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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마음

[스크랩]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예수님이 보여 주신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주하인 2009. 4. 7. 18:08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예수님이 보여 주신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밀함의 욕구를 충족한 대상을

세속에서 찾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한다.

 

참된 우정을 가끔 만나는 경우가 있지만

극히 드물고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실패하지 않았다 해도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느낌이 있다.


우정과 사랑만으로는 자신이 꿈꾸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음을 의식하는 것이다.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예수님이 보여 주신 길을 그대로 걸어가는 것이다.


외로움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나를 무조건 사랑하시는 분을 만나는 길, 


즉 하나님께서 외로움을 충만한 기쁨으로 바꾸려고

나를 기다리고 계신 그 자리,

허무를 사랑의 불로 바꾸시는 분이 기다리시는

내 존재의 가장 밑바닥까지 찾아 내려가는 길 밖에 없다.


인간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 주려고 오신 예수님이

외로움을 없애는 대신

우리가 더욱 더 깊은 심연으로

내려가도록 두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영광에 들어가시기 위해

허무의 심연을 겪어야 하셨다면

그 영광을 나누어 받기 위해서

그 분이 통과한 심연을 우리도 함께 통과해야 한다.

 

십자가의 신비처럼

외로움은 죽음의 시작이며 그 끝은 죽음이다.

 

죽음은 새 생명으로 이어진다.

외로움 때문에 우리는 의기소침해지고 환상이 깨진다.


이 때 예수님은 모든 것을 비우고 조촐해진

우리의 가난한 마음에 사랑과 생명을 쏟아 주신다.


인간은 누구나 잘못된 환상을 수없이 품고

이를 실현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고 간청한다.

 

만일 주님께서 환상으로 가득 찬 소원을 다 들어 주신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갈까?

이 소원을 들어 주시지 않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기도를 열심히 해도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지 않을 때 잠시 낙담한다.

대부분은 자기의 잘못된 환상을 깨닫고

마음이 정화되어 눈이 밝아졌을 때

그 소원을 들어 주시지 않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하나님께서 그 청들을 다 들어 주셨다면

지금쯤 교만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며

가장 좋으신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리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진리의 밑바닥인

허무의 심연에 도달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여기까지 내려간 사람들은

하나님의 불로 변화되어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했다.

깊이 내려간 만큼

진리이며 사랑이신 주님을 더 크게 체험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먼저 내려가셔서

우리를 기다리심을 안다는 것은 큰 은총이다.

두려움 없이 심연에 몸을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 밤의 특징이므로

우리는 종종 혼자 있다고 생각한다.


외로움의 심연에서 우리는 주위가 보이지 않으니

혼자라고 여기며 방향 감각을 잃어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켜보고 계신다.


하나님의 은총의 빛 비출 때까지

믿고 바라면서 기도 안에 몰두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둠 속에 영원히 있을 것 같고 길게만 느껴지던 밤이

지나감을 보고 자신을 지켜보는 사랑스런 눈길과 만나게 된다.


외로움이 축복인 것은 주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로움은 우리를 관상의 길로 인도하기 때문에 은총의 전주곡이다.


자기 심연의 깊이를 바라봄으로써

인간의 허무를 크게 깨닫고 하나님 자비의 심연을 바라볼 (관상) 수 있다.

 

외로움의 심연은 자비의 심연을 자극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 수밖에 없게 만든다.


십가가가 우리를 부활로 이끄는 것과 같이 외로움도 역시 그렇다.

 

십자가를 잘 지라는 것은

일상에서 어쩔 수 없이 부딪히는 고통을

잘 받아들이고 감내하라는 뜻이다.


살면서 마주치는 외로운 순간을 잘 받아들여

주님을 만나는 여행을 하라는 뜻이다.


외로울 때 연민이나 자기 동정은 금물이다.

이는 외로움에서 빠져 나가는 미묘한 자기 방어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외로움의 심연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그 겉 표면에서 자기 미화로 시간을 다 보내게 된다.


자기 연민은 남과의 교류에도 벽을 쌓기에 자신을 더 외롭게 만든다.

이 외로움은 친구와의 친밀한 우정, 가족 간의 사랑 속에서도

다가오는 외로움을 그냥 바라보고 맞이하는 것이다.


때때로 느껴지는 외로움은 더 친밀한 관계를 위해

안으로 들어오라는 초대이다.

외로움 역시 원인을 알면

빈 공간을 충만으로 채울 길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다 가지고 누리며 살 수 없다.

다 누려도 인간은 외로운 존재임을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은 영적이고 깊은 친밀함을 갈망하는

신비한 존재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 깊은 곳에 울려오는 외로움의 원인을 찾지 않고

피상적으로 빈 공간을 채우려 하거나

기분전환 같은 외적인 즐거움만 추구하여

빈 공간을 채우려 하거나

기분전환 같은 외적인 즐거움만 추구하여

도망치려 한다면 공허함은 점점 더 커진다.


지금 세대는 하나님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집을 떠난 둘째 아들처럼

자기들 생각대로 하고 싶은 것 다 하며 풍요롭게 산다.


물질 위주의 삶을 살기에 마음은 텅 비고 공허하다.


물질적으로 잘 사는 현 세대가 느끼는 외로움은

친밀하고 영원한 사랑을 향해 돌아오라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부르는 아버지의 초대이다.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우리는 인간의 마음에

이 갈망을 심으시고 기다리시는

자비로운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러

내면을 향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이 여행을 떠난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만났고 사랑을 체험하였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때까지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면


외로움은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표시이거나

만났다 하더라도 원하는 만큼

충만히 하나님을 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외로움은 하나님의 얼굴을 만나는 그 날까지

인간이 걸어야 하는 여정이다.


수도자들은 이 외롭고 고독한 길을

의식적으로 선택한 사람들이다.


외로움 그 자체를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지름길을 택하게 됨으로

자신이 고독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 외로움을 비추는 등불은 기도다.

 

기도는 방향 감각을 잃고 해매는 우리를

인도해 주는 나침반이며 길잡이이며

하나님께 도달하기 위한 유일한 안내자이다.


 


'마리 헬레나, 외로움 그 축복의 시간'

에서 발췌, 요약한 내용임


 

예향원(www.yehyangwon.net

 

 


- 위의 사진은 락헤드님의 사진입니다.-

 

 

 

출처 : 예향원(www.yehyangwon.net)
글쓴이 : 예향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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