬히 놀라다가 금방 마음을 다잡고
에서에게 권고하는 그의 언어를 보고 짐작할 수 있다.
또 , 야곱도 총리 요셉을 만나기 전까지
늙은 몸에서 희망없는 가뭄의 고통을 겪었고
또 믿는 모든 믿는 자들의 변치 못할
노년의 삶이 그럴 것이기에
그냥 그런 고통 안에 방치되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예수님이 사시고
하나님이 사랑이시고
성령이 운행하심을 아는 우리에게 말이 안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기독교 조차 ,
청춘의 종교에 지나지 않는 논리적 귀결이니
그 얼마나 미련한 가정이던가?
당연히도 '노년의 이삭' 은
하나님의 다른 만지심 ~~!!!! 에 노출 되어
행복하여 잇었을 거고
그게 우리의 영생을 준비하는 여생임이
당연히도 믿어지지 않겠나?
그는 받고 안받고
있고 없고
놀림을 받고 안받고
약하고 강하고
....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그를 흔들지 못할 상황일 것이다 .
그게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을 낮추는 삶'에 대한
자, 타율적 훈련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들에게
예상되는 삶이다 .
아마도 세상 사람들은 그를 안타까이 여기고
가까이 갈 별 유익이 없는 '노인'으로 치부하고 어쩌면 골방의 삶이 예상될 지라도
그에게 어떤 후광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이십년의 시간동안
하나님의 영은 그의 영혼 지성소에서 머무르시며
그와 깊은 영적 교제를 이루어 가셨을 것이며
그의 낮아지려 결심한 선택의 태도는
하나님의 능동적 구원에 더하여져
깊은 '천국'이 이루어져 있었을 것이다 .
그는 세상에 머물되
그의 심령은 '심령 천국'에 거함.
감사하고 부럽지 않은가?
36:1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36:8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
야곱의 삶은 우리가 안다.
그 분, 이삭께서 그런 고요한 기쁨의 마지막 삶을
깊은 영적 변화로 마무리 하고 있을 때
야곱은 '절정'의 고통과
많은 세상의 축복을 번갈아 누리며
허덕거리는 ' 누구나 그러할 ' 인생을 살아가 고 있었다.
반면 에서는 '미움'과 '사랑', 억울함과 방탕..............으로
그 나름대로 살고 있다가
결국은 야곱과의 삶이 서로 얽히며
에돔 민족의 시조가 되며 세일 산으로 가게 된다 .
세 사람의 인생이
한 시대에 서로 얽혀 지고 있다 .
서로 형제 , 부자이면서도
어찌 이리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던가?
이삭은 이삭의 '세상'에서
야곱은 야곱의 '세상'에서
에서는 에서의 '세상'에서
서로 처절히 살아가며
그게 그들 모두의 우주인 줄 알고 살아가고 있고
그들의 고민과 그들의 행복과
그들의 운명에대한 예측과 그에 대한 도전과 응전이
모든 삶의 전부인 것 처럼 살아왔지만
서로 전혀 다른 운명으로
또 얽혔다 또 사라져가고 나뉘어져 간다 .
이것.. .
어찌 생각해야 하던가?
내 안에만 파묻혀 내 안의 고민과 이룸 만에 신경을 쓰고 살다가는
결국 그렇게 그렇게 죽어가고 마는 것 아니던가?
무엇이 중요한가?
노후에 대하여 누구도 벗어나지 못하는 '쇠락'의 운명에 대하여
그것을 탈피할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자의 삶이고
잘못된 '에서'의 순간 선택이
결국 에돔이란, 영적 불순 세력의 상징 같은 인물이 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자가 되든지
모두 하나님을 전제로 하지 않고는
그리되어 버린 다는 것을 깨닫는 것 아니던가?
그렇다면 오늘 나에게 허락하신 말씀은 무엇인가?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순간 순간 ,
물론 점차로 적어지긴 하지만
시간이 날때마다 심령을 공격해오는 '늙음'에 대한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막연한 불안,
이루어 놓지 못한 것을 손으로 쥐려하는 욕심.. 에 대하여 경계하심이 아니시던가?
그러면서 오늘 하루
더 이상의 욕심,
내일에 대한 괜한 두려움
미워지려는 '에서' 같은 주위 사람들 조차
하나님의 이름,
제단을 쌓는 마음으로 '성경 말씀'대로 이해하고
받아 나갈 수 있도록
'십자가' 앞에 가지고 나가
허심탄회하게 털어 버리려는 노력이
내 노후에 대한 대비책이고
옳은 방향임을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것은 아니신지?
오늘 ..
어찌 살까?
다시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다가가야 한다.
날씨가 추웠지만
어제 '기도원'
내 단골 벤치에 앉아서
잠시 '제단'을 쌓으려는 노력을 했다 .
그게 어떤 응답과 복을 금방 느끼는 도구가 되지는 못했지만
다시 시작하는 내 노후의 준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가진 것 자꾸 놓아야 한다 .
무소유도 좋지만
안되면 적게 소유함이
내 영혼을 하나님을 더 채우는데 도움이 되는 듯하다 .
이제 ..
얼마동안 내 수십년의 하고 싶은 욕구를
나름 밝히는 시간이 되었고
확인 받았으니
더 이상은 내 자아가 강해지면 안되리라.
주님 앞에서 자꾸만 내려 놓아야 하고
이삭님처럼...
더욱 잠잠히..
앞으로 야곱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노후의 수십년의 '잠잠'함을 위하여
지금부터 서서히 받아 들이는 노력을 하다가
주님 부르시면
웃으며 소천해야 할 것을
이제 하나하나 다시 회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감사하다.
주여.
오늘이 그 날입니다 .
조금더 확실한 진실에 접근한 날 말입니다.
예상치 못하게 '이삭'님이 오랜 육신에 유배 당한 듯 살았음을
오늘에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격동적 삶들과는 별개로
다른 영적 시련의 시기가
그 내적인 영혼의 지성소에서
승리의 급박한 싸움이 진행되었고
가만히 묶여 있음이
다른 이들의 처절한 고통과는 다른
깊은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었음을 보았습니다.
주여.
제게도 이제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할 때라 생각하나이다.
아직은 움직일 에너지는 많지만
서서히 손에 잡은 것들을
조금 더 내려놓고
진심으로 주님 만을 깊이 기뻐하는 자 되기를 원합니다.
주여.
제게도 힘을 주소서.
부디 에서의 힘을 기대하지 않게 하시고
야곱의 아직도 충만한 자아의 움직임을 닮아 선택하지 않게 하소서.
제게는 교만과 급박한 분이 많습니다.
그것..
에서의 그것, 야곱의 그것을 닮은 것 같사오니
그런 부분들이 이제는
온전히 주의 도우심으로 내려 놓아질 수 있길 소원합니다 .
내주여.
내 아들들도 기억하시사
주 안에서 부디 죽을 때까지 잘 선택을 누리게하시고
그리하여 깨달음으로 가득차
주변에 더욱 선한 영향,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리되게 하소서.
특별히 오늘 들리셨던 J환자 분을 불러드리나이다.
저로 인하여 다시 교회에 나가셨다고
기뻐하며 들르셨습니다.
주여.
환우분의 상태를 통하여 그리 부르신 그분...
축복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그 거룩하신 우주의 창조자의 이름들어
제 모든 생과 영생을 맡기며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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