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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도 십자가에 못박고 ( 요19:17-27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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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도 십자가에 못박고 ( 요19:17-27 )

주하인 2009. 4. 9. 11:06

제 19 장 ( Chapter 19, John )

 

 

21살 이라나요.

바이얼리니스트  박지혜.
천재 .

유명한 것이, 독일에서 33억짜리,  전세계 3대 밖에 없는 바이얼린 중 하나를 대여 해줄 정도의
대단한 실력자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니어도 바이얼린에만 경호원이 2명 붙는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대단한 명기.
그 명기를 소유한 어린 연주자.
사순절.
붉은 십자가가 더욱 붉게 보이는 그 시간에 저희 병원에 왔네요.

 어제 .
전인치유.

 

 이 여리디 여린 처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는 실로 엄청났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온 청중을 압도하고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비밀은 이 얼굴에서 잠시 느껴 볼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음악과 하나가 되어 있는.......
 그 속에 녹아들어 마치 울듯한.........
감동이었습니다.

 그 감동을 캐취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마치 소녀처럼 이제 갓 아이티를 벗은 사춘기의 소녀처럼

하나님에 대하여 그 분이 해주신 모든 것에 정말  감동으로 이야기 합니다.

 이 분은 연주로 자신을 이끌어 내 주시고 이끌어 가시는
그 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폭팔 시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더욱 감동였습니다.
"내가 안되지만 주님은 하십니다................"
그게 연주에서 튀어 나오는 메시지고
제 영혼에 꼽히는 감동의 실체였었습니다.

표정을 보세요.
자기 만족과는 조금 다르지요. ^^**

나라면, 좀 창피했을 얼굴 근육움직임인데..ㅎ

아름다웠습니다.


 

 

  
 
19.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21.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하니 
22.  빌라도가 대답하되 나의 쓸 것을 썼다 하니라
 
 빌라도가 '유대인의 왕'이라 썼다.

자칭..을 빼고 ..

왜 일까?

 세상에 타협해서 어쩔 수 없이 하지만

예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감에 자신도 모르게 하는 것일 가능성이 많다.

 비록 정치적 목적에 밀려서 하지만

그들에 대한 야유의 목적도 없지 않을 듯 싶다.

 

 무엇이든

진리를 외면하는 자의 편하지 못한 마음과

누구든 믿을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케 한다.  

 


23.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내 진료실 안 에

예수 십자가 고상(苦狀)이 놓여 있다.

십자가 달리신 예수님의 고상은 백이면 백 다 하체를 가린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 벗겨졌다.

보라.

'속옷도 취하니'라 나오지 않는가?

 

 십자가는 생명과 구원과 사랑과 포용과....갖은 선한 것의 중심이지만

십자가는 고난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난에는 육신의 고난도 있지만

그 고난을 아시면서도 십자가에 달리시는 예수님의

심리적 고난 - 불안, 두려움 ..... -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 묵상 중

유난히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속옷도 취하지 아니한 채' 십자가에 오르실 수 밖에 없는

그 예수님의 느껴지실 수치에 대한 것이시다.

 로마병정들은 어찌도 그리 잔인한가?

사람들의 고통을 최대한 끌어내면서도

온전히 수치까지 당하게 하여 죽게 만드니

그 얼마나 십자가의 고난은 잔인하고도 잔인한가?

 

 그런데 예수님과 일행의 반응이 놀랍다.

십자가 밑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부끄럽기 그지 없는 상황이고

보는 사람들도 민망하기 그지 없을 텐데

그들은 그냥 모여 있다.

 수치스러움을 넘어서는 무엇인가 십자가에는 있는가?

 

 일단, 수치스러움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사람들은 임계 상황 - 극단의 상황-을 넘어서면 수치를 잊는다.

산모들은 전혀 부끄러워 않는다.

예수님도 그러실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분의 말씀을 보라.

' 여자여.  어머니...'

너무도 이성적 말투가 아니신가?

임계 상황이라는 상황은 예수님의 육신에 가해지신 상황이시지만

그 분은 돌아가실 상황까지 정신을 놓으신 분이 아니시다.

횡설 수설하고 극도의 아픔에 자제력을 잃으신 분이 아니시다.

 

 그 분은 수치를 '능동적'으로 잊어버리신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수많은 관중들이 보는 앞에

십자가에 달린 것은 개인적으로 파멸의 수치를 맛볼 상황인데

거기에 옷을 다 벗겨졌다.

그리고 바로 밑에 올려다 보는 식구와 친우들이 있다.

어떻게 수치를 잊을 수 있는가?

 또 밑에 찾아 온 사람들의 민망함은 어떻게 잊게 하셨는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해가 된다.

 

십자가다.

십자가는 필요없는 수치마져 씻어 주신다.

 

난, 수치감이 많았고 지금도 많은 편이다.

그게 내 삶을 많이 제한하고 있다.

주님의 말씀을 더 힘있게 준행하는 데 제한이 되고 있다.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신다.

수치를 없애기 위해 예수님을 믿지 말고

십자가를 중심으로 깊게 받아 들이면

수치는 자연적으로 사라지리라.

예수님의 십자가.

그 고난의 십자가를

내 인생의 모든 행위와 생각과 영혼의 중심에 받아 들이고 기뻐하면

모든게 자연적으로 해결되리라........

 

 목요일 아침이다.

사순절 시간동안이라서 인지

나도 모르게 '십자가'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목요일 아침 , 큐티 찬양인도 중 불신자 투성이 ^^;; 앞에서 찬양 하다보면

혼자 만 할 때가 많다.

머쓱하고 부끄러워지려 하고 마음이 식어 가려 한다.

그래도 해왔다.

내가 가진 달란트니 주님 위해 발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

하지만 얼마전 부터 달리 생각이 들었다.

 주님의 십자가가 내 생명의 원천이다.

십자가 때문에 난 산다.

찬양하는 자리는 주님 앞에 가장 가까이 가는 자리다.

난 밑에서 주님을 올려다 보고 있다.

민망할 자리일 수 있지만 십자가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십자가는 '수치심'마져 못 박는 자리다.

 

아침 찬양은 은혜로왔다.

물론 나 혼자다.

기도했다.

내 감동이 절로 흘러나와

길게 하지 못하는 내 기도가 절로 길게 나온다.

물결치듯, 시를 읊듯...

그리했다.

그 중 몇의 가슴에는 내 기도가 들어 갔으리라.

 

 그래.

십자가 상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가족을 어우르는 마음으로

가까운 자들을 대해야지.

부끄러워 하지 않으면서...

 

 

적용 

1. 주님의 십자가는 치유의 십자가이기도 하다.

 부끄러움 마져

 수치심 마져 다 녹이신다.

 

2. 이것은 안돼..라는 잘못된 터부를 녹이시는 십자가를 묵상한다.

 예수님 벗은 몸 아래서 올려다 보는 것은 안되..는 인간적 예절이다.

하지만 주님은 부끄러워 하지 않으셨다.

 사람들도 그랬다.

 난, 너무 제한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던가?

 예수 십자가는 제한을 푸는 십자가다.

 자유의 십자가다.

 

3. 성경 일곱장 읽겟다.

 

4. 가족을 다 이해한다.

 더 사랑한다.

 더 안아주고 용서하고 이해하리라.

 주님이 명하신다.

 네 어머니다.

 네 가족이다.

 

 

 

기도

   주님은 자유의 주님이십니다.

자연스러운 주님이시고

흐르는 주님이십니다.

십자가는 너무도 큰 단속이고

주님의 이 땅의 삶을 잘라버리는 횡포이지만

주님은 그 십자가로

세상과 하나님 나라를 이어주시는 흐름의 도구로 삼으셨습니다.

 

 수치는

세상의 삶을 단속시키고 잘라버리는 잘못된 감정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주님은 그 수치마져 못박으셨습니다.

십자가를 내 생명의 원천으로 다시한번 받아들입니다.

그 십자가의 생명을 내 몸으로  표출하길 원합니다.

내 영혼의 흐름의 중심으로 십자가를 세웁니다.

주여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주님 십자가로 마련된 이 놀라운 치유와 생명을

성령으로 도우사 흐르게 하소서.

주님은 흐름이십니다.

제 수치를 흘려 보내소서.

내 미움도 그리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 감사 하며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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