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막장 드라마 조차[창37:1-17] 본문
이 나무
오랜 세월을 기다리지 않았더라면
오늘이 있었을까
세찬 바람을 피하려 애쓰고
내리는 서리에 몸서리 치며
온통 분개만 했더라면
저 지는 해의 빛조차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그 담대함과 풍성함이
또 가능했을까
모든게 하나님의 뜻
어째도 주님의 선물
그것을 믿으며 지내온
인고의 시간들은
그에게
나에게
우리에게
어쩌면 가장 훌륭한
영육간의 양식은 아니었을까
감사하며 살자
하늘 만 바라보자
주님은
막장의 세상마져
가장 아름다움으로 만드실 것이다
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야곱님.
아버지로서 '편애'는 잘못이다.
라헬을 편애하더만 요셉까지..
형제들.
요셉을 미워함이 잘못이다.
아주 잘못이다.
비록 그게 인간의 원죄로 인한 보편적 현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잘못이다.
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
미련하다.
눈치가 없다.
그를 미워함을 알았더라면 더욱 언행에 조심하였을 것을...
여기까지 보면
야곱... 하나님의 끔직한 사랑을 받은 가족이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요즈음의 시대의 갈등과 큰 차이가 없다 .
역시.. 아담의 원죄의 결과는 무섭다.
우리가 아는 바처럼 그들은 '요셉'을 죽이려 한다.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
성경에서 까지 이런 막장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이 놀랍다 .
그렇다면
난.. .이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또 어떤가?
혹시 온전한 가정에서 만 자랐던가?
그래서 늘 행복했던가?
만일 그렇다면
어쩌면 막장 아니게 '온실'에서만 행복하게 커서
그게 지금도,
혹은 아주 드물게 미래에도 행복을 보장할까?
어쩌면 난 아니지만
타인은 나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까?
그것을 나만 모르고 살다가 그냥 죽어가지는 않을까?
온실의 죽어가는 화초가
과연 대자연 안에서 하얀 설원을 견뎌가며
자라나는 씩씩한 식물들 보다 우월한 삶인가?
이들.
성경 속의 위대한 인물들의 이 허접한 삶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도구가 되었는데
과연 이러한 버거움들이 없었다면
또 세상은 어찌 바뀌었을까?
늘 좋으면 예수께서 필요하셨을까?
나.
나는 어떤가?
심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가정에서 컸고 ^^;;
오랜 힘듦의 과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다 .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속에서는 죽기만큼 힘들만큼
돌아가라면 절대로 그러싶지 않을 만큼 버거운 과정이었지만
이제는 감사함이 날 스친다.
절대의 고독이라 생각되어진
그 시간동안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셨음을 이제는 느낀다.
사 46:3-4)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지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쉬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말씀을 붙들고 살아오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
많은 것들이 내가 원치 않았지만 이루어졌고
그보다 더욱 감사한 것은 '평강', 샬롬이 어떤 것인지
이제는 그 정체가 더욱 넓고 크게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
남들은 알지도 못하는
그 평강..
그 심령천국의 흔적이..
만일 내게 그 어려운 과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 깨달음과 평안이 있었을까?
하지만, 만일 내게 너무도 평안한 삶,
조용하고 고요하기만 한 삶을 사는 것이 가능했다하더라도
지금의 삶과는 바꿀 것 같지 않다 .
또한 어려움 만 있었다고
모두 나와 같은 깨달음
행복의 궁극에 대하여 깨달아 얻지 못함은 웬일인가?
아니, 오히려 확률적으로 보면 비틀어질 확률이 더욱 많을 것이 사실이 아니던가?
이것.
하나님이 전제됨으로 가능한 이야기였다.
고통을 허락하시는 하나님.
그 고통 중에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려는 내 노력.
그 노력을 귀히 여기시어
주권적으로 선택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도우시는 '성령'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룸이 아니던가?
그래서 난.. 그때 태중에서 복중에서 만드시고
내 삶속에서 전혀 느끼지 못했던 불신의 시절에도
그 분은 그 분의 스케쥴대로 나를 지켜보고 계셨음이 분명하다.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그렇다면..
요셉은 미련하기만 한 사람이던가?
정말 온실의 화초로 세상 물정 모르고
아버지의 틀 안에서만 조용조용 하던가?
그는 '순종적'인 사람이다 .
형제들을 무시하고 미련해서 그는 입을 마구 놀리던 촉새는 아니었다 .
그는 형제들의 미워함을 인식하지 못할 만큼 착한 사람이었다 .
그리고 그것이 죄인지 모르는 순수한 사람으로
꿈에 대하여 그냥 사실을 늘어 놓은 사람이다 .
그는 '자랑'의 교만이 없었던 사람이다.
17 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하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보라.
이렇게 까지 그는 형제들을 의심하지 못하는 착한사람이고
아버지의 말을 적극적으로 순종하여 이루어내는
책임감의 사람이다.
그렇다 .
인생은 분명 '막장 드라마'의 연속이다.
어쩌면 정상으로 보이는 드라마들이 비정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
그것.
그렇다면 인생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 이유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
하나님이 안 계시면 무조건 막장의 끝이지만
하나님을 전제로 하면 무엇도 '善' 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 .
그것은 희망이고 소망이다 .
무엇이든 ' 선'이고 궁극의 승리임을
난 .. 이제는 확신한다 .
그게 사실임을 내 인생은 증명해가고 있다 .
스스로..
나를 오래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그러기에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자들의 '불행'이
정말 불행하게 느껴지고
그들의 막장은 소망없는 '지옥의 막장'임을 알기에
더욱 불쌍하다 .
허덕이며 이 세상을 살아나가다가
끝없는 나락에 떨어질...
그러기에 더욱 긍휼한 마음으로 세상에 하나님의 이름을 전파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접하게 해야 한다
주여.
오늘도 허락하신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모든 것..
주님 만 의지하고
주님을 믿고 기다리면
무조건 선이 될 것임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댜
막장 드라마 에 울분을 터뜨릴 일도 없고
막장이 아닌듯 고요한 그들을
그리 부러워할 일도아닌 듯 합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그 삶을 헤쳐나옴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게 되고 선택하고
도우심을 기뻐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고
내 인생의 나머지도 결국은 기뻐해야 할 일임을 깨달아갑니다.
그래서 노년이 두려워하고 피해야 할 거만이 아님을
주님을 믿고
주님을 기뻐하고 있기에
확신되어져 갑니다.
내 주여.
잊지 않게 하소서
믿게 하소서
주님은 선이시고
나의 결국은 무조건 승리임을 요.
이 막장의 세상도 하나님의 원리 안에 있음을 요.
그래서 그들의 세상의 부대낌도
안타까이 볼 것이지
흔들릴 일.. 화 낼일이 없음을 다시한번 깨달아갑니다.
주여.
도우소서.
그러셨듯 또 그리하소서.
믿습니다.
내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앞에
모든 것 내려놓습니다.
주님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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