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세상의 부조리 속에서 나를 붙들기[삿8:1-21] 본문
어쩌면
이러한 나를 바라보며
부조리하게 느끼는
다른 생각의
젊은 존재들은 없지는 않을까?
왜 저이는
어찌하여 저사람은........하며..ㅎ
그래도
하나님 허락하신
아름다운 금수강산의 깊은 가을 아래서
쉬어도 되는 시간의 누림을
오직 감사함으로 누린다면
그것으로 된거 아니겠는가? ^^*
홀로 영광받으소서
주여..
1.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찌 됨이냐 하고 그와 크게 다투는지라
'에브라임 사람들'과 '크게 다투었다'고 나온다.
다툰다는 것은 쌍방이 목소리 높여서 주장할 때 나오는 표현이지만
'KJV'에서는 'accuse(비난하다, 고소하다)'라고 나온다.
아래에 이어지는 내용을 볼때
다툰게 아니고
2.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3. 하나님이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하니라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풀리니라
'기드온'이 일방적으로 참은 것으로 보아
'비난(accuse)'받은게 맞을 듯 싶기에
개역한글의 '다투었'다는 해석은 틀린 듯 싶다 .ㅜ.ㅜ;;
각설하고
'에브라임'으로 표현되는
기회주의 자, 세상의 성공하기 좋은 조건을 갖춘자들..
그러면서 자신의 발하는 말들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자신을 속이면서 까지
자신의 정의를 나타내고자 하는
힘있는 , 상대보다 힘있다고 생각되어지는 무리들............
그 무리에는 '신앙인'이든 아니든
믿는 자든 불신자이든 상관없이 (가끔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많다 ..ㅠ.ㅠ)
아주 자주, 많이 부딪치게 된다 .
아.. 버거운 이 지구 위의 삶, ...광야 연단...ㅠ.ㅠ;;;
승리를 크게 하고 나서야
자신들을 왜 빼 놓고 일을 저질렀느냐는 듯
하나님이 하신일을 전~혀 생각지도 아니하고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일이라 생각하여
강한 분노를 표출한다.
마치 그게 '정의'인양...
하나님과 '자아'를 전혀 구분하지 못 하는
세상의 힘만을 가진 (가졌다고 착각하는 ...)
저질의 무리들....(내 생각, 내 분노의 근거 ㅠ.ㅠ)
이때
기드온,
이 의심많은 소시민 적인 성품을 지닌
리더가 그런다.
"내가 .. 너희에게... 비교가 되겠느냐"
"너희들의 끝물이 .. (내) 맞물... 낫다".....라고하며
"내가 어찌..." 한다.
이거.
아주 '겸손'한 태도다.
정말 ..
여기까지 보면...
그리고는 돌아서서 나오는 그 후에도
그들을 향한 '분노'내지 '미움'.. 원망, 비웃음, 진저리, 소름...........
이러한 하등의 감정의 찌거기는
전혀 표출하지 않는다.
결과는 잘 해결됨이다.
그게 비록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은 태도인
'에브라임'들의 어이없는 미련함을 깨우치지 못하고
그들을 하나님 앞에 돌이키는 단초를 마련해주지 못하고
그들의 그러함이 최소한
하나님의 하심을 무시하는 것임을
넌지시라도 깨우쳐주지는 못했을 지라도
위의 내면의 갈등을 내려 놓고
더 이상 같은 민족끼리의 반목을 무마하고
스스로도 '분노'의 수레바퀴(성경적 표현 ^^;) 에 사로잡히지 않음은
지혜로운
배울 태도다.
특히
기드온의 '소시민'과 '의심많음'
그러면서 ...........하여튼 공감되는 부분이 많은 자로서
내가 갖지 못한
저 감정의 찌기들을 현명히 처리하는 법은
(오늘 비난,accuse에 마주하는 법) 정말 배울 만하다 .
그것
일단 주님이 내게 허락하신
뚜렷한 레마인듯 하시다 .
나머지 부분..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 앞으로 돌리는 것은
'기도'로서
아니면 뜻이 있으셔서 인도하시는 때에 맡기는 것으로 ... ^^*
16. 그 성읍의 장로들을 붙잡아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사람들을 징벌하고
그런데
그, 기드온이 숙곳... 들에게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
주석 설교하시는 '목사'님께서 그리 말씀하셔서 알았다.
" 힘있는 에브라임들과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 "
그러고 보니 그렇다.
그것도 '들가시와 찔레'로 죽이는
소위 '잘근잘근 씹어 죽이는' 처절한 잔인함을 보인다.
강한데 약하고 약한데 강한가?
정말 그게 맞다면
나에겐 그러한 면은 없는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서
이중 잣대로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을 달리대하지는 않던가?
소위 말하는 권위자에게는 약하고
힘없고 약한 자들에 대하여 뻣댕기는 것은 아닌지..
특히 요즈음은 나이든 분들의 어이없음에서 내 모습을 보나.. .
노추老醜가 진저리치게 싫어진다..
죄송합니다. 주여..
실제, 설령 ...
그래도 사랑하게 하소서..
그런데 '에브라임'과 '숙곳'들의 상황은 다르긴 하다.
에브라임들은 그저 잘난체하고 자기 위신 때문에 그랬을 뿐
현실적인 위험에 빠드리지 않았지만
'숙곳'들은 정말 위기의 순간에 매몰차고 냉정하게 반응해서 그랬다 .
그마져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범위내에서 그랬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마져 다른 방법으로 나마
점잖고 존경할 만한 대우로 대했으면 ..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두 부류들.
너무도 많이 본다.
주변에서..
세상에서..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수없이 마주할 유형들이다.
교만한 사람,
교만하며 미련한 사람
미련하며 약다고 생각하는 사람
나이들어가며 대우를 받길 원하는 사람,
자신의 이룸이 아닌
가족 찬스로 그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것이 위세인양 고개 빳빳이 들고 세상에 입으로 칼질 하는 (^^;; 주변에 많다 ) 사람들..
거기에 남의 위기를 보면 순간 얼굴을 바꾸는 자,
어제의 용사가 이해 못할 분노로 다가오려는 자.......................
세상에 부지기수로 맞이할
이해하기 힘든 부류들로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기본적으로 착하거나 같은 믿음의 동지이지만
그들의 특질로 인하여
서로서로 순간순간 상처를 물어 뜯게 되는게
이 '광야 사막' 인생의
어쩌면 당연한 아픔들 아닐까?
하나님 이 허락하셔서
우리의 내면의 죄를 드러나게 하실 목적으로
서로 서로 부딪끼게 하는
악한 일면들 (맞다... 그것을 그 사람 자체로 보지 말자.. 일면이다. . 원죄적 특질의 일면)일 뿐이다.
그렇다면
'기드온'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이미지는
오늘 말씀을 보면서 어떻던가?
어떻게 느껴져 오는가?
일단은 '소심'하고 조심스럽지만
'지혜'로운 사람이다 .
자신을 낮출 줄 알면서
남의 교만과 약점들에 분노하지 않을 '지혜'.. 가 있다 .
그들의 그 무지함,
그러한 역겨운 행동 조차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이루어진
원죄적 존재들의 잠깐 실수............로 이해하고 넘어가며
더 이상의 그들, 에브라임들의 그 미련함에
진저리를 치고 속상해 하고 저주하지 않을
인생에 대한 폭 넓은 이해 .........가 있다 .
또한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약함',
전혀 논리에는 맞지 않지만
그들을 높여줌이 하나님의 '민족간의 다툼을 싫어하실 것임'을 아는 자로서
스스로를 약하게 낮추는게
결코
쪽팔리는게 ^^; 아님을 아는
강한 자이란 이야기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언제든지 '약함을 강함으로 알 '수 있을
영적,
심리적으로 강한 자다.
그게 옳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약함과 궁핍.. 기뻐하'는 자가
되어야 함이 맞다 .
아마.
오늘
주님이 그런 일이 있을 지 모르니
그런 나를 즐겨라.. .하시는 듯 싶다 .
그리고 또..
기드온은
그 이후의 어이없음, 분노, .................원망.......은
전~혀 가슴에 담지 않는 사람이었다.
완전히 잊어 버리고
그들을
그들 에브라임들의 그 부조리 함에 대하여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렇다.
모두 , 그러한 존재들이다.
인생이란..
세상은
'아담'이후
다 부조리하게 허용되었고
그러한 것은 그들의 특질의 한면일 뿐이었으며
그러한 세상의 풍조, 부조리에
흔들릴일은 전혀 없다는 것을 안다.
또한 기드온은
숙곳과 에브라임 등에 대한 양면적 반응하는
자신의 그 어이없는 이중성에 대하여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
비록, 스스로를 돌아보며
덜 잔인하고
더 지혜롭게 숙곳들을 대햇으면 어땟을까 하는 면이 없지 않지만
자신의 부족함에 대하여
그 이중성에 대하여도
크게 고민했다는 흔적은 없다 .
그러함은
'고민'은 하나님이 다 아실 것이니
나도 내 스스로에 대하여
너무 깊이 좌절이나 잘남을 기뻐할 이유가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 같기도 하다.
이분.. 역시
하나님이 성경에서 영웅으로 묘사하는
영적 위치에는 있지 않은듯하다.
어차피 사사는 그렇지 않을 것이던가?
삼손.. 봐서도.. ㅎ
그러기에 그들의 '순수한 믿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에 가장 '차선'인 면을 보고
주께서 선택하신
그러기에
우리네 '보통 신앙인'들과 비슷한 부분이 많기에
그들의 모습을 보며
배우는 대상이기도 하며
한편, 내려놓을 것 내려 놓게 하는
반면교사의 역할을 하는 것같다.
오늘 하루..
기드온의 모습을 통해
나를 바라보며
이 부조리한 세상의 하루를 살아가며
또 하나님 원하시는 대로
내려놓고 내려놓으며
살아갈 수 있길 원한다.
주님
그래서 그러려 합니다.
주님 말씀 안에서
말씀에 근거하여
내 주변 동료들,
허락하신 자, 보내 주신 자라 생각되는 분들의 단점들이
세대가 달라서인지
조금은 받아 들이기 힘든 단점들이 눈에 뜨입니다.
그것들..
이전의 저로서는
확하고 올라와 불러다 잔소리하고 고치길 명령하고 싶지만
하나님 원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
가만히 기다리고 지켜보니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한 직장의 동료로 잘 행동하고 있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성경 말씀,
성경의 원리대로
제가 조금 스스로를 낮추니 그게 맞구나.. .
이전 까지의 내 기준대로 바라보지 않으려 했음이 맞구나.. 함을
이제는 자주 느낍니다.
하지만... 자꾸 자꾸 그 기준선을 넘어서는 찔림이
가끔은 느껴집니다.
주여.
오늘 말씀에 맞추어 들여다보니
제 기준이 틀렸음을 다시금 확실히 알수 잇습니다.
주님이
이 부조리하다 느껴지는 세상을
제가 어찌 살아야 하는 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정확히 들여다 보게 하십니다.
감사합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내 오류의 판단을
이제 시대의 흐름과 하나님의 원리에 맞추니
이해가 되며
내 스스로도
그러함에 미련히도 흔들리는 것을 스스로 질타하지 않아도 될
그러한 근거가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주여.
주님이 허락하신 이 인생반경에
허락하신 '에브라임 같은 동료'들을
옳게 바라보게 하시고
그러함에 남을 감정적 찌기들은
그냥 성령의 물 위에 흘려 보내며
다가올 영적 숙곳들조차
조금은 더 하나님의 원리에 맞추어 대할 수 있는
온유와 겸손을 주소서.
아..
겸손이 더욱 필요합니다.
온유가 진짜로 필요합니다. \
주여.
성령으로 도우소서.
이리 비오니
그리스도의 보혈로 안되는 부분 가지치시고
성령의 은혜로 자연스레이 되게 하소서.
겸손과 온유함으로
세상의 부조리에
제 스스로의 부조리에 마주 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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