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난 주의 말씀 안에서만 살 수있사오니[시119:17-32] 본문
부제)주여 주께서 그리하시면 난 말씀대로 살 수 있나이다
작은 소리로 늘 말씀을 읊조리는 매일의 내가 되길 원하나이다
삶의 그 어떠한 상황에도
난 그저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말씀 안에서 천착
그냥 말씀 앞에서
낮게 나를 붙혀놓고
주시는 주님의 은혜로만
심히 만족할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바라옵기는
내 바램과 상관없이
제가 낮은 자존감으로 흔들릴 때도
저를 '후대'하시어
다시 말씀 앞으로 오게 하시고
눈 가려진듯 미몽에 사로집히려 할 때도
오직 주의 계명들로만
저를 붙들어 세우소서
주님 말씀 만을
매사 매시 작은소리로 읊조리는
그런 매일이 되게 하시어
마음의 지평이 넓혀지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님의 길로
더욱 열심히 달려가는 나날 되게 하소서
17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
후대하여. ..후히 대하여..
KJV에서는 'bountfully' .. 너그럽게 대하여.. 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리하시'어 주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겠다한다.
뭐.. 왜.. 무슨 뜻이신가?
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 내 눈을 열어'서... '내 눈을 열어주셔야'... '내 눈을 열어주시면'...
'주의 율법' , 주의 말씀에서
놀라운, wonderous(KJV)것을
'보게 하소서'... 보는 것 마져 보게 하여 주시는 것이란다.
지금 현재는 '눈이 막혀 있지만'
주께서 보여 주시면
'놀라운 것을' 보게 될 거란다.
그것도 '주의 말씀'.. 주의 '율법' 안에서 말이다.
19 나는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들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이어서
나는 '땅에서 나그네'가 되어 있는...
그런 지난한 삶을 살고 있게 되었지만
'주의 계명'(그것도 주의 계명 들...이다..말씀 사모가 넘쳐 모든 주의 계명들 !).. '주의 말씀' 만이
관심이라고 고백한다.
주의 말씀을 들을 때
모든 말씀을 사모할 때마다
깨닫게 되어
주의 '평강'이 숨겨지지 않는 삶이 되기를 고대하는 거다.
20 주의 규례들을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분명코 이 말씀도 위와 연관이 되는 동일한 흐름이 맞을 듯한데
표현이 좀 다르다.
'말씀을 항상 사모하는데 '
왜
'내 마음이 상하'여야 하는가?
'항상 사모하는데 왜 상해야 하는가.. '
말씀으로
오직 말씀만
말씀이 유일한 관심이 되지만
아직도 따르지 못하는
나 자신의 심사, 형편, 실체를 마주하고
스스로 마음이 속상하지만
그러함에도 더욱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된다는
그런 의미가 함축된 반어법인듯하다.
하지만... 표현이 좀 그래서^^;; Chat GPT에 물어서
아래에 긁어다 놓았다.
역시 비슷한 내용이다.
23 고관들도 앉아서 나를 비방하였사오나 주의 종은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렸나이다
이 구절..
나
참 좋아하는 구절이다.
'고관'
누구인지 모르지만
내 '고관'으로 자리잡고 내 안에서 의미있는 소리들로
내 행동을 영향 미쳐왔던 ...
그게 '사단'의 그러함이든
현실의 실재 존재이던....
그들의 '비방'..
더구나 '앉아서 비방함'..
지속적으로 비아냥대는 소리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깊은 어려움'..
그들이 인식하든 하지못하든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사람을 말려죽이는 '소리'들인게 맞다.
그를 이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치..
아니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다.
말씀 만이 주시는 유일한 평강을 체험하고
그 깊은 임재의 행복안에서 사는거다..
이게.........
오늘 말씀의 시작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핵심 아니던가?
거기에 '작은 소리로 읖조리다'
'Roaring'
사자의 그르렁 거리는 느낌의 중얼거림..
몸이 관악기의 울리처럼 움직이고
영혼이 반응하는..
그래서 내 오래된 영혼속의 작은 소리들이 떨구어져 나감...
.. 그러한 체험들을 표현한 말.
'작은 소리로 늘 말씀을 읊조림'...
언젠가 'p'목사님이라고
'묵상을 깊이 하셔서 '
'관조'의 수준까지 들어가셔서 하시는 목사님께서
그날도 깊은 말씀의 설교를 하시면서
'이 읊조림'을 사자의 그르렁 거리는 느낌이라 표현 하셨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머리속이 복잡한 난
'소리'내어 기도를 할 수가 없었다.
소리를 내기엔 너무도 많은 영적 부대낌이 있어서다 .
눌린거다
그런데 'Roaring'을 연상하며 작은 소리로 '신음소리처럼' 기도하기 시작하니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내 육신이 '악기'처럼 떨리면서
내 영혼이 춤을 추듯 기뻐지기 시작한 거다
그러면서 내 영혼을 평생 옭죄던 검은 타르 같던
'우울'.. .'번잡'의 .. 느낌들이
기도하는 순간 만큼은 그 진동에 떨려나가듯..
그런 깨달음과 영혼이 깊은 영적 레벨까지 들어가는 듯한 느낌..
꽤 오랜 시간을 기도에 침잠했던 경험.. .
한마디로 그때부터
내 기도가 달라지기 시작했고
많은 영적 변화 , 심적 변화가 일어났다 .
그런거다.
'고관 같은
마치 두려운 힘있는 자 같은 모습으로
영혼 깊숙이 자리 잡은 것들의 소리를
말씀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레마를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떨구어내며
깊은 하나님의 임재로 들어가기를 원하는 것.. '
32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면 내가 주의 계명들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그리하여 내 변화는 '일상' 중에서도 나왔다 .
'내 마음을 넓히시면'.. .
주변인들이 편해한다.
나 스스로 나 자신에 대하여 '편하다 ' ^^*
격변으로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면서
젊은시절 그래왔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냥.. 아니어도 괜찮다.
이게 바로 나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길 위한 도구로
내 모든 것 허락되어졌었다.
종같은 삶이었다 .
후대하시는 주님이 안계신 내 삶은 '천한 종'같은
그런 느낌으로 살아왓었다.
그것..
눈못뜨고 사는 삶이다.
온통 주변이 비아냥대는 '거짓, 실제, 혼재'의 고관들이
비아냥대는 소리에 주눅들어
눈도 못뜨고 진실도 못보는 삶이었다 .
그러던 내가
주님 말씀을 근거로
로고스이신 하나님의 임재를 손잡고
코람데오 하게 하시는
'주님 앞 삶'의 어떠함을
난
말씀으로
알게 된거다.
그래서 매일 말씀을 놓치지 않으려고 몸부림친 세월이
20몇년인지 모른다. ^^*
정말 기쁘다.
비록 ,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하루를 보내다 보면
'마음이 상한 ' 느낌이 들어
나를 돌이키면
어느새 '말씀'과 먼 상태로 지내고 있음이다.
그게 20절과 상통하는 내용이 아닐까?
오늘 말씀은
특별히
내 매사를 다 꿰뚫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읽어주시고
내 나가는 방향을 잘한다 하시며
등뚜드려 주시는 듯하다 .
모든게 다 맞다.
모든 내용이 그대로 다 이해가 된다.
감사하고 기쁘다.
할렐루야
계속 '계명' '말씀' '율례' 들을 말씀하십니다.
주여.
솔직히 얼마나 버겁고 드라이한 느낌이겠습니까?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
주님의 임재를 모르는 자들..
주님의 말씀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하는 자들.. .말씀입니다.
주여.
저 모진 인생들..
'눈가려지고'
후대 받지 못했던 시절의 그 강팍하고 너덜거리는 심령들..
비아냥이 온통 하루를 사로잡아
기운조차 차릴 수 없던 '만성우울의 상태'..
쉽게 쉬이 '마음이 상하던 ' 지난 시절들.. .
지금도
그 특질들은 여전히 남아
순간 '눈이 가려지고 마음이 상하'여 있는 하루의 일부분을
전... 정신차리지 못하면
그대로 흉내내어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연민이지요..
주여.
그 모든 것을 아시고
그 모든 것을 넘어서시는
말씀 가운데 흐르는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
그로 인한 평강..
그게 마음이 얼마나 넓혀지고
얼마나 그 순간 행복한지
그리고 그게 '평강'.. 샬롬의 함축의 뜻인지 아는 저...
그러한 상태까지
살아계셔서 매일 인도하시는 것..
정말 축복이 아니고 뭐 입니까?
이 놀라운 인도하심을
매일 더..
조금이라도 어이없는 자.. 눈못뜨는 자.. 사단의 희롱에 매몰되는 자되지 못하도록
저..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들이라 표현하신 것 처럼
'아가서'같은
나와 상관없는 구절들 마져 포함한
그 어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내게 '삶'속의 천국을 의미하는
축복이 되게 하소서.
거룩하고 귀하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20절의 의문 ))----------
말씀을 사모하는 데 왜 마음이 상할까?
[시편 119:20]
"주의 규례들을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이 구절에서 **"마음이 상한다"**는 표현은,
일반적인 슬픔이나 낙심의 의미보다 훨씬 깊은 영적인 갈망과 애타는 그리움을 담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마음이 상하다"에 해당하는 표현은
**"נִכְסְפָה וְגַם־כָּלְתָה" (nikhsefa ve’gam kaletah)**로,
- 갈망하다,
- 기운이 다 빠지다,
- 쇠약해지다,
- 마음이 소멸되다
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즉,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망이 너무 커서, 그 말씀을 더 알고 싶고 순종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안타까워 마음이 아프고 지쳐버린 상태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신앙 열심이 아니라,
영혼 깊은 곳에서 말씀을 향한 사모함으로 인해 애통해하는 영적 탄식이자,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자 하는 성화의 고통입니다.
주하인님의 말씀 묵상과도 통하죠.
말씀을 향한 사모함이 클수록, 우리는 죄와 나약함 속의 자신을 보고 애통하게 되니까요.
하지만 바로 그 애통이 복입니다 — 마태복음 5:4처럼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예수 그리스도, 기도만이 살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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