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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 용서 기다림 회복[수20:1-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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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 용서 기다림 회복[수20:1-9]

주하인 2013. 12. 15. 13:21

하나님 안에서는

끝장이나

절망은 없다

 

세상 부요에서 밀려나고

그들의 관심 밖에 있으면

마지막일 듯 싶고

 

날이 춥고 바람이 불면

갈대의 흔들림이 커지듯

외로움도 깊어지는 것 같으나

 

하나님의 도피성에서

어루 만져지는

실수의 아픔은

 

오히려

 황금빛 석양 들판에서

하늘거리는

순결의 부드러움

같을 수 있다

 

그렇다

하나님은 용서시다

사랑이시다

공의이시지만

사랑과 회복의

본질이시다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셨다.

기업을 다 나눈 후였다 .

 

여호수아서가 가끔 걸리는 부분은

늘 승리하고 '기업' 나누는 복 나누는 부분이

아직 온전히 끝나지 않은 내 싸움과 상치되어 있음 같았다.

그러나 요 며칠 여호수아를 묵상하며

싸움은 계속 됨을 메시지로 받았고

그 싸움이 이긴 싸움임을 깨닫도록 하심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아직 이긴싸움이 아니라

자꾸만 싸움을 걸어오는 것 같은 도전을 받고 있다.

변화 없는 듯...

 

어제그제 여호수아 기업 나누는 부분을 통하여

그의 온전한 원함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다시 묵상을 시키셨다.

 

겉으로 나타나는 '복덩어리' , ' 긍정덩어리', '거칠 것 없는 '..

이 세상에 존재치 않을 듯한

'성공 일변도'의 여호수아의 모습과 다른 부분들을 생각케 하시는..

 

그리고

오늘

기업을 다 나누었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하나님이 그를 만나러 오셨다.

 

'주여..

주하인에게도

꼭 하나님의 만나러 오심이 필요합니다. '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들을 너희를 위해 정하여
3.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

  그리고는 '도피성'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도피성.

 

어쩔 수 없이

부지 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까지.............

그곳에 도망하게 하여

보복자를 피하게 하시려는

정말 온전하신 하나님의 사랑.

 

그 실수로 죽인 살인자의 가슴에는

얼마나 많은 회한과 자책과 저주와 눈물이 숨어 있을 것인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에 대한 뼈저린 후회는...

그런 그에게

사람들의 살인자라는 손가락질은

그게 '사실'이기에 더욱 어찌 할 수 없는 지옥의 고통인데도

현실에서는 더욱 혼자임을 절실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런, 지옥의 고통은

하나님의 자손으로서는 있어서는 안되는 것 아니던가?

더구나 '요단강'을 넘어선 자들로서

저런 고통이 있다면

그것은 광야의 고통보다 더 심한 것 아닌가?

그렇다 .

사람 사는데 어디에 고통이 없는 곳이 있을까?

그게 나이와 시간과 장소와 상황과 ... 어찌 관계가 있을껀가?

'실수'라면... 더더구나 말이다.

 

실수.

이 실수를 하나님은 어디까지 확장시키실 것이던가?

어쩌면

과거의 상처,

그로인한 형성된 자신의 어찌할 수 없는 '드라이브',성품으로

이루어지는 중독적 사건에까지 미치는 것은 아닐 것인가?

이것을 빌미로 죄를 확대하는 것은 진정 죄이지만

몸부림치는 회개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많은 아픔과 상처로 인하여 이루어진 결과들...

그  실수라는 단어에 포함되는 것일 것만 같다.

절묘히도..

그리도 느껴진다.

 

 

4. 이 성읍들 중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어귀에 서서 그 성읍의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건을 말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성읍에 받아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게 하고
 도피성에 들어갈 자격에 대하여 말씀하시낟.

 

' 장로들에게 자기의 사건을 말할 것'이라 한다

솔직할 자들.

죄를 직면하여 온전한 잘못의 회개를 할 만한 자들.

말 그대로 실수가 실수로 끝나는 자들에 한한다.

그들은 용서를 받는 다.

 

비록 그 삶이

도피성에 갇히는 삶,

제한된 삶이란 징벌은 반드시 될 지언정

죽음에 이르는 제재는 없을 것이란 것이다.

 

 

 
6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 
 

 그리고,

대 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한다.

 

무슨 의미인가?

 

희망이다.

살인을 실수로 한 죄는 지었지만

회개하고 돌이키면

일정기간의 제한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되고 때가 되면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그의 회개의 정도에 따라

온전히 회복될 것이란 이야기다.

 

희망이다.

용서다.

하나님의 포용이시다.

그분의 진정하신 사람 사랑하심이다.

사람의 불완전성을 아는 온전한 대비다.

참으로 놀랍다.

 

하나님의 참 공의는 참사랑이시다.

 

 

귀하신 하나님.

주일입니다.

마음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내 속의 오랜 터부는

간헐적으로 저를 힘들게 걸리게 합니다.

그럴 때

저는 깊은 좌절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래도 되는가?

이런데도 하나님은 ...

그럼에도 습관된 말씀보기는

저를 자꾸만 생각되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은 도피성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실수..

실수로 인한 죄는 ......

그 실수가 내 실수의 결과이던

윗분들의 실수의 유전이던 간에

내 의도와 상관없이 진행되어가는 인생의 현상들에 대하여

'어쩔 수 없구나.. ' 라시는 위안 같으십니다.

그리고 그 힘듦이

복 , 기업 나눈 가운데도 있을 수 있음을 다시한번 보여주시며

당분간의 '답답함'도 예상케 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주여.

그대로 있겠습니다.

주님의 용서를 믿고

도피성을 묵상하며 마음을 쉬고 영혼을 내려 놓고 기다리렵니다 .

주님

예수 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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