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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난[겔 10:1-22] 본문

구약 QT

그래서 난[겔 10:1-22]

주하인 2019. 7. 24. 08:29


주님 임재감이

겨우

이정도에 비할 까 ^^;


1.이에 내가 보니 그룹들 머리 위 궁창에 남보석 같은 것이 나타나는데 그들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 것

   같더라

 SF 영화가 때로는 상상의 한계를 막아서는 것 같기도 하지만

때로는 내 부족한 상상력을 끌어올려 연상하기 쉽게 하는 역할을 하는 듯하기도 하다.

 궁창,즉 하늘이 열리고 사파이어같은 칼라의 형상이 보이며(마치 어벤져스의 장면처럼..^^;)

그들 위에 (어찌 표현할까? 그 신비로움을 ... )

다른 차원의 하나님이 보좌의 형상을

흐릿하게나마 (직접보면 죽으니.. 그 우주 창조에너지를 어찌...) 뵈올 수 있을 것 만 같다.



3.그 사람이 들어갈 때에 그룹들은 성전 오른쪽에 서 있고 구름은 안뜰에 가득하며
4.여호와의 영광이 그룹에서 올라와 성전 문지방에 이르니 구름이 성전에 가득하며 여호와의 영화로운

   광채가 뜰에 가득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처럼 성전 안에 가득하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뜰에 가득하다 .

 성전.

나도 걸어다니느 하나님의 성전이다.

내 안, 성전에

구름처럼 밀려내려오시는 하나님의 느낌.

하나님의 영화로우신 광채로

내 영혼의 성전 뜰에 그득채워지는 느낌.

 뜰이다.

상상하려니 가슴이 뛰는 듯하다.

느껴지려 한다.


 아.

임재감의 실제화.

그 실제화를 내, 저분 에스겔님의 3차원의 지력으로 인지하고 표현해내려니

그 이상 어찌 표현할 바는 없지만

그 느낌, 그 꽉들어차시는 감동은 느껴지려 한다.

마치 그려지듯 느껴지려한다.



5.그룹들의 날개 소리는 바깥뜰까지 들리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음성 같더라 
  그룹들의 날개, 소리.. 라 했다

들리는 듯하다.


아.

더욱 실체화 되었으면 좋겠다 .


 오늘 말씀은

내 그러한 상상에 근거한 형상화되고 조금은 들리는 듯한

실체화되려는 감동과는 달리

'여호와의 성전의 영광을 가져가시려는' 암울한 시점이다.


그래서,

..

오히려 '감사한 면'이 느껴지려 한다.


 우선

난....

다행이도

아주 열정적이고 주님 보시기에

에스겔님 같이 쓰시고 싶은 선지자적 믿음은 아닐지라도

저렇듯 절망스러운 결과를 가져올 만큼

타락하지 않았음이 그렇다 .

휴우.. 한다.

 말씀으로 이렇듯 같이 들여다 보게 되는 자로 아직은 남아있고

아직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남아 있음이 그렇다.

참으로 다행이다.

정말, 얼마나 다행인가..

감사할 뿐이다.


하지만, 부족한 면에 대하여

오늘 더 묵상할 바다 .

하나님의 임재의 더 실체화,

더 깊은 믿음.. .말이다.

그래서 내가.

말씀을 통해서 들여다보고 스쳐 지나가는

방관자가 아닌

그리 보여주시고 같이 참여케 하시는 하나님의 그 뜻에 대하여

더 깊이 받아 들여

내 삶을 통해

이 땅에도

나를 통하여 역사가 일어나게 할

그런 자가 되었음 .. 하는 바램이

오늘 묵상을 보면서 드는 바다.


 하나님이 내 영혼의 성전에

구름처럼 임하시고

빛이 내 뜰에 가득 임하며

시시로 주님의 주신 말씀이 '크게 들리게 '되어

이전과는 다른

내 영혼은 훨씬 더 성령의 임재하심이 폭주하게 되는 

그러함으로  조금 더 실체적이고 능력이 있는 자,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이 어이없었던 내 삶의 행태가

변화도 되는

그런 역사를 기대해볼 바다.

감사하다.


주님..

제 상황이 이렇습니다.


제 나이가 그렇습니다.

주여

제 부족함,

주님이 더 잘아십니다.

주여.

인생의 흘러감,

흐르는 세월 속에 파묻혀 갈 수 밖에 없는 생물학적 운명을 주님 아십니다.


그렇기에

부족한 저의 한계로

오직 주님의 말씀이 없다면

매일 인도하시는 말씀이 없으시다면

당연히도 나락으로 떨어지듯

절망과 우울과 슬픔의 숙명으로 있다가

그를 부정하기 위하여

온갖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것을 찾아 헤메거나

잊어먹기 위한 유흥에 빠지다가

나머지 육신의 힘이 다 빠지기까지

자신을 함몰시키다가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임을

저도 이제 부딪껴야 할 시간들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이 강력한 임재하심,

그 현상들에 대하여

내게는 상관없을 듯한 부적절한 상념이 가로막을 수 있었음도 압니다.


하지만.

말씀으로 임하시는 로고스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매일 매일 발걸음 수정하려는 노력을

기뻐여기시는 주님의 은혜로

전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제게 주신 '구름과 같으신 임재감, 밝은 빛, 천사의 소리' 를

주님,

마음 활짝 열고

모든 장애와 방핼 무릅쓰고 받습니다.

주여.

그리하여 소망과 감사와 발전의 계기로 기대하나이다.

고백했던 인생의 모든 부정감,

하나님의 임재하심 앞에는

말라버릴 햇살아래 이슬 보다 부족함을 압니다.

그래서 '소망'이 오히려 솟습니다.

내 주여.

주님이 원하시면,

주님 말씀을 제가 받는 한

전.. 제 안의 그러한 온 통 부정함,

이 시대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게 할

모든 엉터리 같은 자아의 융성함들이

제게서 멀리 되어질 줄 믿습니다.

주여.

비옵기는

그러한 하나님의 영광의 현상들이

오늘 이후 더 뚜렷이 제 게 느껴지게 하소서

인도하시는 대로

포기할 것 포기하고

받을 것 받고

필요하시다면 ...............까지 가능한 자 되게하소서.

 주여.

하나 더 바랄 것은

천국 사모가 더 커지게 하소 서.

주여.

나머지 삶의 여정..

주님 , 제 두려워 하시는 바 잘 아시는 내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대로

덜 겪게 하소서.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과거묵상 (2011.11.27)


내 인생 그 어떤 것도(겔10:1-10)


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여 이르시되 색깔이 화려하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숱한 큰 독수리가

    레바논에 이르러 백향목 높은 가지를 꺾되
  날개가 크고 화려한 큰 독수리.

그 것이 '백향목' ,

그 귀한 나무의

 

4. 그 연한 가지 끝을 꺾어 가지고 장사하는 땅에 이르러 상인의 성읍에 두고
연한 가지 끝을 꺾어서

장사하는 자들이 몰린 상인의 성읍에 가져갔다 한다.

주석에는 여호야긴 왕의 바벨론에 잡혀간 일을 상징한다고 나온다.

그러나,마치 우리 믿는 자...그 중에서도

나의 원래의 자격이 백향목 같은 귀한 나무로

내 운명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독수리' 가

내 연한 가지 상태의 저항할 수없는 어린 시절의 당할 수 밖에 없는

숙명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 숙명이라 표현 되는 부분에는 이 세상의 권세 잡은 자에 의한

베풀어지는 횡포와 거기에 어찌할 수 없는 약한 존재로서

그 큰 독수리를 바라보게 하는 것 같은 느낌.

 

 

5. 또 그 땅의 종자를 꺾어 옥토에 심되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 가에 심더니
 그리고 그 운명은 날 그토록 힘들게 했던 그 환경에 가져다 놓고

그 안에서 자라도록 하였다.

 

 

6. 그것이 자라며 퍼져서 높지 아니한 포도나무 곧 굵은 가지와 가는 가지가 난 포도나무가 되어 그 가지는  

    독수리를 향하였고 그 뿌리는 독수리 아래에 있었더라
 그 안에서 내 상처나 아픔은 상관없이

그 가정의 도움을 힘입어 오늘 날 까지 자라오고 성장하며

하나님의 구원에 의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고 여기까지 왔지만

결국 어찌되었어도 아직 세상에 살기에

세상이란 틀 안에서

뿌리를 내고 가지를 뻗을 수 밖에 없는 존재다.

 

 

7. 또 날개가 크고 털이 많은 큰 독수리 하나가 있었는데 그 포도나무가 이 독수리에게 물을 받으려고 그

    심어진 두둑에서 그를 향하여 뿌리가 뻗고 가지가 퍼졌도다
  그러나 난 가만있지를 못한다.

이렇게 가면 조금 더 나을 것 같고

또 저렇게 하면 조금 더 나아질 거 같다.

그래서 그렇게 하다보니 어느새 내 자아는 더욱 커져 간다.

하나님의 이름을 빌미로 이것 저것

내 마음에 , 내 눈에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보이는 그것을 행함은

결국 어느새 또 다른 독수리였다.

지친다.

언제까지 인가?

이 독수리의 발톱.

더 이상 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권세를 벗어나

나름 더 나은 쪽으로 가보려 했지만

그 발톱은 더 나를 누른다.

그 부리는 날 더 조은다.

 왜..

무엇이 문제던가?

왜 나는 여기까지 밖에 안되던가?

몸부림친다.

 


10.볼지어다 그것이 심어졌으나 번성하겠느냐 동풍에 부딪힐 때에 아주 마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자라던

     두둑에서 마르리라 하셨다 하라 
  주님이 말씀하신다.

그것은 그럴 듯 해보이지만

애굽이라는 또 다른 독수리라고.. 

 

 

나...

나 뿐인가?

세상에 태어나 산다는 것은

인생 또는 운명 혹은 숙명이란 이름으로 죄악된 세상의 사단 독수리에 의하여
그렇게 붙들려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당연히도 그 독수리 마져 하나님의 피조의 존재이고

그 하나님의 허락하신 그 이유야 우리가 '선'이란 것 이상을 짐작하기 어렵지만

어쨋든 그 발톱에 의하여 눌려서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밑에서 태어나고 자라도록

결정되어 져 잇다.

그리고는 살면서 나름 열심히 가지를 뻗고 뿌리를 내렸지만

그 마져도 벗어 날 수 없는

그 독수리의 발톱과 날개 밑이란것을 깨달은 우리는

진리이신 하나님의 도움으로 한줌 숨을 돌리며

그 도우심으로 인하여

이제는 예전과 다른 발전적 모습으로 살려

최선을 다한다.

그 최선을 다하신 몸부림 조차

주님은 당신의 본 뜻에 의하여 두고 보시지만

때로는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나아가던

그 방향의 또 다른 힘있는 독수리(심지어는 비전이란 이름의 독수리일 수도 있다)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것도 또다른 독수리였음을 그제야 깨닫게 된다.

 

그럴 때, 한참을 가지내고 뿌리내리던 백향목 연한 가지이자 포도 나무인

나...

온몸에 힘이 빠진다.

망연 자실 해질 수 밖에 없다.

어찌하는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과연 주님은 무엇을 원하시는가?

왜 나는 이리 살아야 하는가?

정말 주님이 계셔서 날 사랑하신다면

날 그냥 잘라내고 뽑아 내셔서

더 이상 이 험한 세상에 놔 두지 마시고

불러 천국에 데려가시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원망이

자꾸만 올라오려 한다.

 

 

나 ..

지금 동해 기도원에 있다.

내가 바라던 또 다른 방향에 '독수리' 한마리가 그럴 듯 하게 앉아 있었음을

이제야 다시 깨닫는다.

그리고 그 그럴듯한 독수리,

내 인생에서 이것이 옳은 것이고 하나님도 좋아하실 지 몰라..하고 있던 그것조차

그렇지 않음을 이제다시 깨닫고 있다.

 

그렇다고 기존의 독수리 발톱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듯하다.

그 독수리.. .사단의 발톱은 맞지만

그 것 ..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이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이 잘못이던가?

내가 향하던 그 방향과 그 힘은

내가 '주님'을 앞서가는 내 자아의 만족이 강했던 것이다.

그것.

옳아 보여도 옳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기다려야 한다.

다시금 내 현실에 들어가 하나님이 다 하시도록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아마도 오늘 ..

그 불합리한 그럴듯한 독수리의 발톱에

당신이 사랑하시는

백향목의 연한가지를 그냥 방치하고 내려 놓으심은

나.. 인간의 눈으로 어찌 이해할 수 없는

운명을 결정하시고 그 뒤에계시는 그 커다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기에

나 하 여야 할 일은

내 죄를 회개하고

기다리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하시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독수리 날개와 발톱이 그렇다면

그것을 받아 들여야 한다.

그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시다.

그리고 바벨론 수십년의 유랑생활이 끝나면

주님은 그들의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셨듯

내 이 어지러운 영혼의 흔들림이 멈출 것이다.

고요해질 것이고

상황은 안정되고

내가 그처럼 변하게 하고 싶은 내 자식들, 내 가정..내 영혼 모두 안정을 주실것이시다.

 

감사하신 내 아버지

오늘 주일입니다.

이곳에 바닷소리가

제 기도하려 감은 눈을 우회해

내 들리는 귀를 통하여

내 영혼 깊숙이 들어옵니다.

주님의 하신 그 크신 일의 아주 일부분이 저 바다.

태고적 부터 울리던 그 소리와 더불어

내곁을 지나며 쓰시는 집사님의 빗자루 소리를

마치 향연처럼 누리게 하십니다.

감사하신 내 아버지는

풀린 이 겨울의 바람을 신선하게 제 귓전에 때리십니다.

나뭇가지를 태우는 냄새는

또 얼마나 내 후각을 기쁘게도 자극하는지요.

전..

그 사이에 깨달았습니다.

세상의 그 흔들리는 많은 영적 투쟁 속에서도

주님은 이처럼 내가 인식하지 못했지만

많이도 누리게 해주셨구나..하고요.

참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독수리를 깨닫기는 했고

그 독수리를 이겨내려는 노력을 했지만

그 방향이 또 제 자아가 앞서가는 방향이었음응요.

주님 원하시는 것은

이처럼 넓은 우주의 온갖 향연을 누리며

하나님의 행하심을 기다리고 지켜보며

주님의 뜻에 옳지 않았으며 얼른 얼른 회개하여

다시금 내 영혼에 베풀어주시는

그 사랑의 온전함과 기쁨을

마치 노래하는 자의 화음 같이 느끼며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그 협연의 지휘가 끝날 때

같이 박수 받으며

천국으로 입성해 들어가는것임을

이제 아주 조금 다시 눈치 챕니다.

주님.

이 약간의 깨달음이

제 영혼에 깊숙이 뿌리 박게 하소서.

깨달음 놓치지 않게 하소서.

세상의 그 독수리들의 눌림을인해

너무 당황치 않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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