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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보다 무서운 멜리데의 남얘기( 행28:1-15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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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보다 무서운 멜리데의 남얘기( 행28:1-15 )

주하인 2007. 11. 15. 12:57

제 28 장 ( Chapter 28, Acts )

오랫만에 걸어오는

한밤의 강변 퇴근 길은

가을로

깊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가을이 주는

풍성한 색깔로

주님은 날 위로 하십니다.

감사하신 

주님... 

 


1.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가끔

주님은 세상을 통해서도 위로를 허락하신다. 

 멜리데를 통해서

쉼을 허락하신다.
   
3.  바울이 한뭇 나무를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을 인하여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독사가 물었다.

내 독사는 무엇인가?

왜 독사가 물었을까?

물고 있는지라..는 표현을 보면

사도 바울께서

독사가 슬그머니 나오는 걸 깜짝 놀라서

털어버리지 않은 상태를 넘어서

가만히 있는 듯한 뉘앙스다.

왜 그럴까?
 
4.  토인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달림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 하더니
  쉬려니

독사가 물고

멜리데의 그 친절한 토인들이

이제는 저주한다.

 세상은 이렇다.

아무리 달콤하고 위안이 되어도

한계가 있다.

모두들

자신들의 안에 깊이 갈무리된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은

원죄와 그 원죄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관 관계에서 얽혀 생겨난 일이며

자신들이 인정하든 안하든

이 땅의 온전한 것은

그로 인하여 기대할 수 조차 없게 되는 것이다.

 

 독사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렇게 표변하는

사람들의 비방과 저주의 입이다.

 


 
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탁 털어버리려면

손의 Extensor 와 Flexor muscle (신전 근육) 들이

순간 요동을 치게 되며

그 순간

뱀은 그 뛰어난 민첩성으로 물었을 것이고

떨어버림에 의하여

뱀은

관성의 법칙대로

낙하해서

바닥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바로 위에서 예측한 바대로

차분히

불에 떨어 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중후해 보인다.

어쩌면

달관해 보인다.

아무 것도 아픈 것도

아무것도 두려운 것도

아무 것도 귀찮을 것도 없는 모양이다.

 

그냥 차분하게 행동한다.

이게

14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었고

풍랑 속에 시달림을 받는

죄수의 모습이라고 생각이 되질 않는다.


 
6.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저희가 기다렸더니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말하되 신이라 하더라
 사람들의 입방아.

이바구

남 얘기

저주.

비방

........

이것은 그냥 단순히 하는 말의 유희에 지나질 않는다.

거기에는

자신 들 깊숙이 숨어 있는

죄악이 스며 배어 나와

은근히 말하는 대상에

그 죄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특별히 기독교인이라면

신앙 양심에 의한 무게까지 더해져서

대상에게 전가시켜 던져 버리는 것이다.

그게 바로

남얘기다.

 

 그것은 사단의 작전이다.

그것은 남을 죽이는 사어 들의 난무일 뿐이다.

 보라.

그 친절한 토인 들이

오직 뱀 탓에

그가 죽는 것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사람이 죽는 것은 마땅히 슬퍼하고

그러기 전에 위로하고 치료의 노력이라도 해야 마땅치 않은가?

 남얘기는

빛깔 좋아도 하지 말아야 한다.

결국 어둠의 세력에 의해

자신의 영혼을 지배 당할 수 있다.

특히,

기독교 인의 남 얘기는 더욱 냉정하다.

거기에는 '신'의 입장에 서서 보는 듯한 '정의감'까지 더해져

인정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이

매몰찬 공격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상처 받아 실족하는 사람이 종종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가능하면

긍정적인 언어를 써야한다.

가능하면

주님의 말씀으로 기뻐해야 한다.

가능하면

겸손한 단어와

사랑과 이해의 단어를 사용하여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사도 바울의

그 독사 공격과

그 비방의 더해짐에

담대함과 아무렇지 않음이

오늘 내 하루 삶의 태도의 지표로 온다.

 

 어떤 속생각이 날 괴롭혀도

담담할 것이다. 

 

 

 
15.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주여

나도  ......

 

 

주님

막히지 않는 자유로움을 허락하소서.

주 안에서

허락 받은 깊은 영혼의 친구들을 허락하소서.

주여

나도 그들로 인하여

담대해 지게 하소서.

주님을 사례하게 하소서.

주님

내 속의 한 곳을 비어

늘 주님이 자리 잡을 곳을 만들게 하소서.

그래서

독사가 독 이빨을 드밀어도

아무 당황도 안할

주님의 버퍼링을 허락하소서.

주여

남들의 시선과 손가락 질에서도

자유롭게 하소서.

그럴 수록

하늘을 더 바라보고

주님 계시는 곳을 더 기뻐하게 하소서.

그런 마음을 허락하소서.

주님이 주시마 약속하시는 말씀의 내용들이

제 안에서 다 받아 들여져

제것으로 융화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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