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악함에 마주하여[삿8:1-12] 본문
1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 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찌 됨이냐 하고 그와 크게 다투는지라
3 하나님이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하니라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풀리니라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들을 질투하며 심하게 다투려 한다.
그러나, 이전의 소심한 듯하던 기드온의 모습이 아닌
대범자 기드온, 대인배 기드온의 모습으로 그들을 대하니
그들의 노여움이 풀렸다.
나.
나라면 어찌했을까?
여지 없이 화났을 것이다.
그래야 그들의 어리석음을 응징하는 시원함을 느낄 거 같으니 그랬을 것 같다.
그리고 나서는 분명코 후회할 것이다.
'조금 참았더라면 더 좋은 ...
나는 어쩔 수 없는 나약한 분노자일 뿐야.. %&())*&%% ..' 등등..
밀려오는 자책감들로 솔직히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정말 나같이 성격 급한 사람들이 대부분 겪는 순서다 .
시원함, 우월한 듯한 어리석은 교만함, 타인을 정죄할 시 오는 쾌감...
->분노 -> 가라앉음 -> 자책 -> 현실적 버거움...
그러나 점차로 말씀이 들어오면서
조금씩 나도 내 급한 위의 흐름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다. ㅜ.ㅜ*
순간은 어렵지만
인내하고 나면 찾아오는 자부심, 평안함.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 자의 든든함.. 이 있다 .
이거.. 아마도
성품이 선천적으로 너그럽고
이성이 발달하여 손해볼 짓 안하는 머리 좋은 분들은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지 모르지만
성격이 급해 그 분노의 에너지의 급박함을 제동하기 어려운 자들로서
내 의지로 되지 않았을 일이
말씀으로 인하여
은혜의 감동으로 그렇다 .
자부심이 늘어나는 것 같다
기드온의 모습을 보면서
악함이라 성급하게 판단되었던 상황에서
진정 옳은 반응이 무엇인지
주님의 성령이 임하시면
완벽하게 변화될 '성화된 영혼'의 소유자의 모습을 보고 있다 .
나.
내가 결국 나가야 할 궁극적 방향이다.
더 열심히 간구하고 빌어서
순간의 시원함으로 인해 맞게 되는 커다란 자책의 파도보다는
잠시 인내함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심으로 주어지는
그 크고 너른 자유함, 평강을 기대하고 그래야 한다.
5 그가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는 백성이 피곤하니 청하건대 그들에게 떡덩이를 주라 나는
미디안의 왕들인 세바와 살문나의 뒤를 추격하고 있노라 하니
6 숙곳의 방백들이 이르되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 어찌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하는지라
7 기드온이 이르되 그러면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넘겨 주신 후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하고
그런 기드온도 '피곤하고 힘드니'
숙곳 방백들의 '이기적 거부' ,
당연히도 당하는 기드온들에게 어이없는 '악함'이라 생각되는 반응에 대하여
불끈.. 한다.
'들가시와 .. 찢으리라' 며 저주를 한다.
위의 '에브라임'들에 대한 반응과 너무나 큰 차이다.
이전에 보이던 기드온의 본성 ( 죄송하지만 쫌생이 기질.. ^^;;)이
그대로 확장되어 튀어나오는 듯 하다 .
이거 웬일일까?
그 성령 충만한 기드온이 보여도 될 모습인가?
여기에서 난 위안을 다시한번 얻는다.
하나님의 사람, 사사로 뽑힌 자들도 역시 '사람'이다.
그역시 다윗이 그랫듯,
야곱이 그랬듯
.............그랬듯...
결점이 있다.
그 결점은 '피곤하거나 힘이 들때' 쉽게 나온다 .
더구나 타인에 대한 반응이
'비교하여' 힘이 없는 쪽에 나오는 듯
차별된 반응을 극과 극으로 보이니
성령의 사람이 그래도 되는 가 싶기도 하면서
나의 너무나 부족함이
반드시 자책만 하고
빛처럼 밝기만 한 예수님이나 요셉같은 분들의
무결점의 인격은
우리의 결국 나가야 할 궁극적인 목표이지
내 지금의 되어야 할 모습은 아니란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매사에 깨어있고
하시라도 십자가 예수님 앞에 나가서 즉시 즉시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인격적 만남을 통해 예수님을 깊이 아는
선택받은 소수들에게는 (죄송 ,.. ^^;)
그러할 당위성을 알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살면서 풍파와 유혹과 결점으로 인한
여지없이 무너지는 신앙심이
어찌 그리 매일 회개할 만큼
큰 '동기'로 우리를 끌고 갈 수 있단 말인가?
분노를 인내하게 되는 타력적 현상을
주님의 성령으로 체험하게 되고
그 후 다가오는 큰 기쁨과 평강의 체험이
내 삶의 변함없는 흐름이 되기 위해서는,
즉 감사의 하나님이
늘 고백으로 나와지는 삶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사모함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기드온이 꿈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를 듣고
즉각적으로 나가며 지혜를 맘껏 발휘하는 중
하나님이 합력하여 승리를 쟁취하게 하시는
그런 놀라운 체험들이 지속되어지는 경험이 쌓여야 한다.
그러기위해서 듣고 순종하고
회개하고 돌이키고
그 과정의 모든 오늘 같은
타인에 대한 악한 느낌,
그러나 성령으로 인한 인내 됨,
그리고 다가오는 기쁨, 현실적 부드러운 관계.. 등이 체험되어져야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지니고 살아가야할 목표는 이렇다 .
'영생'에 대한 간절한 바램.
삶을 도외시 하지 않는 비 도피성 바램.
일상의 삶의 성적과 더불어 어느정도 연관되어 진 기대되는 '영생'.. 말이다.
그래서 세상의 어떠한 조건,
상대의 악함과 비악함,
악한 듯하지만 그렇지 않음,
그렇지 않은 듯하지만 악함... 등
그 어떤 것도
내가 그들에 대하여 분노하고 화를 낼 어떤 이유나 조건이 되지 못하는 ..
그런 상태가 되어야 한다 .
그 모든 것이 절대로 내 면벽이나 초절한 자기 인내의 '자아의 강화'의 결과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을 의식함으로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성령하나님의 흐름이
내 안에서 폭포수 처럼 일어나
자연스레이 되는..
그런 상태가 되어야 한다.
이제 현실로 돌아와
삶속에 나를 맞추어 보련다
누구에게든 잘하면
결과적으로 난,.. 부드러운 인간관계를 맺게 될 것이고
주위에서 칭찬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난 속이 부글거리는 것을 못 참았다 .
상대하는 사람들의 결점을 보며
그들의 단지 그런 '행동'일 뿐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들을 '악한 자'로 단정해버리는
오랜 내 인식의 오류 탓일 듯
급한 분에 휘둘리며 살았다.
그러지 말자.
하나님을 의식함으로
모든 사람과 가능하면 화합하고 살수 있으면 좋겠다.
기드온도 그랬지만
난.. 덜 그랬으면 한다.
더 인내하고 더 온유한 자 되길 원한다.
그 원함은 불가한 바램이 아니다.
내 인생이 증거한다 .
많은 대 격변이 내에 있어왔음은
하나님이 내 인생을 간섭하신
직접적인 증거다 .
더 착하자.
더 인내하자 .
그리고 기뻐할 준비를 하자.
발전하는 내 모습을.. .
주님.
아시지요.
저러한 내 내적인 생각의 흐름의 오류를 요.
하나님이 내 인생을 간섭하기 시작하시면서
더 온유하고 착한 생각으로 바뀌어야 할 당위성을 알면서도
습관의 결과인지 그동안은 많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주님의 말씀이 제 안에 많이 자리를 잡았으니
기드온의 모습을 보이시며
제게도 힘을 주십니다.
그러하길 위하여 더 회개하고
더 생각을 주님주신 매일의 레마로 채워가려합니다.
말씀이신 로고스의 하나님.
제 영을 주님의 뜻대로 움직이시사
기드온에게 그러셨던 대로
제게도 운행하소서.
전 매일 바라렵니다.
이 눈을 통하여 '악한 자'투성이로 바라보던
제 세상관을
악한 행동을 하지만 '화합할 선할 자'들로 보도록요.
피곤하고 지쳐서
주님을 잊지 않도록 하소서
너무 배불러 게을러지는 제가 되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계시는 그곳,
영생의 삶,
그 때 주께 칭찬 받을 저를 기대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나이다.
아멘
-------------------- 2007.12.03 년 묵상 (기氏 집안)
제 8 장 ( Chapter 8, Judges )
기드온의 성향을 가진울
둘째.
1.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찜이뇨 하고 크게 다투는지라
에브라임) 시기, 질투
논리적 근거는 이해는 간다.
형제 애가 없다........ 그러나, 근간은 시기와 질투다.
난, 형제의 성공에 배 안아파할 자신이 있는가?
기드온) 어이없음, 황당함
대승 후에 찾아온 갈등
하나님이 주신 승리.... 이해하지 못할 어리석은 자들의 횡포에 대하여 어이없다.
난 정당하고 굽힘없는 승리에 대하여 질투를 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핍박하고 손가락질 할 것 같다.
2.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이제 행한 일이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3. 하나님이 미디안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붙이셨으니 나의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들의 노가 풀리니라
기도온 ) 겸손하다.
오히려 칭찬한다.
그리고는 자신을 낮춘다.
방법론 적에서도 멋지다.
'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는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 보다 낫다.'는 표현이 멋드러지다.
'어찌 능히 너희 한 것에 비교가 되느냐'라는 말로 분을 풀어준다.
겸손으로 화합을 이루길 원한다.
필요없는 갈등은 무조건 피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형제끼리의 싸움은 주가 좋아하시지 않으신다.
남에 대한 비판은 금한다.
시시비비는 '주님'께 맡긴다.
시편에 '재판은 주님께 돌리라'고 나온다.
그토록 심약하고
므낫세 지파의
가장 작은 집의
가장 작은 자인
숨어서 포도주 틀에 밀을 빻던
기드온,
이 열등감 투성이의 '소시민'이
어찌 이리 담대히 변했는가?
주님과 철저히 아버지 아들같은 교류를 나누며
많은 체험을 하더니
그가 달라졌다.
전쟁에서 용사로 승리하기는
주님이 함께 계시면 너무나 당연하다.
다른 사사들도 그랬고
성경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
베드로도
열두제자도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고
기적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 승리 후의
미묘한 갈등,
심리적 분쟁은 벗어나기 힘들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게
3년간의 철저한 교육과 기적의 체험 후가 아니던가?
그는, 디베랴 바닷가에서 철저한 무기력의 어부로 돌아갔다.
삼손은 안그런가?
내내 승리하다가 결국 나태와 음욕으로 일생을 마쳐 버렸다.
다윗왕은
우리아의 아내를 취하고 우리아를 죽일 음모 꾀한 것은 언제인가?
승리 후가 아니던가?
그외에도 한없이 많은 예들에서
예기치 못한 심리적 싸움에서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다.
기드온이라고 완전치는 않았지만
그의 멋진 모습은
어제의 삼백 용사 싸움 이후
더욱 크게 그 모습을 들어내고 있다.
바로,
형제간의 알력,
가까운 자와의 시험에서
당당하게 이겨내는 모습에서
더욱 크게 드러난다.
그 모습이
여유로와 보여서
더욱 더 좋다.
그리고는 , 아예 그들 에브라임의 악덕에 대하여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
외부의 적들과의 싸움에 정신을 쏟는 것이
어쩌면 이리 영웅과 같은 풍모가 보이는가?
'성을 지키는 사람보다 자기의 마음을 지키는 게 더 어렵다'는 성경구절 어디에 나오지 않는가?
오늘 주님은
에브라임,
그 어리석은 자들을 통하여
나 뿐아니라
현대의
내 주위에 아주 많이 보이는 이 어리석은 모습들을 투영시켜 보이시며
그를 이겨내는 것이
'겸손'
즉,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것이 유일한 방법임을 보인다.
또한,
에브라임은 '므낫세의 그 작은 자 , 기드온'을 핍박하여
실리를 얻은 듯하나,
누가 보아도 치졸하고 엉터리같아 보이는 자들로
낙인이 찍히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되었고
반면
속상하고
화도나고
형제끼리 이 웬 말인가.. 억울하기도 하지만
그 모든 걸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겸손의 모습으로
이겨내고 있는
기드온은
영웅의 풍모가 물씬 풍기고 있다.
어제 묵상 중,
적진을 내탐하고 돌아오면서
확신에 차서
경배하고 변하기 시작하여
양손에 항아리와 꽹가리 등으로 지략을 짜내며
확신에 차서,
'나, 내, ....'를 무려 다섯번 이상이나 선언하던
그
기드온의 확신이
엉터리 같은 자기 확신이나,
일시적으로 성령 충만하여 달뜬 초보 신앙인의 그것이 아님을
분명코 보여주고 있다.
주님은 이러시다.
어떠한 모습으로
약한 모습이건,
회의적인 모습이던..
일단
주님 앞에 올바로 서기를 원하신다.
그 분을 시험하는 듯하는 것이 죄스럽긴 하지만
실은
여호수아나, 요셉 같이
선천적으로
의심없이 태어나도록 태중에서 허락받은 자들이 아니면
철저히 도마처럼, 기드온 처럼
하나하나 확인하며
자신의 성장을 이루어
온전히
내적 성장과 외부적 믿음의 성장이 일치되는
그런 신앙인이 되는 것이 바람직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주님의 적극적 개입이 아니었다면
베드로나,
열두 제자는
그 강렬한 믿음의 용사같던 행진이
결국
디베랴 바닷가의
정신 이상 '전 현직 어부'로 전락할 위험이 있지 않았던가?
오늘 배울 것은 이것이다.
1. 어떤 논리적 이유를 대던,
형제의 성공에 화를 내는 것은 '시기'이며, '질투'이다.
시기나 질투는
하나님의 질서를 위반하는 무서운 죄악이다.
힘들어도
형제의 성공을 사랑하고 미덕을 격려할 마음을 주시길 기도한다.
2. 예기치 못한 갈등은 하나님의 또다른 시험이시다.
이전의 하나님과 동행하며 이루었던 외적인 성과는
내적 평화를 위한 이 연단에 비교하면
오히려 상급이 적다 .
주님은 기드온 같은 온유를 원하신다.
절대로 싸움에 응하지 말자.
3. 겸손
나를 최대한 낮추라.
'스스로를 낮추어서 가장 낮은 사람들을 위한 가장 낮은 직무를 수행하라 - 윌리엄 로우'
4. 남을 높게 여겨라.
주님은 나를 낮추면 높이신다.
주님의 원리다.
5. 성경 다섯 장 읽겠다.
말씀은 나로 변케 하신다.
그 분은 힘이 있으시다.
6. 지혜를 원한다.
칭찬하자.
매사에 하는 칭찬은 싸움을 멈추게 한다.
칭찬은 아부와 다르다.
아부는 개인적 이익을 위함이지만
칭찬은 타인과 나의 영적 안녕을 위한 것이다.
주님이 원하시는 화합을 위한 지름길이다.
7. 전인치유 리더들이 둘이나 빠진다.
기도하자.
새로 참여하실 O와 K 선생님을 위하여 기도한다.
환자 분들이 기적으로 낫길 기도한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겸손에 대하여
다시 한번 배우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어찌나 그리도 닮았는지
약한 자존감과
의심 많은 저와
하나도 다른데가 없는
이 기드온을 통하여
하나 하나
깨우쳐 주어가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이역 만리에서
수천년 전에 살던
아주 시골의
기氏형제가 저를 닮다니요?
주님.
겸손과 지혜를 원합니다.
그 분께 주셨듯이
저에게도
믿음과
지혜와
은사와
겸손과
온유와
통큼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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