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두려움의 根底[삿6:25-40] 본문
무엇이 두려운가
아무리 무거워도
아무리 어두워도
고개들어 하늘 보면
주님의 빛
비추어 보이는 것을
그 분
내 모든 것 다 아시고
그 어떤 것이라도
다 풀어주실
내 하나님
능력의 주님
사랑의 주님
바로
그분이 맞으시거늘
25 그 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버지에게 있는 수소 곧 칠 년 된 둘째 수소를 끌어
오고 네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며 그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여호와'께서 이르시니
( 이르시는 말씀을 듣는 자이니 일단 얼마나 대단한 자인가?
선택받는 사람들은 그의 자질이던, 하나님의 급하신 뜻이시던, 그의 영적 성장이던..
선택받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나..
선택받은 소수이길 늘 기대하고
스스로 그리 생각하고 있다 .^^* )
그는 ..
27 이에 기드온이 종 열 사람을 데리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가문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낮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목숨이 위험한 정도의 일,
아세라 목상을 찍어버리는 대단한 일을 해치울 정도의
담대함과 더불어
나름 즉각 순종할 영성을 지닌 자였다.
34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그러나, 여호와의 영이 임하셔서
동일한 부름을 받았는데
36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39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
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이번은 다르다.
삐딱하다.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노하지 마시라' 하면서
하나님의 사자를 시험한다.
그게.. 웬일일까?
아세라 목상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일의 거대함 탓인가?
그렇다면
그가 두려워서 인가?
두려움이라면 전의 일도 두려움의 크기는 마찬가지일 텐데
어째서 다른 반응을 보일까?
아니면 삐닥심사 탓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신중함 탓일까?
..........
어떤 이유라도
그의 행동의 일관되지 못함...
더더구나 하나님의 이르심, 함께 하심, 그분의 전능하심을 아는
영적으로 깨어 있는 자로서
다른 반응을 보이고
그것을 넘어서 어쩌면 하나님을 의심하는 듯한 행위를
그것도 '담대한지 미련한 지 ' 구분하기 힘들 만한 조건을
주님께 내세워 주님을 마치 시험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무엇을 알리시려는가?
"하나님의 끝까지 참으심? "
"그분의 세심함 ?"
" 인자하심의 극치?"
.......
일차적으로 당연한 말씀이고 하나님의 위대한 속성이시기도 하지만
그러함에도 오늘 말씀을 통하여
나에게 주시려는 '레마'는 조금 다른 뉘앙스시다.
' 두려움에 대한 다른 인간의 다른 반응'
즉 기드온은 단순한 목숨을 걸음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쉽게 이겨낼 수 있는 두려움이지만
사람들을 이끌고 조직을 만들어서 그 자리에 앉을 것을 생각하며 두려워 할수도 있는..
그러한 다른 두려움.
'조금더 신중하고 싶어하는 너무나 인간적인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아 비 논리적인 기드온의 심성 조차
가만히 안아 주시는 하나님'..?
어째든 이런 차원에서 말씀을 들여다 보면
사람들의 자신도 모르는 어떠한 원초적 공포나
내적인 해결되지 않은 갈등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교제에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을
하나님께서는 깊이 아시고 계시며
그러한 그의 '터부' ,
인간적으로 '나는 도저히 될 수 없다' 고 생각하는
그 자신도 모르는 '두려움의 근저'의 핵심을 마주하기 위한
그 어떤 몸부림도
하나님께서는 '인자의 눈초리, 긍휼의 시선'으로 바라보시며
우리의 앞에 놓인 그 어떤 응급한 일도
우리와 교통하시면서 기다릴 수 있으시다는 의미인 듯하다 .
그러면서 결국은
하나님은 선택받은 우리를 통하여
세상을 바꾸어 가시는 역사도 일으키시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하여 더 깊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 개개인의 내적인 문제를 해결하시고
그를 통하여 우리 모두가
단지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어떠하신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는데
도구화가 되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며
혹은 단지 천국의 높은 자리로 보상해주고 마는 것이 아니시고
그 역사의 주인공이 되면서
한편 자신의 내면 조차 성화되어가도록 하시는 것이시다 .
그렇다면 기드온의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을 내가 어찌 알랴마는
주님은 나를 통해
내가 알지 못하는 일을 하시기를 원하시는 반면
나의 내적 깊이 숨어있는 핵심의 오류를 마주하길 바라시는 것일 수도 있으며
'주하인아...
네가 원하는 대로 한번 .. 다 늘어 놓고
내게 네 원함을 말해보거라.
기다리고 인내하고 들어주마.. ' 하시는 듯하다 .
그렇다.
그 분은 우리가 생각하듯
단편적이고 소설적인 분이 아니시다.
그 분은 Macro적이고 Micro적이시다.
세상을 , 우주를
말씀으로 만드시고 성령으로 운행하시어
그 별들의 간격과 생성과 소멸을 주장하시는
너무나 광대하여 추정키 힘드신 분이시기도 하시지만
그 수천조개의 '은하수 '안의
수조개 별의 하나인 지구 (어쩌면 다른 행성도 .. ^^*)에
그 중에서 이 땅의 내게 오실 만큼
우주의 먼지 보다 못한 적은 '세밀한' 나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육화肉化' 하실 만큼 세밀하고 또 세밀하신
정말 위대하시고 위대하기가 추정키 어려운
'서로 비가역적'인 일, 불가능한 일이
동시에 일어나게도 하시는
능력의 엘샤다이 하나님이시기도 하신 분이시다.
그러하신 분에게
' 기드온'의 그 이중적 태도,
그러면서 성경에 버젓이 기록될 만한
그의 그러한 당당함 마져
하나님은 이해하고 인내하고 사랑하시고 이루시는
위대하신 분이시다.
내 안의 이해할 수 없는 영혼의 역동,
내 주위에 도저히 내 머리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의 벌어짐
버거운 내 오늘 아침의 현상,
내 살아가면서 겪어내고 있는
도저히 누구 앞에 , 하나님 앞에 드러내고 싶어지지 않는
내 부족함들...
그러하면서 시간에 밀려
이것 만은 주님이 알지 못하시겠지 하는 '포기'하는 좌절들..
그 안의 , 그 깊은 근저의 버거움들이
기드온의 저러함을 통하여
주님 께서는 나를 통한 주변의 역사를 이루시는 도구로 나를 쓰시면서
나를 더 깊이 만날 수 있는 영적 내면의 화합의 이룸,
그래서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 만 가지고도
예수님 십자가와 성령으로 전제하면
이해되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
세상의 어떤 것도 자유로와 지는
그래서 행복해지고
삶이 힘이 있어지고
영생의 기대로 두려움이 사라지는
궁극의 행복을 허락하시는 듯하다 .
나.
오늘 ..
버거운 일이 나를 누르려 한다.
하나님을 믿는 자,
그분의 역사를 간증거리로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난.. 나를 경멸하고
삶을 무서워할 뻔 했다.
하나님은 날 보고
그러지 마시라 하신다.
글이 이렇게 '주루루' 써지는 동안
내 마음도 주루루 흘러내려
막힌게 뚫린 듯 가볍다 .
감사하고 감사하다.
내 눈이 부었던 것이 풀리는 듯하다.
마음 한구석이 기분이 좋고
가슴 부분이 따스하고
아랫배가 그렇다.
기쁘다 .
감사하다.
주님.
알아서 하실 것을 믿습니다.
제게 주어진 어떠한 것도
어떤 두려움도
주님이 다 아시고
다 받아 주신다는 약속을 믿습니다.
오늘 하루
기드온을 묵상하렵니다.
제게 주어진 상황의 그러함,
그래서 답답함을
주님께 허심탄회이 외쳐보려 합니다.
주여.
풀어주시고 도우시고
주님의 뜻대로 승리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주하인아.. 마음껏 다 소리쳐 외치고 요구해봐라.
네 두려움과 마주해보라.
다 풀어주마.. 하시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내 주여.
감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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