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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발판인가 좌절의 덫인가( 욥30:24-31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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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발판인가 좌절의 덫인가( 욥30:24-31 )

주하인 2008. 10. 17. 09:21

제 30 장 ( Chapter 30, Job )

 

 

클로바 꽃이

하늘을 향해

아름다운 결실을 맺어냈다.

참 아름다운 가을이다.

 

 

 

 

 

24.   그러나 사람이 넘어질 때에 어찌 손을 펴지 아니하며 재앙을 당할 때에 어찌 도움을 부르짖지 아니

       하겠는가  

 당연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천하의 의인이고

동방의 부자였던 그도

재앙이 닥치고

힘이 들면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할 수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그게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없고

참고 인내해야만 할 일만은 아닐 수 있다.

 단,

사람보다는 '하나님'을 봐야지..

사람은 '실망'을 줄 뿐이다.

사람은 이해하여야 하지 이해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욥은

하나님께만 구했다.

하나님께만 하소연 했다.

 

 

 

 

26.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구나  
  

 하지만,

그 분 하나님은

손 내밀면 반드시 주시는 자판기 같은 분은 아니시다.

때로는

참으로 모질게 느껴질 정도로 힘이 들 때가 있다.

욥처럼 열심히 주님을 동행하면서

스스로 고백한 바처럼

모든 하나님과 함께하는 원리를 다 알것만 같고

마치 '도'를 깨달은 듯

그게 다 일것임을 알것만 같던 그에게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제

그의 주님을 향한 과거 시절의 그 느낌을

그대로 전해 받으면서

주님을 함께 하는 자의 놀라운 허허로운 충만감을

공감한 적이 있다.

하지만 ,

주님은 그게 다가 아니신가 부다.

주님은 항상 복 다음에 '연단성 고통 '만을 주시는 분도 아니시지만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27.  내 마음이 어지러워서 쉬지 못하는구나 환난날이 내게 임하였구나 

 

 마음이 어지러워 쉬지 못한다.

 지금도 환란 중인데

마음이 어지로운 것을 굳이 '환란'이라 표한다.

육신의 고통보다 더 힘이 든 것이

마음의 고통일 진데

그 마음의 고통이라 표현 한 것은

단순한 심란한 상황의 표현 보다는

영적인 메마름...

주님이 함께 하셨던

그 놀라운 기억 속의 평안한 열정의 기쁨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 분이 안계신 것 만 같은 메마름.

 십자가 성 요한 께서 말씀하신 것 같은

'감성의 밤'

 세상의 그 어떤 고통 보다 힘이 든 것이

주님이 느껴지지 않는 메마름으로 인한 심적 고통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크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많이 성화되셨던 분들의 고백은.. .

 

 

 아침에 엘리베이터를 타니

늘 그렇듯

젊은이들은 하늘을 쳐다보거나

아예 무표정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문이 열리고 현관 자동문이 열리기 까지

조금 서두르는 듯한 기색이 보여

한쪽으로 비켜서니 얼른 추월한  젊은 여성이

내 앞을 치고 나가서

날 가로막고 몇초가 지나서 문이 열리니 달리듯 나간다.

불쾌하려 한다.

결국 몇초인데

저리들 서두른다.

 걸어서 출근하는 동안

젊은이 들이 내 앞을 가로질러 부딪치듯이 앞서 나가는 경우가 많다.

순간

정죄가 되려 한다.

'아니

 이런 버릇 없는 자들이..

 우리 때는 어른 앞을 가로질러 가면서

더구나 사과 한마디 없는 것은 상상도..

세상이...' 하면서 울화가 올라오려 한다.

 그러다가 화들짝 놀랐다.

어느샌가

난 중늙은이가 되어 가고 있다.

세상의 흐름이 그렇다면

과거의 것만 되새기는 것은 '할아버지 '들만 하시는 것이라고

얼마나 욕을 해댔었던가.. 혼자서.

그걸 내가 굳혀가고 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화를 내고 있다.

속으로...

하지만 모든 것을 용인하고 받아들임은

배알이 없는 것 같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고 ...

가끔 이러다가 머리가 복잡해지면

그냥 눌러 버리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 .

 하지만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르며 마음이 하나로 정리가 되어가면

오히려 차분해지고

내 스스로 대견해 질 때가 없지 않아 있다.

 이런 것이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나는 미련하되 저들은 지혜롭고 나는 약하되 저희는 강하고...'

주님은 십자가에 저들보다 훨씬 훨씬 나쁜 자들과

저런 상황보다 몇천배는 더 억울한 일을

그냥 하나님의 뜻으로 인내하셨는데... 하는 생각들이

자연스레이 떠오르면

그러한 속상함과 분노와 어지러움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내 영적인 에너지가 덜 소모가 된다.

난 편하다.

 마음이 편한 것 보다 더 좋은 것 없다.

세상 삶에도 별 무리가 없어진다.

솔직히 고백하지만 그렇게 내가 대견 스럽게 보이도록

말씀이 살아나오는 것은

하루의 삶 중에서도 별로 안된다. ㅎ

아직은 덜 성숙한 중년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보면

훨씬 성공률이 높다.

그냥 잊어버리고 귀찮아서 눌러버리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말씀 안에서 융화되어

차곡 차곡 내 인격으로 쌓아가는 빈도가 말이다.

그러한 때

난 별거는 아니지만

내 속의 마음이 하나로 통일 되어 흐름을 느낀다.

내 영혼은 주님의 '의'로움이 어떤 것인가를

슬며시 느끼는 것이다.

그 의로움은 괜한 미소를 짓게 하고

큰 걱정이 없게 하고

그리 불안이 없게 하고

촉촉한 기쁨이 날 펼쳐가고 있는 듯하게 되는 것이다.

표현이 정확한 지 모르지만

욥이 그제 고백한 것 처럼

'나의 영광이 날 새롭게 하고'라는 표현처럼

날로 날로 매시 매사에

내가 날 새롭게 보게 되는 것만 같다.

그러니 하루는

어떨 때는 참 새롭고 도전할 만한 시간들의 연속인 것 처럼 느껴지고

잠자리에 들때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평강 가운데 뉘일 때가 많아 진다.

 

 욥은

이러한 것보다 훨씬 큰 세기와 강도의 주님 임재 체험을 하던 분이시다.

그러한 그 분이

아무리 친구들의 공격과 환란과 육신의 공격에도

주님을 바라보려고

총력을 기울이나

주님의 허락하셨던 그 놀라운 의의 평강을

그는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냥 자신도 모르게

자신 속에는

이전에 없어지고 말았을 것만 같았던

짜증이나 메마른 고통 만이

우울하게 올라오는 듯하여

그는

자신에게 놀라고 있는 것이다.

이슬같은 자신의 기쁨을 고백한 게

바로 전인데

현실을 돌아보니

'마음이 어지러워 쉬지 못하고'라고 한다.

 

 마음이 얼마나 혼란 스러운지

걸음이 비틀리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길거리 가다가 쉬지 않고 찾아오는 불안함과 죄스러움이

숨을 턱막히게 하여 길거리 가다가

가만히 서서 '후.. '하고 심호흡을 하면서

하늘을 쳐다볼 때가 있었다.

수년 전..

물론 내 영적 성장이 과거에 욥의 지금 상황보다 더욱 높다는 뜻이 아니다.

마음의 고통을 이야기 하려 한다.

그때는 난 내 미숙한 영적 성장과 본성의 결점 탓으로 그랬을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나타나는 마음의 고통은 비슷하다.

아니..

지금도 수도 없이 많은 분들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증상들이 그럴 것이다.

 그만큼 마음이 어지러운 것 보다 견디기 힘든 고통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자살하는 연예인들이 재물 탓인가?

사회적 관계성 부족 탓인가?

.........

아니지 않는가?

마음

그 원인이

'죄'나 '환경이나 '상처' 등의 '심리적 원인'이든

욥처럼 '영적 성장의 연단통'이든 간에

마음이 혼란 스러운 것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것이라는 이야기다.

 

 

30.  내 가죽은 검어져서 떨어졌고 내 뼈는 열기로 하여 탔구나 
 그 고통을

욥의 놀라운 어휘 구사력에 의하면 이렇다.

' 내 가죽'

즉 '피부'가 거칠어지고 검어졌다는 것이다.

얼마나 힘이 들면 저럴 까?

신장 부전이 되신 분들은 검어진다.

그 분들의 고통은 말도 못한다.

뼈가 열기로 탔다고 한다.

그 분 욥이 앓고 있는 육신의 병은

이렇게 뼈가 탈정도의 고통은 아니다.

뼈를 태우고

골다공증을 만들고

사람을 쉽게 늙게 하는 것은

마음의 스트레스다.

그 마음의 스트레스는

여성의 난소의 호르몬 분비를 줄이고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떨어뜨리며

내장의 흡수기능을 떨어뜨리고

중추 신경으로 하여금 식욕을 감소시켜

뼈가 삭게 한다. ㅎ

골다공증'

골다공증은 아프지 않다.

뼈가 아플 정도니 그 고통은 얼마나 심한 고통인가?

 

 

 어떠한 이유의 심적 고통이든

고통의 원인은

크게 세가지다.

 

하나는

육신적 고통이 만성화 되면

사람으로 하여금 지치게 하고 심리적 위축을 유발하게 한다.

 

둘째는

심리적 원인을 가져오는 여러가지 상태로 그런다.

관계에 의한 상처

비교

원망

.........은 심리적 고통을 가중화 시킨다.

 

 마지막으로

영적인 원인이다.

 영적인 원인의 source는

사단의 영역의 그것일 수도 있지만

욥의 그것처럼 연단의 과정 중

주님께서 허락하신 '감성의 밤'의 고차원적인

Test이실 수 있다.

메마름의 밤.........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근본적으로는

주님에게서 그 해답을 찾으려 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분들이 다

오직 주님으로 해결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러한

세 부분의 고통을

전인적 치유를 받아야 함도 옳다.

주님께 허락 받은 '육신적 치유' , 즉 의사와의 상담.

주님께 허락 받은  '심리적 방법' 상담

영적인 접근..

 

 중요한 것은

모두 치료의 개념으로 보면 곤란하다.

주님은 치료자의 한 분류가 아니다.

원인이 상처이면 치료

연단이면 '주님께 내려놓음' 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확실 한 것은

위의 엘리베이터 예처럼

주님 앞에 바로서려는 노력은

순서를 바로 잡고

그러한 옳은 순서는

마음의 평정과 기쁨을 가져와

육신의 회복과 물질적 해결까지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주님.

그 분 주님은

욥같은 영적 성화의 경지에 오르는 성인 같은 분들에게는

'정금의 연단'을 위하여

영적인 메마름을 허락하시지만

우리 같은 어린 영혼 들에게는

주님께 다가와 주님이 허락하신

그 심령천국의 원리를 깨닫게 하는 도구로서

심적 고통을 허락하시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고통을 너무 두려워할 일도 아니지만

모든 고통을 다 인내하는 것 만도

그리 꼭 권유할 만한 일은 아니다.

주님 안에서 동행함

주님의 임재 안에서의 삶이

그래서 중요하다.

 

세상은 한 걸음 잘못 디디면

곳곳에서 덫을 씌우고 우리를 노리고 있다.

짐짓

주님의 허락하신 마음의 고통과 비슷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한없는 나락으로 잡아 다니고도 있다.

주님은 성장을 위하여 허락하시는 연단이시지만

그들 사단은 나락으로 빠뜨리기 위한 고난일 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이

주님 앞에 섰음이냐 아니냐다.

오늘 욥이

울부짖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 유형임을 보이시기 위함이 아니다.

그는

그토록 고통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주님 앞에서 울부짖는다.

그걸 보이시기 위함이시다.

그가 우리와 다른 것은

그는 성장을 위한 고난이지만

우리는 어리석게 좌절한 고통의 덫인지

구분하길 바라시는 뜻이신 것 같다.

 

 

 적용

 

1.  나쁜 생각을 안고 가면 마음이 불편하다.

 말씀 앞에 내려 놓자.

 

2.  걱정 근심 염려 비방 고난 ..........듣기 싫은 모든 상황이

 주님의 허락하신 것이 아닌 지는 잘 살펴 보아야 한다.

 그것을 사단의 것으로 빼앗기는  일 없이

 말씀으로 이겨낼 수 있는 하루가 되길 원한다.

 

3. 당직이다.

 최선을 다한다.

 

4. 성경 여섯장 읽겠다.

 

5.  참고 인내하겠다.

 말 조심한다.

 

6. 억울한 일도 주님의 연단이다.

 주님으로 인하여 연단으로 바뀐다. 0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이 마음의 혼란입니다.

그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세상에서 제일 외로움

세상에서 제일 억울함

세상에서 가장 힘듦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듯함

세상에 아무것도 필요없을 듯한 좌절감

............

모두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그렇지만

주님 안에서

주님의 뜻으로 바라볼 때

그것은 또 다른 연단의 과정임을 알기에

주님

오직 주님 으로 이겨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성령 하나님 도우소서.

나를 운행하시고 나를 숨쉬소서.

주님의 원리 안에

흐르게 하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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