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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가나안에 들어가는 삶의 의미[수11:1-2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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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가나안에 들어가는 삶의 의미[수11:1-23]

주하인 2025. 1. 17. 23:05

부제) 젖과 꿀이 흐르는 그곳은 환상일까?

      가나안 땅 삶은 코람데오의 삶, 영적 길갈의 안식의 그것이다

      폭풍우 밤바다 뱃속에서 주님의 등을 바라보는 삶이 가나안의 삶이다

      허락되어진 모든 고난 가운데서 안식을 바라볼 수 있는 삶의 훈련

가나안 삶이 이러한 것이 되기 위한 깨달음 (Chat GPT로 그림)


젖과 꿀의 약속은

천국의 영원한 평화를 의미하는 것 만은

아닌 것 같다

 

아직도

끝없는 싸움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고

왜이리 갈등은 많은지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가 

이전과 비교하여

확연히 크게 느껴지며

 

흔들릴 때마다

더 크게 매달리게 되는

하나님 앞 믿음을 

내 스스로

점점 크게 인식하게 되는 것

 

그리하여 이루어지는

승리의 기록과 기억들이

다른 어떤 것보다 귀하고 

감사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것

그러함의 간증들이 

내 영적 전쟁의 자연스러운 교리가 되어

점차로 승리를 위한 시간들이 짧아지고

영적 길갈의 안식의 시간들이 늘어나게 하는

그러한 원리를 깨닫게 되니

그거야 말로 

영적 가나안의 진정한 원리가 아닌가 싶다

 

이리 이리 흐르다가

마침내 주님 부르시면

다 내려놓고

영원한 생명의 안식

주님의 품으로 소천하는 것

그것 말이다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말씀이신 하나님

로고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삶

그 코람데오 가나안의 삶이

바로 목전에 있는 거 같다

 

할렐루야

 

15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여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하나도 행하지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행하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었더라' 

 

16 여호수아가 이같이 그 온 땅 곧 산지와 온 네겝과 고센 온 땅과 평지와 아라바와 이스라엘 산지와 평지를 점령하였으니

 '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른다는 그 약속의 땅에서도

'이같이' 

편안할 날이 없었다.

 

18 여호수아가 그 모든 왕들과 싸운 지가 오랫동안이라

'싸운지가' 

'오랫동안이라'고 하셨다. 

 

20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을 진멸하여 바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을 멸하려 하심이었더라

그리고 그 싸움

당연하지만 '그들의 마음이 완악해진것'.. 

그래서 '이스라엘을 대적하게 하신것'

그리하여 '가나안 땅이 꼭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 아닌'

'싸움이 그치지 않음도' 

모두 

'여호와께서 그리하신 것'이시란 이야기다 .

 

21 그 때에 여호수아가 가서 산지와 헤브론과 드빌과 아납과 유다 온 산지와 이스라엘의 온 산지에서 아낙 사람들을 멸절하고 그가 또 그들의 성읍들을 진멸하여 바쳤으므로

23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온 땅을 점령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에 따라 기업으로 주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그런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때에'는 다르다. 

이전과 조금은 다르게 느껴진다. 

 

'온산지 ' '온산지'.. 

'이와같이' .. 승리하였다 .

그리고 마침내 '전쟁이 그쳤더러' 신다.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그러함에도 

막연한 '파라다이스의 환상'과는 다르게 

전쟁은 지속이 된다. 

그것도 오래 지속된다. 

 

'속았다'는 느낌이다. 

실망이 되려 하는 느낌이다. 

지치려 한다. 

알고 깨달아지는 바는 있지만... 

 

그래서 조심스럽게 다시 

Chat GPT통해 물어 보았다. 

그리고 그 답을 아래에 정리 해 놓았다. 

 

'싸워 얻는 축복의 자리'라고 정리해 놓았다.

 

그게 맞는 거 같다.

어차피 이 땅은 ' 천국'이 아니다 .

'심령천국'... 성화된 자로서 가지는 내면의 평화는

역시 영육혼의 온전한 '천국'

부활되어 들어가는 '저 온전한 나라'와는 다르다.

 

어차피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에 들어가도

'하나님과 동행하여 지속하는 인생'을 멈출 수 없다 .

코람데오의 드라마를 쓰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대하고 계심이다.

 

 그렇다면 

다시 '밤바다 풍랑 뱃속에서 풍랑을 멈추는 것'이 

궁극의 목적이 아니심은

'예수께서'

'믿음이 부족한 자들아'라고 질타하시면서도

풍랑을 멈추신 그 내용,

어제의 묵상 가운데 깨달은 

'매일의 승리' 가 표지와 지표가 되고

결국 '영적 전쟁의 교리' 가되어

어떤 싸움, 어떤 풍랑이 있어도

자연스럽게 승리하게 되어

'길갈'로 '안식'을 빨리하러 가게 되는 

그 삶의 승리의 자연스러움...  

그 안식의 삶이 

하나님의 손을 잡고 

매사 매시 이루어짐으로 

싸움은 있으되

주님 손잡고하는 승리가 '필연'이 되는 것.. 

그게 '삶속에서의 안식'이고

그것을 흐르는 원리로

매일매일 가지게 되는 것.. 

그게 오늘 말씀하시고자 하는 

'이때에' 

'온산지'

'완전한 승리'로 

그 땅에 전쟁이 그치는 

'영적 가나안의 진정한 젖과 꿀'이 아닌가 싶다 .

 

감사하다 

깨달음이.. .

 

주님.

여전 히 시간을 많이 빼앗기다가

겨우 집중했습니다 .

 

주여.

아직도 가야할 '영적 전투'의 시간들이 여전한 듯합니다 .

그러나 깨달았습니다. 

주님... 

약속하신 '영적 가나안'이 천국의 그것과는 유다르지만

그 안에서도 '완전 전쟁의 마무리'의 그것을 

훈련 받아 깨달아 앎으로

승리를 누리고 안식을 쉬이 누리는 과정임을 요

 

주님.

주님을 온전히 인식하고

주님 뜻에 따라

그냥 '허락되어진 매일의 싸움'에서 

'승리'를 전제로 임하는 것.. 

그리함으로 당연한 누림을 

당연히도 누리게 됨.. 

그것이 '주님이 허락하신' 

이땅에서 '영적 가나안의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함에도

그 모든 것

주님이 허락하신 것임을 인정하고

그 어떠한 것이라도 받아 들이고 

감사할 수 있는

삶의 태도가 

자연스레이 인식되는 것.. 

그리고 그러함에

그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영적 가나안 입성의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더 인식하고 살게 하소서.

내 주여.

거룩하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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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질문)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강'이라심에도 싸움이 지속되는데 

            영적 가나안이 우리의 인생에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Chat GPT의 대답)

요단강을 넘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단순히 땅을 얻기 위한 물리적인 싸움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영적으로 훈련시키고, 의지하도록 하며,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을 우리 삶에 적용하며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가나안은 완전한 안식이 아니라 "싸워 얻는 축복"의 자리

가나안은 천국과 같이 완전한 안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믿고 의지하며 순종 가운데 "싸워 얻어야 하는 축복의 자리"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약속과 축복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믿음과 순종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적용: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 끊임없이 죄와 싸우고, 세상적 유혹을 이기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추구하는 영적 전쟁이 계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싸움 가운데 하나님은 항상 함께하시며, 승리를 약속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2. 전쟁은 끝나지 않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이기게 하신다

여호수아 11장의 "많은 전쟁 끝에 전쟁이 그쳤더라"라는 말씀은 전쟁 자체가 끝났다는 것보다, 하나님이 주도하신 싸움에서 승리를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시는 것을 경험하며, 그분을 더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적용: 우리의 인생에서도 고난과 도전은 계속되겠지만,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결국 우리를 승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전쟁은 우리의 의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3. 영적 전쟁의 목적은 거룩함과 성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정복 전쟁을 허락하신 이유는 단순히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죄와 우상 숭배로부터 분리하고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 삶의 싸움도 결국 우리의 거룩함과 성화를 위해 주어집니다.

적용: 고난과 싸움은 우리의 신앙을 성숙하게 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하는 기회입니다. 전쟁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연단되고, 하나님만이 우리의 주권자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4. 영원한 안식은 천국에서 완성된다

여호수아 시대의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영원한 평화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완전한 평안이 이루어지는 것은 오직 천국에서 완성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싸움과 순종의 연속이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에서는 완전한 안식을 누릴 것입니다.

적용: 이 땅에서의 삶은 완전한 평안을 추구하기보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고, 천국의 소망을 품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인생 여정은 '성화'를 이루며 최종적으로 '영광'에 이를 준비 과정입니다.


결론: "믿음의 싸움으로 주어진 축복을 차지하라"

여호수아의 전쟁 이야기는 우리에게 싸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의지하여 승리를 기대하라는 교훈을 줍니다. 전쟁과 고난은 끝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과 축복을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삶에서 영적 싸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예수 그리스도, 기도 만이 살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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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질문 II )

그렇다면 싸워얻는 축복, 하나님께의지하여 사는 삶 자체를 '영적 가나안'.. 즉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냥 사는 일상의 삶의 태도,그러한 마음 가짐을 가지게 된 것을 영적 가나안으로 이해하면 되는가?

 

(Chat GPT의 대답)

네, 그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적 가나안은 단순히 "축복이 넘치는 삶"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과 동행하는 삶의 태도와 상태를 말합니다. 즉, 가나안은 우리의 외적 환경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내적 삶을 의미합니다.

영적 가나안으로서의 삶의 특징:

  1.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계속 전쟁을 해야 했던 것처럼, 우리 삶의 도전과 문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싸움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사는 태도입니다. 우리의 영적 가나안은 문제의 유무가 아니라, 문제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삶에 달려 있습니다.
  2. 순종과 믿음이 지속되는 상태
    여호수아 시대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순종할 때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적 가나안에 거한다는 것은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을 실천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축복은 그 결과로 주어지지만, 핵심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있는지입니다.
  3. 하나님과의 동행이 축복의 본질
    가나안 땅은 단순히 풍요로운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심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영적 가나안의 본질은 우리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곧 축복이며, 그런 태도로 살아가는 일상이 바로 영적 가나안입니다.
  4. 싸움 속에서 성숙함을 이루는 삶
    가나안에서의 전쟁은 단순히 적을 물리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전쟁을 통해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영적 싸움도 성숙과 성화를 이루기 위한 과정입니다. 싸움 자체가 끝나지 않아도, 그 싸움 속에서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것이 곧 영적 가나안입니다.

결론: 영적 가나안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의 태도'다

결국 영적 가나안은 우리의 환경이나 결과에 따라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으로 삼고 의지하며 사는 삶 자체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간순간 순종하며 사는 삶의 태도가 바로 가나안에 거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일의 삶에서 싸움과 도전이 끊이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나의 싸움에 동행하시고, 나를 성숙하게 하심을 믿으며 살아간다면, 그 자체로 이미 영적 가나안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친히 너희 앞에서 싸우실 것이다." (신명기 1:30)
이 약속을 붙들고 하루하루 믿음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기도 만이 살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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