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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삼마의 경계선 [겔47:13-48:3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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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삼마의 경계선 [겔47:13-48:35]

주하인 2012. 10. 31. 12:02

 

 

47장

  23.타국인이 머물러 사는 그 지파에서 그 기업을 줄지니라 주 여 호와의 말씀이니라

 

48장

8. 유다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너희가 예물로 드릴 땅이라 너비는 이만 오천 척이요

    길이는 다른 몫의 동쪽에서 서쪽까지와 같고 성소는 그 중앙에 있을지니

30.그 성읍의 출입구는 이러하니라 북쪽의 너비가 사천오백 척이라

35.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오늘 말씀에 가장 눈에 많이 뜨이는 구절이

'경계선'이다.

공과를 나누는 과정에 그어지는 '선'이다.

추후에 생길 '다툼'을 최소화 하기 위하여 그어지는 선.

 

거기에는 ' 타국인' 까지 포함되어 있음이 특별하다.

하나님은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 만의 순수를 말씀하시었지만

'타국인'까지 오늘 포함시키심은

세상이 점차로 다양해지면서

'삶 속'에서 부딪칠 수 밖에 없는 갈등을 '지혜롭게 수용'하고

그 경계를 잘 유지할 것을 보이시는 듯하다.

 

거기에 '들고 나는 문'까지 지정을 해주시니

오늘의 '경계선'은 정말 중요한 의미가 아닐 수 없다 .

그리고는 모든 나눔의 중심, 경계선을 긋는 중심에

'성소'를 두라신다.

그렇게 해야 '여호와 삼마' ,

즉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진정한 경계선의 의미가 될 것임을 말씀하신다.

 

 

 경계선.

정말 중요하다.

국가적 경계선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어야 '다툼'을 최소한 할 수 있지만

근자의 '센카쿠'나 '독도' 등의 다툼은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욕심에 의하여 경계선이 무너지기 전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다툼의 증거들이다.

 

 이 경계선은 비단 눈에 보이는 부분 뿐일까?

어제 '대종상' 시상식이 있었다.

아침에 인터넷을 통하여 신문을 보려니 이곳 저곳에서 시상식에 대한 말들이 많다.

동일하게 1천만 이상의 관객이 들었음에도

'광해'가 거의 대부분을 독식하고 '도둑들'은 한개 만 탔기에

무엇인가 치우친 판정이라느니

시상 내내 막장 분위기였지만

그나마 봐줄 만한 것은 ' 류승룡'의 배려와

조정석의 '매너'였다는 둥..이야기가 많다.

 그것.

객관성을 유지하는 '큰 철학'의 틀,

즉,중심을 잡는 경계선이 사라지는 세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

이전에는 '유교'적  , 체면.. 등의 틀이라도 있었지

지금은 아니지 않는가?

보라.

대통령이 아무리 잘못했어도

자기보다 수십년이나 연세드신 분인데

'MB급사'라든가 지하철 '패륜남' , 패륜녀........가 마구

등장하는 것을 들지 않더라도

이런 '사회적 경계선'도 사라져 가는지 오래다.

 

 심리적 경계선은 또 어떤가?

부부가 같이 살면

친정이나 시댁에서 살던 옛적 습관들은 '선'이 그어지고

서로 우선 순위가 조금은 그어져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결혼이전과 전혀 차이 없는 병적 '융합'의 모자 , 모녀와

부부의 모습의 이중적 모습으로 살려다 보니

이 경계선 없는 심리적 역동이

이혼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아직도 누구의 아들인 남편과 누구의 딸인 부인이

부부의 경계를 지키기 보다는

남의 아들과 딸로서 만나려다 보니

각종 갈등이 폭팔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계선의 문제.

그것은 '내'가 누군지 모르는 자들이

서로 서로 얽혀지니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 선은 '누구'도 정해줄 수없다.

절대적인 기준을 부인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세대는

더욱  심해질 수 밖에 없다.

 

세상의 기준이 사라진다는 것은

잠깐 생각하면 편한 듯하다.

자유로운 듯하지..

그러나 그것.. 결국 모두 자기에게 돌아온다.

경계선없음은 '쉴 곳'이 없다는 이야기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그 경계없이 들이 밀어 닥치는

주위의 자기 주장에 영혼은 'burn out' 되어간다.

 

부부는 각자 자기의 역할에 대하여 확실히 깨닫고

서로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서서히 영역을 나누어야 하고

사회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부모와 자식은 어떤 일이 있어도

아버지로서의 자신,

자식으로서의 자신을 확실히 알아갈 때

세상은 서로 조화롭게 유지될 수 있다.

그러한 작업은 쉽지 않고 처음에는 에너지가 소모되는 듯하지만

결국 자신의 '고유성'을 인정받을 수 있고

갈등이 덜한 삶을 영위할 수 있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어디에 그런 역할을 할 올바른 '기준'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절대적 기준.

그것은 '하나님' 이외에는 어디에도 없다.

막연한 '하나님이 최고다'라는 개념 이 아니다.

그분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말씀이 율법으로 작용하기에는 너무도 개인차가 많다.

말씀이 하나하나 개인마다 살아 움직이셔서

그 분이 개인마다 특별한 하나님으로 다가오시며

허락하시는 '사랑'의 기준에 의하여 그리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기에 매일 말씀으로 묵상을 해야 한다.

그렇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절대 가치' 사랑'의 기준에 의하여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세상을 , 나를 , 이웃을 자연스럽게 조율시켜 가신다.

사랑이 바탕이 된

적절한 '경계선'이 우리 주위에 펼쳐지고

그 안에는 비단, 우리의 눈에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불신자'와의 땅나눈 사건 같은

희한한 일, 도저히 인생의 법칙으로는 나눌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것 조차 '조화'롭게 흘러가게 된다.

 

그게 여화와 삼마의 경계선이다.

그것이 세상 모두에게 이루어지면

이 땅이 '심령천국'이다.

그게 내 영혼에서 변할수 없는 틀로 작용하게 되면

내 영혼은 여호와 삼마의 영혼이 되어

내 삶은 천국을 사는 삶이 되게 되는 것이다.

 

오늘 나에게 ' 경계선'은 그렇다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과연 '내것'  내 권리만 칼같이 주장하고

타인의 권리는 짓밟아도 좋다는 그런 뜻인 것인듯 한데

그게 현실에서 나에게 무엇을

어찌하라시는 말씀이신가?

아직 그리 뚜렷하지는 않다.

 

늘 그렇듯

오늘 주신 '여호와 삼마'의 '경계선'을 묵상하고 지나다 보면

저녁 쯤되어

죄에 덜 물들게 되는

덜 실수하여 타인의 경계를 덜 허물게 하시는

그런 하루가 될 것임을 믿는다.

 

 

적용

1. 경계선에 대하여 생각한다.

  내 권리는 짓밟히지 안도록 현명하게 행동하되

  타인의 권리는 침범하지 않겠다.

 

2. 타인의 경계선도 인정한다.

 하나님이 그러셧다.

 세상을 무조건 터부시 하지는 말자.

 인정은 하고 일부분 내 안에 허용은 하되

 그들의 가치가 내 경계를 허물지 못하도록 하겠다.

 지혜가 필요하다.

 기도하자.

 

3. 여호와 삼마.

 하나님이 하셧다 .

 늘 어떤 일에도 주님의 성소를 내안에 먼저 생각하고

 주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는 하루가 되겠다.

 

4 .성경 세장 읽겠다.

 

 

기도

 주님.

늘 그러하셨듯

오늘도 말씀을 주십니다.

경계선

특별히 이해되지 않고 터부시 하던 부분까지 포용하는 경계선.

그 경계선을 내가 정하지 않음.

성소가 그 경계선 안에서 중심이 됨.

그 안에 살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전제가 되는 경계선.

...

그러한 말씀을 현실에 적용시키기 위해

나에겐 필요한 부분들이 많음을 고백합니다.

solitude.

lonelyness 가 아닌 solitude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주님.

받아들일 것을 받아 들이고

아니면 자연스레이 내 경계선 안에 받아 들이고

또 주님이 원치 않으실 경우 자연스레이 내 놓는

그런 흐름의 삶이 되길 원합니다ㅏ.

내안에 청정구역이 이루어지길 소원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그런 자 되길

오늘도 가슴 깊이 소원합니다.

주여.

제 아내와

제 자식들... 잊지 말고 기억하사

그들로 저와 동일한 축복과 경계선의 튼튼함과

그 속에서의 평화로움을

그들 상황에 맞게 허락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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